시민언어
사회적 대화 — 정부와 다른 답도 나올 수 있는가
공론장은 시민이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다. 정부의 결론에 시민의 이름을 붙이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핵심 요약
- 올해 사회적 대화 17.5억 원과 내년 교육 예산 253억 원은 다른 항목이다.
- 대화의 성과는 한 진영의 승리보다 상대의 주장을 이해하는 폭의 변화로 살펴야 한다.
- 정부와 다른 결론, 소수의견, 후속 만남과 정부의 답변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통일부 예산을 다룬 보도에서 사회적 대화 사업에 책정된 17억 5천만 원이 다시 주목받았다. 시민을 모아 대화하겠다는 정부의 설명 앞에서, 그 돈이 어떤 대화를 만드는지 묻게 된다. [25](https://www.thepublic.kr/news/articleView.html?idxno=321447)
통일부의 2026년 사회적 대화 활성화 사업은 정부안에서 신규 25억 원으로 제시됐고, 확정액은 17억 5천만 원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안 분석 당시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며, 예산 규모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계획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56109) [3](https://www.nabo.go.kr/board/file/down.do?fid=33318888)
이 지적 이후 올해 실제 사업계획이 발표되고 대화가 진행됐다. 지난해의 계획 미비를 지금도 그대로인 것처럼 설명할 수는 없다. 이제 평가할 대상은 계획의 존재를 넘어 운영의 질과 결과다.
2027년 정부안에서는 별도 항목인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 예산이 159억 원에서 253억 원으로 늘었다. 이것을 곧바로 사회적 대화 사업의 증액이라고 부르면 서로 다른 항목을 섞게 된다. [2](https://www.unikorea.go.kr/web/unikorea/bbs/bbs_0000000000000002/59883)
예산 비판의 초점은 정확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행사를 열었는지보다 그 대화가 어떤 판단을 만들었고, 정부의 어떤 결정을 바꾸었는지가 중요하다. 시민의 의견을 모았다는 보고서가 쌓여도 정책은 처음 방향 그대로라면, 참여에 쓴 돈의 효과를 따져야 한다.
사회적 대화에는 서로 다른 뿌리가 있다
사회적 대화가 어느 날 한 이론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이 말에는 적어도 세 가지 흐름이 겹쳐 있다.
하나는 노동자·사용자·정부가 경제와 사회정책을 협의하는 노사정 대화다. 국제노동기구 ILO는 사회적 대화를 이들 대표 사이의 협상, 협의, 정보 교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해관계가 다른 당사자들이 조건과 책임을 조정하는 제도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이 공적인 문제를 논의하며 권력을 비판하는 공론장의 전통이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1962년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근대 시민들이 국가와 구별되는 영역에서 공적 의견을 형성해온 과정을 분석했다. 살롱과 커피하우스, 독서모임과 언론은 그 역사적 배경이었다. 핵심은 시민이 공적 사안을 놓고 이유를 주고받으며 국가권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여기에 충분한 정보와 토론을 거쳐 판단을 만드는 숙의민주주의가 연결된다. 시민배심원, 숙의형 여론조사, 시민의회는 이를 구체적인 절차로 구현하려는 시도다.
이 세 가지는 목적이 다르다. 노사정 협상은 이해관계 조정이 중요하고, 시민 간 대화는 상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며, 정책 공론화는 근거 있는 권고와 결정의 연결이 중요하다.
서로를 이해하는 모임을 열어놓고 정책 합의를 얻었다고 발표하거나, 일부 이해관계자의 협상을 국민 전체의 뜻으로 설명하면 대화의 의미가 부풀려진다. 무엇을 위한 대화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같은 생각을 하자’는 합의가 아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정치교육 전문가들의 논의에서 정리된 원칙이다. 사회적 대화 전체의 기원이라기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공적인 교육을 어떤 규칙 아래 진행할 것인지 마련한 최소한의 합의에 가깝다.
원칙은 세 가지다. 첫째, 학습자를 특정 의견으로 몰아붙여 독립적인 판단을 막지 않는다. 강요와 주입을 금지한다. 둘째,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 중인 사안은 교육에서도 논쟁적인 것으로 다룬다. 불편한 대안과 반론을 지워서는 안 된다. 셋째, 학습자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서 합의한 것은 정책의 정답이 아니다. 서로 다른 판단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규칙이다.
통일부도 지난 8월 업무보고에서 이 합의를 참고해 한국형 평화통일교육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 원칙은 정부가 진행하는 사회적 대화를 평가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하는 시민이 충분한 자료와 발언 기회를 얻는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의견이 결과 보고서에 남는가.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가 줄어든 결과도 그대로 공개하는가.
정부가 보이텔스바흐를 말한다면, 정부와 다른 결론이 나올 자유부터 보여주어야 한다.
관련 영상으로 EBS 지식채널e의 [〈보이텔스바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https://jisike.ebs.co.kr/jisike/vodReplayView?siteCd=JE&courseId=BP0PAPB0000000009&stepId=01BP0PAPB0000000009&lectId=20459003)를 함께 볼 수 있다.
같은 자리에 앉았다고 같은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킨 낸시 프레이저는 공식적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불평등은 토론 자리에서도 작동하며, 하나의 공론장만으로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의 회의에서도 이 문제는 쉽게 드러난다. 정부 관계자는 자료와 제도를 안다. 단체 활동가는 익숙한 언어로 말한다. 생업을 마치고 참석한 시민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다가 말을 놓친다. 발언 시간을 똑같이 주었다고 이 차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진보 진영에서 사회적 대화와 시민참여를 강조하는 흐름에는 기존 정치와 행정이 담지 못한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의미가 있다. 선거 사이에도 시민이 정책에 관여할 길을 넓힌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동시에 참여를 조직하는 단체가 시민의 목소리를 대신 규정할 위험도 생긴다. 국가와 가까운 단체가 의제를 만들고, 익숙한 전문가가 설명하며, 시민이 그 틀 안에서 의견을 내는 구조라면 참여의 확대가 의제 권력의 집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위험은 진보라는 이름에만 붙어 있지 않다. 보수 정부가 안보와 국가경쟁력을 앞세워 대화를 운영할 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정부와 가까운 시민사회를 시민사회 전체로 취급하는 순간, 공론장의 폭은 좁아진다.
해외에서는 무엇이 효과를 냈나
미국의 민간단체 브레이버 에인절스는 보수와 진보 성향의 시민이 상대에 대한 고정관념을 돌아보고 서로의 경험을 듣는 대화를 운영한다.
이 방식의 효과를 검증한 학술 연구는 미국 네 대학의 학부생을 워크숍 참여 집단과 비교 집단에 무작위로 배정했다. 참여 집단에서는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이 감소했다. 일부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졌다. 연구진은 정보의 교환과 정서적 이해가 함께 작동하는 점에 주목했다.
정책에 동의하게 만드는 것과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게 만드는 것은 다른 성과다. 진영 간 이해를 넓히려면 후자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대학생 대상 연구의 결과를 한국 사회 전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막연한 화합 구호보다 검증할 수 있는 접근이다.
2019년 미국의 ‘아메리카 인 원 룸’은 정책 숙의의 사례다. 전국에서 모집한 500여 명의 유권자가 이민, 경제, 보건, 환경, 외교 문제를 며칠 동안 논의했다. 자료에는 각 정책의 강한 찬반 논거를 담았고, 서로 다른 관점의 전문가들이 검토했다. 참가자들은 소그룹에서 질문을 만들고 전문가에게 답을 들었다. 비교 집단을 둔 연구에서는 여러 쟁점의 진영 간 의견 차이와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다.
효과를 낸 것은 한 방에 모였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검토된 자료, 서로 다른 전문가, 질문할 권리, 충분한 시간이 함께 있었다. 이 결과가 전국적 양극화를 장기적으로 해소했다는 뜻은 아니다.
아일랜드 시민의회는 정부가 마련한 대화도 의미 있는 숙의 절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6~2018년 시민의회는 다양한 견해를 듣고, 자료와 전체회의를 공개하며, 권고를 의회에 제출하는 구조를 갖췄다. 시민의회가 선출된 의회를 대신한 것이 아니라, 의회가 다시 논의할 판단 근거를 만든 것이다.
정부의 지원 자체가 대화의 진정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시민이 판단할 자유와 그 판단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관건이다.
지금 정부는 어떤 대화를 추진하고 있나
현재 확인되는 주요 흐름은 다음과 같다. 이름은 비슷해도 각각의 목적과 참여 방식은 다르다.
통일부는 시민사회 주도형 대화, 청년 대화, AI 플랫폼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경사노위는 AI 전환과 노동, 청년 일자리 등의 논의를 진행하며 지역 대화 지원체계도 마련했다.
통일부의 국민주권 대화 소개에는 보수·진보 시민사회와 종교계, 북한인권 관련 단체 등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진영이 함께 참여하는 모양새를 갖추고는 있다. 실제 영향력이 고르게 배분되는지는 별도로 확인할 문제다.
청년 대화는 ‘통일이 미래세대에게 어떤 기회를 줄 수 있을까?’라는 의제로 진행됐다. 청년들이 통일 문제를 자신의 삶과 연결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의제는 정당 추천, 직능단체 추천, 청년단체 공모로 구성된 15명의 연석회의가 선정했다. 토론 참여자는 성별·이념별·연령대 등을 고려한 무작위 층화추출로 뽑았다.
경사노위 역시 대표성의 문제가 남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올해 4월 분석은 민주노총의 불참을 지적하며 노동계 대표성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와 영세사업자의 이해가 얼마나 반영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화의 자리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사회를 충분히 대표한다는 판단은 다르다.
민간 시민의회도 같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
국내 민간에서도 시민의회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 대전에서는 대전시민의회포럼, 시민의회전국포럼, 빠띠 등의 공동주최로 돌봄시민의회 설계 워크숍이 열렸다. 누가 참여하고, 무엇을 논의하며, 어떻게 운영할지 시민과 당사자가 함께 검토하는 자리였다. 실제 시민의회 개최에 앞선 설계 단계의 활동이며,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았다.
시민의회는 사회적 대화와 숙의민주주의를 구체적인 참여 절차로 연결하는 방식 중 하나다. 민간의 시도는 정부 밖에서 의제를 발굴하고 대화의 역량을 축적한다는 의미가 있다.
민간이라는 이유로 대표성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주최 단체의 관심사가 의제를 좁힐 수 있고, 참여자에게 제공하는 자료가 한쪽 관점을 강화할 수도 있다. 무작위로 뽑힌 소수 시민의 권고를 전체 국민의 명령처럼 설명하는 문제도 남는다.
정부와 시민단체 모두 공론장을 운영할 때 권력을 갖는다. 씨앗은 그 권력에 같은 질문을 적용한다. 시민의회는 다음 편에서 추첨의 대표성, 의제 권력, 선출된 의회와의 관계를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씨앗의 관점 — 대화의 성과는 진영의 승리가 아니다
사회적 대화의 성과는 양 진영이 모여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데 있지 않다. 상대가 왜 그 판단을 하는지 경청하고 이해의 폭을 조금씩 넓히는 데 있다. 반대의견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의 걱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진전이다.
정책 권고를 만드는 숙의에서는 공동의 결론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상호 이해의 성과와 정책 합의의 성과는 구분해야 한다. 정부안에 대한 지지가 늘었는지만 평가하면 대화는 설득 사업으로 기울어진다.
진영의 다름은 서로의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살리려면 참가자가 자기 진영의 승리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다른 판단, 조건부 동의와 판단 유보도 결과로 인정해야 한다.
질문과 진행자가 대화의 방향을 정한다
통일이 기회를 준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청년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는가. 기회보다 비용과 위험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 통일보다 안정적인 공존을 우선하는 사람도 같은 무게로 자신의 판단을 펼칠 수 있는가.
질문 하나만으로 토론 전체가 편향됐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실제 자료와 진행 과정, 결과 보고서를 살펴야 한다. 다만 질문은 대화의 출발선을 정한다. 기회를 묻는 질문과 기회·비용·위험을 함께 묻는 질문은 서로 다른 대화를 만든다.
사회적 대화라는 말은 부드럽다. 갈등을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자는 뜻으로 들린다. 그 말 아래서는 누가 질문을 만들고, 누가 자료를 고르고, 누가 마지막 문장을 쓰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화의 이름보다 대화를 설계하는 권력을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다.
양 진영의 이름을 명단에 올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각각의 주장을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고, 해당 입장을 가진 시민에게도 신뢰받는 발제자가 필요하다. 상대의 약한 주장만 골라 소개하면 균형은 형식에 머문다. 어떤 전문가가 섭외됐고 반론과 질문에 얼마나 시간이 배정됐는지 공개해야 한다.
진행자의 역할도 결정적이다. 발언 순서를 정하는 일을 넘어, 서로 다른 의견이 왜 부딪히는지 드러내고 말하기 어려운 사람의 판단을 보호해야 한다.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을 대화에 적대적인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교류를 바라는 사람을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가면 토론은 금세 진영 심문이 된다. 진행자는 주장에 담긴 근거와 걱정을 분리해 살펴야 한다. 틀린 정보는 확인하고, 다른 가치판단은 토론할 수 있도록 남겨야 한다.
무작위 추첨은 사람을 고른다. 좋은 대화까지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무작위 추첨은 늘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 밖으로 참여 기회를 넓힐 수 있다.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한 층화추출은 참여자의 구성을 보완한다. 그다음부터는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돌봄과 생업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자료를 이해할 시간은 충분했는가. 처음 들은 전문가의 설명이 유일한 판단 근거가 되지는 않았는가.
OECD의 숙의 절차 원칙은 대표성뿐 아니라 참여 지원, 정보, 시간, 독립성, 평가와 정책 대응을 함께 요구한다. 복잡한 정책 권고를 만드는 숙의에는 원칙적으로 최소 나흘의 대면 시간을 권고하면서, 더 짧게 운영하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모든 시민 대화에 나흘이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책 판단의 무게에 맞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러 지역에서 행사를 아홉 번 열었다고 한 시민이 아홉 번 숙의한 것은 아니다. 전체 사업 기간과 개별 참여자의 학습·토론 시간을 구분해야 한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을 모았다는 숫자만으로 이해가 깊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마지막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참가자의 말이 운영기관의 요약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 OECD는 권고문의 표현에 대해 참가자가 최종적으로 의견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AI가 요약을 맡아도 이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수의 공통점만 매끄럽게 정리하다가 적은 사람의 중요한 반론이 지워질 수 있다. 원문과 요약을 대조하고, 참가자가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에게 대화를 권하기 전에, 정부는 상대를 듣고 있는가
씨앗은 [〈대통령의 언어, 시민의 언어〉](/columns/presidential-language-civic-language-2026)에서 대통령이 사용한 ‘좌아하게’라는 표현을 다뤘다. 대통령의 말은 지지층의 결속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 서로를 대하는 기준에도 영향을 준다. 상대를 낮추는 진영의 언어가 국정의 언어가 되면 사회적 대화가 내세우는 존중과 충돌한다.
[〈해체의 정치를 멈춰야 한다〉](/columns/stop-the-politics-of-dismantling-2026)는 제도 재편을 비판적으로 살펴본 글이다. 개혁의 필요성과 별개로 상대의 문제 제기를 듣고 견제와 대안의 통로를 보장하는지가 중요하다. 씨앗이 말하는 ‘해체’는 이 과정에 대한 비판적 판단이다.
정부가 시민에게 상대를 이해하라고 권하면서 정작 국정에서는 반대 진영을 협치의 동반자로 초대하지 않는다면, 시민은 행사장의 언어와 권력의 행동 사이에서 모순을 보게 된다. 반대자의 우려를 정책 검토에 반영하고 무엇을 바꾸었는지 보여주는 것이 먼저다. 씨앗은 [〈그들이 대한민국 시민사회를 대표하는가〉](/columns/do-they-represent-korean-civil-society)에서 대통령의 시민사회 간담회가 진보 성향 단체에 기울었던 구성을 짚고, 다른 관점의 단체와 조직되지 않은 시민에게도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동영 장관의 북한 핵시설 발언을 둘러싸고 지난 4월 미국이 일부 정보공유를 제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 장관은 공개정보에 기초한 설명이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한미 간 신뢰와 소통의 문제로 검증할 사안이다. 국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없애는 근거는 아니다. 당시의 보도만으로 현재도 같은 제한이 계속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평화정책의 공감대를 넓히겠다는 정부라면, 대외 협력의 마찰과 정책의 한계도 대화 자료에 올려놓아야 한다. 성과와 기대만 설명하고 실패와 위험은 토론 밖에 두면 시민이 판단할 근거부터 부족해진다.
정부의 평소 언어와 정책 결정이 대화의 신뢰를 허물고 있다면, 행사 예산으로 그 신뢰를 메우기는 어렵다. 시민을 모아놓고 경청을 주문해도 정부의 일방통행이 계속된다면 사회적 대화 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대화는 정부의 설명을 잘 듣는 자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부의 설명이 충분한지 검증하는 자리여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는 어떻게 시작할 수 있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대화는 처음부터 거대한 국민합의를 목표로 삼을 필요가 없다. 서로가 왜 그 판단을 하는지 이해하고, 함께 확인할 사실을 찾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씨앗은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대화의 목표를 나눈다. 상호 이해를 위한 모임인지, 이해관계 협상인지, 정책 권고를 위한 숙의인지 먼저 밝힌다. 상호 이해의 성과를 정책 동의로 바꾸어 발표하지 않는다.
둘째, 질문을 함께 만든다. 통일의 기회를 묻는다면 비용과 위험도 함께 다룬다. 정부안을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조직에 속하지 않은 시민이 의제 문구를 검토한다. 참가자가 질문 자체를 고칠 수 있게 한다.
셋째, 상대의 경험을 듣고 근거를 검토하는 순서를 만든다. 처음부터 찬반 결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무엇을 겪었고 무엇이 걱정되는지 듣는다. 상대의 주장을 자기 말로 설명한 뒤 당사자가 맞게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이후 공통 자료와 상충하는 근거를 검토한다.
넷째, 진행자를 정부의 결론에서 독립시킨다. 진행자의 역할과 이해관계를 공개하고, 편향된 진행에 이의를 제기할 통로를 둔다. 참가자의 침묵을 동의로 처리하지 않는다. 소수의견과 조건부 동의, 판단 유보를 구별한다.
다섯째, 한 번의 행사 뒤에도 만날 수 있게 한다. 지역의 생활 문제를 함께 확인하고 작은 후속 활동을 이어간다. 정부는 장소·참여비·돌봄 지원 등을 제공하되, 정부와 가까운 단체에만 기회를 몰아주지 않는다. 자발적인 대화가 자랄 공간을 넓힌다.
여섯째, 정부가 답하게 한다. 권고마다 무엇을 수용했고 무엇을 거부했는지, 그 이유를 공개한다. 씨앗은 정책 숙의 사업의 경우 결과 제출 뒤 3개월 이내 1차 답변, 6개월 뒤 이행 현황 공개를 운영 기준으로 제안한다. 만족도와 참석 인원에 더해 이해의 변화, 소수의견의 보존, 정책 반영을 평가한다.
자발적인 대화에도 설계와 자원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공론장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시행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시민이 자신의 문제를 의제로 만들 수 있는가. 반대하는 사람이 떠나지 않고 말할 수 있는가. 대화가 끝난 뒤 정부도 처음 생각을 바꿀 수 있는가. 이 조건이 정부의 개입과 시민의 자율성을 가르는 기준이다.
사회적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 씨앗의 생각은 아니다. 진영의 결론을 사회의 합의로 포장하는 대화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다음에 공개될 사업 결과에서 씨앗이 살필 것은 행사장의 크기나 참가자의 숫자만이 아니다. 누가 의제를 정했는지, 어떤 반론이 자료에 실렸는지, 끝까지 남은 이견이 어떻게 기록됐는지, 정부가 무엇을 바꾸었는지다.
사회적 대화의 진정성은 시민이 정부를 얼마나 이해했는가와 함께, 정부가 시민 때문에 무엇을 바꾸었는가로 확인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