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해설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도구다

정치는 우리 삶을 대신 결정하는 주인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규칙을 만들기 위해 시민이 제한적으로 맡긴 도구다. 민주주의는 좋은 지도자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위임한 뒤에도 감시하고 제한하며 자신의 몫을 다하는 과정이다.

핵심 요약

  •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동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 법은 권력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시민과 기업이 내일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 사회 문제를 모두 정치에 맡길수록 시민은 해결의 주체에서 정책의 소비자로 물러난다.
  • 민주주의는 좋은 지도자에게 문제를 맡기는 제도가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위임하고 감시하며 제한하는 제도다.
  • 정책은 사회를 바꾸는 수단이고, 시민은 사회를 바꾸는 주체다.

정치란 무엇인가.

뉴스 화면을 켜면 정치가 넘쳐난다. 대통령의 말, 정당의 공방, 지지율과 선거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정치는 이렇게 우리 곁에 가득한데, 정작 시민은 자신의 삶을 바꿀 힘이 없다고 느낀다. 정치가 커질수록 시민은 왜 더 무력해지는가.

우리는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일, 정당이 경쟁하고 국회가 법을 만들며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는 일을 정치라고 배웠다.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정치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결하지 못하면 무능한 정부를 비판하고 다음 선거에서 다른 정당을 선택한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익숙한 설명에는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이 빠져 있다. 시민이다.

투표하는 날 시민은 주권자가 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다음 날부터 정치인의 말을 듣고, 정책을 기다리고, 결과를 평가하는 관객으로 물러난다. 사회를 바꾸는 일은 정치인의 몫이 되고 시민에게 남는 역할은 요구와 비판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까지 정치의 책임으로 넘겨왔다.

정치는 커지고 시민은 작아진다.

정치는 공동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정치는 국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나온 정치의 개념도 누가 권력을 차지하느냐만을 묻지 않았다. 생각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질서 속에서 함께 살 것인지, 공동체의 좋은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묻는 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를 공동선을 향한 정치공동체의 활동으로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날 사전적인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와 공동체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활동이 정치다. 권력을 얻고 행사하는 경쟁도 정치의 일부다. 그러나 정치를 권력 경쟁으로만 보면 시민의 삶은 사라지고 승자와 패자만 남는다.

우리의 이해관계는 매일 부딪친다. 노동자와 기업, 임차인과 임대인, 납세자와 복지 수혜자, 개발을 원하는 사람과 환경을 지키려는 사람의 요구는 같을 수 없다. 한쪽의 절박함이 다른 쪽의 삶을 지워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한쪽을 선하다고 선언하고 다른 쪽을 밀어내는 대신, 충돌하는 요구를 공개된 절차 안에 올려놓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규칙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그 규칙은 권력자의 기분이나 정권의 필요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법은 미리 공개되어야 하고 명확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시민은 그 규칙을 믿고 집을 구하고 직업을 선택한다. 기업은 사람을 고용하고 투자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어제까지 합법이던 일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오늘 위법이 되고, 누구를 아느냐에 따라 허가와 처벌이 달라진다면 사람들은 법보다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곳에는 자유도 도전도 자라기 어렵다. 정치가 만들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결과는 시민이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사회다.

정치의 목적은 시민의 삶을 대신 설계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시민이 각자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안정된 경기장을 지키는 데 있다.

정치는 사회를 바꾸는 유일한 길이 아니다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의 시선은 곧바로 국회와 정부를 향한다. 법을 만들고 예산을 늘리고 전담 조직이나 위원회를 세우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회 변화는 어느새 정책 변화와 같은 말이 되고, 정당과 정부만이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처럼 보인다.

정치가 책임져야 할 일은 분명히 있다. 국방과 치안, 사법과 기본 질서, 시민의 권리 보호, 공정한 경쟁 규칙, 재난 대응은 개인에게 떠넘길 수 없다. 정당은 흩어진 시민의 요구를 정책으로 모으고 선거에서 선택받으며 집권의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무능한 국가를 작게 만드는 것이 자유는 아니다.

그러나 유능한 국가와 모든 것을 떠맡은 국가는 다르다. 정치가 모든 문제의 주인이 되는 순간 사회의 다른 힘은 설 자리를 잃는다.

가족과 이웃이 손을 맞잡아 풀 일, 지역사회가 협력할 일, 기업과 시장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일, 시민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일이 있다. 이 모든 빈틈을 정책이 먼저 차지하면 국가는 커지지만 사회는 자라지 못한다. 시민은 함께 해결하는 사람에서 정부 사업에 참여하고 보조금을 신청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결과가 나아지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더 많은 예산과 더 강한 권력을 요구한다. 정치가 풀지 못한 문제를 정치에 더 크게 맡기는 이상한 순환이다. 이것이 정치 과잉이다. 정치가 넘쳐나는데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왜 다시 왕을 찾는가

왕관은 사라졌지만 왕을 기다리는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 과잉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을 정의롭게 이끌고 복잡한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 줄 지도자를 찾는다. 대통령과 정당의 이름은 바뀌어도 ‘누군가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남는다.

좋은 지도자가 집권하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지지한 정부가 들어서면 감시를 늦추고, 반대편 정부가 들어서면 모든 결정을 의심한다. 자기 정당의 잘못보다 상대 진영의 집권을 더 두려워한다. 시민이 권력을 통제해야 할 민주주의가 자기편 권력자를 지키는 싸움으로 변한다.

그 순간 정치는 시민의 도구가 아니라 신앙이 된다. 지도자는 비판할 수 없는 상징이 되고, 시민은 주권자보다 충성스러운 지지자가 된다.

민주주의는 좋은 왕을 선출하는 제도가 아니다. 누구도 왕이 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시민이 권력을 맡기되 전부 맡기지 않고,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켜보며, 권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긋는 제도다.

위탁 민주주의, 시민은 관객이 되었다

문제 해결을 정치에 맡긴 뒤 시민은 뒤로 물러나 결과만 평가한다. 씨앗은 이런 상태를 ‘위탁 민주주의(outsourced democracy)’라고 부른다. 권한만 위임한 것이 아니라 판단과 책임까지 함께 넘겨버린 민주주의다.

나는 투표했고 세금도 냈으니 내 몫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 대신 문제를 풀어 줄 것이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치인을 비판하면 된다. 화면 앞에서 분노하는 일은 쉽지만 이웃과 함께 작은 문제 하나를 풀어가는 일은 번거롭다. 우리는 조금씩 관객석에 익숙해졌다.

이 모습을 시민 개인의 게으름으로만 몰아붙일 수는 없다. 정치는 오랫동안 시민에게 관객이 되라고 가르쳐 왔다.

정당은 표를 얻기 위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국가는 시민이 서로 풀 수 있는 일까지 정책과 보조금의 영역으로 가져갔다. 언론과 미디어는 시민의 조용한 실천보다 정치인의 말과 진영의 싸움을 더 크게 보여주었다. 정치 과잉은 시민을 관객으로 만들었고, 관객이 된 시민은 다시 정치에 더 많은 해결을 요구했다.

깨어 있는 시민은 이 순환을 불편하게 만든다. 공약의 비용을 묻고, 예산이 어디로 흘렀는지 살피며, 인사의 책임을 따진다. 자기편 정부의 잘못도 외면하지 않는다. 어느 권력에도 이런 시민은 편리한 지지자가 아니다.

그래서 시민이 잠들면 권력은 편안해진다. 권력은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 시민의 눈과 목소리가 권력을 멈춰 세운다.

정당이 시민을 대표한다는 말

최장집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과 서민의 요구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 한국의 정당체제를 비판했다. 흩어진 시민의 요구가 정당을 통해 조직되고 정책으로 경쟁하며, 집권한 세력이 그 결과에 책임지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당이 없으면 시민의 요구는 흩어진 목소리에 머물기 쉽다. 그것을 법과 제도로 만들 조직이 필요하고, 직접 참여만으로 복잡한 국가를 운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정당 없는 민주주의가 어렵다고 해서 정당만 있는 민주주의가 온전한 것은 아니다. 대표는 위임이지 양도가 아니다.

정당은 시민의 뜻을 모으는 통로인 동시에 시민이 감시해야 할 권력이다. 시민을 진영으로 묶고 공천과 정책을 독점하며 비판을 배신으로 취급한다면 대표는 지배로 변한다. 주인이 하인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고 의존하면 어느 순간 하인이 주인을 부린다. 정당에 시민의 판단까지 넘겨주고도 좋은 정치가 오래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정당이 시민을 이끄는 민주주의에서 시민이 정당을 부리는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정당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당보다 먼저 서 있어야 할 사람은 시민이다.

선거 뒤에도 남아 있는 시민의 권력

선거는 사람을 권력의 자리에 앉힌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리에 앉은 뒤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는 일까지 선거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피에르 로장발롱은 『대항민주주의』에서 바로 이 선거와 선거 사이의 민주주의를 말한다.

시민은 몇 년에 한 번 표를 던지고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부당한 결정을 저지하며, 잘못에 책임을 묻는 존재다. 선거가 권력을 구성한다면 대항민주주의는 그 권력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는다.

로장발롱은 시민을 감시자이자 거부권을 가진 사람, 책임을 심판하는 사람으로 설명한다. 시민의 불신에도 두 얼굴이 있다. 근거 없는 의심은 공동체를 무너뜨리지만, 사실을 확인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불신은 권력을 긴장시키는 힘이 된다.

대항민주주의는 무조건 반대하는 정치가 아니다. 분노를 쏟아내고 책임은 지지 않는 정치도 아니다. 권력이 침묵하지 못하게 하고, 결정의 이유와 결과를 시민 앞에 내놓게 만드는 힘이다.

씨앗은 감시의 범위를 더 넓게 본다. 선출된 정부와 정당만 권력이 아니다.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기업과 언론, 전문가와 공익기관도 예산과 영향력을 가지는 순간 권력이 된다. 시민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시민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시민과 정치는 긴장 관계에 있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편안한 관계가 아니다. 시민과 정치는 서로 기대면서도 끊임없이 긴장해야 한다. 정치가 시민을 가르치고 이끄는 관계도 아니며, 시민이 모든 판단을 정치에 맡기는 관계도 아니다.

시민은 권력을 위임하되 눈을 떼지 않는다. 정치는 권한을 행사하되 시민의 판단 앞에서 긴장해야 한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이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지지한 정부라는 이유로 감시를 멈추는 순간 시민은 권력의 주인에서 지지자로 내려앉는다. 자기편의 잘못은 감싸고 상대편의 잘못에만 분노한다면 시민의 정치가 아니라 진영의 정치다. 권력은 시민을 둘로 갈라놓는 순간 가장 편안해진다.

시민이 행사하는 정치적 영향력은 정치인을 대신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힘이 아니다. 정치가 시민의 눈치를 보게 하고,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다. 권력자가 시민의 질문을 귀찮아하고 시민의 반대를 두려워할 때 민주주의는 오히려 살아 있다.

정치는 시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시민은 정치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큰 시민은 정치운동가가 아니다

여기까지 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민이 바로 서야 한다’는 말은 자칫 감흥 없는 교과서 문장처럼 들린다. 민주주의가 잘못된 책임을 다시 시민의 의식 수준에 돌리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씨앗이 말하는 시민의 성장은 그런 훈계가 아니다.

큰 시민은 거창한 시민이 아니다. 정치 지식이 많거나 날마다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모두가 집회에 나오고 공론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큰 시민은 자신의 판단을 정당과 국가에 전부 맡기지 않는 사람이다. 국가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이웃과 방법을 찾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권리를 요구하면서 선택의 결과도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자기편 권력에도 같은 기준을 들이댄다.

큰 시민은 혼자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다. 작은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혼자 힘으로 부족할 때 다른 시민과 손잡을 줄 아는 사람이다.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민이 아니라, 국가가 자유를 침범할 때 분명하게 멈추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이다.

시민이 성장한다는 것은 정치에 더 많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대신 생각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책임을 정치에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정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정치는 필요하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공개된 절차 안에서 조정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동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개인이 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함께 처리하며, 결정의 결과에 책임질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제한되어야 한다. 좋은 정치는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법을 명확하고 안정되게 만들고 권력도 그 법 아래 둔다. 시민이 허가와 특혜를 찾아 권력 주변을 맴돌지 않아도 되는 사회, 정권이 달라져도 계약과 권리가 흔들리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

정치는 민주주의의 주인이 아니다. 시민이 사용하는 도구다. 좋은 도구는 주인의 손을 대신하지 않는다. 주인이 하려는 일을 돕고, 정해진 범위를 넘어 주인을 해치지 않는다.

정치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가져가면 시민은 정책의 대상이 된다. 정당이 시민의 판단을 대신하면 시민은 진영의 지지자가 된다. 시민단체가 시민 전체를 대표한다고 나서면 시민의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권력이 생긴다. 권력의 이름이 바뀌어도 시민이 작아지는 결과는 같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좋은 정당 하나, 좋은 지도자 한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편 권력까지 감시하는 시민, 국가 밖에서도 서로 협력하는 시민, 정치가 해야 할 일과 시민이 할 일을 구분하는 시민의 바탕에서 자란다.

정책은 사회를 바꾸는 수단이다. 시민은 사회를 바꾸는 주체다.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더 좋은 왕이 아니다. 더 크게 자란 시민이다. 정치가 시민을 대신할수록 시민은 작아진다. 시민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수록 정치는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간다.

씨앗의 정의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동의 규칙을 세워, 법의 지배 아래 누구나 내일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시민을 대신해 사회를 소유하는 권력이 아니라, 시민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맡긴 도구다. 민주주의는 그 도구를 선택하는 선거만이 아니라, 시민이 계속 감시하고 제한하며 책임을 묻는 과정이다.

씨앗이 계속 볼 것

법과 정책이 명확하고 안정적이며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는가.

정권이 바뀌어도 시민의 권리와 기업의 계약, 사회의 기본 규칙이 지켜지는가.

새 정책이 시민의 선택과 책임을 넓히는가, 국가와 정치에 대한 의존을 키우는가.

시민 참여가 실제 권력 통제로 이어지는가, 정책 홍보의 장식으로 이용되는가.

정부를 감시한다는 시민단체·언론·전문가 조직도 자신의 예산과 결정에 책임지는가.

시민은 자신이 지지하는 권력에도 같은 질문을 던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