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언어
제한된 국가 — 시민이 맡긴 권한에는 경계가 있습니다
국가는 시민을 지킬 능력과 권력을 멈출 장치를 함께 갖춥니다. 씨앗은 노모어택스를 국가의 재정권한에 경계를 세우는 운동으로 봅니다. 사법독립은 그 경계를 넘은 국가에 시민이 맞설 길을 지킵니다.
핵심 요약
- 제한된 국가는 헌법과 기본권, 절차와 시민의 감시 안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입니다.
- 노모어택스는 세금을 더 걷기 전에 낭비와 성과를 검증하고, 국민의 돈을 통제할 권리를 지키는 운동입니다.
- 사법개편의 기준은 시민이 국가의 잘못을 더 독립적이고 신속하게 다툴 수 있는지입니다.
시민에게 더 내라고 말하기 전에, 국가는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설명했습니까. 개혁을 말하기 전에, 그 개혁으로 누구의 권한이 커지고 시민이 무엇을 잃는지 밝혔습니까.
국가의 권한은 늘 ‘우리를 위해서’라는 말과 함께 커집니다. 시민을 보호하고 경제를 살리며 제도를 고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어디에 썼는지 물으면 복잡한 자료가 앞을 막고, 권한이 지나치다고 말하면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시민이 맡긴 권한인데, 되묻는 시민은 왜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앞선 시민언어 [「국가는 시민의 주인이 아니라 시민이 권한을 맡긴 제도라는 말이다」](/seed-language/state-citizens-trust)에서 씨앗은 국가를 시민이 권한을 맡긴 제도로 설명했습니다. 시민을 지킬 만큼 유능하고, 권한을 제한받으며, 시민의 경험으로 계속 고쳐지는 국가입니다.[1] 이번에는 그 가운데 ‘제한’을 살펴봅니다.
씨앗의 증세반대 ‘노모어택스’ 운동과 사법독립에 대한 문제의식도 여기서 만납니다. 국가가 시민의 돈과 삶에 어디까지 손댈 수 있는지, 그 선을 넘었을 때 시민이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맡긴 권한에는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시설 관리와 비용 집행을 맡겼다고 해봅시다. 그렇다고 주민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거나 지출을 묻는 주민의 발언을 막을 권한까지 생기지는 않습니다. 일을 잘하겠다는 의욕도 그 경계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국가는 훨씬 큰 힘을 갖습니다. 세금을 걷고, 영업을 제한하고, 사람을 체포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힘이 시민을 지키는 데 쓰이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함께 무엇을 할 수 없는지도 분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한된 국가’는 이러한 공권력의 범위와 행사 방법에 한계를 둔 국가를 뜻합니다. 정치사상에서 말하는 제한정부, 입헌주의와 연결됩니다. 입헌주의는 통치하는 사람도 헌법의 경계 안에서 권력을 쓴다는 원리입니다. 법으로 권한을 부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본권과 절차로 그 권한을 묶습니다.[2]
그 대상은 대통령과 행정부만이 아닙니다. 국회도 다수 의석을 가졌다고 어떤 법이든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법원도 법과 절차를 벗어나 재판할 수 없습니다. 권한을 가진 기관에는 그 권한을 다툴 통로와 책임을 물을 장치가 따릅니다.
선거는 이런 경계 안에서 권력을 맡기는 절차입니다. 선거에서 이겼다는 이유로 그 경계까지 없앨 수 있다면, 시민은 대표를 뽑은 뒤 다음 선거까지 권리를 맡겨두는 처지가 됩니다.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도 한 사람의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할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제한된 국가에서 시민은 간섭을 거부할 때마다 자신의 선량함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유를 제한하려는 국가가 법적 근거와 필요성, 제한의 범위를 설명합니다. 설명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가릅니다.
국가의 능력과 권력의 한계는 함께 갑니다
국가를 제한한다고 하면 국방과 치안까지 약하게 만들자는 말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씨앗의 생각은 분명합니다. 침공을 막지 못하고, 화재에 대응하지 못하고, 범죄 피해자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시민의 자유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국가가 유능하다는 것은 이런 일을 해낼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능력이 있다고 시민의 사생활과 재산, 말할 자유까지 마음대로 다룰 권한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화재 진압을 위한 긴급 출입과 관리 편의를 위한 사생활 조사는 필요한 권한의 범위부터 다릅니다.
이 때문에 ‘작은 정부’와 ‘제한된 국가’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은 정부는 주로 지출과 조직, 개입의 범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둡니다. 제한된 국가는 권한을 어떻게 행사하고 누가 멈추게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둡니다. 공무원이 적어도 시민을 광범위하게 감시한다면 권력은 과도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소방 인력을 늘리는 일과 부당한 정보 수집을 막는 일은 함께 가능합니다.
다론 아세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연구도 국가의 능력과 사회의 견제를 함께 봅니다. 두 사람이 제시한 이론 모형에서는 국가를 지배하는 엘리트와 사회의 힘이 상대적으로 균형을 이룰 때 포용적인 국가가 형성되고, 장기적인 국가역량도 가장 높아집니다.[6] 사회가 국가를 견제하면 국가가 반드시 무능해진다는 설명과는 다른 관점입니다.
진영은 다른 위험을 먼저 봅니다
시장과 재산권을 중시하는 보수·고전적 자유주의의 흐름은 국가가 너무 많이 걷고 너무 깊이 개입할 위험을 먼저 봅니다. 규제가 쌓이면 새 사업이 어려워지고, 세금이 늘면 시민과 기업이 직접 결정할 몫이 줄어든다는 문제의식입니다. 가족과 지역사회, 민간의 자율적인 역할도 중요하게 봅니다.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의 흐름은 가난과 불평등, 독점 때문에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먼저 봅니다.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간섭이 적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복지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국가의 역할을 강조합니다.[3]
진영 내부에도 차이는 있습니다. 보수도 안보와 질서를 위해 강한 통제권을 요구하고, 진보도 국가의 감시와 검열에 맞서 자유를 지켜왔습니다.
씨앗은 문제의 발견과 권한 확대의 정당성을 구별합니다. 국가는 돈과 권한을 더 얻기 전에 그 방법이 문제를 줄이는지, 시민이 감당할 비용은 얼마인지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동네 돌봄이 부족하다면 지원을 늘리는 방법과 주민 모임·민간 서비스의 활동을 가로막는 규칙을 고치는 방법을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행정이 정한 사업만 남긴다면 지원은 늘어도 선택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씨앗은 시민이 스스로 해낼 힘이 커지는지도 봅니다.
이 기준은 정권이 바뀌어도 같습니다. 오늘 내 편이 쓰는 권한은 내일 반대편이 물려받을 권한입니다. 대통령의 이름에 따라 권한의 한계가 달라진다면 시민의 자유는 기준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좋은 목적에도 효과와 한계를 묻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게시판 본인확인제는 이 원리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입니다. 흔히 ‘인터넷 실명제’라고 불렸던 제도입니다.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인터넷 사업자에게 이용자의 본인확인을 위한 조치를 의무화했습니다. 불법 게시물을 줄이고 피해가 생겼을 때 가해자를 찾기 쉽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는 해당 의무 조항 등에 대해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했지만, 시행 뒤 불법 게시물이 의미 있게 줄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고 이용자의 표현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짚었습니다. 피해를 막고 구제할 다른 수단도 살폈습니다.[4][5]
모든 본인확인을 금지한 결정은 아닙니다. 당시 심판 대상이 된 의무 조항 등을 판단한 것입니다. 좋은 목적을 내세워도 효과가 충분하지 않고 자유를 지나치게 좁혔다면 제도는 멈출 수 있습니다.
피해를 막자는 말에 동의하는 것과 모든 통제에 동의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둘을 묶으면 반대하는 시민은 피해를 방치하려는 사람처럼 보이게 됩니다. 권한의 범위와 정책의 효과를 묻는 질문이 도덕적인 찬반으로 바뀝니다.
노모어택스는 국가의 씀씀이에 경계를 세우는 운동입니다
이 원칙은 세금에서 가장 가까운 생활의 문제가 됩니다. 시민이 번 돈에는 이미 쓸 곳이 있습니다. 가족의 생활비이고, 노후를 위한 저축이며, 가게를 고칠 자금입니다. 기업에는 설비투자와 채용, 실패를 견딜 여력입니다. 정부가 더 가져가는 돈에는 시민이 포기하는 선택이 있습니다.
재정정책에서는 정부가 할 일이 앞에 나오고 시민이 포기할 일은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지급액은 크게 발표하고 재원과 부담은 작게 설명합니다. 지급하는 정부의 모습은 선명하고 부담하는 시민의 모습은 흐릿해집니다.
씨앗이 전개하는 증세반대 ‘노모어택스’ 운동은 이 관계를 바로 세우는 운동입니다. 씨앗의 [증세반대 선언](/columns/no-more-tax-increases-civic-declaration-2026)은 무리한 증세와 빚에 기대는 재정확장에 반대하고, 증세안·보조금·기금의 사용을 감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7] 국가가 시민의 소득을 더 가져가려면 그 필요성을 시민 앞에서 입증하라는 뜻입니다.
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존 사업 가운데 무엇을 줄일 수 있는지, 같은 효과를 더 적은 돈으로 낼 수 있는지, 정부가 직접 맡는 방식이 더 나은지까지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정부의 실패와 낭비를 그대로 둔 채 시민에게 추가 부담을 청구하는 정치는 납세자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빚을 내도 부담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자와 상환은 미래의 예산을 제약합니다. 오늘 지원을 받은 사람과 앞으로 청구서를 감당할 사람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성과와 함께 비용을 감당할 방법도 설명에 들어갑니다.
노모어택스의 감시는 세금을 걷는 순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국회가 의결한 돈의 용도를 정부가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보조금을 받은 조직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한시적인 사업이 왜 계속되는지도 살핍니다. 돈을 걷을 권한과 쓸 권한 모두 시민의 통제 아래에 놓는 것입니다.
시민은 서명으로 뜻을 모으고, 예산과 계약을 확인하며, 의문스러운 지출에 설명을 요구하는 납세자로 섭니다. 모든 예산을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동네의 사업과 익숙한 물품 가격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이 모이면 정부의 설명을 검증할 힘이 됩니다.
성과 없는 사업과 조직이 계속 돈을 가져간다면 국방과 치안, 재난 대응처럼 필요한 곳에 쓸 여력도 줄어듭니다. 씨앗이 지키려는 것은 시민이 자기 삶을 결정할 몫과 국민의 돈을 통제할 권리입니다.
사법독립이 흔들리면 시민이 국가를 멈출 길도 좁아집니다
시민이 지출을 감시하고 부당한 세금에 반대해도, 국가의 잘못을 독립적으로 판단할 곳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된 과세나 부당한 영업 제한을 다툴 때 필요한 통로를 지키는 제도가 독립적인 사법입니다.
삼권분립은 권력기관끼리 자리를 나눠 갖는 약속이 아닙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력의 판단을 다른 권력이 심사하게 하는 구조입니다. 시민이 정부에 반대해도 법정에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여기서 나옵니다. 사법독립은 법관의 체면보다 국가와 다투는 시민의 처지에서 볼 문제입니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사법개편은 이 견제 구조에 중대한 위험을 만들고 있습니다. 2026년 3월 12일 공포된 이른바 ‘사법개혁 3법’ 가운데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은 즉시 시행됐습니다. 대법관 정원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변화는 2028년부터 3년에 걸쳐 진행됩니다.[8]
법왜곡죄는 부당한 목적을 가진 고의적인 법 왜곡 등을 처벌하는 제도입니다. 합리적인 범위의 법 해석과 재량 판단을 제외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판결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법관을 고발하고 수사를 요구하는 과정은 독립적인 판단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세종의 분석도 고발과 적극적인 법 해석의 위축 가능성을 짚었습니다.[9]
고발이 곧 유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법관이 판결 뒤 돌아올 수사 부담을 걱정하게 된다면, 권력에 불리한 판단을 기대하며 법정에 온 시민도 영향을 받습니다. 재판에 대한 불복이 재판한 사람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번질 위험입니다.
재판소원은 일정한 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확정된 재판을 헌법재판소에서 다툴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모든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심리하는 보통의 상소심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최종 판단의 경계가 불명확해지고 패소한 쪽이 분쟁을 더 오래 끄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그 비용은 시민에게 돌아갑니다.[8][9]
임금과 손해배상, 거래대금을 기다리는 시민에게 재판의 종결은 생활의 문제입니다. 권리구제의 문을 늘린다는 설명에는 분쟁을 제때 끝낼 방법도 포함됩니다.
대법관 증원에서는 정치권의 인사 영향력이 커지는 점을 봅니다. 새로 생기는 자리는 기존 대법관의 임기 만료와 다른 인선 기회를 만듭니다. 이때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추천하고 제청하며 임명하는지가 사법의 독립을 가르는 문제가 됩니다.
지난 8월 청와대가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내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한 사건은 그 위험을 보여줍니다. 청와대는 협의와 제청 절차를 문제 삼았고, 대법원장은 9월 재제청을 정당화할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습니다.[10]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 판단을 바꾸게 하는 압박으로 작동한다면, 나누어 둔 권한의 의미는 약해집니다.
씨앗은 이 변화들을 각각의 제도 설명으로 흩어놓지 않습니다. 법관을 형사고발의 압력에 더 노출시키고, 재판의 종결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대법원 구성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을 넓히는 변화가 겹치고 있습니다. 씨앗은 이 방향이 사법독립을 약화시키고 국가를 제한하는 장치를 훼손한다고 판단합니다.
사법개편을 평가할 기준은 시민이 정부의 잘못을 더 독립적이고 신속하게 다툴 수 있는지입니다. ‘개혁’이라는 이름이 권력의 이동과 시민의 비용에 대한 설명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국회 다수의 의결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삼권분립에 미치는 문제가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국가는 시민의 질문 앞에서 고쳐질 수 있습니다
노모어택스와 사법독립은 같은 시민을 지킵니다. 자기 소득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시민, 국가의 잘못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입니다. 재정권한에 경계를 세우고, 그 경계를 넘은 국가를 독립적인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을 때 시민의 권리는 실제 힘을 갖습니다.
국가 밖에서 공익을 만드는 조직도 감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보조금과 정책 접근권을 가진 시민단체가 시민 전체의 뜻을 독점하고 다른 목소리를 배제한다면 그 힘도 통제의 대상입니다. ‘시민’이라는 이름이 권력의 면허가 되지는 않습니다. 씨앗의 기준은 그 조직이 어느 진영인지보다 시민에게 무엇을 설명하고 어떤 결과에 책임지는지입니다.
국가가 시민의 말을 듣는다는 것도 행사에 초대하고 민원을 접수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낭비를 지적했을 때 지출이 바뀌는지, 부당한 처분을 다퉜을 때 구제받는지, 실패가 확인된 정책을 실제로 고치는지에서 드러납니다. 시민의 경험이 예산과 법, 행정의 수정으로 돌아오는 과정입니다.
씨앗은 구체적인 결과를 확인합니다. 더 걷기 전에 무엇을 줄였는가. 새 권한은 어디까지이며 언제 끝나는가. 시민의 이의 제기는 독립적으로 심사받는가. 시민이 발견한 잘못 때문에 국가는 무엇을 바꾸었는가.
시민의 돈을 쓰는 권한도,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권한도 맡은 권한입니다. 선거의 승리와 개혁의 구호가 그 경계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시민이 국가에 ‘여기까지’라고 말할 권리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