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언론·시민권
언론 플레이 하지 말라는 판사, 억울하면 언론에 호소하라는 정치인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 속에서 최강욱 전 의원은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며 검사가 언론에 알릴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부산 돌려차기’ 보복협박 사건 항소심에서는 재판장이 피해자 측의 언론 활동을 ‘언론 플레이’로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제도 안의 권한자는 언론을 통로로 말해도 되고, 피해 시민이 언론에 호소하면 정치화나 플레이가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도가 막혔을 때 언론에 호소하는 일을 권력자는 대안이라 부르고, 시민에게는 ‘언론 플레이’라 부른다면 시민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두 장면이 부딪칩니다
첫 장면은 검찰청 해체와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 속에서 나왔습니다. 최강욱 전 의원은 지난 7월 유튜브 ‘매불쇼’에서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하며, 자신이 검사라면 언론에 바로 알리겠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는 ‘시민에게 언론에 호소하라’는 공식 제도 설계가 아니라, 검사가 경찰 수사의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다는 가정 발언이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보복협박 혐의 항소심에서 나왔습니다. SBS와 JTBC 등은 재판장이 피해자 측 언론 활동을 두고 ‘피해자도 상당히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취지로 언급해 논란이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두 발언의 주체와 맥락은 다릅니다. 그러나 시민이 느끼는 질문은 선명합니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권한 있는 사람의 언론 제기는 대안이 되고, 피해 시민의 언론 호소는 ‘플레이’가 되는 것입니까.
언론 호소는 제도의 실패를 드러내는 신호입니다
사법 절차 안에서 충분히 보호받고 설명받는 시민이라면 굳이 언론으로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피해자가 언론을 찾는다는 것은 대개 제도 안에서 말할 곳이 좁거나, 자신의 위험과 억울함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뜻입니다.
물론 언론 보도가 재판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여론이 형량을 정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원칙은 피해자의 입을 막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판부가 정치화와 여론재판을 우려할 수는 있지만, 그 우려는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절차 안에서 더 충분히 듣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해소되어야 합니다.
핵심은 언론이 아니라 통로의 부재입니다
검찰청 해체 논란에서 ‘언론에 알리면 된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이유는 제도 내부의 견제 장치가 약해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입니다. 수사기관 사이의 보완과 견제가 사라질 때, 결국 남는 것이 언론 공론화뿐이라면 그것은 제도의 승리가 아니라 제도의 빈틈입니다.
마찬가지로 범죄 피해자가 언론에 호소하는 현실도 언론의 힘이 세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불안과 억울함을 제도 안에서 충분히 받아내는 통로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을 탓하기 전에 왜 시민이 언론까지 가야 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보호받는 발언권입니다
억울한 시민에게 ‘언론 플레이’라는 말은 차갑게 들립니다. 피해자가 언론에 말하는 순간 정치적 행위자로 취급된다면, 시민은 다시 혼자가 됩니다. 제도는 시민에게 조용히 기다리라고 말하기 전에, 시민이 기다리는 동안 안전한지, 충분히 설명받고 있는지, 이의제기 통로가 실제로 열려 있는지를 먼저 입증해야 합니다.
씨앗의 소리는 언론 보도가 재판을 대체해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민의 마지막 호소를 손쉽게 ‘플레이’로 부르는 태도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국가가 유능하다면 시민을 침묵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언론에 호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제도 안의 통로를 넓혀야 합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부산고법이 해당 발언의 취지와 피해자 보호 원칙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 보복협박 사건 항소심에서 피해자 진술권과 안전 우려가 충분히 보장되는가
-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이후 경찰 수사 미비를 보완할 실질 장치가 마련되는가
- 언론 공론화가 필요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나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가 보완되는가
- 언론 보도와 여론재판을 구분하면서도 피해자의 발언권을 보호하는 기준이 논의되는가
씨드의 관점
언론은 제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시민의 억울함을 충분히 받아내지 못할 때 언론은 마지막 비상구가 됩니다. 그 비상구를 문제 삼기 전에 왜 시민이 그곳까지 밀려났는지를 봐야 합니다.
권한 있는 사람에게는 언론 공론화가 제도 보완의 수단이고, 피해 시민에게는 ‘언론 플레이’가 된다면 공정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시민의 말을 불편해하기 전에, 시민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해야 합니다.
시민의 자유는 말할 자유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범죄 피해자와 약한 시민의 발언권은 여론몰이와 구분해 보호해야 합니다. 침묵을 요구하는 사법은 시민을 보호하는 사법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