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주거
정부, 17년 만에 LH 분리 추진..개발·자산관리 나눈다
정부가 2009년 통합 출범한 LH를 17년 만에 다시 두 회사로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택지개발과 주택건설은 개발공사가, 임대주택 운영과 주거복지·토지비축은 자산공사가 맡는 구상입니다. 그러나 분리의 필요성을 말하기 전에 정부는 지난 17년의 성적표와 부채 배분, 조직개편 비용, 실제 주택공급 개선 효과부터 시민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공공기관 개혁은 조직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 아니라, 시민의 삶이 실제로 나아지는지를 증명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정부가 LH를 다시 둘로 나누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09년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를 합쳐 한국토지주택공사, LH를 만든 지 17년 만입니다.
현재 구상대로라면 택지개발과 주택건설은 가칭 주택도시개발공사가 맡고, 임대주택 운영과 주거복지·토지비축은 주택도시자산공사가 맡습니다. 정부는 개발사업과 임대주택 관리 부담을 분리해 재무 여건을 개선하고 주택공급을 앞당기겠다고 설명합니다.
설명만 들으면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시민은 먼저 물어야 합니다. 17년 전에는 왜 합쳤습니까.
그때도 효율을 말했습니다
2009년 주공과 토공을 합친 이유도 효율이었습니다. 두 기관이 택지개발과 도시개발 등에서 중복사업을 벌이고, 토지개발과 주택건설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개발사업에서 돈을 버는 기능과 임대주택 때문에 손실을 부담하는 기능을 한 조직에 넣으면 교차보전도 가능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래서 합쳤습니다.
그런데 17년 뒤 정부는 정반대의 말을 합니다. 개발과 주거복지는 성격이 다르니 나눠야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환경이 달라졌다면 제도를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지난 17년의 성적표를 먼저 내놓는 일입니다.
LH를 개혁하는 것과 LH를 쪼개는 것은 다릅니다
LH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막대한 부채, 공공임대주택 손실, 과거 직원 투기 사태, 전관 논란과 거대 조직의 관료화는 분명히 고쳐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LH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과 LH를 두 법인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부채가 많다고 해서 곧바로 분리가 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급이 늦어진다고 해서 그 원인이 반드시 통합조직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가 분리를 추진하려면 적어도 몇 가지 숫자를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LH가 하나의 회사여서 주택공급이 얼마나 늦어졌는지, 둘로 나누면 공급기간이 몇 개월 단축되는지, 173조 원대 부채는 어느 회사가 얼마나 가져가는지, 인사·전산·회계·계약을 나누는 데 얼마가 드는지 말해야 합니다.
돈은 결국 다시 연결됩니다
더 이상한 부분은 돈의 흐름입니다. 지금 LH는 개발사업에서 생긴 수익으로 공공임대주택과 주거복지에서 생기는 부담을 일정 부분 메웁니다. 이른바 교차보전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회사를 둘로 나눈 뒤에도 개발공사의 이익 일부를 주택도시기금 별도계정에 넣고, 그 돈을 다시 자산공사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나누지만 돈은 다시 연결하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합니다. 한 회사 안에서 하던 재정이전을 두 회사와 정부 기금을 거쳐 다시 하는 것이 왜 더 효율적입니까. 분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이 질문에 숫자로 답해야 합니다.
집을 빨리 지어야 한다면 더 신중해야 합니다
SBS 보도에서도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부채를 떠안을 자산공사의 재원 문제가 있고, 조직분리에 따른 갈등 때문에 오히려 공급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LH는 간판 두 개로 바꾸면 끝나는 조직이 아닙니다. 수천 명의 직원을 다시 배치해야 합니다. 토지와 임대주택 자산을 나누고, 170조 원이 넘는 부채를 배분해야 합니다. 전산과 회계를 다시 설계하고 기존 계약의 주체도 정리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는 돈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시간이 들어갑니다. 조직의 집중력이 들어갑니다. 정부가 지금 가장 급하다고 말하는 것이 주택공급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집을 빨리 지으려고 집 짓는 조직부터 대수술했다가, 몇 년을 조직개편에 쓰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을 정치의 실험실로 만들지 마십시오
정부가 바뀌어도 공공기관을 건드리지 말자는 뜻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합니다. 비대한 조직이면 줄여야 하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면 책임을 나눠야 합니다. 부채구조가 잘못됐다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개혁한다는 것과 조직도를 다시 그린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2009년에는 합치는 것이 개혁이었습니다. 2026년에는 나누는 것이 개혁이라고 합니다. 그때마다 효율성이라는 같은 단어가 등장한다면 시민은 물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다른가요.
공공기관은 정권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실험실이 아닙니다. LH 조직도 뒤에는 집을 기다리는 시민이 있습니다. 분리의 필요성이 명확하다면 나누면 됩니다. 그러나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왜 분리해야 해결되는지, 얼마의 비용이 들고 시민에게 무엇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말입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정부가 LH 분리로 주택공급 기간이 얼마나 단축되는지 정량 목표를 제시하는가
- 173조 원대 부채와 임대주택 자산을 어느 회사가 어떤 기준으로 승계하는가
- 개발공사 이익을 자산공사에 지원하는 구조가 기존 내부 교차보전보다 왜 효율적인지 설명하는가
- 조직분리에 따른 인사·전산·회계·계약 변경 비용을 공개하는가
- 분리 과정에서 기존 주택공급 사업 일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관리 지표를 공개하는가
씨드의 관점
씨드는 LH를 그대로 두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LH에는 개혁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공공기관 개혁의 첫 단추는 조직도를 다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증명하는 일입니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흔들 때마다 비용은 결국 시민에게 돌아갑니다. 주택공급이 늦어지면 집을 기다리는 시민이 피해를 봅니다. 부채가 불투명하게 옮겨지면 세금과 임대주택 재정이 흔들립니다. 개혁의 이름으로 시민의 생활 인프라를 정치의 실험실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유능한 정부는 많이 뜯어고치는 정부가 아닙니다. 무엇을 바꿔야 하고 무엇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지 아는 정부입니다. LH 분리가 정말 필요하다면 정부는 먼저 시민 앞에 숫자와 책임으로 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