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자유·성장·규제
회사가 커지면 불이익, 정부는 왜 성장을 망설이게 하나
정부가 중견기업 성장촉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세제·금융 개선과 경영 자율성을 살펴보고, 성장할수록 불리해지는 조건부터 고쳐야 하는 이유를 짚습니다.
기업이 성장하면 불리해지는 제도를 두고, 지원금을 더 주는 방식으로는 성장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성장정책이 먼저 고쳐야 할 것
정부가 10월 1일 ‘제3차 중견기업 성장촉진 기본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계획입니다. 기업 규모에 따른 차등 규제를 완화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나누어 운영해 온 제도를 정비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그러나 기업을 키우겠다는 정책은 그동안에도 많았습니다. 회사를 키웠을 때 오히려 불리해지는 제도가 남아 있다면, 새 지원사업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에는 매출과 주문이 늘어나는 일이 반가워야 합니다. 그런데 일정 규모를 넘으면 세제 혜택이 줄고, 금융지원이나 판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성장의 기쁨보다 제도 변화에 따른 비용부터 계산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자료: [머니투데이 · 2026.10.01 중견기업 성장촉진 기본계획](https://www.mt.co.kr/living/2026/10/01/2026100113472716461)
주문이 늘었는데, 받을지 말지를 고민한다면
정부도 이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매출 증가 등으로 규모 기준을 넘더라도 일정 기간 중소기업으로 인정해 주는 ‘졸업 유예제도’가 그 증거입니다. 2024년에는 이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습니다. 성장 초기 기업이 공공조달과 금융·인력 등 지원제도에 계속 참여하며 자리를 잡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적용 요건과 예외가 있어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기준을 넘었다고 모든 혜택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유예기간이 끝난 뒤의 부담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상의 부품회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해외 고객이 주문을 늘리겠다고 합니다. 주문을 받으려면 기계를 사고 직원을 채용해야 합니다. 회사는 추가 매출과 비용뿐 아니라 성장 후 달라질 세제와 자금조달 조건도 따져야 합니다.
추가 주문에서 남는 이익보다 제도 변화로 늘어나는 부담이 크다면, 경영자는 확장을 늦출 수 있습니다. 정부가 성장하라고 독려해도 회사 장부에는 다른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미뤄지는 것은 기업주의 이익만이 아닙니다. 새 직원의 일자리, 협력업체에 맡길 물량, 더 좋은 제품을 만들 투자도 함께 줄어듭니다.
자료: [중소벤처기업부 · 2024.08.13 졸업 유예기간 확대](https://mss.go.kr/site/smba/ex/bbs/View.do?bcIdx=1052474&cbIdx=86)
‘중소기업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유
2024년 중견기업 기본통계를 다룬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견기업의 3.5%가 중소기업으로 돌아가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회귀 검토 이유는 조세지원 축소가 61.2%, 금융지원 축소가 18.8%였습니다. 공공조달시장 등 판로 제한도 포함됐습니다. 전체 중견기업의 61.2%가 회귀를 원했다는 뜻이 아니라, 회귀를 검토한 기업들이 밝힌 이유입니다.
같은 해 중소기업으로 돌아간 중견기업은 427개였습니다. 이들이 모두 혜택을 받으려고 회사를 줄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경기 악화와 매출 감소로 작아진 기업도 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자발적으로 사업 규모를 축소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업 일부가 성장 이후의 세금과 금융 조건을 부담으로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더 커지는 것이 불리해지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기업에 도전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자료: [한국일보 · 2025.12.30 2024년 중견기업 기본통계 분석](https://v.daum.net/v/20251230170205684)
기업들이 실제로 원하는 변화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9월 30일 국회에 81건의 입법 개선 과제를 전달했습니다. 뉴스핌 보도에 따르면 중견기업 세제지원의 매출액 기준 확대, 전용 신용보증 계정 신설, AI 투자와 전문인력 채용에 대한 세제지원 등을 요청했습니다. 지원 확대도 기업들의 실제 요구입니다.
동시에 산업과 직무 특성을 반영한 근로시간제 개선, 경제형벌 합리화,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환경 분야의 중복 규제 정비도 건의했습니다. 투자하고 일하는 방식을 기업이 결정할 여지를 넓혀 달라는 요구입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풀면 이렇습니다. 새 설비를 들일 때 자금조달 통로가 좁아지지 않아야 합니다. 주문과 개발 일정이 몰리는 업종에서는 현장에 맞게 일을 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법을 지키며 내린 투자 결정이 실패했다고 형사책임 걱정부터 하는 환경도 줄어야 합니다.
성장 과정에서 감당할 비용과 책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몇 년 뒤 어떤 제도가 적용될지 알아야 오늘 투자할 수 있습니다.
자료: [뉴스핌 · 2026.09.30 중견련 81개 입법 개선 과제](https://www.newspim.com/news/view/20260930000116)
보조금을 더 주면 기업이 더 잘 클까
기존 연구도 지원금만으로 성장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KDI의 ‘챔피언으로 가는 길: 중소·중견 기업 지원정책의 전환방안’은 유망기업을 선별해 지원한 월드클래스300 사업을 분석했습니다. 유사한 미지원 기업과 비교했을 때 매출액과 부가가치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고용과 수출, 연구개발비, 특허에서는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지원이 무효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보조금이 전반적인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기대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KDI가 올해 3월 발표한 후속 연구는 기업마다 성장을 막는 요인이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연구개발 자금이 필요한 회사도, 해외 판로와 전문인력이 급한 회사도 있습니다. 여러 사업에 따로 신청하게 하기보다 필요한 정책과 민간 서비스를 연결하고, 지원 건수 대신 생산성·수출·성장 성과로 평가하자는 제안입니다.
기업의 성장 장애를 고치는 일보다 지원사업을 늘리는 일이 앞서면, 기업은 고객을 찾을 시간에 정부 사업의 신청 조건부터 살피게 됩니다. 정부가 고른 기업에 돈을 주는 방식이 전체 기업의 성장 환경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자료: [KDI · 챔피언으로 가는 길: 중소·중견 기업 지원정책의 전환방안](https://www.kdi.re.kr/research/focusView?pub_no=18548) · [KDI · 2026.03.24 기업의 성공적 스케일업을 위한 정책 지원체계 재구축 방안](https://www.kdi.re.kr/research/focusView?pub_no=19131)
성장하면 불리해지는 조건부터 없애야 한다
씨앗이 제시하는 방향은 세 가지입니다.
우선, 기업 규모가 기준선을 넘을 때 세제와 지원 조건이 급격히 달라지는 부분을 줄여야 합니다. 필요한 지원은 성장에 맞춰 서서히 줄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대한 유인은 도전이 이어지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유예기간만 늘리면 부담이 발생하는 시점을 미룰 뿐입니다.
다음으로, 규제의 이유를 기업 크기와 실제 위험으로 나누어 따져야 합니다. 안전을 위협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에는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사가 커졌다는 이유로 늘어나는 중복 서류와 절차는 다른 문제입니다. 기업 규모가 규제 목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원을 받으려고 여러 부처의 신청서와 평가 기준을 찾아다니는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기술과 사업 전망을 평가하는 민간 금융의 역할도 넓혀야 합니다. 세금으로 제공하는 지원은 비용과 성과를 공개하되, 생산과 투자 결정은 기업이 맡도록 해야 합니다.
세제 감면과 보증 확대에도 시민의 돈과 위험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지원 규모보다 성장에 따른 불이익을 없애는 일이 먼저입니다.
기업의 성장은 시민의 기회와 연결됩니다. 다니는 회사가 성장해야 승진과 임금 인상의 여지가 생기고, 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이 늘어야 청년이 선택할 직장도 많아집니다.
이번 계획의 성패는 지원금 총액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기업이 규모 기준을 넘었을 때 달라지는 세금과 금융 조건, 새로 부담하는 규제와 절차가 실제로 얼마나 개선되는지를 봐야 합니다.
회사가 더 많이 팔고 더 많은 사람을 채용했을 때, 경영자가 불이익부터 걱정하는 제도라면 성장정책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습니다.
시민이 지켜볼 점
- 규모 기준을 넘을 때 세제·금융 조건이 급변하는 부분을 실제로 줄이는가
- 기업 크기에 따라 늘어나는 중복 규제와 서류를 어떤 근거로 정비하는가
- 지원 건수보다 생산성·수출·고용 성과로 정책을 평가하는가
씨드의 관점
성장에 따른 불이익을 줄이는 일이 지원 규모 확대보다 먼저입니다. 기업의 성장 환경은 시민의 일자리와 선택에도 영향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