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논평
[입법논평] 이름 없이 피 흘린 시민들 앞에서, 국회는 누구를 유공자로 정하는가
민주유공자 예우법안의 인정 기준과 자녀의 대입 특별전형 적용 가능성을 살폈다. 이름 없이 민주화에 헌신한 시민에게도, 오늘 원서를 쓰는 청년에게도 국회는 그 기준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핵심 요약
- 법안은 민주화운동 관련 희생자와 공헌자, 유가족 등을 등록·예우하는 내용이다. [1] [6]
- 유공자 심사에서 공헌과 사회적 공감대를 무엇으로 판단할지 구체화해야 한다.
- 자녀 대입 특례는 확정된 혜택이 아니라 현행 제도와 연결돼 생길 수 있는 지원 자격이다. [2] [3] [4]
이름 없이 함께 싸운 사람들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린 사람들 가운데는 평생 자신을 유공자라 부르지 않은 이들이 있다. 거리에서 다친 사람을 부축하고, 쫓기는 사람을 숨겨주고, 동료가 잡혀간 뒤에도 다시 거리로 나선 시민이 있었다. 이름이 기록에 남지 않았다고 그들이 감수한 위험까지 작아지는가. 그때 함께 싸운 사람들 앞에서, 국회는 누구의 공로를 무슨 기준으로 인정하고 그 자녀에게까지 어떤 혜택을 주려는지 답해야 한다.
어떤 법안인가
더불어민주당이 11월 5일 본회의 처리를 추진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은 1964년 3월 24일 이후 권위주의 통치에 맞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기여한 사람을 민주유공자로 등록하고, 본인과 유족 또는 가족을 예우하는 내용이다. 부마민주항쟁과 6월 민주항쟁 등의 관련자가 거론된다. [1] [2] [5] [6] [7]
의료·재활·양로·요양 지원과 기념·추모 사업 등이 포함돼 있다. 뉴데일리가 인용한 비용추계에 따르면 추가 재정 소요는 5년간 101억 7,900만 원이다. 보도에 나온 4,537명은 유공자 본인과 유가족을 합친 예우 대상 추정치다. [2]
‘공헌이 명백하다’는 말로 누구를 가려낼 수 있나
법안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대한 공헌이 명백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사람을 예우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공헌이 명백하다’는 말만으로는 어떤 행위를 공헌으로 볼지, 어떤 자료를 증거로 삼을지 알기 어렵다. ‘사회적 공감대’는 누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가. 같은 사건에 참여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이름만 기록에 남아 있다면, 국가는 다른 한 사람의 증언을 어떻게 심사할 것인가. 이런 기준이 법에 분명하지 않을수록 심사하는 사람의 판단이 결과를 좌우한다. [1] [2] [6] [7]
국가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의 피해를 확인하고 예우하는 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으로 국가가 민주화의 공로까지 넓게 재단하려면 훨씬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같은 날 같은 거리에서 피를 흘렸어도 한 사람은 기록과 증언을 확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스스로 공을 내세우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 차이가 국가가 인정하는 공로의 차이가 되고, 나아가 자녀가 누릴 기회의 차이까지 된다면, 이름 없이 민주화에 헌신한 시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모호한 유공자 심사가 왜 자녀의 입시 자격을 좌우해야 하나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국가보훈대상자를 대학 사회통합전형 지원 대상에 포함한다. 「국가보훈 기본법」에 따라 예우와 지원을 받는 유족이나 가족도 국가보훈대상자에 해당할 수 있다. 뉴데일리가 인용한 국회 검토보고서에는 새로 인정되는 민주유공자 본인과 자녀가 대입 특별전형 대상이 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보훈부 의견이 담겼다. 자녀의 특별전형 적용이 확정됐다고 볼 단계는 아니지만, 기존 제도를 통해 지원 자격이 생길 가능성은 국회가 법을 처리하기 전에 따져야 할 쟁점이다. [2] [3] [4]
입시에서 원서를 낼 수 있는 자격 자체가 기회다. 한 학생에게는 부모가 유공자로 등록돼 원서를 한 장 더 낼 길이 열리고, 다른 학생에게는 그 길이 닫혀 있다면, 그 차이는 합격자 발표가 아니라 원서 접수 첫날부터 생긴다. 가뜩이나 청년들이 입시의 공정을 믿기 어렵다고 말하는 마당에, 부모의 공적을 어떻게 심사할지조차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는 국회가 자녀의 지원 자격까지 달라질 수 있는 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무책임하다.
지금의 법안은 다시 심사해야 한다
국회는 어떤 희생과 공헌을 인정할지, 기록이 부족한 경우 무엇으로 입증할지, 심사 결과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를 법안에 분명히 해야 한다. 아울러 부모의 유공자 지위만으로 자녀에게 대입 특별전형 지원 자격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정리해야 한다. 부모의 사망이나 부상으로 생계와 학업에 피해를 입은 자녀에게는 그 피해와 필요에 따라 생계비와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다. 이 두 쟁점을 해소하지 않은 채 법안을 처리하는 데 반대한다.
민주화를 위해 이름 없이 헌신한 시민들의 몫까지 몇 장의 유공자 증서가 대신할 수는 없다. 그 증서가 자녀의 입시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순간, 국회는 그날 함께 피 흘린 시민에게도, 오늘 원서를 쓰는 청년에게도 공정을 말할 자격을 잃는다.
자료와 확인 기준
법사위 의결본 전문은 직접 열람하지 못했다. 법안 설명은 국민참여입법센터의 제안이유·주요내용과 법사위·검토보고서 보도를 바탕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