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8천억 원으로 청년의 마음을 살 수 있는가

청년문화예술패스에 약 8천억 원을 편성하면서도 청년의 불신에는 답하지 못하는 정치. 청년 보수화라는 진단에 앞서 기회의 사다리와 정책의 예측 가능성, 스스로 삶을 결정할 힘을 살핀다.

청년문화예술패스의 내년 예산안은 7,925억 원이다. 올해 361억 원에서 약 22배로 커졌다. 미래대응기금에 담긴 정부 예산안으로, 국회 심의를 거쳐 확정될 금액과 실제 집행액은 구분해야 한다. [1]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9월 16일 KBS 1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지원 대상을 34세 이하 청년으로 넓히고, 영화와 공연·전시뿐 아니라 체육활동과 스포츠 관람까지 이용 범위를 확대하는 구상을 설명했다. 기존의 19~20세 무렵 일회성 지원을 법적 청년 대상 전체에 매년 10만~15만 원씩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설명이다. 헬스와 러닝, 야구와 축구 관람도 이용 사례로 들었다. [2]

정부가 내세우는 것은 문화생활의 문턱을 낮추는 지원이다. 그 목적과 약 8천억 원 규모의 지출이 청년의 미래를 바꾸는 투자라는 주장은 따로 검증해야 한다. 영화와 경기를 보는 비용을 덜어주는 일은 취업의 문을 넓히고, 주거의 불안을 줄이며, 실력으로 도전할 길을 여는 일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예산을 22배 늘린 만큼 청년의 자립 기회도 커지는가.

돈을 쓰겠다는 발표는 크고 선명하다. 정작 청년이 묻는 질문에는 답이 흐릿하다.

공부하고 실력을 쌓으면 내 삶이 나아지는가. 열심히 일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는가. 사업을 시작하면 정부가 정한 틀 밖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가. 지금 믿고 준비한 제도가 몇 년 뒤에도 유지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서 영화표와 스포츠 관람권을 내민다면, 청년은 그것을 미래 투자로 받아들이겠는가.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청년에게서만 찾지 마라

10월 12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20대 27.3%, 30대 31.3%였다. 직전 조사보다 소폭 올랐어도 두 연령대 모두 전체 긍정 평가인 35.2%에 못 미쳤다. 전국 성인 1,5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며, 전체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다. 연령별 표본오차는 전체 표본오차보다 크다. [3]

이 숫자만으로 청년의 마음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청년 내부에도 처지와 생각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신의 미래를 얼마나 믿고 맡길 수 있는지는 청년의 정부 평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집값과 전월세가 불안하면 청년은 당장의 생활비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몇 년을 일해야 독립할 수 있는지 계산할 수 없게 된다. 일자리의 문이 좁으면 취업 준비가 길어지고,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경제력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을 결정한다. 연금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의심스러우면 지금 받는 지원금보다 앞으로 낼 돈과 감당할 부담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뉴스핌이 전한 리얼미터의 분석도 최근 지지율 하락의 배경으로 수도권 주거비 상승과 인사·안보 논란, 사법부 독립성 논란을 짚었다. 청년에게도 생활의 불안과 국가 운영에 대한 불신이 함께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조사기관의 분석과 이 글의 해석이며, 청년 응답자가 직접 밝힌 비지지 이유의 집계는 아니다. [3]

이런 불신을 두고 “청년이 보수화됐다”고 말하면 정부가 돌아봐야 할 책임은 사라지고, 청년의 생각만 분석 대상으로 남는다.

왜 약속을 믿지 못하는지 물어야 한다. 왜 지원을 받으면서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지 들어야 한다. 돈을 받았으니 호의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기대부터 버려야 한다. 세금으로 시행하는 정책은 시민에게 베푸는 사적인 선물이 아니다.

사다리를 놓겠다던 개혁은 누구에게 길을 열었나

기성 정치권은 오랫동안 교육과 전문직 진입 제도를 바꾸며 기회와 공정을 말했다. 개혁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제도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돈과 시간, 정보가 어떻게 달라졌느냐다.

사법시험은 2017년 마지막 합격자를 배출하고 폐지됐다. 법조인이 되는 길은 로스쿨 중심으로 바뀌었다. 전문교육의 필요성과 별개로, 대학 졸업 뒤 다시 전문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는 경로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는 사시 폐지 당시부터 핵심 쟁점이었다. [4]

학비를 지원하는 장학금이 있어도 준비 기간의 생활비와 포기해야 하는 소득까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시험을 통해 도전할 수 있었던 길을 없앴다면, 새 경로가 형편이 어려운 청년에게 실제로 얼마나 열려 있는지 끝까지 입증해야 한다.

의학전문대학원도 다양한 전공의 인재를 의사로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후 많은 대학이 의과대학 체제로 돌아갔다. 청년에게는 정부의 개혁 실험이 곧 자신의 진학 경로와 준비 기간을 바꾸는 일이었다. [5] [6]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가 허위·위조 서류 문제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처분을 받은 사례는 기회의 공정성을 묻는 구체적인 사건이다. 부산대는 모집요강과 관련 법원 판결을 근거로 취소를 결정했다. 정치인의 자녀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지를 시민이 직접 확인해야 했던 일이다. [7]

대입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 수능 자체를 청년의 길을 막은 제도로 뭉뚱그릴 일이 아니다. 시험의 비중을 어떻게 바꾸고, 어떤 전형을 늘리며, 준비한 학생에게 얼마나 충분한 예고를 주었는지가 중요하다. 평가가 복잡해질수록 누구에게 더 유리해졌는지도 따져야 한다.

이 제도들은 여러 정부에 걸쳐 만들어지고 바뀌었다. 현 정부의 책임은 과거의 모든 결정을 대신 지는 데 있지 않다. 그 결정이 남긴 진입 장벽을 살피고, 청년이 자기 실력으로 도전할 길을 넓히는 데 있다.

양극화를 줄이겠다던 개혁이 새로운 비용과 자격을 요구하는 문턱을 만들었다면, 그 결과부터 돌아봐야 한다. 사다리를 놓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만족보다 실제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중요하다.

청년을 지원금 신청자로만 만들 것인가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고 일을 배워도 시간이 모자란 청년에게 정부는 각종 정책을 찾아보라고 한다. 나이 조건, 소득 기준, 거주지, 모집 기간을 확인하고 증빙서류를 내라고 한다.

그렇게 몇 푼을 건지는 일이 청년의 생활 전략이 되어야 하는가.

생계가 막막한 청년에게 지원은 필요하다. 훈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보태는 일도 의미가 있다. 그 지원의 목적은 청년이 자신의 힘으로 다음 단계에 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어야 한다. 신청자를 늘리고 지급 실적을 채우는 것으로 정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고 경기를 즐기는 경험도 삶의 일부다. 문화 지원이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전문직 진입과 창업 기회를 대신할 수는 없다. 관람권을 몇 장 나눠주었는지보다 청년이 자기 소득으로 표를 사고, 자기 선택으로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 먼저다.

청년 보수화보다 심각한 것은 청년의 대상화다

청년을 주체로 대한다는 것은 정부가 원하는 의견을 청년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일이 아니다. 정책을 평가하고 거부할 권리, 정부의 계획과 다른 길을 선택할 자유, 그 선택을 실행할 능력을 인정하는 일이다.

정부를 비판하면 교정해야 할 청년이 되고, 지원금을 신청하면 보호해야 할 청년이 되는 구조에서는 청년의 독립적인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좁다.

청년은 혜택을 받는 사람이면서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다. 현재의 유권자이며 앞으로의 납세자다. 기업을 만들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사람이며, 정부보다 먼저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청년에게 계속 무엇을 나눠줄지만 묻는 정치가 청년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청년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선택을 믿을 수 있는 사회다. 준비하는 동안 규칙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 정책, 실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 일한 만큼 삶이 나아질 가능성, 실패한 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다.

기업가 정신도 지원금 공모에 맞춰 사업계획서를 쓰는 능력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고객의 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투자받고, 사람을 고용하고,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은 그 과정의 장벽을 낮추는 데 쓰여야 한다.

8천억 원의 성과는 지급 인원으로 끝낼 수 없다. 문화 지원이 청년의 접근 기회를 실제로 넓혔는지, 기존 소비를 세금으로 대신 결제하는 데 그쳤는지, 확대된 예산에 걸맞은 효과가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직업훈련과 창업 지원도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소득, 고객과 매출로 이어졌는지가 판단의 기준이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호의를 찾아다니는 요령이 아니다.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힘이다.

당신들이 정말 모르는 것은 청년이 원하는 혜택의 종류가 아니다.

청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