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감시
노동자가 주인인 나라?
거대 노총의 본부 보증금과 회관 수리에 국고 102억 원이 들어갔다. 노동이사제와 노동계 출신 장관까지, 노동의 이름으로 커진 영향력이 현장의 모든 노동자에게 돌아가는지 묻는다.
작은 단체는 월세를 내고, 노총 본부에는 102억 원
작은 시민단체 하나를 운영해도 사무실 보증금을 마련하고 월세를 내고 고장 난 시설을 고쳐야 한다. 공익을 위해 일한다고 국가가 그 돈을 대신 내주지는 않는다. 회원의 회비와 시민의 후원으로 버틴다. 그런데 거대 노총의 본부에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9월 30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올해 민주노총 본부의 임차보증금에 국고 51억 원, 한국노총 회관의 승강기·난방 설비 교체와 지하 주차장 개설 등 시설 보수에 51억 원이 각각 지원됐다. 정부 예산안에 없던 총 102억 원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가됐다는 것이다. 노동단체 공모사업으로 올해 7월까지 집행된 약 41억7천만 원과는 별개의 돈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라고 만든 국가가 노조 본부의 집까지 마련해 주는가. 노조는 국가기관인가.
정책에도, 경영에도 노동의 자리가 생겼다
이 한 장면만 떼어 보면 보조금 논쟁이다. 그러나 시야를 넓히면 질문이 달라진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김영훈 씨가 고용노동부 장관을 맡고 있다. 정부는 양대 노총과 노동정책을 협의한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서는 노동자가 비상임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한다. 노조의 목소리는 정부 정책에 닿고, 노동자의 관점은 공공기관 경영의 결정 과정에도 들어간다.
노동이사제가 곧 노총의 기업 소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노동이사는 경영진을 대신해 회사를 운영하지도, 모든 민간기업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이사회에서 의결에 참여하는 비상임이사이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현장의 목소리가 경영 판단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의 통로가 늘어날수록 누구의 목소리를 대표하는지 더 분명해져야 한다.
어제 씨앗의 소리는 호남 반도체 공장 논쟁을 다루며 [「공장은 기업이 짓는데, 사람을 보낼 때는 허락을 받아야 하나」](/columns/factory-investment-staffing-freedom-2026)라고 물었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르면 신규 공장 투자나 이전 같은 경영상 결정 자체는 의무교섭 대상이 아니다. 다만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근로조건의 구체적 변동이 예상되면 그에 관한 교섭이 가능하다. 회사가 옮기려면 노동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업이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뒤 필요한 인력을 실제로 배치하는 단계에서 분쟁 위험을 걱정한다면, 투자 결정과 실행 사이의 간격은 커진다. 그 비용은 기업만이 아니라 새 일자리를 기다리는 시민에게도 돌아간다.
누가 노동자의 이름으로 혜택을 받는가
경영 참여는 넓어지고, 정책에 대한 접근도 커지고, 조직 본부에는 세금까지 들어간다. 그렇다면 커진 권한과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산재 위험을 호소하는 하청 노동자,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 자리에서 대표되고 있는가. 노총 지도부가 정부와 협의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노동자가 나라의 주인이 된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가 고용노동부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올해 노동단체 공모사업 지원액 가운데 한국노총과 산하 단체가 69.1%, 민주노총과 산하 단체가 8.3%를 받았다. 합계 77.4%다. 2023년에는 양대 노총 밖의 단체가 전체의 78.4%를 받았다. 개별 사업의 필요성은 사업별로 따져야 한다. 그러나 지원이 다시 큰 조직에 모이는 흐름을 두고 정부가 노동자 전체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과거 서울시의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지원도 형평성 문제를 남겼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노동자 자녀 장학금 약 52억3,480만 원이 지원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노동자의 자녀를 돕는 일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지원 기회가 부모의 특정 노총 소속 여부에 좌우된다면 똑같이 어려운 미조직 노동자의 자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공익사업과 조직의 본부를 구분하자
체불임금 상담이나 산재 예방 교육처럼 누구에게나 열린 서비스에는 세금을 쓸 수 있다. 작은 노동단체도 그런 사업을 맡을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노총 본부의 보증금과 회관 수리비는 다르다. 그 조직이 조합비로 감당할 수 없는 이유, 다른 단체 대신 지원받아야 할 이유, 시민에게 돌아가는 편익을 각각 설명해야 한다. 일반 비영리민간단체의 공익사업 지원에는 공개경쟁 원칙이 적용된다. 노총의 규모와 정치적 영향력이 심사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올해 1월 법제처는 해남군 노동상담소에 관한 별도 사안에서 노동단체 상담소의 임대료와 인건비 같은 운영비를 지방보조금으로 지급하려면 법령에 명시적인 근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판단으로 이번 국고 102억 원을 위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공익적인 목적과 조직 운영비 지원의 필요성은 각각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조위원장이 웬만한 장관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것 같다는 시민의 인상도 여기서 나온다. 공식 의전 서열을 비교하자는 말이 아니다. 정부 수뇌부와 직접 만나 정책을 논의하고 조직 본부에 수십억 원의 세금까지 지원받는다면 그 영향력에 걸맞은 공개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장관은 국민과 국회 앞에서 예산을 설명해야 한다. 노총 지도부가 시민의 돈으로 조직의 건물을 고치면서 더 느슨한 설명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국가의 돈은 노조의 독립성에도 위험하다
노조가 국가에 기대어 본부를 유지하는 일은 노조 자신에게도 위험하다. 정부가 돈을 쥐면 언젠가는 조건도 내밀 수 있다. 그때 노조는 불리한 정책에 자유롭게 반대할 수 있겠는가. 이번 지원에 그런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지원 목적과 심사 과정, 부대조건을 공개해 노조의 독립성을 확인해야 한다.
먼저 민주노총 보증금 51억 원의 계약과 반환·회수 조건을 공개해야 한다. 보증금은 계약이 끝나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사비와 다르다. 국가가 반환금을 회수할 권리를 어떻게 확보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노총 시설 보수비 51억 원도 공사 내역과 시설 이용 대상을 공개해야 한다. 공모사업에서는 양대 노총 밖의 단체와 미조직 노동자에게 실제로 얼마나 기회와 서비스가 돌아갔는지 보여줘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인 나라라면 어느 노총에도 속하지 않은 노동자도 주인이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려고 공장을 짓는 기업, 같은 세금을 내는 작은 시민단체와 영세 자영업자도 시민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국가를 만드는 일과 거대 노총을 국가기관처럼 대우하는 일은 같지 않다. 지금 주인처럼 대우받는 사람이 현장의 노동자인지, 그 이름으로 정부와 예산을 상대하는 조직의 지도부인지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