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제 권력은 누가 감시하나?
청와대를 향한 수사와 영화 《1987》의 날인 거부는 권력에 불편한 진실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남겼다. 검찰청 폐지 뒤 수사권의 이동과 정치적 독립성, 시민이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통로를 묻는다.
청와대에 들어간 수사, 도장을 거부한 검사
국민은 검찰이 청와대를 수사하는 장면을 보아왔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도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경고였다. 권력의 심장부라도 법의 바깥에 있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2019년 12월 검찰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하며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섰다. 당시 자료 확보는 청와대 경내를 자유롭게 뒤지는 방식이 아니라 별도 장소에서 자료를 임의제출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통령실 수사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다. 그 제약 속에서도 수사기관은 영장을 들고 권력의 문을 두드렸다.[1](https://www.newsis.com/view/NISX20191204_0000850753)
영화 《1987》에는 또 다른 문턱이 나온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덮으려는 경찰이 하정우가 연기한 최 검사에게 찾아와 시신 화장 승인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요구한다. 최 검사는 그 요구를 거부하고 부검을 고집한다. 권력은 빨리 일을 끝내려 하지만 검사는 사망 원인부터 확인하라고 맞선다.[2](https://www.yna.co.kr/amp/view/AKR20171213175900005)
그 인물의 실제 모델은 최환 검사다. 그가 화장을 막고 부검을 하도록 한 결정은 고문으로 숨진 청년의 죽음을 밝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한 사람의 용기와 함께 그 용기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법적 권한이다.[3](https://www.yna.co.kr/view/AKR20180729015800051)
도장을 찍는 일은 작은 행정 절차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도장 하나로 증거가 사라지고 한 시민의 죽음이 묻힐 수도 있었다. 그 순간 권력의 요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시민의 생명과 진실을 지키는 힘이 됐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22조에도 공소청 검사의 변사자 검시 역할은 남아 있다. 오늘 물어야 할 것은 권력에 불편한 진실을 발견했을 때 끝까지 확인할 수 있는 권한과 독립성이 실제로 보장되느냐는 점이다.[4](https://law.go.kr/LSW/LsiJoLinkP.do?languageType=KO&lsNm=형사소송법¶s=1)
청와대 수사와 영화 속 날인 거부는 서로 다른 시대의 사건이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남긴다. 권력자가 원하지 않는 조사도 시작하고 이어갈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그 질문을 새 수사체계에 던져야 한다.
검찰의 권력은 어디로 갔는가
2026년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했다. 공소청 검사는 영장 청구와 기소·공소 유지, 보완수사 요구를 맡는다. 직접 수사와 직접 보완수사를 할 권한은 없어진다. 중대범죄 수사는 중수청이 맡는다.[5](https://www.yna.co.kr/view/AKR20260925034800004)
쉽게 말하면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과 재판에 넘기는 사람을 나눈 것이다. 권한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조사하는 쪽이 움직이지 않으면 재판에 넘기는 쪽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는가.
법원이 영장을 심사하는 것도 중요한 통제다. 그러나 법원까지 사건이 도달하려면 누군가는 의혹을 조사하고 증거를 모아야 한다. 수사 첫 단계에서 사건을 묻어버리면 뒤 단계의 견제도 작동하기 어렵다.
씨앗은 [〈검찰청 폐지 뒤 남는 수사권력〉](/briefings/prosecution-service-abolition)과 [〈검찰개혁은 권력을 옮겨 심는 일이 아니다〉](/columns/prosecution-reform-power-transfer-2026)에서 같은 문제를 짚었다. 조직의 간판을 내린다고 국가의 강제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누가 그 권한을 가져갔고, 누가 그 권한을 통제하는지 따져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 아래서 대통령을 수사할 수 있는가
경찰청과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소속이다. 중수청법은 행안부 장관이 중수청 사무를 일반적으로 지휘·감독하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중수청장만을 지휘·감독하도록 한다. 중수청장은 추천 절차와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장관이 수사관 한 사람에게 직접 지시하는 구조와는 구별되지만, 대통령과 장관에서 수사기관장으로 이어지는 권한의 연결은 남는다.[6](https://www.law.go.kr/lsInfoP.do?efYd=20261002&lsiSeq=290127)
그 구조에서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드러나면 경찰과 중수청은 청와대를 향해 수사를 밀고 나갈 수 있는가. 대통령이 통제하는 장관 아래 있는 수사기관이 자신을 임명한 권력을 겨누려면 법 조문을 넘어 실제로 작동하는 독립성 보장이 필요하다.
외압은 노골적인 수사 중단 명령으로만 오지 않는다. 인사와 예산, 조직 개편, 보고 요구가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사팀이 다음 인사와 기관의 존립을 걱정하는 순간, 누구를 얼마나 깊이 조사할지에 권력자의 표정이 끼어든다.
기존 검찰 역시 법무부 소속이었고 검찰총장도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 체계에서 정치적 수사와 제 식구 감싸기가 반복됐다면, 새 제도는 그 문제를 실제로 줄였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전 조직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새 조직의 독립성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수사할 권한과 권력자를 수사할 자유는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수사가 멈추면 시민은 어느 문을 두드리는가
정부 사업에 거액의 불법 자금이 오갔고 대통령 측근이 연루됐다는 제보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수사기관이 핵심 관계자를 늦게 부르고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지 않은 채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다. 공소청 검사는 기록을 보고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현장에 나가 빠진 증거를 확보할 수는 없다.
이때 보완수사 요구가 얼마나 강제되고, 불응하거나 미흡하게 수사했을 때 누가 바로잡는지가 중요해진다. 서류가 기관 사이를 오가는 동안 증거가 사라지면 뒤늦은 요구는 힘을 잃는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공문과 함께 실제로 사건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통로다.
영화 《1987》의 최 검사가 인상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경찰이 가져온 결론에 도장만 찍는 사람이 되기를 거부했다. 다른 기관의 판단을 확인할 책임이 있다면 그 판단에 맞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힘도 있어야 한다.
씨앗의 [〈언론 플레이 하지 말라는 판사, 억울하면 언론에 호소하라는 정치인〉](/news/media-appeal-justice-press-play)은 시민의 억울함이 언론 호소로 밀려나는 문제를 다뤘다. 보도는 부당한 사건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 압수수색을 하고 증거를 확보할 수는 없다. 시민의 권리는 법적 구제 통로 안에서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
사기 피해자나 폭행 피해자에게도 같은 문제다. 첫 수사가 부실했을 때 다른 기관이 실체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가. 권력자가 개입한 사건에서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국가기관이 책임을 서로 미루는 동안 평범한 시민의 시간과 재산, 생활이 무너질 수 있다.
공안정국을 막는다는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수사가 사라지는 상황보다 수사가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이다. 정권에 불리한 사건은 느리게 움직이고 반대자에 대한 수사는 빠르게 진행된다면 수사기관의 힘은 그대로인데 통제의 방향만 달라진다. 시민의 발언과 기업의 활동에도 그 힘이 닿는다.
씨앗이 우려하는 공안정국은 수사권과 인사권이 정치권력 아래 결합하고 시민이 이를 다툴 통로가 약해지는 구조다. 정부는 사건 개입을 제한하는 장치, 부당한 지시의 기록과 공개, 수사 담당자의 신분 보호, 사건을 덮었을 때 책임을 묻는 절차를 보여줘야 한다.
검찰의 권력을 무너뜨렸다는 선언 앞에서, 이제 무소불위의 공안정국은 펼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무엇을 근거로 자신할 수 있는가.
씨앗의 [〈청문회 80%가 증인 0명—이쯤 가면 막 하자는 겁니까〉](/briefings/confirmation-hearings-zero-witnesses)가 물었던 것도 시민의 검증권이다. 수사기관장을 추천하고 임명하는 과정이 실제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인사청문이라는 절차의 이름만 남을 수 있다. 권한을 맡길 사람의 독립성과 책임을 시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과 공수처, 특별검사, 국회와 언론도 권력을 견제한다. 이들이 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일상적인 수사기관도 독립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권력형 사건이 나올 때마다 특별한 정치적 합의를 기다려야 한다면 그 사이 증거와 시민의 권리가 손상될 수 있다.
개혁의 성적표는 권력 수사와 시민 구제다
새 제도는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권력형 사건의 수사가 얼마나 빨리 시작됐는지, 증거 확보가 지연됐는지, 보완수사 요구가 이행됐는지, 불송치와 불기소의 이유가 충분히 설명됐는지, 피해자의 이의 제기가 실질적인 재검토로 이어졌는지를 공개해야 한다.
이제 권력은 누가 감시하나.
청와대를 향해 영장을 들고 갔던 수사와 영화 《1987》에서 도장을 거부했던 검사는 같은 기준을 환기한다. 국가기관은 권력에 불편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실을 밝히는 일이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장관이 불쾌해하더라도 법에 따라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소신을 가진 사람에게 그 소신을 실행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 권한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가 지켜줘야 한다.
개혁의 성적표에는 두 가지가 남아야 한다. 시민이 권력의 문을 두드렸을 때 수사가 시작되는가. 권력이 부당한 요구를 했을 때 담당자가 거부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혁은 시민의 자유를 지켰다고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