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감시
시민사회를 행안부 위원회에 가두지 마라
국가시민참여위원회를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두고 정부가 위원을 임명하는 법안에 반대한다. 시민사회가 독립적으로 대표와 의제를 정하고 정부가 응답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시민참여의 중심을 행정부로
시민참여를 보장하겠다며 시민사회의 공론을 행정안전부 소속 위원회 안에 넣으려 한다. 국회에 발의된 「시민참여기본법안」이 구상하는 국가시민참여위원회가 그렇다.
위원회는 시민참여 정책의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숙의·공론화, 민주시민교육, 시민사회 활성화를 폭넓게 다룬다. 위원장은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위원은 행안부 장관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40명 이내이며 민간위원이 과반이다.[1][2]
시민의 참여를 말하지만 위원회를 구성하는 권한은 정부에 있다.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말하지만 시민참여 정책의 중심 기구는 행안부 소속이다.
씨앗의 소리는 이 구조에 반대한다. 시민사회가 자유롭게 토론하고 정부에 의견을 전달할 통로가 필요하다면, 그 출발점은 시민사회를 행정부 안에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밖에서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독립성을 보장하는 데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정부가 만든 회의실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국가가 외면한 문제를 시민들이 발견하고, 정부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때로는 권력에 맞서 싸우면서 성장해 왔다.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비판이 시민사회의 힘이다.
정부는 시민의 참여를 지원할 수 있다. 정책 정보를 공개하고, 장애나 생업, 돌봄 때문에 참여하기 어려운 시민의 비용을 줄여줄 수도 있다. 지역의 작은 단체가 공익활동을 이어가도록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민사회의 대표를 고르고, 시민참여 정책을 총괄하며, 공론과 숙의의 중심 기구를 행정부 안에 두는 것은 다른 일이다. 시민의 참여를 돕는 권한이 시민사회의 참여 구조를 관리하는 권한으로 커지는 것이다.
시민사회에는 정부와 협력하는 단체도 있고 정부에 맞서는 단체도 있다. 보조금을 받는 조직도 있고 지원 없이 활동하는 시민도 있다.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시민은 더 많다. 이 다양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부가 위촉한 위원들이 대신할 수는 없다.
**시민사회는 정부의 정책사업이 아니다. 정부 바깥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의 자유로운 영역이다.**
국가시민참여위원회는 일반적인 정부위원회가 아니다
정부에는 여러 위원회가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사안을 검토하고, 부처의 의견을 조정하며, 정책의 세부 내용을 심의한다. 정부가 전문가를 위촉해 행정에 필요한 조언을 듣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가시민참여위원회는 다르다. 이 위원회가 다루려는 것은 시민이 공적 문제를 토론하고 정부 정책에 참여하는 방식, 나아가 시민사회의 활동 여건 자체다.
시민사회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의견을 듣는 상대인 동시에 정부의 권한 행사를 감시하는 주체다. 감시받아야 할 정부가 감시하는 시민사회의 대표를 고르고, 그 활동의 중심 체계를 관리하는 것은 처음부터 권한의 방향이 뒤바뀐 설계다.
행안부 소속 위원회가 시민참여의 중심이 되면 시민사회는 정부와 대화하기 위해 점점 정부가 만든 회의와 사업, 절차에 맞춰 움직이게 될 수 있다. 정부가 다루기 편한 의제는 제도 안으로 들어오고, 정부를 불편하게 하는 문제는 주변으로 밀릴 위험이 있다.
이러한 결과가 이미 발생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질 때 확인해야 할 것은 누군가의 선의가 아니라 권한이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다. 시민사회가 행정의 협력 조직으로 관리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민의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민간위원 과반으로는 대표성이 생기지 않는다
법안은 위원회의 민간위원이 과반이 되도록 했다. 공무원만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민간인이라는 신분이 시민사회의 독립성과 대표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 가운데 누가 선택되는가. 정부와 오랫동안 협력해 온 인사와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비판해 온 인사 가운데 누가 추천되는가. 기존 단체에 속하지 않은 지역 주민과 청년, 자영업자와 납세자의 의견은 어떤 절차를 거쳐 반영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면 민간위원 과반은 구성 비율에 그친다.
정부가 위촉한 사람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견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위촉장이 시민사회 전체를 대표할 권한까지 주지는 않는다. 위원은 누가 자신을 추천했는지, 누구의 의견을 듣는지, 자신의 활동을 누구에게 보고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단체나 연합체도 시민사회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법 제정을 추진하는 단체들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법안에 우려를 제기하는 단체와 제도 밖에서 활동하는 시민의 목소리 역시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정부가 고른 민간위원은 시민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골랐다는 이유로 시민사회의 대표가 되지는 않는다.**
독립성은 선언이 아니라 권한으로 보장해야 한다
법안은 국가시민참여위원회가 필요한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도록 규정한다.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취지도 담았다.[1]
그러나 위원장과 위원의 인선권을 정부가 쥐고, 위원회를 행안부 소속으로 두면서 독립성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립성은 조문에 적힌 단어가 아니라 권한의 배분에서 확인된다. 누가 위원을 정하는지, 누가 의제를 제안할 수 있는지, 사무국과 예산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이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됐는지 시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법안 추진 과정의 설명자료에서도 위원회를 부처 소속으로 둘 경우 숙의·공론화 의제 선정에 행정부의 영향력이 작용하거나 정파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다뤘다. 이를 고려해 의제 선정과 운영을 자문하는 별도 기구를 두는 방안이 반영됐다고 설명한다.[2]
이 우려를 인정한다면 더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자문기구를 덧붙이기 전에, 시민사회가 독립적으로 공론을 형성할 공간을 왜 행정부 안에 두어야 하는지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법안은 아직 국회 심사 중이다. 2026년 3월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지금은 설계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단계다.[1]
시민이 말할 의제는 시민이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참여가 이뤄지는지 판단하려면 회의에 누가 앉았는지만 봐서는 안 된다. 무엇을 논의할지 누가 정하고, 논의에 필요한 자료를 누가 제공하며, 다른 의견이 어떻게 기록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지역의 공공시설 건립을 놓고 정부가 이미 정한 후보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토론과, 그 시설이 필요한지부터 대안은 무엇인지 묻는 토론은 다르다. 하나는 정해진 정책의 세부사항에 참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의 출발점에 참여하는 것이다.
법안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숙의·공론화를 촉진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 취지가 실현되려면 시민이 정부가 준비한 안건에 의견을 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정책 실패, 보조금 배분의 편향, 행정부 권한의 확대처럼 정부가 다루기 불편한 사안도 시민이 독자적으로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제안이 채택되지 않았다면 이유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공론화 결과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도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시민이 회의장에 들어갔다는 기록만으로는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 시민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의 답변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웨일스는 시민사회 측 대표를 시민사회가 선출한다
다른 나라의 제도가 완벽한 답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참여기구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구성하는 방식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국 웨일스에는 정부와 시민사회 부문이 만나는 제3섹터 파트너십 협의회가 있다. 이 협의회는 시민사회와 관련된 정책을 논의하고 정부에 권고한다.
웨일스 정부의 운영계획은 시민사회 측 대표 선출을 시민사회 지원기구인 WCVA가 진행하도록 한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같은 자리에 앉더라도 시민사회 측에 누가 앉을지는 시민사회가 정하는 절차를 둔 것이다.[3]
이 협의회는 정부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기구는 아니다. 담당 장관이 의장을 맡고 정부 공무원도 운영에 참여한다. 기존 네트워크 밖의 시민이 얼마나 반영되는지도 살펴야 한다.[3]
그럼에도 우리 법안과 비교할 지점은 분명하다. 행정부가 시민사회 대표를 직접 고르는 것과 시민사회가 스스로 대표를 정해 정부와 만나는 것은 권한의 출발점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설계가 필요하다. 시민사회가 대표를 선출하는 데 더해, 정부와 만나기 전부터 정부 밖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모으고 독자적인 의제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일랜드는 대표가 시민사회에 보고하도록 한다
아일랜드는 각 지방정부 지역에서 시민단체와 지역 조직이 참여하는 공공참여네트워크, PPN을 운영한다. 지역 공동체와 자원봉사·환경·사회통합 분야의 단체들이 모여 지방정부 정책 과정에 참여할 대표를 선정한다.[4]
운영지침은 위원회에 참여하는 대표가 관련 회원단체들의 모임에서 추천받고, 그 모임에 보고하며, 의견을 받아 활동하도록 안내한다. 대표가 자기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만을 대변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5]
이 구조도 단체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다.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시민이 자동으로 대표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가 보낸 대표의 의견이 실제 정책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도 따로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대표성의 근거를 정부의 위촉장에서 찾지 않는다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대표가 자신을 보낸 시민사회에 돌아가 의견을 듣고 활동을 설명할 책임을 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가시민참여위원회에도 이 책임이 필요하다. 위원이 정부에 누구의 목소리를 전달했는지, 그 목소리를 어떤 절차로 모았는지 시민사회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에스토니아는 정부와 시민사회를 다른 주체로 인정한다
에스토니아는 2002년 의회에서 시민사회 발전 구상을 승인했다. 공공부문과 시민사회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 정책 형성과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협력한다는 원칙을 담았다.
시민단체가 공개적인 기구와 위원회에 참여할 대표를 정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대표에게 주어진 권한을 존중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시민사회 네트워크의 대표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개별 단체가 자신의 의견을 직접 낼 권리를 함께 명시했다.[6]
에스토니아에서도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위원회를 만들었고 행정부가 운영을 조정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협력의 출발점에서 두 영역이 서로 다른 주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7]
우리에게도 이 원칙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민사회를 대신해 말할 수 없고, 시민사회는 정부를 대신해 모든 시민을 대표할 수 없다.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해야 협력에도 책임이 생긴다.
예산으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길들여서는 안 된다
공적 지원에는 필요성이 있다. 시민의 참여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작고 취약한 단체가 공익활동을 이어가도록 돕는 일에는 공익적 이유가 있다.
그러나 지원을 결정하는 권한은 시민사회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단체가 지원을 받고, 어떤 사업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어느 활동이 다음 해에도 계속될 수 있는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 협조적인 단체와 비판적인 단체가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지 공개돼야 한다. 심사위원과 신청단체의 이해관계는 관리돼야 하고, 탈락한 단체는 이유를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비판을 중단하라고 직접 요구하지 않더라도 단체가 다음 사업의 심사와 재선정을 의식하게 된다면 자유로운 비판은 위축될 수 있다.
비용 설명도 정직해야 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시한 2027~2031년 15억 7,700만 원은 종합계획과 중앙·광역 위원회 운영 등 일부 항목의 추계다. 사무국과 지원센터 등 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운 항목은 빠져 있다. 이 금액을 제도 전체의 비용으로 제시해서는 시민이 실제 부담을 판단할 수 없다.[8]
지원금은 시민의 활동을 돕는 도구여야 한다. 정부에 순응하는 조직을 키우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위축시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안은 시민사회가 정부 밖에서 먼저 말하는 구조다
시민의 참여를 넓히려는 취지에 동의한다면 지금의 행안부 소속 위원회 구조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정부 밖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모으고, 스스로 대표를 정하며, 독자적인 의제를 만든 뒤 정부와 협의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시민사회가 무엇을 말할지 관리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민의 제안과 비판에 답변할 책임을 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첫째, **시민사회 측 대표의 선출을 행정부의 일방적인 인선권에서 분리해야 한다.** 지역과 분야별 시민사회가 공개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후보를 추천하고 선출해야 한다.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면 시민사회가 정한 대표와 정부가 각자의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둘째, **특정 단체나 연합체가 시민사회 전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대표 선출 과정은 다양한 분야의 단체와 지역 조직에 열려 있어야 한다. 추천 기준과 선출 절차, 임기와 이해관계를 공개하고 대표가 자신을 선출한 주체에게 활동을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단체에 속하지 않은 시민의 참여권을 별도로 보장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스스로 대표를 뽑더라도 그 대표가 모든 시민을 대신할 수는 없다. 개별 시민이 자료를 열람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자신의 의견을 직접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시민의 의제 제안권과 정부의 답변 책임을 보장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포함해 독자적으로 의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제안의 접수와 검토 과정, 수용 여부와 그 이유를 공개해야 한다.
다섯째, **지원과 비판의 자유를 분리해야 한다.** 지원 기준과 심사 결과, 이해충돌 여부를 공개하고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공적 자금을 받은 단체는 회계와 활동 결과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 책임이 정부 정책에 동조할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시민사회가 정부와 협력할 수도 있고, 협력을 거부할 수도 있으며, 언제든 정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민사회는 정부의 위원회보다 먼저 있었다
시민참여기본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시민참여 정책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목적을 이루려면 지금 정부가 신뢰하는 사람을 위촉할 수 있는지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음 정부가 들어와 자신들에게 가까운 인사들로 위원회를 채울 수도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를 인선에서 배제하고, 불편한 의제를 외면할 수도 있다. 지금 법으로 정부에 주는 권한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정부의 권한으로 남는다.
시민의 자유는 어느 정부가 좋은 의도를 가졌다는 믿음 위에 세울 수 없다. 시민사회가 정부와 거리를 두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구조 위에 세워야 한다.
국회는 시민참여를 지원한다는 이름으로 시민사회의 숙의와 공론을 행안부 소속 위원회 안에 넣으려는 설계를 거둬들여야 한다. 시민사회가 독립적으로 의견을 형성하고 정부가 그 의견에 답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정부의 위원회가 아니다. 정부가 시민사회를 선택하는 나라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자유롭게 말하고 정부가 그 말에 답하는 나라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