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공익감시

시민단체가 참여하면, 시민이 참여한 것인가

시민단체가 회의에 참석했다고 시민 전체가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신고리 공론화와 아일랜드 시민의회를 통해 누가 참여하고, 누가 의제와 자료를 정하며, 결정 뒤 누가 책임지는지 살펴봅니다.

시민의 동의는 어디서 확인했습니까

시민단체 대표가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에는 ‘시민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그 사이에 한 가지 질문이 사라집니다. 그 대표는 누구의 의견을 모았고, 어디까지 말할 권한을 받았습니까.

단체의 대표가 자기 조직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과 시민 전체를 대신해 동의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런데 행정이 이 둘을 구별하지 않으면, 단체 몇 곳의 참석이 시민사회의 동의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시민은 자신이 동의한 적도 없는 정책의 동의자로 묶입니다.

지난 2편 [「민회, 새로운 인민위원회인가?」](/columns/minhoe-new-peoples-committee-civic-society-part2-2026)에서는 민회라는 이름 아래 누가 참여자를 선정하고 의제와 권한을 행사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그보다 앞선 질문을 짚으려 합니다. 시민단체의 참여는 어떤 조건에서 시민의 참여가 되며, 어디서부터 시민의 이름을 대신 사용하는 권력이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시민단체를 비판하는 것은 시민사회를 부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시민단체는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해왔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연결하고, 행정과 기업에 설명을 요구합니다. 오랫동안 한 문제를 추적한 활동가의 전문성은 공공정책이 활용해야 할 자산입니다.

이런 기여가 곧 전체 시민의 위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단체는 환경정책에 관해 발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책으로 일자리와 생계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 지역 주민, 자영업자, 기업 구성원의 판단까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단체 내부에서도 대표의 발언이 어떤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는지 따져야 합니다. 총회나 이사회가 결정한 입장인지, 회원 의견을 조사한 결과인지, 대표 개인의 판단인지에 따라 발언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회원을 대표한다고 말하는 조직조차 회원의 뜻을 어떻게 확인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오래 활동했다는 사실은 경험을 증명합니다. 좋은 일을 했다는 사실은 신뢰의 근거가 됩니다. 시민 전체를 대표한다는 주장은 별도의 증명이 필요합니다. 이 구별을 무너뜨리면 시민운동의 경력이 공적 결정에 참여할 자격증처럼 굳어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는 말이 놓치는 사람들

가령 지방자치단체가 평일 오후에 교통정책 토론회를 연다고 해보겠습니다. 상근 활동가와 관련 기관 종사자는 업무의 연장으로 참석할 수 있습니다. 가게를 혼자 지키는 상인, 교대근무 노동자, 아이를 돌보는 부모는 몇 시간을 비우는 것부터 어렵습니다.

온라인으로 공개모집을 했다고 이 차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안내문을 찾아볼 시간, 정책 용어를 읽을 여유, 신청서를 쓸 자신감도 서로 다릅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문과 누구나 실제로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은 다릅니다.

OECD의 2022년 시민참여 지침도 공개모집에 특정 인구집단이 과도하게 참여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무작위 초청 후 응답자 가운데 성별·연령·지역·사회경제적 조건 등을 고려해 참여자를 구성하는 시민추첨을 설명합니다. 참여자에게 필요한 지원과 결과에 대한 피드백도 절차 설계의 일부로 다룹니다.[1]

따라서 참여의 공정성은 신청 링크를 열어두었는지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낮에 일하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인지, 교통비와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지, 장애인과 디지털 이용이 어려운 시민에게도 접근 경로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참석하지 못한 사람을 곧바로 무관심한 시민으로 분류하면 안 됩니다. 참여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 빈자리를 늘 참석할 수 있는 조직이 채운 뒤 주민의 합의라고 발표한다면, 참여 제도는 생활의 격차를 발언권의 격차로 굳히게 됩니다.

신고리 공론화는 단체의 주장과 시민의 판단을 구별했습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이 구별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당시 공론화위원회는 1차 조사 응답자 2만 6명 중 참여 의향자를 대상으로 성별·연령·건설에 대한 입장 분포 등을 고려해 시민참여단을 선발하는 절차를 마련했습니다. 단체가 추천한 대표들을 모아 전체 국민의 뜻을 묻는 방식과는 달랐습니다.[2]

최종 조사에는 471명이 참여했고, 건설 재개 59.5%, 중단 40.5%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부는 2017년 10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바탕으로 건설 재개 방침과 후속조치를 확정했습니다. 정부 설명에는 찬반 단체의 의견 수렴과 시민참여단의 숙의가 별도 과정으로 제시돼 있습니다.[3]

이 사례가 모든 공론화의 공정성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역할의 구분입니다. 이해관계자와 단체는 자기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고, 시민참여단은 그 근거를 검토하며, 정부는 권고를 받아 최종 정책결정의 책임을 집니다.

59.5%라는 숫자도 의미를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특정 자료와 토론을 거친 참여단의 최종 응답이지, 국민 전체가 직접 투표한 결과는 아닙니다. 숙의 결과의 가치는 충분한 학습과 검토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의 비판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정 뒤의 설명도 필요합니다. 어떤 권고를 받아들였고 무엇은 반영하지 않았는지, 집행 비용과 성과는 어떠한지 정부가 답해야 합니다. 시민참여를 거쳤다는 말이 정치와 행정의 책임을 덜어주는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일랜드가 보여주는 것은 추첨보다 검증입니다

아일랜드의 2016~2018년 시민의회는 정부가 임명하는 의장과 사회 구성을 폭넓게 반영하도록 무작위로 선발하는 시민 99명으로 설계됐습니다. 아일랜드 시민의회 공식 안내는 권고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으며, 의회와 정부가 이를 검토하고 공개적으로 답변하는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시민의 숙의와 공적 결정의 책임을 구별한 것입니다.[4][5]

이 제도에도 선발 오류가 있었습니다. 시민의회는 2018년 2월 21일 공식 성명에서 교체 참여자 7명이 정해진 모집 절차를 따르지 않고 모집 담당자의 가족·지인 경로로 선발됐다고 공개했습니다. 이들의 추가 참여를 배제했고, 이들이 참석한 2018년 1월 회의의 일부 문항은 다수의견을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성명은 해당자들이 이전 의제의 회의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구분했습니다.[6]

이 사실은 두 가지를 보여줍니다. 추첨을 내세운 제도에서도 사람을 뽑는 과정에 사적 관계가 끼어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오류를 찾아내 공개하고, 결과에 미친 영향까지 바로잡는 절차가 신뢰를 지키는 데 필요합니다.

‘무작위로 뽑았다’는 한마디로 검증을 끝낼 수 없습니다. 최초 초청 대상은 어떻게 정했는지, 참여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로 대체했는지, 모집 담당자가 기준을 지켰는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표성은 추첨 당일의 행사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한국과 아일랜드는 법제와 정치적 조건이 다릅니다. 같은 인원과 명칭을 가져온다고 같은 제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참고할 것은 시민의회라는 간판보다 선발 기록을 검증하고, 잘못을 공개하며, 권고에 대한 공적 답변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사람을 뽑은 다음에도 권력은 남습니다

참여자 구성이 다양해도 토론을 설계하는 사람이 선택지를 좁혀놓으면 판단은 제약됩니다. 어떤 질문을 할지, 어떤 자료를 읽게 할지, 누가 전문가로 설명할지, 무엇을 최종 표결에 부칠지가 모두 중요합니다.

가령 복지사업을 논의하면서 ‘어느 사업을 확대할 것인가’만 묻고 기존 사업의 효과와 재원을 검토하지 않는다면, 비용을 따져보려는 시민의 의견은 질문 밖으로 밀려납니다. 공익사업을 논의하면서 수행 단체의 설명만 듣고 실제 이용자와 비이용자의 경험을 듣지 않는다면, 사업의 필요성과 조직의 필요성을 구별하기 어려워집니다.

이것은 특정 행사에서 조작이 확인됐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참여 제도를 설계할 때 공개하고 검증해야 할 권한의 목록입니다. 참여자를 뽑는 사람만큼 질문과 자료를 고르는 사람의 책임도 커야 합니다.

시민단체의 전문성은 이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단체는 주장과 자료를 제출하고, 시민의 질문에 답하며, 반대 근거와 함께 검토받으면 됩니다. 단체의 활동 경험을 존중하는 것과 단체에 시민의 판단을 맡기는 것은 구별돼야 합니다.

참여 방식마다 맡길 역할도 달라야 합니다. 아래 도표는 어느 방식이 언제나 우월하다는 순위가 아니라, 제도를 설계할 때 확인할 기준입니다.

시민의 이름을 사용했다면 시민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시민참여 제도를 평가할 때는 최소한 다섯 가지 기록이 남아야 합니다. 참여자를 어떻게 구성했는지, 의제와 자료는 누가 정했는지, 어떤 반대의견이 나왔는지, 권고를 실제 결정권자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예산은 어디에 쓰였는지입니다.

구성 통계와 선발 기준은 공개하되 개인의 민감정보는 보호해야 합니다. 결과 보고서에는 다수의견뿐 아니라 남은 이견과 조건도 담아야 합니다. 주최 기관은 권고별 수용 여부와 이유, 이행 일정, 책임 부서를 밝혀야 합니다.

권고를 모두 수용해야만 시민을 존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률과 재정, 다른 시민의 권리에 비춰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경우 결정권자가 이유를 설명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시민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시민이 결정했다’며 책임을 넘기는 행정은 참여의 취지를 거꾸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시민단체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합니다. 공적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수록 누가 입장을 정했고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며 어떤 재정적 관계를 갖고 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비판받지 않을 특권은 시민사회에도 없습니다.

시민사회에는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시민도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거나, 토론 결과에 동의하지 않거나, 참여기구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계속 질문하고 자료를 요구하며 결정을 바꿀 수 있어야 참여는 시민의 권리로 남습니다.

시민단체는 시민이 힘을 모으는 통로입니다. 그 통로가 시민 전체의 목소리를 독점하는 순간, 시민은 자기 이름을 되찾기 위해 다시 싸워야 합니다. 시민의 이름으로 발표된 결론 앞에서 확인할 질문은 분명합니다. 누가 말했고, 누구의 위임을 받았으며, 동의하지 않는 나는 어디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까.

다음 편에서는 이 대표성의 문제를 돈의 흐름으로 이어갑니다. 보조금으로 성장한 시민단체는 자신을 지원하는 정부를 얼마나 자유롭게 감시할 수 있을까요. 지원의 필요성과 비판의 독립성을 함께 따져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