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시민의 이름으로 시민을 지배할 때
국가와 시장을 감시하던 시민사회도 예산·인사·언론·정책 접근권을 축적하면 권력이 된다. 공론장의 진지를 점유하고, 좌표 찍기로 반대자를 침묵시키며, 그 영향력을 위원회와 법률로 고정하는 순간 시민운동은 시민독재로 변할 수 있다.
권력을 감시하던 시민사회도 권력이 된다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을 감시해 왔다. 정부의 권력 남용을 비판하고 기업의 불공정을 고발하며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넓히는 것이 시민운동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야 한다. 시민을 대표한다는 조직이 스스로 권력이 됐을 때 그 권력은 누가 감시하는가.
정부 예산과 정책 결정에 접근하고, 언론을 통해 의제를 설정하며, 특정인의 직업과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시민단체도 실질적인 권력이다. 문제는 시민단체가 영향력을 갖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힘에 비례하는 대표성 검증과 책임, 견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국가는 선거와 국회의 통제를 받고 기업은 법률과 시장, 주주와 소비자의 감시를 받는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공익과 시민대표라는 명분으로 재정·의사결정·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검증을 피하기 쉽다. 권력을 감시하던 조직이 가장 감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수 있는 이유다.
- 시민이라는 이름은
- 권력에 대한 면책특권이 아니다.
그람시의 진지전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그람시는 현대의 권력이 군대·경찰·법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학교, 언론, 종교, 문화기관, 지식인, 시민단체와 같은 시민사회의 여러 진지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정의로운지에 관한 동의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지적·도덕적 지도력, 곧 헤게모니의 문제로 설명했다.
그래서 국가를 한 번에 공격하는 기동전보다 시민사회의 문화적·조직적 기반을 장기간 확보하는 진지전이 중요해진다. 오늘날 일부 시민사회 세력의 영향력 확대가 그람시의 지시를 그대로 실행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언론·교육·법률·문화·인권 영역에서 유사한 가치와 인적 네트워크가 축적되고 그것이 사회의 상식으로 정착하는 과정은 진지전의 구조와 닮아 있다.
진지전 자체는 불법도 독재도 아니다. 자유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 종교와 세속, 노동과 기업을 포함한 모든 세력이 시민을 설득하고 조직할 자유가 있다. 문제는 설득과 경쟁이 독점과 퇴출로 바뀌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언어를 장악하면 시민의 자격을 판정할 수 있다
공익, 인권, 평화, 정의, 약자 보호는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특정 진영이 이 단어의 해석권을 독점하면 자신들의 주장은 시민의 요구가 되고 반대 의견은 기득권의 저항이 된다. 자신들의 선택은 인권과 정의로 불리지만 다른 시민의 선택은 혐오·반민주·반개혁으로 규정된다.
이때 정책 논쟁은 어느 주장이 사실에 가깝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따지는 과정이 아니다. 누가 올바른 시민이고 누가 시민의 자격이 없는지를 판정하는 도덕재판으로 변한다. 시민은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를 뜻하는 보편적 지위가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태도에 동의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증이 된다.
시민사회는 본래 수많은 자발적 결사체가 경쟁하는 다원적 공간이다. 어느 단체도 시민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가 반복해서 초청하는 단체, 언론이 시민사회 입장으로 인용하는 성명, 위원회에 계속 들어가는 활동가가 고정되면 일부 조직의 목소리가 시민사회 전체의 목소리처럼 승인된다.
대통령의 경청이 남긴 불편한 질문
이재명 대통령은 9월 4일 시민사회 관계자들과 약 3시간 30분 동안 간담회를 열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진보연대, 민변,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전국여성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공개된 참석단체의 전체 구성은 진보 시민사회 진영에 크게 기울어 있었다.
대통령은 사회 대개혁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몫이 크다며 참석자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과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국가시민참여위원회와 같은 민관협력 체계를 제안했고 대통령은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의견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필요하며 이 간담회만으로 시민독재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정 성향의 조직을 시민사회 전체로 호명하고 대통령이 이들을 개혁의 동반자로 인정하며 그 국정 참여를 상설 제도로 연결하려는 흐름은 감시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대표성은 대통령의 초청장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회비, 투명성과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에서 나와야 한다.
- 오래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 널리 들었다는 사실이 되지는 않는다.
좌표 찍기는 공론장의 사회적 형벌이다
헤게모니를 확보한 세력이 반대자를 논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때 진지전은 시민독재로 기울기 시작한다. 특정인의 발언 일부를 떼어내 혐오·극우·반민주라는 낙인을 붙이고, 성명과 기사로 확대하며, 계정·직장·행사·거래처를 공개해 집단행동을 유도하는 좌표 찍기가 그 수단이다.
댓글 공격과 집단신고, 신상털기는 방송 하차, 강연 취소, 해임, 광고와 계약 중단 요구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잘못된 발언을 비판한다고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사람의 직업과 평판, 인간관계와 사회적 생존을 빼앗으려 한다. 이 재판에는 충분한 변론 절차가 없고 처벌에는 비례의 원칙과 종료 시점도 없다.
좌표 찍기의 진정한 표적은 공격받는 한 사람만이 아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수백 명의 시민이다.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면 나머지는 직장과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스스로 침묵한다. 법률상 표현의 자유는 남아 있어도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권리가 된다.
시민의 요구가 국가의 강제력으로 바뀔 때
강한 비판과 평화적 불매운동도 시민의 자유다. 그러나 특정 시민단체의 도덕적 판단이 언론과 정치권을 거쳐 정부기관의 조사·감사·심의·지원 배제에 연결되면 성격이 달라진다. 시민단체가 표적을 정하고, 언론이 확대하고, 정치권이 청문회와 입법으로 연결하며, 공공기관과 기업이 해임과 계약 취소로 대응하는 제재 사슬이 만들어질 수 있다.
각 행동이 외형상 독립돼 있어도 같은 표적을 향해 연쇄적으로 작동한다면 시민단체는 의견을 내는 민간조직을 넘어 국가 강제력을 움직이는 비공식 기소기관에 가까워진다. 시민의 이름으로 제기된 비판이 국가권력의 처벌로 변환되는 지점이 씨드가 특히 감시해야 할 경계다.
온라인 마녀사냥에 관한 국내 연구도 악성 댓글과 신상 공개, 과장과 인신공격이 개인의 정상적인 생활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나름의 도덕적 확신이 있다는 사실은 절차와 비례를 무시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점유한 진지를 위원회와 법률로 고정한다
공론장에서 확보한 영향력은 각종 시민참여위원회, 시민사회 지원기관, 민주시민교육, 인권·평등·공익기구, 지방정부 중간지원조직과 지원법으로 제도화될 수 있다. 이런 제도가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참여하고 누가 지원받으며 누가 평가하는가이다.
같은 단체들이 정책을 제안하고 위원으로 참여하며 예산을 배분받고 사업을 수행한 뒤 그 성과까지 평가한다면 명백한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선거로 선택되지 않은 사람들이 시민대표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인 정책 권한을 갖는다면 시민참여는 대표권의 사유화로 변한다.
제도는 다시 조직에 예산과 자리, 언론 접근권을 제공한다. 확대된 조직은 더 많은 법률과 위원회를 요구하고 그 제도는 다시 같은 네트워크의 대표성을 키운다.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승인과 자원으로 증식하는 시민권력의 순환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씨드가 말하는 시민독재다
시민독재는 시민이 독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시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국가권력과 결합해 다른 시민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다. 특정 진영이 공론장의 주요 진지를 점유하고 자신들의 가치를 유일한 도덕 기준으로 만든 뒤, 좌표 찍기와 사회적 제재로 반대자를 제거하고, 확보한 영향력을 위원회·교육·지원기구·입법으로 제도화해 권력을 재생산하는 구조다.
모든 시민운동과 입법운동을 시민독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헤게모니 독점, 반대자의 공론장 퇴출, 국가 강제력과의 결합이 함께 확인돼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거나 정부 정책에 찬성한다는 사실만으로 유착을 단정해서도 안 된다. 자금·인사·정책·제재가 실제로 어떤 관계를 형성했는지를 증거로 보여야 한다.
같은 기준은 보수 시민단체에도 적용돼야 한다. 보수단체가 권력의 지원을 받으며 반대자를 종북이나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고 사회적 퇴출을 요구했다면 그것 역시 시민독재의 징후다. 그래야 시민독재론은 진영 공격이 아니라 모든 시민권력을 향한 보편적 감시 원칙이 된다.
- 진지전이 설득과 경쟁에 머물면 민주주의다.
- 반대자를 제거하고 그 독점을 국가제도로 고정하면 시민독재가 된다.
이제 시민이 시민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씨드가 말하는 시민감시는 국가와 시장만을 향하지 않는다. 시민을 대표한다는 이름으로 예산·인사·여론·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민권력도 감시한다. 실제 회원과 회비 비중, 지도부 선출, 정부 보조금과 위탁사업, 위원회 참여, 정당·정부·공공기관과의 인사 이동, 반대자에 대한 태도를 지속해서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권력을 감시한다는 이유로 씨드가 또 하나의 좌표 찍기 세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보다 구조를 보고 이념보다 권력의 작동 방식을 검증해야 한다. 당사자에게 사실 확인과 반론의 기회를 보장하고 잘한 활동은 인정하며 오류가 확인되면 신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시민감시는 타인을 향한 감시인 동시에 감시자 자신의 권력화를 막는 자기감시여야 한다.
씨드가 원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약화가 아니다. 국가에 의존하는 하나의 거대한 시민사회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는 다수의 독립된 시민사회다. 시민단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을 다시 시민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모든 권력은 감시받아야 하며 시민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력도 예외가 아니다.
- 국가를 감시하는 시민과 함께
- 권력화된 시민을 감시하는 시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