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초수급자를 벗어나기에는 세상이 너무 위험하다
정부는 생애소득 보장과 보편적 서비스를 내세운다. 그러나 지원 항목을 늘리는 것만으로 일할 때의 급여 감소, 의료·주거비의 경계, 성실한 납세자의 박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경계선에서 실제 생활이 나아지도록 제도를 고치는 일이다.
2026년 1인 가구의 생계급여 선정 기준은 월 소득인정액 82만 556원이다. 의료급여는 102만 5695원, 주거급여는 123만 834원으로 기준이 다르다. 생계급여를 벗어난다고 모든 지원이 한꺼번에 끊기지는 않는다. 급여별 기준을 나눈 것도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일자리를 앞에 둔 사람의 계산은 여전히 복잡하다. 월급을 받으면 생계급여가 얼마나 줄어드는가. 다음 경계선을 넘으면 병원비와 집세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몇 달 일하다 그만두면 생활을 다시 추스를 수 있는가. 건강이 좋지 않거나 일자리가 불안정하다면 ‘일해서 수급을 벗어나라’는 말만으로 이 위험을 지울 수 없다.
OECD는 2020년 제도를 토대로, 일하지 않던 부부 중 한 사람이 최저임금 전일제 일자리를 얻으면 늘어난 임금의 54%에 해당하는 금액이 세금·사회보험료와 급여 감소로 상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거급여가 끊기는 특정 구간에서는 그 비율이 70%를 넘었다. 현재 모든 수급 가구에 적용되는 수치는 아니다. 다만 일을 시작해도 손에 남는 돈이 기대보다 적은 구간이 있다는 경고는 분명하다.
이때 정부는 ‘기본사회’를 말한다. 대통령직속 기본사회위원회가 밝힌 세 축은 아동수당부터 기초연금까지의 생애소득 보장, 의료·돌봄·주거 등의 보편적 기본서비스, 협동조합과 지역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경제다. 현금만 나눠주자는 구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 구상이 월급을 처음 받는 사람의 실제 생활을 어떻게 바꾸는지까지 답해야 한다.
‘기본’을 늘려도 경계선은 남는다
씨앗은 기초생활보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프거나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자립을 강요하는 것은 보호의 책임을 버리는 일이다.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정직하게 소득을 신고하며 보호망 밖으로 걸어 나갈 길도 있어야 한다. 그 길이 너무 위험하면 사람은 제도 안에 머무를 방법부터 찾게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근로·사업소득의 30%를 급여 산정에서 제외한 제도는 일하는 빈곤층의 생활 안정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미 일하는 수급자만 비교하면 청년층을 제외하고 노동시장 참여를 늘린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민간 일자리의 부족도 그 이유로 지목됐다. 여덟 명의 경험을 분석한 다른 연구에서도 탈수급 의지와 실제 탈수급은 일치하지 않았다.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하기 전에 일할 자리와 그 뒤의 생활을 함께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 서비스 자체의 소득 경계는 낮아질 수 있다. 기본사회의 장점이다. 그러나 현재 생계·의료·주거급여의 선정 기준은 서로 다르고, 일자리와 건강 상태도 다르다. 보편적 서비스를 하나 더 만든다고 기존 급여가 줄어드는 속도, 취업 뒤 병원비의 위험, 임차인의 월세가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기본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몇 개 늘렸는지가 아니라 그 사이를 건널 때 무엇이 손에 남는지를 따져야 한다.
9월 기본사회위원회의 국민숙의단도 양질의 일자리, 보편적 의료, 실패 뒤 재기할 기회를 원했다. 위원회가 일자리 의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지금 발표된 비전과 숙의 결과는 수급 경계에서 순소득과 생활비가 어떻게 달라질지 보여주는 시행 결과가 아니다. 그 구체적인 설계와 재원은 아직 검증해야 할 과제다.
소득을 숨기는 편법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소득 은폐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올해 5월, 소득과 재산 변동을 신고하지 않은 채 생계·의료·주거급여 약 5400만 원을 받은 사람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급자 전체를 이 사건에 겹쳐 놓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실제 형편을 숨겨 지원을 받는 행위에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직하게 소득을 신고한 사람과 기준을 조금 넘어 지원받지 못한 사람이 그 비용을 함께 치른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시민에게 ‘나만 바보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복지를 지탱하는 신뢰도 흔들린다. 그 감정을 가난한 이웃을 향한 비난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소득을 숨길 유혹은 어디서 커지고, 신고한 사람은 어느 구간에서 불리해지는지 정부가 보여줘야 한다.
어제 씨앗이 다룬 [월 50만 원 일하면 가족이 아니게 되는 이상한 세금 기준](/columns/family-deduction-work-income-threshold)도 다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근로소득만 있는 가족의 연간 총급여 기준은 현행 500만 원이다. 정부안은 750만 원, 의원안은 900만 원으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두 안 모두 확정 법률은 아니다. 이 기준은 기초수급자 선정 기준과 별개지만, 가족이 조금 더 일했을 때 세법의 경계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수급을 유지하는 것만이 지원은 아니다
한국경제의 유승호 기자는 기본사회 예산을 논하면서 지원 규모만 키우고 정책의 목적을 놓치는 위험을 지적했다. 급여를 받은 사람의 수보다 빈곤을 벗어난 뒤의 생활을 보자는 문제 제기는 받아들일 만하다. 다만 수급자 수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졌거나 부정수급이 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빈곤의 변화와 제도 접근성이 함께 영향을 준다. 필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의 순소득과 생활 안정에 관한 검증이다.
연구에는 이미 검토할 방안이 나와 있다. OECD는 소득이 늘 때 급여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일을 시작하는 초기에는 근로소득을 더 넉넉히 공제하고, 안정된 일자리로 옮긴 뒤에도 일정 기간 지원을 이어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활사업과 직업훈련도 고용서비스에 연결해 지속할 수 있는 일자리로 옮겨야 한다.
의료비가 걱정인 사람에게는 전환기의 보호가 특히 절실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탈수급 뒤에도 일정 기간 필요한 현물 지원을 이어주는 이행급여를 검토한 바 있다. 먼저 현재의 급여별 기준과 예외 규정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자. 병원비 때문에 취업이나 소득 신고를 주저하는 구간이 확인된다면 그 구간을 메워야 한다. 기간과 대상, 재정 부담도 공개해 기준 바로 밖에 있는 사람에게 또 다른 불공정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일자리 정책의 성적표도 달라져야 한다. 자활사업에 몇 명이 참여했는지보다 일반 일자리로 옮겨 1년 뒤에도 일하는지, 급여·의료비·주거비를 합친 생활 형편이 나아졌는지를 보아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맞춤형 급여체계 평가 역시 자활을 통한 탈수급 성과가 미흡하고 일부 재산 기준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경계선 바로 밖의 시민은 누가 보는가
월급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꼬박 내지만 집은 없는 사람이 있다. 투자소득 없이 월세를 내고, 부모의 간병비나 자녀의 교육비를 감당하며 노후를 걱정한다. 소득만 보면 중산층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소득이라도 이미 집과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의 생활과는 다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해, 시장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근로연령 빈곤가구 가운데 29.86%가 네 가지 주요 소득지원제도 중 어느 것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제도와 네 가지 현금지원에 한정된 수치지만, ‘지원 대상을 넓혔다’는 발표만으로 누가 여전히 빠져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더 넓은 계층에서도 집 없는 근로자의 월세와 돌봄 부담을 소득 숫자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필요한 답은 수급자를 향한 질투가 아니다. 지원 기준에 소득·재산·주거비와 돌봄 부담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공개하고, 기준을 조금 넘었다는 이유로 필요한 도움에서 빠진 사람을 조사해야 한다.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이 재산 기준과 부양 기준이 만든 사각지대를 오래 지적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이 함께 계산서를 펼쳐야 한다
정부는 기준을 정하고 세금을 집행한다. 그러나 어느 기준에서 사람이 일을 포기하는지, 어느 기준 밖에서 납세자가 억울함을 느끼는지는 당사자의 생활을 듣지 않고 알 수 없다. 수급 중인 사람, 수급을 벗어난 사람, 기준을 넘어 탈락한 사람, 세금을 내면서도 주거와 노후가 불안한 사람이 함께 제도의 계산서를 검토해야 한다.
시민단체도 한쪽의 지원 확대만 요구하거나 다른 쪽의 부정수급만 고발하는 데 머물지 말고 두 경계의 사례와 숫자를 함께 모아야 한다. 씨앗이 말하는 시민화는 시민이 자기 처지만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시민의 부담까지 확인하며 제도를 고쳐 가는 일이다.
정부의 기본정책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예산과 수혜 인원뿐 아니라 수급을 벗어난 뒤의 소득·고용·의료비와 기준 바로 밖의 부담을 설명해야 한다. 부정수급도 신고 착오와 고의적인 은폐를 구별해 다뤄야 한다. 시민은 그 설명을 요구하고 자신의 생활에 비추어 반박할 수 있다. 그것이 제도를 정부의 표어에서 시민의 문제로 되돌리는 길이다.
가난할 때 붙잡아 주는 손은 필요하다. 그러나 일어선 사람이 그 손을 놓는 순간 다시 추락할까 두렵다면 사다리의 다음 칸이 비어 있는 것이다. ‘기본’을 더 많이 붙이는 것으로 그 칸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사다리 옆에서 아무 도움 없이 버티는 사람까지 보며 경계의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정직하게 일하고 신고하는 선택이 누구에게나 납득할 만한 선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