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미국 민주당이 이겼다, 한국도 이긴 것인가

미국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됐지만 미국의 국익이 한국의 국익과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간선거의 역사와 미국 민주당 정부의 산업·안보 정책을 통해 한미 관계가 마주할 현실을 살펴본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상원과 하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분명 뼈아픈 패배다.

한국에서는 벌써부터 기대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의 힘이 약해졌으니 한미 관계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민주당의 승리를 이재명 정부에 찾아온 외교적 호재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정말 그럴까.

미국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심판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국정 운영이다. 높은 물가와 생활비, 관세와 전쟁에 대한 불만이 표심에 반영됐다. 미국 민주당의 승리는 미국 유권자들이 내린 정치적 선택이다. 그 선택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1]

미국 선거의 결과를 놓고 마치 한국 정치의 연장전처럼 기뻐하거나 낙담하는 태도부터 경계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의 정치가 바뀌었다고 해서 미국의 국익이 한국의 국익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중간선거는 원래 집권당에 불리하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진다.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집권당의 성적표를 평가한다. 그만큼 집권당에 불리한 선거인 경우가 많다.

1994년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민주당은 하원에서 54석을 잃었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도 민주당은 하원에서 63석을 잃었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중간선거에서는 공화당이 하원에서 41석을 잃었다.

예외도 있다. 1998년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민주당은 하원 의석을 늘렸고, 2002년에는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의석을 늘렸다. 중간선거가 언제나 집권당의 패배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집권당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한 선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2]

이번 민주당의 승리는 그 폭이 컸고, 공화당의 전통적인 강세 지역까지 흔들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트럼프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은 실제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 결과를 곧바로 ‘트럼프 시대의 종말’이나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승리’로 연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미국인들은 한국 정부를 평가하기 위해 투표장에 간 것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과 한국 민주당은 이름만 같다

미국 민주당과 한국의 더불어민주당은 당명이 같다. 그러나 두 정당이 형성된 역사와 지지 기반, 우선하는 의제와 외교적 이해관계는 다르다.

미국 민주당은 미국의 정당이다.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와 산업, 미국의 안보와 국제적 영향력을 중심에 놓는다. 한국 민주당 역시 한국 정치의 역사와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양쪽 모두 민주주의와 인권, 노동과 복지 같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단어를 쓴다고 해서 구체적인 정책과 이해관계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통상과 산업, 중국과 북한을 둘러싼 외교에서는 서로 다른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 민주당이 동맹을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민주당도 한미동맹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미국에 투자할 공장을 어디에 세울지,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에 어떤 제한을 둘지, 한반도 안보를 위해 무엇을 우선할지까지 자동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당명이 같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해관계까지 같다고 믿는 순간, 외교는 현실을 놓친다.

바이든의 미국도 자국 산업을 먼저 지켰다

가까운 사례가 있다.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이른바 IRA다.

이 법은 전기차 세제 혜택에 북미 최종 조립 등의 요건을 두었다.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던 전기차는 혜택을 받기 어려워졌고, 한국 정부와 기업은 우려를 제기했다.

이후 미국 정부는 리스 차량 등에 대한 세부 규정으로 한국 기업의 우려를 일부 완화했다. 한국 기업의 전기차 수출도 계속 늘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확인된 사실은 분명하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사정보다 자국의 산업과 일자리를 우선해 제도를 설계했다.[3][4]

트럼프가 관세와 거래의 언어로 미국 우선을 외친다면, 민주당은 산업정책과 노동자 보호, 공급망과 기후정책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표현과 수단은 다르지만 미국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미국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트럼프의 일방적인 관세 정책이나 동맹국에 대한 압박에 제동을 걸 가능성은 있다.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변화다. 하지만 그것이 곧 한국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나 무조건적인 관세 인하를 뜻하지는 않는다.

미국 의회에는 자국 자동차와 철강,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소리가 양당에 존재한다. 민주당 의원들도 자신을 뽑아준 지역의 일자리와 산업을 먼저 생각한다. 한국의 공장과 일자리를 대신 지켜줄 사람은 한국 정부와 한국 정치다.

한국 안보가 위태로웠던 순간에도 미국에는 민주당 대통령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공화당은 안보를 중시하고 민주당은 대화와 평화를 중시한다고 단순하게 나눈다. 그러나 한반도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민주당 소속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0년대 후반 주한미군 지상군 철수를 추진했다. 한국의 안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상이었다. 이 계획은 미국 의회와 군, 한국과 일본 등의 우려와 반대에 부딪혔고, 카터 행정부는 1979년 전투부대 철수를 보류했다.[5][6]

이 사례가 미국 민주당은 한국 안보에 무관심하고 공화당은 언제나 든든하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당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북한의 남침 이후 한국전쟁에 미군을 투입했다. 바이든 대통령 시절에는 한미 양국이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워싱턴 선언을 발표하고 핵협의그룹을 만들었다.[7]

반대로 공화당 대통령이라고 해서 한국이 원하는 선택만 한 것도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와 관세, 투자 문제를 놓고 한국을 압박해 왔다.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어느 한 정당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는 당시의 국제정세와 미국의 국내 정치, 자국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안보를 미국의 어느 정당에 대한 기대에 맡길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는 여전히 대통령이다

이번 선거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힘은 약해졌다.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하면 민주당은 상임위원회와 청문회, 예산 심사와 인사 인준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도 지금보다 의회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졌다.[1]

그렇다고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미국의 대통령이고, 행정부를 이끌며 외교와 통상, 군사 문제에서 상당한 권한을 행사한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관세나 대외정책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8]

벌써부터 트럼프 탄핵을 기정사실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앞서간다.

미국에서 하원은 과반 찬성으로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파면에는 별도로 열리는 상원 탄핵심판에서 출석 의원 3분의 2의 유죄 찬성이 필요하다. 상원 의원 100명이 모두 출석한다면 67표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 됐다고 해도 민주당의 표만으로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는 의석에는 이르지 못한다.[9][10]

탄핵소추와 파면은 다르다. 선거에서 졌다는 사실과 대통령직을 잃는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다르다.

이재명 정부가 살펴야 할 것은 축배가 아니라 청구서다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통상과 투자, 안보 현안을 놓고 협의해 왔다. 이제 그 합의와 협의의 상당 부분이 민주당이 주도하는 새로운 의회의 검증대에 오르게 됐다.

민주당이 트럼프의 관세 압박을 견제하면 한국에 협상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의 산업 보호 요구가 강화되거나, 한미 간 원자력 협력과 핵추진 잠수함 관련 논의에 더 까다로운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민주당 의회가 핵비확산 원칙에 따라 관련 합의를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앞으로의 의회 심의와 협상을 통해 확인해야 할 사안이다.[11]

한국 정부가 확인해야 할 것은 구체적이다. 미국의 관세가 어떻게 바뀌는지, 한국 기업이 약속한 투자에 어떤 조건이 붙는지, 한국 내 일자리에 어떤 영향이 생기는지 살펴야 한다. 주한미군과 확장억제, 원자력 협력에 대한 미국 의회의 태도도 지켜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 행정부와의 협상만으로는 부족하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 의원들, 주정부와 산업계, 노동계까지 폭넓게 만나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미국 민주당의 승리를 반가워할 수는 있다. 트럼프의 독주에 제동이 걸리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대한민국의 외교 전략을 대신할 수는 없다.

미국 민주당이 이겼다고 한국도 이긴 것은 아니다.

미국의 정치는 미국이 결정한다. 한국이 얻을 것과 잃을 것은 이제부터 한국 정부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국회와 시민이 그 결과를 얼마나 꼼꼼히 살피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