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살예방, 행안부가 나서라

자살예방을 복지부와 산하기관에 맡겨둔 채 지역 행정이 뒤로 물러나 있어서는 안 된다. 행안부가 지방정부의 인력·예산·협력체계를 책임지고 시민사회가 정책의 주체로 참여하도록 국가 자살예방 구조를 바꿔야 한다.

자살예방은 보건복지부 한 부처가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병원과 상담센터의 노력만으로 실직과 부채, 주거불안과 고립, 돌봄의 소진과 관계의 단절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위기를 먼저 알아보고, 도움을 청할 곳을 함께 찾고, 치료를 마친 뒤에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곁을 지키는 지역사회의 힘이 필요하다.

이 일을 보건복지부에 떠넘겨놓고 행정안전부가 한발 물러서 있는 것은 책임 회피다. 지방정부의 조직과 인력, 지역 행정의 협력체계를 움직일 수 있는 부처는 행안부다. 자살예방이 지역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행안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

씨앗은 앞서 [「국가는 생명을 독점할 수 없다」](https://seedvoice.kr/columns/state-cannot-monopolize-life-2026/)에서 국가가 자살예방의 책임을 강화하되 예산과 정보, 정책 결정권까지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는 그 질문을 지역 행정으로 이어간다. 시민사회와 지방정부가 실제로 함께 움직이게 하려면 누가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배치하고, 예산을 연결해야 하는가. 행정안전부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기구는 있는데 현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에 자살예방 기구가 없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무총리 소속 범정부 생명지킴추진본부가 가동되고 있고, 전국 지방정부에는 부단체장급 자살예방관이 지정돼 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9월 광역지방정부 자살예방관들을 불러 전담조직과 인력 확충, 지역 네트워크 구축을 논의했다.

문제는 이름이 아니라 작동 여부다. 자살예방관에게 부서를 움직일 권한이 있는가. 전담 실무자는 몇 명인가. 담당자는 다른 업무를 겸하고 있지 않은가. 보건소와 읍면동 복지팀, 주거·고용·채무 상담기관, 경찰·소방과 시민단체가 실제로 한 사람의 위기를 끊김 없이 이어받고 있는가.

정부가 회의와 직책을 만들었다면 이제 인력과 집행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지정했다는 보고서 한 줄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현장이 움직이지 않는 기구는 조직도가 아니라 알리바이에 가깝다.

복지부는 뒤늦게 치료 중심 접근의 한계를 인정했다

보건복지부의 안일한 대응도 따져야 한다. 복지부는 2026년 7월 ‘자살 긴급대응 강화방안’을 발표하며 신체적·정신적 치료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자살시도자의 생활 전반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위기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는 오래된 요구를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같은 자료에는 더 무거운 숫자가 담겨 있다. 2025년 경찰·소방의 자살시도 현장 출동은 약 5만1천 건이었지만 자살예방 상담인력의 현장 출동은 3,738건, 약 7% 수준이었다. 이 수치만으로 나머지 사람 모두가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구조 현장과 전문적 후속지원 사이에 큰 공백이 있었다는 사실은 정부가 직접 공개했다.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 실패를 덮을 수 없다. 왜 상담과 돌봄이 제때 연결되지 않았는지, 어느 지역에서 인력이 부족했는지, 몇 명이 지원체계에서 이탈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의료와 상담을 강조해온 주무부처라면 그 서비스가 위기의 순간에 실제로 닿았는지부터 책임 있게 밝혀야 한다.

앞서 씨앗의 시민감시 글 [「708억 원의 자살예방 예산, 시민사회와 삶의 조건에는 얼마나 닿는가」](https://seedvoice.kr/monitoring/korea-foundation-for-suicide-prevention/)는 2026년 정부 자살예방 분야 예산 708억 원과 생명존중희망재단 자체 예산 370억4,200만 원을 구분해 살폈다. 재단의 민관협력 사업 항목은 7억300만 원으로 재단 자체 예산의 1.9%, 정부 전체 자살예방 예산의 약 1%였다. 이 금액 전부가 시민단체에 직접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자살을 사회적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자원의 대부분을 중앙의 기관과 보건의료 중심 전달체계에 묶어두고 있다. 시민사회와 협력한다고 말하려면 회의 참석자 명단이 아니라 예산과 권한으로 증명해야 한다.

사람을 치료한 뒤 다시 같은 벼랑으로 돌려보낼 것인가

이범수 교수의 연구와 정책 제안은 자살예방의 범위를 다시 묻는다.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데서 끝날 것인가, 그 사람이 살아갈 사회적 조건을 회복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인가.

이 교수는 2022년 「현대 한국사회의 자살과 불교적 관점」에서 급격한 사회 변화와 공동체의 약화를 살피며 사회가 구성원의 소속감과 존재감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3년 국회 토론회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지역 중심 대책과 민간·종교단체 지원을 정책 전환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2024년에도 지방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려면 조직과 인력,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논의를 정책으로 옮기면 답은 분명하다. 한 사람을 병원과 상담기관에 연결하는 일과 그 사람이 다시 살아갈 관계를 만드는 일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 해고된 사람에게는 고용과 생계 지원이, 빚에 몰린 사람에게는 채무조정이, 홀로 남은 사람에게는 지속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치료를 마친 사람을 위기가 시작된 바로 그 자리로 돌려보내면서 자살예방을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적 지지의 효과도 연구에서 확인된다. 2022년 발표된 체계적 문헌고찰은 자살 사망을 측정한 10개 무작위시험을 종합해 사회적 지지 개입군의 위험비를 0.48로 보고했다. 자살시도의 감소는 종합분석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모든 시민단체 활동이 자살 사망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뜻은 아니다. 지속적인 사회적 지지를 치료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예방정책의 한 축으로 다룰 근거는 충분하다는 의미다.

일본의 제도도 같은 방향을 보여준다. 일본 자살대책기본법은 광역·기초 지방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국가가 교부금으로 이를 지원하며, 의료기관과 학교, 사업주, 민간단체가 협력하도록 규정한다. 지방에 계획서를 쓰라고 지시하고 끝내는 구조가 아니다. 지역이 실행할 수 있도록 국가가 재원을 뒷받침한다.

아키타현 6개 마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주민 참여, 노인의 삶의 의미를 높이는 활동, 지역 관계망 형성 등을 실시한 지역의 자살률이 1999년 70.8명에서 2004년 34.1명으로 낮아졌다. 비교지역은 47.8명에서 49.1명이었다. 무작위시험이 아니어서 감소 전체를 사업의 효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지역사회를 자살예방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세운 접근의 가능성은 분명히 보여준다.

시민사회의 역사를 재단 설립 이후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한국 시민사회에도 오래 축적된 경험이 있다. 한국생명의전화의 공식 연혁에는 2002년 사이버 자살예방센터 개설, 2003년 전국 자살예방센터 사업 활성화, 2005년 대학생 자살예방 전국 캠페인이 기록돼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의 연혁에는 2017년 시민단체들의 국가정책 채택 요구와 2018년 26개 단체의 한국생명운동연대 결성, 생명존중시민회의 출범이 남아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2021년에 설립됐다. 시민사회의 생명운동은 재단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재단이 생기기 전부터 상담하고 교육하며 국가의 책임을 요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러 단체를 연결하고 대통령실과 정부에 대책을 촉구한 시민사회의 시간과 경험이 오늘의 국가 자살예방 체계를 만드는 토대가 됐다.

그 역사를 지우고 국가가 만든 기관만 전문성을 가진 것처럼 대하는 것은 부당하다. 현장에서 어려운 일을 맡은 단체에는 해마다 짧은 공모를 기다리게 하고, 안정적인 인력과 예산을 가진 기관만 전문기관의 지위를 차지한다면 성과를 만든 사람과 성과를 가져가는 기관이 달라진다.

전문성은 간판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투입되고, 예산이 이어지고, 실패와 경험이 기록되면서 쌓인다. 국가가 시민단체에 그런 축적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경험 부족을 이유로 주변에 세운다면 그것은 공정한 협력이 아니다.

생명존중희망재단은 지원기관이어야지 정책의 문지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존중희망재단이 자살예방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구조로 가서는 안 된다. 재단에는 연구와 교육, 전문적 지원과 협력을 수행할 역할이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무엇을 할지, 누가 지원받을지, 어떤 사업을 성과로 인정할지까지 하나의 기관을 거쳐 결정되는 구조는 위험하다.

재단의 전문성과 행정 경험은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같은 체계 안의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고 평가한 뒤 성과까지 설명하는 구조에는 외부의 질문이 들어가기 어렵다. 여러 부처와 지방정부를 조정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복지부 산하 기관에 떠넘기는 것도 잘못이다. 재단은 범정부 지휘부가 아니며 그렇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2026년 민관협력 공모는 약 10개 기관에 기관별 5천만 원 안팎을 지원하고, 선정일부터 11월 말까지 사업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것이 민간 지원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몇 달짜리 공모사업으로 지역 활동가의 고용을 유지하고 주민과의 신뢰를 축적하라는 것은 무리다.

시민사회 지원은 일회성 행사비가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남기는 투자여야 한다. 공개 심사와 독립 평가를 전제로 다년 지원을 도입하고, 작은 지역단체와 유족·회복 당사자 단체에도 참여 경로를 열어야 한다. 자발성을 무급노동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주민 곁에서 신뢰를 쌓는 일에도 시간과 노동, 생활을 지탱할 비용이 든다.

지역 격차는 행안부가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다는 증거다

2025년 사망원인통계에서 지역의 연령구조를 보정한 자살률은 제주 30.3명, 충남 28.0명, 대전 27.1명이었다. 세종은 16.6명, 서울은 19.3명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비교해도 지역 간 격차가 크다.

이 숫자를 단체장들의 단순한 성적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한 해 수치에는 지역의 인구구조와 경제 여건, 우연한 변동도 반영된다. 낮은 지역에서 어떤 정책이 작동했는지 검증하고, 높은 지역에는 어떤 인력과 서비스가 부족한지 확인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할 일은 순위를 발표하고 지자체를 경쟁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취약한 지역에 사람과 재원을 더 보내 격차를 줄여야 한다.

행안부는 2026년 7월 중앙지방정책협의회에서 자살예방 관련 부서에 지방정부 인력을 신속히 배치하라고 당부했다. 당부했다는 보도자료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방정부별 전담인력의 정원과 현원, 겸무와 결원, 이직률과 실제 집행예산을 공개해야 한다. 담당자 한 명에게 여러 업무를 얹어놓고 자살예방 전담체계를 만들었다고 부를 수는 없다.

행안부가 이 일을 계속 복지부의 업무로만 취급한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지방정부의 조직과 정원, 중앙과 지방의 협력, 지역 안전체계를 맡은 부처가 주민의 생명과 직결된 행정에서 빠져 있을 이유가 없다.

행안부는 지금 세 가지를 시작해야 한다

첫째, 모든 지방정부의 자살예방 전담조직과 인력을 전수 조사해 공개해야 한다. 자살예방관의 권한, 전담 실무자의 수, 겸무와 결원, 지역별 예산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해야 한다.

둘째,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설계하는 지역 생명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보건소와 정신건강복지센터만 묶을 것이 아니라 읍면동 복지팀, 고용·주거·채무 지원기관, 경찰·소방, 학교, 종교기관, 시민단체와 유족·회복 당사자 조직까지 연결해야 한다. 위험 신호를 발견한 뒤 실제 지원이 이어졌는지 확인하는 책임자도 정해야 한다.

셋째, 시민사회에 다년간 사람을 고용하고 관계를 축적할 수 있는 재원을 보장해야 한다. 중앙 재단 한 곳의 공모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방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춰 지원할 수 있는 별도 계정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 수와 교육 인원만 세지 말고 서비스 연결률, 중도이탈, 재접촉, 지역 격차와 일상 회복의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을 감시하거나 위험인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찾아야 할 것은 개인의 비밀이 아니라 실업과 부채, 고립과 서비스 공백이다. 도움을 먼저 제안하되 당사자의 권리와 선택을 존중하는 체계여야 한다.

반년의 감소를 정부의 공으로 포장하지 말라

정부는 2026년 상반기 자살사망자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849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한 사람이라도 덜 죽었다면 다행이다. 현장에서 애쓴 사람들의 노력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반년의 감소만으로 정부 정책의 성공을 선언할 수는 없다. 2025년 연간 자살사망자는 1만4,144명이고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7.8명이다. 전년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하루 평균 38.8명이 생을 잃었다. 한국의 OECD 기준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24.9명으로 OECD 평균 10.9명의 두 배가 넘는다.

무엇이 감소에 영향을 미쳤는지, 어느 연령과 지역에서 줄었는지, 어떤 집단은 나아지지 않았는지 밝혀야 한다. 정책 효과와 경기·인구·특정 사건의 영향을 구분하지 않은 채 좋은 숫자만 정부의 공으로 가져가는 것은 책임 있는 평가가 아니다.

자살예방의 성과는 어느 부처나 기관의 훈장이 될 수 없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는 사람 곁에 실제로 누가 있었는지, 그 관계가 다음 해에도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힘든 일은 시민사회가 맡고 예산과 결정권, 성과의 인정은 중앙기관이 가져가는 구조라면 반드시 바꿔야 한다.

복지부는 그동안의 대응 공백과 의료 중심 체계의 한계에 답해야 한다. 생명존중희망재단은 현장단체 위에 서는 기관이 아니라 현장단체가 성장하도록 돕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행안부는 지방정부가 생명을 지키는 일을 일상적인 행정의 책임으로 수행하도록 조직과 사람, 재원을 움직여야 한다.

자살예방은 하나의 부처가 처리할 복지사업이 아니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생명안전의 과제다. 행안부는 더 이상 뒤에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지역으로 내려가 지방정부와 시민사회를 움직여라. 생명을 지키는 행정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책임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