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해체의 정치, 그만두라
해체는 현판을 내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조직의 기능과 독립성을 거두고 통합으로 권력관계를 다시 짜는 일도 해체다. 검찰·방첩·방송 규제·사관학교·사법제도의 개편을 시민 보호 능력과 권력 견제라는 기준에서 묻는다.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를 일으켰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넓혔다. 남과 북의 막강한 병력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루었다.
오늘의 대한민국 아래에는 국민이 피땀 흘려 가꾸어온 세월이 깔려 있다. 공장에서 일하고, 시장에서 장사하고, 농사를 짓고, 기업을 세우고, 다음 세대를 가르친 사람들의 노고다. 나라를 지키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한 사람들이 함께 만든 결과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공동 성취다. 정부는 그 성취를 이어받아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책임을 맡는다.
지금 민주당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여러 개편에서는 기존 조직을 없애고, 권한을 거두고, 새로운 체계로 통합하는 일이 앞에 선다. 검찰과 방첩조직, 방송 규제기관을 거쳐 장교 양성체계와 사법제도까지 바뀌고 있다.
이 변화들을 관통하는 질문이 있다. 개혁 이후 시민을 보호하는 능력과 권력을 견제하는 힘은 더 강해졌는가.
조직을 바꾸어 견제의 힘을 거두는 정치
이 글에서 말하는 ‘해체 정치’는 기관의 현판을 내리는 행위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존 조직의 기능과 독립성을 무력화하고, 통합이나 재설립을 통해 권력관계를 다시 짜는 방식까지 포함한다.
방송통신위원회 개편이 그 모습을 보여준다.
2025년 10월 기존 방통위가 폐지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출범했다. 정부는 방송과 미디어 정책을 통합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이진숙 위원장의 임기도 끝났다. 정부·여당과 갈등하던 기관장을 물러나게 하는 효과가 조직개편에 들어 있었고, 야당은 이를 ‘위인폐관’ 입법이라고 비판했다.[1](https://www.yna.co.kr/view/AKR20250926145551001)[2](https://www.newspim.com/news/view/20251001000330)
새 위원회에서도 방송 관련 업무는 계속된다. 그와 함께 기존 지도부의 임기와 조직의 연속성이 끊겼다는 사실도 보아야 한다.
이 방식이 반복되면 법으로 보장한 임기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정부와 충돌한 기관장을 조직개편으로 물러나게 할 수 있다면, 다른 기관의 책임자들도 같은 가능성을 의식하게 된다. 독립성은 법률의 문장에 남아 있어도 실제 판단은 권력의 눈치를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는 발표보다, 그 조직이 정부에 불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검찰의 권한은 줄었고, 다른 권력은 커졌다
검찰청은 지난 10월 2일 폐지됐다.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소는 공소청으로 나뉘었다. 검사의 직접 수사와 보완수사 기능도 사라졌다. 한국일보는 출범 당시 중수청이 정원의 약 70%만 채웠고, 자체 형사사법정보시스템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3](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mp/A2026100116020003471)
검찰의 권한 남용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는 분명하다. 개혁의 결과를 판단하려면 거둬들인 권한이 어디로 갔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소속이다. 경찰도 행정안전부 소속 기관이다. 수사권을 옮긴 뒤 대통령과 장관의 영향력으로부터 수사의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했는지가 핵심이다.[4](https://www.ytn.co.kr/_ln/0101_202509072051025922)
한 기관의 권한을 줄이면 다른 기관의 권한은 커질 수 있다. 기관끼리 서로 견제하던 통로까지 약해진다면 국가권력은 오히려 더 집중될 수 있다.
시민에게 이 문제는 조직도에 관한 논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경찰 수사에서 억울함을 겪었을 때 어디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가. 권력형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이 정치적 압력을 받으면 누가 버팀목이 되어주는가.
검찰청 폐지를 앞둔 지난 8월 말 미제사건은 16만4822건이었다. 사건을 넘기고 인력을 다시 배치하는 동안에도 피해자는 결과를 기다린다.[5](https://m.newsis.com/view/NISX20261001_0003811485)
정치권에는 폐지 법안 통과가 성과일 수 있다.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는 자신의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는 것이 성과다. 두 성적표가 어긋날 때 그 비용은 시민이 치른다.
기능을 나누었다고 능력까지 이어지는가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기무사를 해편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개정한 국정원법에 따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2024년 경찰로 넘어갔다. 이재명 정부는 올해 방첩사를 해체하고 방첩·보안·안보수사 기능을 세 조직으로 분산했다. 드론작전사령부의 작전 기능을 각 군으로 넘기는 개편도 추진하고 있다.[6](https://www.yna.co.kr/amp/view/AKR20180831116851014)[7](https://www.seoul.co.kr/news/2020/12/14/20201214005020)[8](https://www.yna.co.kr/view/AKR20260803056300504)[9](https://v.daum.net/v/20260725060151601)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 불법 계엄 가담에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도 간첩을 추적하고 군사기밀을 보호하며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 능력은 이어져야 한다.
정보망과 숙련 인력, 수사 경험은 조직도 위의 화살표를 따라 저절로 옮겨가지 않는다.
연합뉴스가 2025년 7월 보도한 경찰청 제출자료에 따르면, 경찰에 파견됐던 국정원 직원 네 명은 전년도 말 모두 복귀했다. 당시 파견 인력은 없었으며, 경찰과 국정원은 실무협의회와 유선 연락으로 협력한다고 설명했다.[10](https://www.yna.co.kr/view/AKR20250712030200004)
권한을 분리했으면 정보를 연결하는 장치는 더 튼튼해야 한다. 정보를 확보한 곳과 수사하는 곳 사이에서 대응이 늦어지거나 책임이 흩어진다면, 조직개편은 국가의 취약점을 만든다.
정부는 기능을 다른 기관에 넘겼다고 말한다. 국민이 확인할 것은 그 기능을 수행할 능력까지 온전히 이어졌는가다.
육사의 책임을 학교 전체에 물을 것인가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합동성과 미래 전장 대응력을 높이겠다고 설명한다. 대통령은 육사 출신들이 주도한 쿠데타를 거론하며 통합 필요성을 말했다. 한국일보는 이 발언으로 장교 양성체계 개편에 정치적 책임 추궁의 성격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11](https://v.daum.net/v/20260806001129704)
육사가 통합체계 안에서 이름을 유지하더라도 독자적인 교육과 조직의 연속성이 크게 달라진다면, 그 실질적인 효과를 따져야 한다.
불법 계엄에 가담한 장교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져야 한다. 군이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도록 교육과 지휘체계도 고쳐야 한다. 책임을 학교 전체에 확대하려면 어떤 교육과 제도가 불법행위를 낳았는지 밝혀야 한다.
사관학교를 통합하면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능력이 높아지는가. 군별 전문교육을 바꾸면 전투 지휘 능력은 더 좋아지는가. 정부는 그 연결고리를 입증해야 한다.
정치적 책임 추궁이 앞서고 군사적 효과의 검증이 뒤따르면, 생도와 군이 정책 실험의 비용을 떠안는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장교 양성체계는 정권의 분노를 처리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권력을 감시하는 눈은 어디를 향하는가
사법부도 권력관계가 바뀌고 있다.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이 도입됐으며, 대법관 증원이 법률로 정해졌다. 법원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판단의 최종성, 법관이 느끼는 수사·처벌의 위험, 최고법원의 인적 구성은 크게 달라진다.[12](https://www.yna.co.kr/view/AKR20260311180200004)
사법부의 독립성은 이런 변화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 권력에 불리한 판단을 내린 법관이 고소·고발과 정치적 공격을 더 크게 의식하게 된다면, 시민이 기대는 재판의 힘도 약해질 수 있다. 동아일보 사설은 법왜곡죄의 모호한 기준과 고소·고발 남용에 따른 직무 위축을 우려했다.[13](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60224/133415952/1)
공수처 개편 논의에서도 감시의 방향을 살펴야 한다. 지난 10월 7일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연 토론회에서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을 판사·검사·경찰 등 사법시스템 공직자 중심으로 집중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 수사를 중수청으로 넘기는 구상에 대해 공수처는 독립성 후퇴를 우려했다.[14](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61007/134802509/1)[15](https://ir.newspim.com/news/view/20261006000685)
아직 확정되지 않은 구상이다. 그 방향대로 바뀐다면 정치권과 행정부를 향한 독립적 감시는 줄고, 판사와 수사기관을 향한 감시는 강화될 수 있다.
개혁 이후 권력을 감시하는 눈이 어디를 향하는가. 이 질문을 빼면 권한을 나누었다는 설명만 남고, 실제로 힘을 얻은 권력은 보이지 않는다.
야당을 향한 해산의 언어도 같은 기준에서 보아야 한다. 정청래 당시 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위헌정당 해산 심판 가능성을 반복해서 거론했고, 올해 5월에는 개헌안 표결 불참을 비판하면서도 해산 심판을 언급했다.[16](https://www.yna.co.kr/view/AKR20250909037700001)[17](https://www.mk.co.kr/news/politics/12040855)
불법행위의 책임은 밝혀야 한다. 정당 해산은 헌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판단할 사안이다. 정치적 충돌마다 상대의 존립을 위협하면, 그 정당을 선택한 시민들의 정치적 자리까지 위축된다.[18](https://www.law.go.kr/LSW/lsInfoP.do?chrClsCd=010102&lsId=null&lsiSeq=61603&viewCls=lsOldAndNew)
민주정치는 반대자를 감당하는 제도다. 권력을 가진 쪽이 상대의 존재를 지우는 방식에 익숙해질 때 시민의 선택권도 좁아진다.
국민의 공동 성취 위에 미래를 세워라
개혁에는 두 가지 책임이 따른다. 기존 제도의 문제를 바로잡을 책임과, 그 제도가 지켜온 보호 능력을 이어갈 책임이다.
정부와 여당은 앞의 책임을 크게 말한다. 뒤의 책임은 폐지와 통합의 선언 속에 가려져 있다.
시민의 불안은 이미 크다. 롯데카드에서는 2025년 해킹으로 고객 297만명의 신용정보가 유출됐다. 통일부의 일부 서비스는 같은 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중단됐다. 이 사고들과 조직개편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고들이 드러낸 보호와 복구의 과제는 여전히 무겁다.[19](https://www.donga.com/news/amp/all/20260731/134402881/1)[20](https://mobile.newsis.com/view/NISX20250929_0003348916)
금고를 고친다고 금고 번호를 공개할 수는 없다. 수사체계를 바꾸는 동안에도 신고는 처리되어야 한다. 방첩기관을 바꾸는 동안에도 군사기밀은 보호되어야 한다. 권력기관을 개혁하는 동안에도 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할 힘은 살아 있어야 한다.
언론과 지식인은 이 결과를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누가 권한을 얻었고, 누가 독립성을 잃었는가. 시민이 잘못된 수사와 부당한 권력에 맞설 통로는 얼마나 남았는가. 기관 사이로 넘어간 사건과 정보는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가.
새 조직의 출범을 보도한 뒤 그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제도에는 국민이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 실패를 고쳐온 노력이 들어 있다. 정부는 그 공동의 자산을 맡아 운영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조직을 적으로 정하고 국가의 기반을 허물 권한까지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해체하고 싶은가. 대한민국이 이루어낸 이 모든 것이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가.
증오와 원망에 기대어 적대의 대상을 좌표 찍고 하나씩 없애는 정치가 남기는 것은 분열이다. 국민이 함께 일군 성취를 전면 부정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루기는 어렵다. 미래를 함께 만들 기반도 약해진다.
해체의 정치, 그만두라.
국민이 피땀으로 쌓아온 대한민국 위에 더 나은 나라를 세워라. 개혁의 성과는 폐지한 기관의 수로 증명되지 않는다. 더 안전한 시민, 더 독립적인 수사와 재판, 더 튼튼한 권력의 견제로 증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