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국가는 생명을 독점할 수 없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자살 사망자가 11.8% 줄었다고 발표했다. 반가운 변화지만 반년의 숫자가 지난 실패를 지우지는 못한다. 최근 10년간 자살률은 오히려 높아졌고, 2025년 자살예방 예산 562억 원 가운데 민관협력 공모사업은 약 5억 원, 0.89%에 불과했다.
반년의 감소가 지난 실패를 지워주지는 않는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자살 사망자가 6,33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49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11.8%의 감소다. 한 사람이라도 덜 죽었다면 다행이다. 현장 종사자들의 노력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반년의 숫자 하나로 지난 실패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015년 26.5명에서 2017년 24.3명까지 낮아졌다가 다시 상승해 2024년 29.1명을 기록했다.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24년 한 해 1만4,872명, 하루 평균 40.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2021년 출범했다. 당시 26.0명이던 자살률은 2024년 29.1명으로 높아졌다. 재단 하나에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 자살예방정책의 중추기관이라면 무엇이 실패했고 왜 같은 사업을 계속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결과로 말하면 지금까지 자살률을 낮추는 데 실패했다.
- 한 사람이라도 덜 죽었다면 다행이다.
- 그러나 반년의 숫자가 지난 실패를 지우지는 못한다.
562억 원 가운데 시민사회에는 5억 원
정부의 자살예방 예산은 2025년 562억 원에서 2026년 708억 원으로 늘었다. 별도로 보도된 생명존중희망재단의 결산 예산은 312억 원 규모다. 적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2025년 민관협력 자살예방 공모사업은 약 5억 원이었다. 같은 해 정부 전체 자살예방 예산의 0.89%다. 1%도 되지 않는다. 선정 기관은 추가 공모를 포함해 14곳, 기관별 지원 한도는 약 5천만 원이었다.
전체 예산의 99% 이상을 국가와 공공기관 중심 체계가 쥐고, 1%도 안 되는 돈을 나눠주면서 민관협력을 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협력이 아니다. 생색이다. 시민사회가 정책과 예산을 함께 결정하지 못한다면 참여가 아니라 배석이고, 정부가 이미 만든 정책에 이름을 보태는 일이라면 들러리에 불과하다.
자살을 개인의 머릿속에 가두었다
자살예방 정책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가는 필요하다. 상담과 치료도 필요하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빨리 발견해 도움에 연결하는 일은 국가가 포기할 수 없는 책무다.
그러나 자살은 질병만이 아니다. 해고당한 사람의 절망은 약으로만 치료할 수 없다. 빚에 몰린 자영업자의 공포는 상담 몇 차례로 사라지지 않는다. 고립된 청년, 돌봄에 지친 가족,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학생, 퇴직 뒤 관계가 끊긴 노인의 문제는 병원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삶이 무너졌는데 정신건강만 치료하겠다고 한다. 사회가 사람을 벼랑으로 밀었는데 벼랑 끝에 상담전화를 설치하고 대책이라고 부른다. 2023년 발표된 「한국 자살예방정책의 의료화」 연구도 정신의학적 틀에 치우친 정책이 사회적 강제력과 구조적 원인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의료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의료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생명지킴이가 정책의 문지기가 되었다
자살예방에서 게이트키퍼는 위험 신호를 발견하고 도움을 연결하는 생명지킴이를 뜻한다. 그러나 지금의 생명존중희망재단은 또 다른 의미의 게이트키퍼가 되어가고 있다. 누가 국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지, 어떤 활동에 예산을 줄 것인지, 무엇을 성과로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정책의 문지기다.
재단의 초대 이사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였고 상임이사는 보건복지부 출신 관료였다. 2026년 취임한 제2대 이사장도 전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고, 상임이사 역시 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를 거쳤다. 전문성과 행정 경험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같은 영역에서 일해온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고 평가한 뒤 다시 그 결과를 설명하는 구조는 위험하다.
외부의 질문이 들어오기 어렵고 실패한 사업도 반복되기 쉽다. 현장의 다른 목소리는 비전문가의 주장으로 밀려난다. 결국 정책은 의료와 관료의 언어 안에서 자기완결적으로 돌아간다. 시민이 자살하는데 시민은 정책의 중심에 없다.
세계는 함께 막으라는데 한국은 국가가 틀어쥐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자살예방을 보건의료기관만의 업무로 보지 않는다. 보건·교육·노동·기업·사법·언론과 지역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다부문 협력을 핵심 원칙으로 제시한다. 지역사회가 직접 문제를 찾고 지역에 맞는 해결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살 위험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은 중앙부처 공무원이 아니다. 동네에서 고립된 이웃을 만나는 활동가일 수 있다. 빚에 몰린 사람을 상담하는 시민단체일 수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을 돌보는 작은 기관이나 유족 자조모임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체 예산의 1%도 배분하지 않으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면 먼저 모든 시민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
- 사람을 지키는 게이트키퍼는 필요하다.
- 시민을 문밖에 세우는 게이트키퍼는 필요하지 않다.
국가는 책임지고 시민에게 권한을 돌려줘야 한다
씨앗의 소리는 국가가 자살예방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국가는 지금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책임진다는 명분으로 예산과 정보, 정책 결정권까지 독점해서는 안 된다.
제6차 자살예방기본계획에는 유족과 회복 당사자, 청년·노동·채무·주거·교육 분야 시민단체가 처음부터 참여해야 한다. 1%도 되지 않는 민관협력 예산은 최소 5% 이상으로 확대하고, 작은 지역단체가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다년 지원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재단이 직접 수행한 사업과 민간에 개방한 사업, 의료적 개입과 사회적 예방에 투입한 예산을 구분해 공개해야 한다. 상담 건수와 교육 인원, 캠페인 노출 횟수가 아니라 실제 자살률과 재시도율, 서비스 이탈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밝혀야 한다. 재단의 성과를 재단이 스스로 평가하지 못하도록 시민사회와 당사자가 참여하는 독립 평가도 필요하다.
생명을 살린다는 말 뒤에 숨지 말라
생명을 다루는 기관은 비판하기 어렵다. 비판하면 자살예방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수백억 원을 어디에 썼는가. 무엇이 달라졌는가. 실패한 정책은 무엇인가. 시민사회에는 왜 1%도 돌아가지 않았는가.
생명을 살린다는 선한 명분이 무능을 가리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정말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면 먼저 국가가 독점한 문부터 열어야 한다. 의료와 관료에게 집중된 결정권을 시민사회와 나누고, 예산을 공개하며, 실패에 책임져야 한다.
국가는 생명에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생명을 독점할 권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