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한국의 안보가 무너지고 있다 — 누구를 위한 자주인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고도화되는데 군사정찰위성 운용 공백, DMZ 지뢰 사고, 전방의 실탄 미장착 경계 사례가 잇달아 드러났다. 정치적 구호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실제 군사능력이 먼저다.

세계적인 군사강국이라고 한다. 첨단 전투기를 만들고, 미사일을 개발하고, 세계 각국에 무기를 수출한다. 이제는 '자주'의 시대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 자주가 누구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는 묻지 않는다.

그런데 묻고 싶다.

지금 북한이 핵미사일 발사를 준비한다면, 우리 군은 그것을 독자적으로 얼마나 빨리 알아낼 수 있는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남쪽에 지뢰를 묻는 동안 우리 군의 경계와 감시는 충분했는가.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리 군 지휘부는 정말 국민의 생명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화려한 무기 전시회와 군사력 순위표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지금 드러나는 대한민국 안보의 현실이 두렵다.

하늘의 눈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전작권부터 가져오겠다고 한다

우리 군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감시하기 위해 약 1조 3천억 원을 들여 군사정찰위성 5기를 궤도에 올렸다.

그러나 2026년 10월 보도에 따르면 4호기는 자세구동기 고장으로 5월부터 운용이 중단됐다. 군은 나머지 위성의 표적 감시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계획했던 감시망에서 한 기가 빠졌다는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1][2]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당초 위성 5기를 모두 운용하더라도 북한의 주요 표적을 약 2시간 간격으로 감시하는 수준이었다. 군은 2030년까지 초소형 정찰위성 40기 안팎을 추가 확보해 감시 간격을 30분 이내로 줄이겠다고 밝혔다.[1][2]

30분 간격의 감시조차 앞으로 완성할 목표다. 그것도 모든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능력이 완성된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의 방대한 군사위성, 조기경보 자산, 정보분석 체계를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당장 대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첨단무기를 얼마나 많이 보유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적의 공격을 얼마나 먼저 발견하고,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며,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데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당길 수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한미는 조건 충족에 대한 평가에서 아직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5]

전작권 전환은 단순히 지휘관의 국적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핵공격을 포함한 전쟁 상황에서 누가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연합전력을 지휘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자주는 외치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이다. 군사적 준비가 갖춰지기 전에 정치적 성과를 위해 전작권 전환을 앞당기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민을 위한 자주가 아니라 위험한 모험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방장관의 ‘과학도 예술로 바뀐다’는 말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한미 간 전작권 전환 조건에 대한 이견을 설명하면서 ‘사이언스(과학)적인 것은 아트(예술)적인 것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5]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사일의 비행시간을 예술로 바꿀 수 있는가. 정찰위성이 확보하지 못한 정보를 정치적 협상으로 얻을 수 있는가. 갖추지 못한 군사능력을 정상회담의 합의문 한 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

장관의 발언은 군사적 평가에 정성적 판단과 정치적 협의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합의가 실제 군사능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한미가 합의한 전작권 전환은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다. 군사적 능력과 북핵·미사일 대응 능력, 안보 환경을 공동으로 평가하는 체계다. 그 기준을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은 실패한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 잘못된 판단은 수많은 시민과 장병의 목숨을 앗아간다.

지뢰에 당하고, 빈총으로 경계 서는 최전방

지난 9월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작전에 투입된 18명 중 3명이 다쳤다. 2명은 중상, 1명은 경상이다. 합참의 최종 발표로 확인된 부상 규모다.[3]

합참과 유엔군사령부가 공동조사한 결과, 군사분계선 남쪽 10여m에 매설된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가 원인으로 최종 판단됐다. 정전협정 위반이다.[3]

우리 군은 10월 5일 사고 원인이 된 북한군 지뢰지대를 제거했다.[10] 그러나 북한군의 매설로 발생한 위험이 우리 장병의 부상으로 이어질 때까지 경계와 감시가 충분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더 기막힌 것은 최전방 경계의 실상이다.

국방부 감사에서 전방 육군 1·2·3·5군단 모두에서 GP·GOP 근무 중 개인화기나 공용화기의 실탄 삽탄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례가 확인됐다.[11]

일부 위병소에서 소총 대신 삼단봉을 사용하도록 한 별도 경계 지침도 논란이 됐다. 모든 경계병이 총 없이 근무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러 부대에서 기본 원칙에 문제가 드러났다는 사실 자체가 심각하다.

군은 무장을 과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적이 공격할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존재한다.

북한군은 군사분계선 일대에 지뢰를 매설하고 요새화를 진행하는데 우리 전방에서는 이런 경계 문제가 반복됐다.

국민이 군을 믿어야 할 이유는 장군들의 계급장도, 대통령의 연설도 아니다. 실제로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준비태세다.

장군의 별은 정치가 달아주지만, 그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전방 경계의 문제를 보고도 군 인사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삼단봉 경계 지침과 관련된 지휘 책임을 충분히 규명하고 있는가. 관련 지휘관의 진급과 보직 인사에 경계태세 평가가 어떻게 반영됐는지 국민 앞에 설명이 필요하다. 특정 지휘관의 정치적 동기나 책임이 이미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군 지휘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출신 학교도, 정치적 성향도 아니다. 실전 지휘능력과 책임감, 군인으로서의 소신이다.

정권이 바뀌면 군 인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잘못된 관행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에 대한 충성이나 정치적 계산이 군사적 전문성보다 앞선다는 의심이 커지는 순간, 군 조직의 신뢰는 흔들린다.

장군의 사명은 권력자의 심기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장병을 지키는 데 있다.

정치가 군을 장악하려 하고, 군이 정치의 눈치를 보는 관계가 굳어진다면 전쟁에서 필요한 독립적인 판단과 소신이 손상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가치를 설명하는 미군사령관, 그에게 입을 막으라는 정치인들

지금 한미 간에는 또 하나의 심각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에서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과 전작권 전환의 군사적 조건을 설명하자 국내 여권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여권 정치인들은 그의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고, 정부가 발언을 제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10월 15일 국정감사에서 미국 측에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7]

동맹국 사령관의 발언도 비판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과 한국의 국가이익이 모든 사안에서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브런슨 사령관이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는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미국에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주한미군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전략적 가치를 갖는다고 설명해 왔다.[8]

주한미군 감축을 둘러싼 미국 내 논쟁에서 한반도의 군사적·전략적 가치를 설명해 온 사람이다.

그가 이번에 강조한 것도 조건이 충족된 전작권 전환이었다. 전환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6]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전 경험까지 쌓는 상황에서 기존 군사적 평가 기준만으로 충분한지 다시 확인하자는 문제 제기였다.

우리 정부와 다른 판단을 했다는 이유로 동맹군 사령관의 발언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미국에 설명하고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의 경고를 정치적 걸림돌로 취급한다면, 우리는 동맹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이들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한 주장인가

국내에서는 지금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주'를 내세워 외국 군대의 주둔을 비판하고 독자적인 안보체제를 요구하는 것 역시 민주사회에서 가능한 주장이다. 그러나 자주라는 말의 무게는 구호가 아니라 그 결과로 드러난다.

그러나 구호에는 그에 상응하는 현실적인 답이 있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를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 미국의 위성정보와 조기경보 자산이 빠진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한미연합군의 지휘체계를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 북한이 도발할 경우 누가 최종적인 억제력을 제공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 없이 미군 철수만 외친다면 그 주장은 대한민국의 실제 안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한미동맹은 미국이 한국에 베푸는 일방적인 호의가 아니다. 미국도 한반도의 전략적 위치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우리는 바로 그 이해관계의 접점에서 동맹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국가적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동맹의 힘을 활용하는 외교, 우리의 군사능력을 키우면서 연합 방위체계를 지키는 전략. 국민의 안전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 그것이 현실적인 자주에 가깝다.

우리는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판단하는 나라다. 그렇기에 동맹 역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현실적인 능력으로 평가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나 동맹 약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안전은 얼마나 더 확실해지는가. 그리고 그 주장이 북한에 어떤 전략적 이익을 줄 수 있는지까지 검토했는가.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철수는 별개의 정책이다. 두 문제를 하나로 섞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느 선택이든 군사적 공백에 대한 구체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원칙은 같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력이다

대한민국 군대가 무능한 조직이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도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근무하는 장병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밤을 새워 적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군인들이 있다. 오랜 시간 헌신해 온 장교와 부사관들이 있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들이 지켜 온 군의 명예와 소신, 헌신이 정치적 성과를 앞세우는 경쟁 속에서 가볍게 취급되는 듯한 현실이 안타깝고 분하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력만이 아니다.

북한의 위협을 정확히 보고도 그 현실을 정치적 언어로 덮는 일, 능력이 아직 부족한데도 완성됐다고 말하는 일, 위험을 지적하는 전문가의 목소리를 정치적 반대자로 취급하는 일이다.

안보는 한 번 무너지면 선거로 되돌릴 수 없다.

군사정찰위성이 고장 나면 고쳐야 하고, 경계에 구멍이 생기면 책임을 밝혀야 하며, 전작권 전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충족될 때까지 군사적 준비를 계속하는 것이 상식이다.

자주는 정치권이 차지할 훈장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자주라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자주인가.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만들고, 실전 경험을 쌓고, 군사분계선에 지뢰를 묻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전작권 전환의 시기와 동맹군 사령관의 발언을 놓고 싸우고 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가.

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은 '자주'를 이루었다는 선언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고, 어디가 부족하며, 그 부족한 능력을 어떻게 보완하고 있는지에 대한 책임 있는 설명이다.

국가안보의 최종 책임은 정치 지도자에게 있다.

나라가 위험할 때 가장 무서운 지도자는 적의 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믿게 만드는 지도자다.

그 착각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언제나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