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뽕으로 생긴 안보 자신감, 안보의식은 어디로?
방산 수출과 한류의 성취가 안보의 자신감을 키우는 동안, 휴전선에서는 장병이 북한 지뢰에 중상을 입었다. 재래식 전력 순위 밖의 핵 위협과 군의 책임 구조를 직시하고, 자부심을 실제 경계와 준비로 이어야 한다.
세계 5위의 자부심, 휴전선의 군화
오늘은 국군의 날이다. 세계 군사력 5위라는 말이 익숙하다. 우리가 만든 전차와 자주포, 전투기가 해외로 팔려 나간다. 한류를 즐기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늘었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자부심이 차오른다.
숫자도 그 자부심을 뒷받침한다. 산업연구원 집계를 소개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방산 수출 수주액은 154억4천만 달러로 전년보다 62.5% 늘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1,894만 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기업과 시민이 만들어낸 성취다. 충분히 자랑할 만하다.
그런데 그 자랑스러운 나라의 휴전선에서는 장병의 발목이 절단됐다. 북한 지뢰가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발견됐다. 나라의 위상을 말하는 숫자는 높아지는데, 나라를 지키는 사람의 몸은 지뢰 앞에 무너졌다. 국군의 날에 마주한 우리의 현실이다.
위험을 알고도 장병을 지키지 못했다면
지난 9월 21일 육군 25사단의 비무장지대 수색로 개척작전 중 폭발이 발생해 간부 3명이 다쳤다. 수색대대장은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9월 30일 합동참모본부는 우리 장병들이 북한군 지뢰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유엔군사령부도 군사분계선 이남에서 북한 대인지뢰를 확인하고 정전협정 위반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막연한 의심의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위험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느냐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사고 전 대정부질문에서 25사단 지역의 지뢰지대 등 6개 구역이 군사분계선을 10~15m 넘어온 정황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합참도 지난해 9월 남쪽 지뢰지대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며,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따졌다. 이 주장의 구체적 경위는 군의 기록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제기된 위험이 실제 작전과 장병 보호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군이 답해야 할 사안이다.
북한군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것, 보고서에 적어두는 것, 현장의 장병을 지키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위험을 식별하고도 작전에 반영하지 못했다면 정보가 있었어도 경계는 실패한 것이다. 세계 5위라는 숫자가 그 실패를 덮어주지는 못한다.
군은 30일 북한에 국경선 요새화 활동의 중단과 사과,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북한 김여정은 우리 군 발표를 자작극 취지로 부인했다. 우리 장병들이 중상을 입었고 정전협정 위반 판단까지 나왔는데, 북한은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사건 자체를 뒤집으려 한다.
이재명 정부의 평화 구상은 바로 이 현실 앞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북한이 사과를 거부하고 같은 작업을 계속할 때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우리 수색구역과 장병의 안전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중단 요구 뒤에 실제로 달라진 것이 없다면, 북한에 남는 것은 남쪽의 항의는 견딜 만하다는 학습일 수 있다.
정부는 말로 긴장을 낮췄다는 성과를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장병이 다리를 잃고 상대가 책임마저 부인하는 상황에서, 관계 관리가 국민의 안전보다 앞서는 듯한 대응을 국민이 납득하기는 어렵다. 평화를 말하는 정부일수록 도발을 방치했을 때 평화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직시해야 한다.
세계 5위라는 계산에서 빠진 핵
우리의 자신감에는 빠진 항목도 있다. 글로벌파이어파워가 매긴 2026년 한국의 군사력 순위는 145개국 가운데 5위다. 그러나 이 순위는 핵무기를 제외한 재래식 전력을 중심으로 산정한다. 북한의 핵을 빼놓고 남북의 군사력을 비교한 뒤 압도적 우위를 자랑한다면, 가장 위험한 무기를 계산에서 지운 셈이다.
재래식 전력에서 앞선다는 사실은 큰 자산이다. 다만 그 우위만으로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상대가 우리가 강한 분야에서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줄 것이라는 기대부터 버려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우위를 피해 약한 곳을 찌를 수 있다.
국군의 날을 앞두고 9월 30일 송고된 연합뉴스 특집에서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북한 핵이 실제로 사용되지 않아도 우리의 대응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서해 5도를 점령한 뒤 수복작전에 나서면 핵을 쓰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영토를 빼앗긴 다음에도 되찾는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핵 협박의 위험이라는 설명이다.
‘핵을 쓰면 북한도 망할 텐데 설마 쓰겠느냐’는 생각은 상대가 우리의 계산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는 믿음이다. 북한 지도부가 제한적 공격으로 우리의 전투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오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을 막는 준비에는 적이 어리석은 판단을 할 가능성까지 들어가야 한다.
미국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믿음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정 부소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국 본토를 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미국의 핵 보복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는 뜻이 아니다. 동맹의 약속이 위기 때 어떤 결정으로 이어질지를 당연시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경고다.
한미동맹을 믿는 것과 우리의 판단을 미국에 맡겨버리는 것은 다르다. 미국이 자국 도시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순간에도 신속히 움직이도록, 공동 대응계획과 지휘체계, 실제 훈련으로 동맹을 작동시켜야 한다. ‘미국이 있잖아’라는 말로 우리의 준비 부족을 덮는다면 동맹도 약해진다.
최근의 핵 위협을 다룬 연구에서도 이 고민은 드러난다. 지난 5월 연합뉴스는 미국 애틀랜틱카운슬의 도상훈련을 소개했다. 북한이 한국 군함이나 인구가 적은 지역에 제한적 핵공격을 가했을 때, 한미 양국이 전면 핵전쟁으로 번질 위험 때문에 강력한 보복을 주저하는 가상 상황이었다. 연구 책임자는 이런 공격에 심리적·군사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억지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마’로 넘길 일이 이미 대응 시나리오의 문제가 되고 있다.
무사고 실적에 밀리는 전투 준비
우리 군의 내부는 어떤가. 연합뉴스의 국군의 날 특집에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훈련 중 사고에 따른 문책과 진급 불이익 때문에 지휘관들이 소극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군이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단정이 아니라, 제대로 훈련하기 어려운 책임 구조에 대한 비판이다.
장병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지휘관의 의무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은 엄중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 훈련을 줄이는 것이 되고, 전투 준비보다 무사고 실적이 인사에 유리해진다면 군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평시에 보고할 사고는 줄어도 전시에 감당할 피해는 커질 수 있다.
자기 임기 중에만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지휘관, 문제가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관료, 북한을 자극했다는 비판부터 걱정하는 정치가 맞물린다면 누가 먼저 위험을 경고하고 대응하겠는가. 그런 조직에서는 성실한 장병이 앞에 서고, 결정을 미룬 사람은 뒤에 남는다. 지뢰를 밟은 장병의 몸이 그 비용을 대신 치러서는 안 된다.
정보와 보안의 구멍도 추상적인 걱정이 아니다. 지난 1월 대법원은 블랙요원 명단을 포함한 군사기밀을 유출한 전직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에게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갖춰도 그 무기를 운용할 정보망과 사람의 신분이 새어나가면 전력은 안에서부터 무너질 수 있다.
방첩사령부는 해체됐고, 지난 8월 국방방첩본부와 국방보안지원단, 안보수사단이 출범했다. 방첩 기능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에 개입한 군 정보기관의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하다. 동시에 기능을 여러 조직으로 나눈 뒤 기밀 유출을 포착하고 수사로 연결하는 속도와 책임은 더 분명해졌는지 따져야 한다. 조직 개편의 성과는 간판을 내린 사진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설마의 대가는 장병과 시민이 치른다
우리는 강한 나라가 됐다는 이야기에 너무 쉽게 안심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또 쐈다는 뉴스로 넘긴다. 낡은 무기를 가진 가난한 나라가 감히 우리를 건드리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우리 장병을 쓰러뜨린 것은 세계 군사력 순위도, 첨단 전투기도 아니었다. 군사분계선 남쪽에 놓인 북한 지뢰였다.
임진왜란을 앞두고도 침략 가능성에 대한 경고와 판단의 엇갈림이 있었다. 대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전쟁 초기의 붕괴를 막기에는 부족했다. 6·25에서도 침략의 대가는 시민의 생명과 삶으로 돌아왔다. 두 전쟁을 오늘과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되새길 것은 경고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라가 지켜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의 자부심이 클수록 지켜야 할 시민의 삶도 많아진다. 세계인이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기업이 일군 기술과 일자리, 아이들이 매일 오가는 학교와 병원은 모두 안전 위에 서 있다. 국민이 국가에 맡긴 가장 기본적인 일은 그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국군의 날에 확인할 것은 수출액과 무기 행렬만이 아니다. 북한의 지뢰 매설 정황을 언제 파악했고 누가 보고받았는지, 그 정보가 수색작전에 반영됐는지, 북한의 반복 침범을 어떻게 차단할지다. 핵 위협 아래에서도 작동하는 동맹의 대응계획이 있는지, 지휘관이 실전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지, 군사기밀을 지킬 방첩체계가 제대로 이어지는지도 같은 무게로 다뤄야 한다.
국뽕으로 차오른 안보 자신감이 경계심을 밀어내는 순간, 그 자부심은 우리를 위험하게 만든다. 군이 알아서 하겠지, 미국이 지켜주겠지, 설마 북한이 그러겠나. 그 설마의 대가를 맨 앞에 선 장병과 아무 죄 없는 시민이 치른다.
세계 5위라는 자랑보다 우리 장병의 발목을 지키는 경계가 절실하다. 강한 무기를 자랑하면서 위험을 알아보고 대응할 정신을 잃었다면, 국군의 날이 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