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비트루비우스의 쓸모와 재건축의 ‘모두’

튼튼하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집. 2000년을 버틴 건축의 잣대에 오늘의 질문을 더한다. 재건축으로 좋아진 집에, 그 전에 살던 사람은 몇이나 돌아오는가?

모두가 반기는 집, ‘모두’에 들지 못한 사람들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입구에 축하 현수막이 걸린다. 재건축이 한 고비를 넘었다는 소식이다. 집주인에게 재건축은 반가운 일이다. 낡은 집이 새 집이 되고 집값이 오른다. 반대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몇 해 뒤 이사 트럭이 단지를 빠져나갈 때, 그 트럭에 탄 사람 가운데 몇이 새 아파트로 돌아올까.

좋은 건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게 좋은지를 생각할 때 떠올릴 오래된 이름이 있다. 2000여 년 전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다.

세 단어로 남은 책

비트루비우스는 기원전 1세기에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에게 열 권짜리 건축서를 바쳤다. 고대 건축을 전하는 대표적인 문헌이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는 1914년 모리스 히키 모건(Morris Hicky Morgan)의 영어 번역 『건축 십서(The Ten Books on Architecture)』가 올라 있다.[1]

1권 3장에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 있다. 모든 건물은 durability(튼튼함), convenience(쓸모), beauty(아름다움)를 생각해 지어야 한다. 튼튼함은 기초를 단단한 땅까지 내리고 재료를 아끼지 않고 고를 때 얻는다. 쓸모는 방의 배치가 쓰임을 막지 않고, 건물마다 알맞은 방향을 잡을 때 얻는다. 아름다움은 보기 좋고 각 부분이 바른 비례를 이룰 때 얻는다.[1]

누구나 쓸 수 있는 잣대

이 세 단어가 2000년을 버틴 데는 까닭이 있다. 건축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건물 앞에서 물어볼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무너지지 않는가, 살기 편한가, 보기에 좋은가. 이 셋은 오랫동안 건축을 말하는 기본 말이 되었다.

한국의 건축법도 이 잣대와 닿아 있다. 건축법 제1조는 건축물의 ‘안전·기능·환경 및 미관’을 높여 공공복리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안전은 튼튼함, 기능은 쓸모, 미관은 아름다움과 연결된다. 2000년 전의 세 단어에 환경과 공공복리가 더해진 셈이다.[2]

재건축도 이 잣대로 보면 정당하다. 낡은 배관과 좁은 주차장,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계단을 바꾸는 일은 분명히 튼튼함과 쓸모를 높인다.

누구의 쓸모인가

그런데 같은 책에는 이 잣대가 놓인 시대의 한계도 적혀 있다. 비트루비우스는 공공건축도 다뤘지만, 주택을 논하는 6권 5장에서는 주인의 신분에 맞춰 집의 규모와 구성을 설명한다.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는 웅장한 현관이 필요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집에는 필요 없다고 썼다. 집의 쓸모를 그 집을 가진 사람의 지위와 필요에 맞춰 쟀다.[1]

건축법은 그 기준을 ‘공공복리’로 넓혔다. 그런데 재건축의 셈법은 여전히 비트루비우스의 주택론 쪽에 가깝다. 사업에 동의하고, 분담금을 내고, 새 집을 배정받는 주체는 소유자다. 재건축을 ‘모두’가 반긴다고 할 때, 그 ‘모두’는 등기부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을 중심으로 불린다.

그래서 질문은 이것이다. 재건축으로 좋아진 집에, 그 전에 살던 사람은 몇이나 돌아오는가?

‘모두’의 바깥

2024년 2월 마포구의 보상주택 제도 도입을 전한 아시아경제 보도는 서울연구원 통계 등을 인용해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원주민 재정착률을 평균 27.7%로 소개했다. 그 보도에 인용된 수치로 보면 열 명 가운데 일곱 넘게 돌아오지 않은 셈이다. 이는 당시 보도에 인용된 정비사업 통계이며, 현재 서울의 모든 재건축 단지를 새로 조사한 결과는 아니다.[3]

소유자 안에서도 ‘모두’는 갈린다. 같은 보도에서 분양신청을 하지 않은 현금청산자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추가 분담금 부담을 그 이유로 들었다. 낼 수 있는 사람과 낼 수 없는 사람이 같은 단지 안에서 나뉜다.[3]

세입자는 의사결정과 새 집 배정의 중심에서 더 멀다. 재개발 구역의 세입자는 거주기간 등 요건을 갖추면 주거이전비·이사비 등의 보상을 받고, 공공임대주택 입주도 해당 공급기준에 따라 검토된다. 반면 일반적인 민간 재건축에서는 재개발과 같은 법정 세입자 이주보상 체계가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공공 시행 여부나 별도 협약 등에 따라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4][5]

계약과 이주 절차가 끝나면 떠나야 하는 세입자, 단지 상가의 임차 상인, 이주 수요로 전월세가 오르는 주변 동네의 이웃은 소유자 중심의 찬반과 배정 절차에 자기 몫의 자리를 갖기 어렵다.

그리고 건물이 있다. 장수명 주택을 다룬 2020년 파이낸셜뉴스 보도는 한국 주택의 평균 수명을 약 27년, 영국은 128년으로 소개했다. 이 비교를 오늘의 모든 아파트에 적용되는 구조적 한계 수명으로 읽을 수는 없다. 건물의 실제 안전과 남은 사용기간은 설계·시공·관리 상태에 따라 따로 판단할 문제다.[6]

아직 쓸 수 있는 건물도 ‘모두’에 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전한 2026년 7월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전국 주택의 65.8%가 아파트다. 이것은 대부분의 집에 걸린 질문이다.[7]

필자의 생각과 제안: ‘모두’의 범위를 넓히는 일

재건축은 낡은 집의 불편을 덜고 안전을 높인다는 점에서 지금의 주거 사정에서는 최선이고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을 셈하는 ‘모두’가 소유자만을 뜻하는 순간 그 합리성은 소유자에게만 머문다. 비트루비우스의 주택론이 주인의 필요를 중심에 놓았듯, 서울의 재건축도 소유자의 쓸모로 셈한다. 건축법 제1조가 말하는 공공복리는 그 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까지 셈할 때 비로소 뜻을 가진다.

이 생각을 지금의 도시에 대한 제안으로 옮기면 세 가지다. 다음은 현행 제도를 설명하는 대목이 아니라, 필자가 제안하는 평가와 지원의 방향이다.

첫째, 재정착률을 사업의 성적표로 공개한다. 인가 단계에서 예상 재정착률을, 준공 뒤에는 실제 재정착률을 공개한다. 분담금을 낼 수 없는 소유자를 위해 작은 평형이나 보상주택 같은 선택지를 함께 내놓는다. 마포구가 2024년 도입을 알린 ‘보상주택’은 소형평형 수요를 계획에 반영해 분담금을 낮추려는 한 예다. 당시 발표된 적용 대상은 재개발과 일부 소규모 정비사업이었다.[3]

둘째, 세입자와 상인을 셈에 넣는다. 재개발처럼 재건축에서도 일정 기간 살아온 세입자에게 이사비와 주거이전비, 공공임대 입주 기회를 마련하는 방향이다. 단지 상가 임차인의 이전 대책을 사업 인가의 조건으로 두는 방안도 제안한다.

셋째, 헐기 전에 고쳐 쓰는 길과 견준다. 재건축진단 결과와 함께 보수·리모델링 비용과 고쳐 썼을 때 남는 수명을 같은 표에 공개한다. 건축법 제1조에 직접 쓰이지 않은 ‘시간’을 셈에 넣고, 아직 쓸 수 있는 건물도 ‘모두’에 넣는 일이다.

새 아파트의 현관은 웅장해진다. 비트루비우스가 높은 신분에 그려 준 현관처럼. 물어야 할 것은 그 현관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냐다.

당신은 재건축의 ‘모두’에 들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