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7%가 찬성해도 세종은 세금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세금은 국가의 장부에 적히기 전에 시민의 살림에서 빠져나간다. 세종의 공법 논의는 다수의 찬성과 함께 납세자의 형편, 반대 이유, 국가의 설명 책임을 살펴야 한다는 기준을 남긴다.
찬성률 뒤에 가려진 백성의 형편
17만2,806명이 의견을 냈다. 찬성은 9만8,657명, 반대는 7만4,149명이었다. 찬성이 약 57%였다. 1430년 세종이 새로운 토지세 제도인 공법을 두고 관리와 백성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다. 그러나 세종은 과반의 찬성을 얻고도 곧바로 시행하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찬반이 크게 갈렸기 때문이다.
세금은 국가의 장부에 적히기 전에 시민의 살림에서 빠져나간다. 정부에는 세수 증가로 보이는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생활비이고, 노후자금이며, 사업을 이어갈 밑천이다. 세금을 정하는 사람과 내는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이 간격이 있다.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관리가 논밭을 돌아보며 농사의 풍흉을 조사하고 세금을 정했다. 수확이 나쁘면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는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조사하는 사람의 판단과 사사로운 이해가 끼어들었다. 『세종실록』에는 관리들이 세액을 부당하게 늘리거나 줄이고, 아전들이 복잡한 문서를 틈타 농간하는 폐단이 기록돼 있다. 세금을 정하는 권한이 백성의 생계를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호조는 전답 1결을 기준으로 정해진 양을 거두는 공법을 제안했다. 평안도와 함길도에는 낮은 세액을 적용하고, 재해로 농사를 완전히 망친 경우에는 면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세종은 이 제안을 받은 뒤 관리뿐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까지 찬반을 물으라고 명했다. 실제로 세금을 낼 사람의 의견을 정책 검토에 넣은 것이다.
조사 결과는 지역마다 달랐다. 생산여건이 좋은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찬성이 많았고, 평안도와 황해도 등에서는 반대가 많았다. 같은 과세 기준이라도 농사의 형편에 따라 부담이 달라졌다. 세종과 조정은 이 차이를 검토하며 제도를 고쳐 나갔다. 토지의 비옥도를 여섯 등급으로, 해마다의 풍흉을 아홉 등급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마련됐고, 시험 시행과 보완을 거쳐 1444년에 기본 골격이 확정됐다. 1430년의 의견 수렴으로부터 14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국가의 판단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반대 의견에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형편과 정책이 놓친 비용이 담겨 있었다. 그 이유를 살폈기에 과세 기준도 더 정교해질 수 있었다.
세금을 정하는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오늘의 부동산 세제에도 이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오래 살던 집 한 채를 가진 은퇴자와 여러 부동산에서 임대수입을 얻는 사람의 형편은 다르다. 집값이 올랐어도 당장 세금을 낼 현금은 부족할 수 있다. 서울과 지방의 시장도 다르고, 같은 가격의 재산이라도 소득과 부채에 따라 부담을 감당할 능력은 달라진다.
이 차이를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집을 가졌다는 이유로 시민을 한 덩어리로 묶으면 정책은 거칠어진다. 세금에 반대하는 사람을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몰아가는 순간, 자신의 생활을 설명하고 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시민의 권리도 위축된다. 정부는 반대하는 시민에게도 과세의 근거와 부담의 기준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국가를 운영하고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세금이 필요하다. 그 필요성만큼 과세 권한에도 엄격한 기준이 따라야 한다. 어디에 얼마가 필요한지, 기존 지출에서 줄일 수 있는 낭비는 없는지, 왜 특정 시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는지 밝혀야 한다. 세금을 걷는 책임과 쓰는 책임은 함께 간다.
다수의 찬성도 이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세금을 더 내는 사람보다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다면 증세에 찬성하는 여론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는 다수결과 함께 재산권을 보호하고 권력의 행사를 제한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담까지 검토해야 정책의 공정성을 판단할 수 있다.
반대 의견이 정책을 바꾸었는가
의견을 듣는 과정도 실제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공청회를 열고 설문조사를 했더라도 반대 의견이 어떤 수정으로 이어졌는지 보여주지 못한다면 시민은 참여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무엇을 받아들였고,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공개해야 한다.
시민에게도 세금을 계속 감시할 권리가 있다. 과세 기준이 예측 가능하게 유지되는지, 소득에 비해 부담이 과도해지는 계층은 없는지, 걷은 돈이 약속한 곳에 쓰이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부과에 이의를 제기하고 바로잡을 길도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런 권리가 작동할 때 세금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세종의 공법 논의는 오늘의 정부에 구체적인 기준을 남긴다. 찬성률을 발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부담의 차이를 조사했는가. 반대 이유를 검토해 제도를 고쳤는가. 시행 전에 효과를 시험하고, 시행 뒤에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게 했는가.
국민을 설득하려면 정부의 판단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세금은 시민의 삶과 재산에 직접 닿는 권한이다. 그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는 더 많이 듣고, 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