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집의 이름은 누구에게 말을 거는가
한글은 서로 뜻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다. 집의 이름이 사람을 구별하는 말이 될 때, 그 간격은 문과 길에도 남는다.
“어디 사니?”
사는 곳을 묻는 짧은 말이다. 길을 알려주고 동네 이야기를 나누는 출발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를 듣고 상대의 형편부터 헤아리는 물음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질문인데 그 뒤에 이어지는 마음은 다르다.
올해는 1926년 ‘가갸날’이 처음 기념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가갸날’은 한글날의 옛 이름으로, 글자를 배울 때 읽던 ‘가갸거겨…’의 첫 두 글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1928년부터 ‘한글날’로 고쳐 불렀다. 올해의 100년은 한글이 만들어진 뒤의 시간이 아니라, 한글을 기념하는 날을 처음 마련한 뒤 흐른 시간이다.
한글날을 맞아 이 물음을 생각해 본다.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는 말과 글이 서로 통하지 않는 사정을 담고 있다. 백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것을 글로 나타내기 어려웠다. 세종은 그 막힌 자리에 누구나 익혀 쓸 수 있는 문자를 놓았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소리가 들린다는 뜻만은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자신의 뜻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같은 한글을 읽고 쓰면서도 이웃과 얼마나 통하며 살고 있는가.
센트럴, 팰리스, 포레, 퍼스트. 아파트 이름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외래어들이다. 이름을 들으면 중심에 있는 곳, 궁전 같은 곳, 숲과 가까운 곳, 앞서는 곳을 떠올리게 된다. 집의 위치와 환경을 알리는 뜻도 있고, 그 집이 특별하다는 인상을 주는 뜻도 있다.
건설사가 이름으로 품질을 알리고 소비자가 그 이름을 참고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외래어를 썼다고 해서 이름이 잘못되는 것도 아니다. 살펴볼 것은 그 말이 누구에게 어떤 뜻으로 전해지는가이다.
집을 설명하는 이름이 그곳에 사는 사람의 지위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이름의 역할이 달라진다. 이웃을 알아보는 데 필요한 주소가 이웃의 높낮이를 짐작하는 말이 된다.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해도 비싸 보이는 이름이라는 인상은 먼저 전달될 수 있다.
외래어 브랜드가 모두 이런 간격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낯선 말에 고급스러움과 특별함을 거듭 입히면, 이름을 이해하는 일보다 이름으로 구별되는 일이 앞서기 쉽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뜻을 나누려 했던 한글의 출발과는 다른 방향이다.
그 간격은 이름에 머물지 않는다.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명칭으로 바꾸려는 다툼이 생기고, 같은 단지의 임대동을 따로 드러내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이웃 아이들이 오가던 통학로를 막는 일로도 이어진다. 이름에서 시작한 구별이 건물과 길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만들어 놓은 말을 배운다. 친구가 어떤 아이인지 알기 전에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부터 묻게 된다면, 집의 이름은 서로를 소개하는 말보다 서로를 가르는 말에 가까워진다. 아이가 그 말에 담긴 판단까지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2014년 SBS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임대세대 아이들의 놀이터 이용을 금지한 문제를 다뤘다. 관리사무소 측이 내세운 이유는 시설 유지·보수 비용의 부담이었다.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정해야 할 일이다. 그 다툼을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먼저 배우게 했다는 점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말은 공간을 설명하지만 공간도 말을 가르친다. 따로 난 출입구와 막힌 길을 매일 보고 자란 아이에게 함께 사는 이웃이라는 설명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함께 지내라는 말보다 눈앞의 경계가 더 분명하게 들릴 수 있다.
공공주택의 이름을 지우고 민간 브랜드를 붙이고 싶어 하는 마음에도 이런 사정이 놓여 있을 것이다. 사는 곳을 밝힐 때마다 불편한 시선을 받는다면 그 이름을 바꾸고 싶을 수 있다. 그 마음을 탓하기 전에 이름만 듣고 사람을 판단하는 습관부터 살펴야 한다.
더 높은 인상을 주는 이름을 얻는 것으로 이 일이 끝날까. 이름이 바뀌어도 사람을 구별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다른 표시를 찾게 될 것이다. 어느 동인지, 몇 평인지, 어느 출입구를 쓰는지로 구별은 계속될 수 있다.
집의 이름에는 동네의 기억과 지형,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생활을 담을 수도 있다. 이름을 들었을 때 얼마짜리 집인지보다 어느 동네인지 먼저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특별함을 알리는 말과 함께 살아갈 곳을 알리는 말 사이에서 무엇을 더 담을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한글날에 기념할 것은 문자의 모양만이 아닐 것이다. 뜻을 펴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말할 길을 열어주려 했던 마음이 있다. 그 마음으로 오늘의 집 이름을 읽어보면, 이름이 잘 팔리는가와 함께 이름이 잘 통하는가도 묻게 된다.
좋은 이름은 부르기 쉽고 알아듣기 쉬우며, 그곳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 이름을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형편까지 해명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
집에 붙인 말이 이웃 사이의 거리를 넓히지 않도록 하는 것. 그 말에 맞춰 만든 문과 길이 사람을 지나치게 갈라놓지 않도록 하는 것. 한글날에 돌아볼 도시의 언어는 간판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이웃을 부르는 말과 이웃을 맞는 공간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