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약속을 바꿀 자유, 남의 권리까지 지울 수는 없다
약속을 바꿀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자유로 생긴 위험까지, 그 약속을 믿고 법의 절차를 밟은 다른 사람에게 넘길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노박의 건설읽기>
이솝 우화의 토끼와 거북이는 경주를 했다. 그런데 우화를 조금 바꾸어 생각해 보자. 거북이는 경주 도중 법원이라는 심판에게 가서 자신이 어디까지 가면 되는지 결승선을 확인받았고, 심판이 표시해 준 선을 믿으며 다시 걸었다. 그런데 거의 다 왔을 무렵 토끼와 경기 주최자가 만나 “우리가 합의해서 이 경기를 없애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 사람이 경기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심판의 결정을 믿고 여기까지 걸어온 거북이의 경기도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일까.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와 닮은 문제를 판단했다.
한 회사가 바이오가스 발전사업을 다른 회사에 8억5천만 원에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사업을 판 회사에 돈을 받아야 할 채권자가 있었고, 이 채권자는 사업을 넘기고 받을 돈 가운데 3억5천만 원을 가압류했다. 법원도 그 신청을 받아들였다.
가압류는 단순히 “나도 받을 돈이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채권자가 법원에 신청하고 법원이 결정을 내려, 채무자가 다른 사람에게서 받을 돈을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미리 붙잡아 두는 절차다. 거북이의 이야기로 말하면 법원이라는 심판에게 결승선을 표시받고, 그 선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다시 걷기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가압류가 이루어진 뒤 사업을 사고판 두 회사가 계약을 없애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돈을 지급해야 할 회사는 “계약 자체가 없어졌으니 사업을 넘긴 대가로 줄 돈도 없어졌습니다”라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25년 가까이 이어져 온 대법원 판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전 판례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가압류는 받을 돈을 함부로 없애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가압류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이 맺은 계약을 끝내거나 바꾸는 것까지 모두 막는 것은 지나치다고 보았다. 사업이 실패하거나 사정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계약을 계속 유지하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당사자에게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전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사자들이 합의하여 계약을 끝낼 수 있고, 그 결과 받을 돈이 없어졌다는 사실도 가압류한 사람에게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계약을 자유롭게 정리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선택에 비교적 넓은 자리를 내준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을 오랫동안 적용하면서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가압류한 사람은 계약을 없애기로 의논하는 자리에 함께 있지 않으므로 두 사람이 왜 계약을 끝냈는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기 어렵다. 그런데 종전 법리에서는 오히려 가압류한 사람이 “두 사람이 내 가압류를 피하려고 계약을 없앤 것입니다”라는 특별한 사정을 밝혀야 했다.
거북이에게 토끼와 경기 주최자가 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알아내 증명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사이 다른 대법원 판결들도 이미 제3자가 법적인 절차를 밟아 권리를 확보한 뒤라면, 당사자들이 나중에 새로 만든 합의로 그 지위를 쉽게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6년 9월 29일, 25년 가까이 유지해 온 원칙을 바꾸었다. 가압류나 압류가 이루어진 뒤 두 사람이 새롭게 합의하여 계약을 없앴다면, 원칙적으로 그 합의를 내세워 먼저 가압류한 사람에게 “당신이 붙잡아 둔 돈도 없어졌습니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법원이 계약을 끝낼 자유까지 막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합의하여 계약을 끝낼 수 있고 그 합의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효력이 있다. 다만 두 사람이 나중에 내린 결정으로, 법원의 절차를 믿고 먼저 움직인 제3자의 지위까지 함께 없앨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필자가 이번 판결에서 주목하는 변화는 두 사람의 계약자유와 세 번째 사람의 신뢰 가운데 어디까지를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법원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종전 판례는 가압류가 있더라도 두 사람이 계약을 끝낼 자유를 비교적 넓게 인정했다. 이번 전원합의체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제3자가 법원의 절차를 믿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움직였다면 그 뒤에 이루어진 두 사람의 새로운 합의로 그 지위를 쉽게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결국 달라진 것은 위험을 놓는 자리다. 두 사람이 나중에 선택한 합의로 생긴 위험을 그 합의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내용을 알기도 어려운 제3자에게 넘길 것인지, 아니면 그 위험을 알고 선택하고 줄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맡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길을 막은 것은 아니다. 가압류 전에 이미 계약을 끝낼 정당한 이유가 있었거나, 급여나 임대료처럼 앞으로 계속 생길 돈에 관한 계약이거나, 여러 사정을 살펴보았을 때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매우 부당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을 자유롭게 정리할 길은 남겨 두면서도, 그 자유 때문에 제3자가 뜻밖의 손해를 떠안지 않도록 경계선을 다시 그은 것이다.
건설현장에서도 이 판결은 낯설지 않다. 공사대금에는 하도급업체나 자재업체, 금융기관의 가압류가 들어올 수 있고, 그 뒤 발주자와 시공사가 공사계약을 끝내거나 공사대금을 다시 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누군가가 법원의 결정을 믿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면, 두 사람의 새로운 합의만으로 그 사람이 서 있던 자리를 없애도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시 거북이에게 돌아가 보자. 토끼와 경기 주최자는 사정이 달라져 경기를 그만두기로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이라는 심판에게 결승선을 확인받고, 그 선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여기까지 걸어온 거북이의 발자국까지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법도 처음부터 모든 경우에 맞는 완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현실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드러나면 과거에 그어 놓은 선을 다시 살피고, 서로의 권리와 자유가 조금 더 공평하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그 선을 옮겨 간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도 그런 과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약속을 바꿀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자유로 생긴 위험까지, 그 약속을 믿고 법의 절차를 밟은 다른 사람에게 넘길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