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포퓰리즘의 몰락, 세대전쟁의 시작인가?

프랑스·이탈리아의 시위와 연금 부담을 통해 한국의 93조 원 예산 증가, 청년문화패스, 기본소득·보조금, 교육교부금과 국채 논쟁을 검증한다. 다음 세대가 받아들 계산서는 누가 책임지는가.

유럽의 거리가 분노로 들끓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학생과 시민이 거리로 나섰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벨기에에서는 연금과 긴축정책을 둘러싼 반발이 이어졌다. 시위의 직접적 이유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그 장면에서 놓치기 어려운 얼굴들이 있다. 미래가 막막한 청년들이다.[1][5]

학교에 교사가 부족하고,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우며, 취업은 갈수록 고단하다.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요구하는 동안 정부는 높은 국가채무와 오래된 연금·복지 약속에 묶여 있다. 더 지원하자니 돈이 부족하고, 줄이자니 거리가 들끓는다.

그렇다면 국가가 과거에 약속한 혜택을 지키느라 앞으로 살아갈 세대의 기회와 소득을 얼마나 희생시킬 수 있는가. 포퓰리즘의 몰락과 세대전쟁의 시작을 묻는 이유는 여기 있다. 오늘의 혜택과 내일의 계산서를 누가 결정하는가.

연금을 지키느라 청년의 미래가 좁아진다면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프랑스 117.6%, 이탈리아 138.9%, 벨기에 109.1%였다. 부채 비율만으로 국가의 지급능력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미 쌓인 빚과 이자가 새로운 정책의 여력을 줄이는 부담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2]

로이터는 지난 10월 13일 프랑스 교육부 예산 중 약 32%가 퇴직 공무원 연금 비용으로 계상된다고 보도했다. 그 회계상 비용을 교사 채용으로 전액 돌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 수요와 과거에 약속한 연금이 같은 예산 안에서 충돌하는 현실을 보여준다.[1]

OECD의 분석에서는 1940~1950년대 출생자의 공적연금 실질 내부수익률이 약 2.5%였던 반면 2000년 전후 출생 세대는 약 0.5%로 낮았다. 프랑스의 모든 노인이 청년보다 부유하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연금제도 안에서 세대마다 누리는 혜택과 부담의 조건이 달라졌다는 뜻이다.[3]

프랑스 청년들의 이번 시위를 연금세대에 대한 반란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교육과 생활비 문제가 직접적인 불만이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에 투입할 재원이 과거의 약속 때문에 제약될 수 있다는 질문은 분명하다.

포퓰리즘은 약속하고, 미래는 계산서를 받는다

프랑스는 2023년 퇴직연령을 높이는 연금개혁을 추진했다. 격렬한 반발이 뒤따랐고 개혁 일정의 일부는 뒤로 밀렸다. 수십 년간 보험료를 납부하고 노후를 설계해 온 시민에게 약속을 바꾸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만큼 제도를 만들던 정치가 장기적인 재정 책임을 제대로 계산했는지가 중요하다.[4]

복지를 늘리는 좌파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원 없는 감세와 지역 보조사업 확대를 약속하는 우파 정치에서도 같은 모순이 나타난다. 지출의 이름이 아니라 비용과 종료 조건을 공개하지 않는 방식이 문제다.

정치적 성과는 오늘 발표된다. 재정적 청구서는 다음 정부와 다음 세대가 받아든다. 한 번 생활에 들어온 지원과 연금을 나중에 줄이려면 정치적 저항을 피하기 어렵다. 유럽은 그 어려움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다.

청년 중 누가 8천억 원어치 영화표와 스포츠 관람권을 요구했는가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2027년 정부 예산안에 담긴 청년문화패스는 7,925억 원이다. 2026년 361억 원의 약 22배다. 대상 연령과 사용처를 확대해 영화·공연·전시·스포츠 관람 등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국회가 확정한 지출액이나 실제 집행 실적과는 구분할 정부안이다.[7]

묻고 싶다. 청년 중 누가 8천억 원 가까운 영화표와 경기표를 달라고 했는가. 지금 청년은 취업과 월세, 주거, 노후를 걱정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노동과 실력으로 관람권을 살 수 있는 소득과 기회 아닌가.

문화생활을 지원할 이유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산을 22배로 늘린 만큼 청년의 자립 기회도 넓어지는가. 지급한 표의 숫자와 청년의 삶이 나아지는 결과는 다르다.

씨앗은 이미 [「8천억 원으로 청년의 마음을 살 수 있는가」](/columns/youth-agency-not-policy-targets-2026)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시민을 지원금 신청자로 만드는 정치와 시민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넓히는 정치는 같지 않다. 정부의 지원을 정치인이 시민에게 베푸는 선물처럼 내세우는 순간, 세금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게 된다.

기본소득·보조금·관사까지 모두 미래투자인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는 2027년 예산안 기준 1조 1,657억 원이 계획됐다. 대상 주민에게 월 15만 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지역경제와 지역소멸 대응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실제 인구 유입과 일자리, 지속적인 경제활동으로 이어지는지 성과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8]

미래대응기금의 장·차관 관사 확보 약 56억 7,200만 원도 우선순위를 물을 수 있는 지출이다. 꼭 필요하다면 비용과 대안의 비교를 공개하면 된다. 미래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업이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씨앗의 [「영화표·월 15만 원·장관 관사…‘미래’라는 이름으로 쓰는 세금」](/columns/jangjado-future-response-fund-no-more-tax-2026)은 이 사업들의 실제 규모와 목적을 비교했다. 첫해 예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매년 반복되는 비용과 사업 종료 조건이다.

학생은 줄어드는데, 교육청은 예산을 다 쓰느라 바쁜가

학생 수와 교육 수요가 달라지고 있는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에 연동돼 배분되어 왔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돈이지만, 충분한 성과 검증 없이 기존 배분 구조만 고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강원에서는 짧은 기간 안에 교부금을 써야 하는 압박 속에서 멀쩡한 책걸상까지 바꾸는 방안이 검토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에서는 안전등급 B를 받은 학교가 개축 대상에 포함돼 학부모들이 반발한 사례가 있었다.[9][10]

모든 개축이 불필요했다거나 예산을 소진하려고 실제로 학교를 철거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왜 수리 대신 개축을 선택했는지, 비용과 안전성을 어떻게 비교했는지는 충분히 물을 수 있다.

학교를 새로 짓는 데 얼마를 썼는지가 중요한가. 학생들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배우게 됐는지가 중요한가. 정부가 돈이 부족하다며 증세를 논의하기 전에 기존 재원이 어디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살필 이유다.

돈을 쓰고 또 쓰는 지역사업, 청구서는 시민에게

군산 장자도 해상낚시공원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수십억 원을 투입했지만 오래 운영되지 못했다. 이후 계류시설 등으로 용도를 바꾸는 데 추가로 10억 원의 예산이 계획됐다. 조성비는 보도마다 20억 원대와 30억 원대로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공사를 몇 번 했는지보다 처음 약속한 성과를 얼마나 실현했느냐이다.[8]

정치인은 지역에 얼마의 예산을 더 끌어왔는지 자랑한다. 그 시설이 얼마나 이용되는지, 유지비는 얼마인지, 중단해야 할 사업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작다.

씨앗은 [「예산을 따오는 정치, 청구서를 받는 시민」](/columns/atr-taxpayer-movement-05-sustainable-budgets)에서 쪽지예산과 지역예산 경쟁의 구조를 짚었다. 돈을 더 확보하는 정치에 비해 지출을 감시하고 줄이는 시민의 힘은 아직 약하다.

여수섬박람회 계약을 추적한 [「‘126개 공고’ 뒤에 계약등록 412건」](/columns/yeosu-island-expo-procurement-ledger/) 역시 같은 취지다. 계약 총액을 곧바로 낭비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돈을 어떤 결과를 위해 썼는지 확인하는 일이 감시의 시작이다.

노르웨이까지 끌어와 국가채무를 설명하는 정치

이재명 대통령은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국가부채를 미래 국가의 재원을 당겨 쓰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산 배분의 원리’를 이야기했다. 미래의 소득이 늘고 오늘의 투자가 성과를 거둔다면 국가채무가 합리적일 수 있다는 취지다.[11]

그러나 국가가 빌리는 돈은 개인이 자기 미래소득을 빌리는 것과 다르다. 오늘 돈을 쓰기로 결정한 정치인과 혜택을 누리는 사람, 미래에 세금을 낼 사람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성 지출과 미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를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다.

최근 국회에서는 여유자금이 많은 기금과 국가채무 확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정부 측은 노르웨이의 안정적인 국채 발행 사례를 언급했다. 노르웨이처럼 막대한 석유·가스 수익의 국부펀드를 축적한 나라와 한국의 재정 여건은 다르다. 국채 발행을 평탄하게 관리하는 기술과 총지출을 늘리는 정책의 타당성도 구분할 일이다.[12]

씨앗은 [「국가 빚, 너무 가볍게 보는 건 아닌가」](/columns/politicians-who-take-public-debt-lightly-2026)와 [「집값도 나랏빚도 ‘평탄화’」](/columns/flattening-housing-government-debt-citizen-burden-2026)에서 이 질문을 제기했다. 돈을 빌리는 방법보다 먼저 어디에 쓰고, 어떤 이자를 지고,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는지 공개해야 할 문제다.

93조 원의 팽창재정, 지금은 지출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정부가 제출한 2027년도 예산안 총지출은 820조 9,000억 원이다. 2026년 본예산 727조 9,000억 원보다 93조 원, 12.8% 늘어났다. 93조 원 전부를 차입하거나 현금성 지원으로 쓴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와 재정수지 개선도 전망한다.[6]

그러나 국가채무 총액은 2026년 1,413조 8,000억 원에서 2027년 1,519조 8,000억 원, 2030년 1,734조 1,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GDP 대비 비율의 변동과 별개로 절대적 채무 부담과 이자, 향후 세수 전망의 위험을 함께 봐야 한다.[6]

지원사업을 시작할 때 앞으로 5년, 10년의 비용을 공개하고 있는가. 세수가 줄면 얼마나 조정할 수 있는가. 정부의 약속이 다음 증세의 명분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닌가. 씨앗이 [노모어택스 증세반대 운동](/columns/no-more-tax-increases-civic-declaration-2026)을 펼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대와 20대의 분노는 어디서 오는가

한국의 2026년 9월 청년층 고용률은 44.0%로 전년 동월보다 1.1%포인트 낮아졌고 실업률은 5.4%로 0.6%포인트 높아졌다. 청년에게 미래는 추상적인 국가계획이 아니다. 취업, 월세, 결혼, 노후, 스스로 살아갈 자유의 문제다.[14]

그런데 정치권은 청년을 대상으로 새로운 지원금을 계속 발표한다. 그 혜택을 누릴 권리도 시민에게 있지만, 청년은 동시에 현재와 미래의 납세자다. 나라가 지금 지원하는 돈은 정치인의 개인 재산이 아니라 시민의 세금이며, 부족한 재원은 미래의 국민에게 부담을 남길 수 있다.

세대전쟁은 노인과 청년이 서로를 미워한다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세대 사이의 혜택과 부담을 공정하게 배분하지 못하고 그 책임을 설명하지 못할 때 생길 수 있다. 현재의 고령자에게도 빈곤과 취약함이 있다. 책임은 연금 수급자 개인이 아니라 제도를 만들고 조정해 온 정치에 있다.

증세 앞에서 시민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

새 기본소득과 지원금, 지역사업이 발표될 때마다 지급액만 계산해선 안 된다. 사업을 왜 시작하는지, 누가 혜택을 받는지, 얼마나 오래 돈이 필요한지, 성과가 없으면 중단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현행 지출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채 부족한 재원을 더 많은 세금과 빚으로 충당하는 구조라면 국가의 책임은 어디로 가는가. 씨앗이 추진하는 노모어택스와 지속가능한 예산운동은 그 계산서를 시민에게 공개하는 일이다.[13]

무슨 권리로 미래세대의 몫을 오늘 당겨 쓰는가. 모든 차입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소비를 위한 빚이 미래의 자산을 남기는 투자와 같을 수는 없다.

포퓰리즘의 몰락보다 두려운 것은 그 정치가 남긴 비용 때문에 세대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다. 오늘의 시민이 낸 세금이 낭비되지 않을 권리, 미래의 시민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그 두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