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헌신한 사람들에게, 지금의 정치는 너무 잔인하다

잘못에는 책임을 묻고 헌신에는 명예를 돌려주어야 한다. 검찰청 폐지와 경찰의 업무 부담, 임은정 감찰 논란을 통해 소신과 전문성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보호와 보상이 돌아가는지 묻는다.

“남들도 안 하는데 내가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기 자리에서 일을 제대로 하려던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사회는 위험해진다. 규정이 없어지는 것도, 기관의 간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 규정을 책임 있게 적용하고, 그 기관을 실제로 움직이던 사람이 마음을 거두는 것이다.

검찰청이 폐지되고 경찰의 수사 역할이 커졌다. 경찰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는 있다. 일선 수사관의 삶도 나아졌는가.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인력, 보호와 보상이 돌아가고 있는가.

조직의 권한이 커졌다는 발표만으로 현장의 형편을 알 수 없다. 위에서는 성과를 요구하고, 아래에서는 밀려드는 사건과 민원을 감당한다. 시민의 억울함을 끝까지 풀어주려던 사람에게 더 많은 사건과 책임이 돌아간다면, 사명감은 자부심보다 부담이 된다.

지금의 정치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하다.

검찰의 잘못을 묻는 일과 헌신을 지우는 일

검찰에는 반성할 일이 많다. 권력과 가까워지려 한 일부 정치검찰의 처신, 조직을 앞세워 잘못을 덮으려 한 관행, 시민의 권리를 가볍게 다룬 수사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치인이 수사의 대상이 될 때마다 공정성과 선택적 수사 논란이 반복된 역사도 돌아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에 쌓인 불신과 피해의식이 오늘의 검찰 해체를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을 수 있다.

씨앗이 걱정하는 것은 그 불신이 미움을 넘어 증오로 굳어지고, 개혁이 보복의 논리로 움직이는 모습이다. 잘못을 바로잡는 데 필요한 기준보다 조직을 없애는 데 필요한 분노가 앞서면, 그 안에서 묵묵히 일해 온 사람의 헌신까지 함께 지워진다.

검찰청 폐지는 확인된 제도 변화다. 그 변화에 담긴 정치적 동기를 모두 입증할 수는 없다. 다만 개혁의 성과는 없앤 조직의 이름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수사가 얼마나 공정해졌는지, 피해자가 얼마나 빨리 보호받는지, 권력의 부당한 개입을 얼마나 막을 수 있는지로 증명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오늘에 이른 데에는 기업가와 노동자, 교사와 의사, 경찰과 검사, 수많은 공직자와 시민의 노력이 있었다. 밤을 새워 사건을 파고든 수사관도, 권력의 압력 앞에서 법을 지키려 했던 검사도 그 한 축이었다.

일부의 잘못을 조직 전체의 본성으로 규정하면 이들의 삶은 어디에 놓이는가. 소명 하나를 붙들고 살아온 사람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박종철의 죽음을 묻히지 않게 한 사람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시신 화장 시도를 막고 부검이 이루어지도록 한 최환 검사가 있었다. 그의 판단은 고문으로 인한 죽음의 진상이 드러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 《1987》에서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인물이다. [1] [2]

그 사건의 진실을 드러낸 것은 검사 한 사람만의 힘이 아니었다. 의료인과 기자, 교도관과 시민 등 여러 사람이 위험을 감수했다. 당시 검찰 역시 사건 축소·은폐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2]

그래서 최환의 선택은 더욱 중요하다. 조직의 잘못이 있었기에, 조직 안에서 자기 판단을 지킨 사람의 가치도 선명해진다. 상부의 뜻을 따라 편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자리에서 누군가는 멈춰 섰다. 그 멈춤이 진실을 지킬 시간을 만들었다.

사회는 그런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

지금 우리 조직들은 다음의 최환을 지켜줄 수 있는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조직의 골칫거리로 취급된다면 누가 다시 그 자리에 서겠는가.

국가는 소신을 칭찬하는 기념식보다, 소신을 지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야 한다.

권한은 커졌는데, 수사관은 버틸 수 있는가

검찰청 폐지 이후의 사건 이관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선에서는 앞으로 더해질 업무를 걱정하고 있다. 수사할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건이 밀려들면 부실수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3]

현장의 부담은 조직도에 나타나지 않는다. 책상 위에 쌓인 기록,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연락, 결론을 기다리는 피해자의 항의 속에 남는다.

피해자는 자기 사건 하나를 들고 경찰서를 찾는다. 그 안에는 잃어버린 돈과 무너진 생활, 가족의 불안이 있다. 수사관에게 배당된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라는 이유로 가볍게 끝나도 되는 사건은 없다.

성과 평가가 종결 건수와 처리 속도에 치우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의심스러운 대목을 더 확인하는 사람은 사건을 오래 붙드는 사람이 되고, 서둘러 끝내는 사람은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진실을 파고들수록 부담이 늘고, 민원과 고소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정당하게 일한 사람조차 그 방어를 개인의 시간과 비용으로 감당해야 한다면, 어느 순간 일을 줄이고 책임을 피하는 방법부터 찾게 된다.

이때 “내가 왜?”라는 말은 개인의 나약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조직이 성실한 사람에게 보낸 신호가 되돌아오는 것이다.

임은정 감찰이 조직에 보내는 신호

임은정 광주지방중수청장에 대한 감찰 논란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월 11일,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임 청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임 청장은 자신이 중수청의 첫 감찰 대상이 된 데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4]

다음 날 윤 장관은 직위를 이용한 정치행동인지 살펴보겠다는 취지로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 개입과 파벌 형성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지켜라”는 말도 했다. [5]

임은정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신이 지나쳤다고 볼 수도 있고, 정치적 행보를 의심할 수도 있다. 그 판단은 구체적인 발언과 행위를 근거로 이루어져야 한다. 감찰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정치적 욕심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씨앗은 이번 조치를 중수청 길들이기의 신호로 읽는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사기관에서 수장 후보자를 비판한 간부에게 장관이 공개적으로 감찰을 예고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다른 구성원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윗사람이 불편해할 말을 했다가 한순간에 자기 자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은 지켜져야 한다. 그 기준은 명확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어떤 행위가 어떤 의무를 위반했는지, 정부에 우호적인 발언에도 같은 잣대가 적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기준이 흐릿할수록 사람들은 법보다 윗사람의 심기를 먼저 살핀다.

임은정에게 적용되는 기준은 다른 수사관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를 넘어 이 감찰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사회의 기둥은 소명만으로 서 있지 않는다

경찰과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실을 지키는 교사, 진료실을 지키는 의사, 재난 현장에 들어가는 공직자도 자기 판단에 따른 책임을 감당한다. 모든 직군이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 더 큰 부담을 떠안는 구조에서는 어느 직업이든 소명이 닳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들에게 사명감을 요구해 왔다. 어려운 일을 맡아달라고 했고, 시민을 위해 조금 더 참아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부심마저 무너뜨리면 무엇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가.

헌신을 개인의 성격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사건을 맡아 피해를 회복시킨 사람, 부실한 결론을 막은 사람, 부당한 지시에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한 사람에게 승진과 보수, 법률 지원과 인사상 보호가 돌아가야 한다.

정치권과의 거리가 승진을 좌우하고 침묵이 생존의 요령이 된다면, 전문성과 양심은 설 자리를 잃는다. 조직은 남아 있어도 시민을 위해 움직일 힘은 약해진다.

씨앗이 말하는 사회의 기둥은 기관의 간판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자기 일을 책임져 온 사람들, 오랜 경험으로 쌓은 전문성, 권력 앞에서도 지켜야 할 기준을 뜻한다.

그 기둥을 뽑아내면서 새 간판만 세우는 정치를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앞으로 확인할 것은 구체적이다. 일선 수사관의 담당 사건 수와 처리기간, 숙련 인력의 배치와 이탈, 초과근무 보상과 법률 지원, 이의제기 이후의 인사다. 임은정 감찰의 근거와 절차, 결과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헌신하고 소명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지금의 정치는 너무 잔인하다.

잘못에는 책임을 묻고 헌신에는 명예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 구분을 지운 채 사람과 조직을 한꺼번에 몰아붙이면, 우리 사회를 떠받치던 기둥은 하나씩 빠져나간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말을 잘 듣는 조직일 수 있다. 시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필요한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기 일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을 잃은 뒤에도 대한민국은 지금처럼 버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