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헌신과 소신을 버리라는 정치, 정말 나라 망하게 할 셈인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 의료인과 소방대원, 경찰과 검사, 군인과 전문가를 지키지 못하는 정치는 책임 회피를 학습시킨다. 헌신과 소신이 불이익이 되는 구조의 비용은 치료와 구조, 공정한 판단을 기다리는 시민에게 돌아온다.
헌신하는 사람에게 떠넘긴 책임
아이를 살리던 의사가 응급실을 떠나려 한다. 수십 년 쌓아온 전문성과 사명감으로도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주대병원 소아응급 전문의들의 사의 표명은 의료 현장만의 경고가 아니다. 자기 일을 끝까지 해내려는 사람에게 이 사회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1]
대한민국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들의 헌신으로 여기까지 왔다. 밤새 환자를 돌본 의료인,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공공의료를 지켜온 의사와 간호사, 불길과 붕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 현장에 들어간 소방대원이 있었다. 위험을 감수한 경찰, 외압 속에서도 사건을 파헤친 검사, 생명을 걸고 경계근무를 선 군인도 있었다. 전문적인 판단을 지키기 위해 불이익을 감수한 공직자와 전문가도 있었다. 이들의 책임감은 법령과 예산의 빈틈을 메우며 나라를 떠받쳤다.
그런데 지금 정치는 그 책임감을 지켜주고 있는가. 자기 자리에서 더 잘해보려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신호는 정반대다. 적당히 하라. 앞서 나가지 마라. 윗선의 기분부터 살펴라.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런 신호가 쌓이면 조직은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정치가 조장하는 책임 회피는 이렇게 자란다. 일을 하지 않아 생기는 손해는 시민에게 흩어지고, 적극적으로 판단했다가 생기는 부담은 실무자 개인에게 집중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자리를 지키고, 어려운 일을 맡은 사람은 조사와 비난의 한복판에 선다. 이런 구조에서 누가 고되고 힘든 자리를 맡으려 하겠는가.
매뉴얼 뒤에 숨으라는 정치
매뉴얼은 필요하다. 권한 남용을 막고 판단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매뉴얼이 현장의 모든 상황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응급실의 몇 초, 공공의료 현장의 긴급한 판단, 화재·구조 현장의 돌발상황, 범죄 현장과 군사적 위협 앞에서의 결단에는 전문성과 직업윤리가 필요하다. 그 판단을 정치적 유불리로 재단하기 시작하면, 매뉴얼은 책임 있는 행동을 돕는 기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방패로 바뀐다.
더 심각한 것은 전문직에게 자신의 직업윤리를 거스르도록 요구하는 정치다. 의사는 환자를 살려야 하고, 수사기관은 증거를 따라가야 하며,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공공의료 종사자는 의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시민을 돌봐야 하고, 소방대원은 재난 현장에서 생명을 구해야 한다.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지켜야 한다. 정치권력이 원하는 결론에 맞추기 위해 이 기준을 굽히라고 요구하는 순간, 공적 직무는 권력자의 주문을 처리하는 일이 된다.
소신을 지켰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하고, 정치적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핵 위협을 받으며, 전문적인 반론을 냈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다면 남는 교훈은 분명하다. 옳은 판단보다 안전한 처신이 낫다는 것이다. 소신 있는 사람을 밀어내는 정치는 결국 소신 없는 조직을 만들어낸다.
법의 기준과 현장의 판단을 흔들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사퇴·탄핵 압박도 이 기준에서 보아야 한다. 최근 업무추진비와 격려금 사용 의혹 등이 사퇴와 탄핵 요구의 근거로 거론됐다.[2] 공금 사용은 누구든 검증받아야 한다. 대법원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의혹의 제기와 위법의 확정은 다르다. 구체적인 규정 위반과 책임을 밝히는 절차보다 사퇴라는 결론이 앞선다면, 감시는 정치적 퇴진 압박으로 변질된다.
법과 원칙을 말하려면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관을 겁주고, 수사 결과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수사관의 거취를 흔든다면 독립적인 판단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때부터 공직사회가 읽는 기준은 법조문보다 권력의 표정이다.
군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기반 경계체계를 도입하면서 GOP 경계병을 줄이는 구상도 제시했다.[3][4] 조직 개편과 기술 도입의 필요성은 따져볼 수 있다. 그러나 각 군의 전문성을 어떻게 유지할지, 감시장비가 고장 나거나 통신이 끊겼을 때 누가 공백을 메울지, 실제 대응 능력이 확보됐는지를 먼저 답해야 한다.
군인의 우려를 조직 이기주의로 치부하고 정책의 속도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목숨을 걸고 현장을 지킬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안보정책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병력 감축의 근거는 낙관적인 미래 구상이 아니라 검증된 대체 능력이어야 한다. 정치가 발표한 효율의 비용을 현장의 군인과 접경지역 시민이 떠안을 수는 없다.
의료진의 절망, 국가가 풀어야 할 충돌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실에서 터져 나온 절망도 같은 구조를 보여준다. 수사에 협조할 의무와 진료를 계속할 의무가 충돌할 때, 국가가 두 의무를 함께 수행할 절차를 마련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장 의료진이 공포와 위축을 호소한 뒤에야 수사 지침을 논의하고 있다. SBS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뒤늦게 사과했지만, 센터장은 압수수색 경위에 대해 납득할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5]
유족이 진실을 알고 구제받을 권리는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동시에 성실하게 환자를 치료한 의료진이 불가피한 결과까지 혼자 떠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둘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국가의 일이다. 제도의 공백을 방치한 채 의사에게 더 버티라고 하고 유족에게는 소송으로 해결하라고 한다면 정치가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공공의료와 소방의 빈자리는 누가 메우나
헌신하는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나라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참고 일한다. 그다음에는 위험한 일을 피한다. 끝내는 그 자리를 떠난다. 남아 있는 사람의 부담은 더 커지고, 다음 세대는 처음부터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정치와 제도가 오래도록 떠날 이유를 만들어온 것이다.
공공의료와 소방 현장에서도 이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족한 인력 속에서 환자를 돌보고, 불길과 붕괴 위험 속에서 구조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결과의 책임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필요한 인력과 장비, 교육과 법적 보호는 갖추지 않은 채 사명감만 요구한다면, 헌신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위험으로 남는다.
이 상황이 계속 방치된다면 공공의료와 소방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헌신하려는 사람을 다시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떠나고 다음 세대마저 그 길을 외면한 뒤에는, 사명감을 호소하는 말로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그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와 구조를 기다리는 시민이 정치와 제도의 무책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장관과 고위직을 맡을 만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가 전문성과 경륜을 펼치는 곳이 아니라 직업적 양심을 접고 정치적 주문에 답해야 하는 곳이라면, 명예를 지키려는 사람일수록 맡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좋은 인재가 오지 않는다고 탄식하기 전에 좋은 인재가 견딜 수 있는 자리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정치의 성적표는 현장에 남은 사람이다
의료인과 소방대원, 검사와 경찰, 군인과 법관, 전문가를 무조건 믿자는 말이 아니다.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기준은 구체적인 위법과 과실이어야 한다. 정치적 불복종과 전문적인 반론을 처벌하는 데 고발과 탄핵을 동원한다면, 그것은 권력 감시의 제도를 권력에 복종시키는 수단으로 뒤집는 일이다.
정치의 책임은 사람을 겁줘 움직이는 데 있지 않다. 법과 원칙에 따라 일한 사람이 다음 날에도 같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데 있다. 잘못한 사람에게는 정확한 책임을 묻고, 성실하게 일한 사람에게는 예측 가능한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공직자는 시민을 보고 일하고, 전문가는 자신의 지식과 양심을 지킬 수 있다.
이제 정치의 성적표는 분명해야 한다. 고발장을 몇 장 냈는지, 누구를 얼마나 호되게 몰아붙였는지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응급실과 지역 공공의료에 필요한 의료진이 남아 있는지, 소방대원이 충분한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구조에 나설 수 있는지, 수사기관이 외압 없이 증거를 따라가는지, 군이 검증된 능력으로 경계를 유지하는지, 전문가가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헌신과 소신을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뚝심과 자존심만으로 정치적 압박을 견디라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개인의 용기에만 맡겨둔 채 제도는 뒤로 숨는 나라여서는 안 된다.
누가 이제 그 고되고 힘든 자리를 지키려 하겠는가. 누가 불이익을 감수하며 자기 길을 가려 하겠는가. 이 질문 앞에서도 고발과 탄핵, 오욕과 겁주기부터 꺼내 드는 정치라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나라를 망하게 할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