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가 빚, 너무 가볍게 보는 건 아닌가
멜랑숑은 중앙은행 보유 국채를 없애자고 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미래의 나에게 빌려 지금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설명한다. 두 주장의 차이를 짚고, 그 설명에서 빠진 이자·실패 위험·시민의 부담을 묻는다.
국가의 빚에도 만기와 이자가 있다
정치인이 국가의 빚을 쉽게 말할 때마다 불안하다. 돈을 쓰겠다는 이야기는 넘치는데, 그 돈을 감당할 시민의 삶은 몇 마디 낙관 속에 묻혀버린다. 지금 쓰면 좋고, 나중에는 형편이 나아질 것이며, 어떤 빚은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식이다.
정부가 빌린 돈에는 만기가 있다. 이자가 붙는다. 기대했던 성장이 오지 않아도 상환 의무는 남는다. 정치인의 설명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프랑스의 유력 대선주자인 장뤼크 멜랑숑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프랑스 국채를 없애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포춘코리아는 그가 프랑스 중앙은행 보유 국채를 탕감해 정부의 복지 지출 여력을 확보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민간 투자자의 채권은 건드리지 않고 중앙은행이 가진 빚만 없애면 된다는 논리다.[1]
한국경제도 이 주장을 전하며 프랑스 중앙은행 보유 국채 약 4,880억 유로를 없애자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행위를 도둑질이라고 비판했다.[2]
지출을 줄이는 일은 반발을 부른다. 세금을 더 걷는 일도 저항에 부딪힌다. 그 사이에서 빚을 지워버리겠다는 약속은 얼마나 편리한가. 지금 받는 혜택을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치르지 않을 방법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20년 뒤의 나는 성공해 있다는 가정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부채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르다. 대표적인 비유는 소득이 적은 20대와 성공한 40대의 1,000만 원을 비교하는 것이다.
상단 영상 발언에서 이 대통령은 국가부채를 늘리는 일을 “미래의 국가가 사용할 재원을 당겨서 쓰는” 것으로 설명했다. 20년 뒤의 나에게서 돈을 빌려 지금 쓰고 나중에 갚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다.[3]
국가의 차입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비유라는 점에서 따져볼 대목이 많다.
소득이 부족한 청년에게 지금의 1,000만 원은 절실할 수 있다. 그 돈으로 공부하고 기술을 익혀 소득을 높일 수도 있다. 빚을 내서라도 먼저 투자하는 선택이 합리적인 경우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대통령의 설명에서는 결정적인 조건 하나가 이미 해결된 상태다. 20년 뒤의 나는 성공해 있다.
성공한 미래를 먼저 놓고 보면 현재의 빚은 가벼워 보인다. 지금보다 잘살게 될 테니 그때 갚으면 된다는 결론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미래 소득이 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투자에 실패하거나, 이자가 예상보다 높아지거나, 빚을 내서 쓴 돈이 아무런 생산적 기반도 남기지 못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 돈이 절실하다는 사실과, 그 돈을 빌려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 사이에는 검증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비유는 그 과정을 너무 빨리 건너뛴다.
미래의 나는 누구인가
더 큰 문제는 국가의 빚을 개인이 자기 미래에서 빌리는 돈처럼 설명한다는 점이다.
개인은 지금 빌리는 사람과 나중에 갚는 사람이 대체로 같다. 국가에서는 돈을 쓰기로 결정한 사람, 혜택을 받는 사람, 나중에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청년도 미래의 납세자가 되지만, 그 지출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시민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도 부담을 나눌 수 있다.
정부가 미래의 재원을 당겨 쓴다는 말은, 미래 시민이 쓸 수 있는 재원의 일부를 지금 결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돈은 대통령 개인의 미래 통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일할 시민과 기업이 벌어들일 소득에서 나온다. 다음 정부가 위기에 대응할 여력, 다음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예산도 그만큼 제약받을 수 있다.
빚을 설명하는 말에서 빠진 시민의 비용
멜랑숑은 특정 국채의 탕감을 주장하고, 이 대통령은 미래 재원을 이용한 현재 지출의 효율성을 설명한다. 한쪽은 상환 의무를 없애려 하고, 다른 한쪽은 미래에 갚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두 설명을 나란히 놓으면 공통된 빈자리가 보인다. 빚을 없애거나 당겨 쓰는 방법은 쉽게 설명되는데, 그 선택이 틀렸을 때 시민이 감당할 비용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중앙은행 보유 국채를 지우면 정부의 장부에서는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포춘코리아가 소개한 반대 논거는 법적 제약과 국가 신뢰의 훼손, 향후 조달금리 상승이다. 장부에서 없앤 빚이 다른 경로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다.[1]
미래 재원을 당겨 쓰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생산성을 높이고 미래의 소득 기반을 넓힌다면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출에 ‘미래투자’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성과가 생기지는 않는다. 지원금을 지급한 실적과 시민이 스스로 더 잘살 수 있게 된 결과는 다르다.
정치인은 임기를 마친다. 빚은 남는다
국가부채 논쟁에서 시민이 듣고 싶은 것은 돈을 쓸 수 있다는 설명만이 아니다. 어디에 쓰는지, 얼마의 이자를 부담하는지, 어떤 성과가 남는지,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는지에 대한 답이다.
국가의 빚을 무조건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권력자가 그 빚을 가볍게 설명할 때 시민까지 안심할 이유도 없다. 돈을 쓸 권한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비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책임이 무겁다.
씨앗의 소리가 증세반대 운동과 함께 지출 감시를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의 지출 약속이 내일의 세금과 이자 부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피는 일이다. 선한 이름을 붙인 사업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주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정치인은 임기를 마친다. 빚은 남는다.
남은 시민이 확인할 것은 낙관적인 비유가 아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이자 예산, 반복되는 적자, 미래투자라고 불린 사업의 실제 성과다. 국가의 빚을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의 자신감이 시민의 상환 능력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