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폴란드가 뜨고, 프랑스가 가라앉는 이유
독일에서 폴란드로 향하는 사람이 반대 방향보다 많아졌습니다. 시장개혁과 제조업 투자, 기업·가족의 재산을 존중하는 세금, 국경 관리와 노동시장 개방에서 폴란드의 활력을 읽고 프랑스의 고부담 구조와 비교합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폴란드 사람들에게 독일은 돈을 벌러 가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뀌고 있습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폴란드에서 독일로 이주한 사람은 8만 3,868명, 독일에서 폴란드로 이주한 사람은 9만 5,107명이었습니다. 폴란드로 향한 사람이 1만 1,239명 더 많았습니다.[1]
이 숫자가 독일인들이 일제히 폴란드로 탈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귀국하는 폴란드인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도 변화의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조국을 떠나야 더 잘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제 조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현실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장률에도 차이가 드러납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2025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폴란드 3.6%, 프랑스 0.8%입니다. 프랑스는 여전히 폴란드보다 1인당 소득이 높은 나라지만,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속도에서는 폴란드가 앞서고 있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부국이 숨을 고르는 동안, 한때 가난했던 나라가 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있습니다.[2][20]
강대국 사이에서 나라를 지켜 온 기억
한국인이 이 나라에 마음이 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폴란드는 1795년 마지막 분할 이후 1918년 독립을 되찾기까지 123년 동안 독립국가로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서쪽의 독일과 동쪽의 러시아 사이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했고, 독립을 되찾은 뒤에도 나치 독일의 침략과 소련의 지배를 겪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경험과 강대국이 정한 질서의 무게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3]
그런 역사에서 생긴 경계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남이 보장하는 평화만 믿을 수 없고, 남이 정해 주는 방식이 반드시 우리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라는 감각입니다. 오늘의 폴란드를 이해하려면 이 생존의 기억과 함께, 공산주의를 벗어난 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켰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시장을 열고, 자기 선택권을 남기다
폴란드의 도약은 1990년 전후의 시장경제 전환에서 출발했습니다. 가격통제를 풀고 민간기업이 활동할 공간을 넓히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후 성장의 토대가 된 것은 재산권, 경쟁, 투자, 법에 따른 거래였습니다. 세계은행은 폴란드의 성공을 설명하면서 시장제도와 법치, 정책의 연속성, 세계시장과의 연결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습니다.[4]
여기에 2004년 EU 가입이 큰 날개를 달았습니다. 유럽의 시장이 열렸고, 해외 자본과 기술이 들어왔으며, 도로와 철도가 확충됐습니다. 폴란드는 서유럽과 거래하면서 제조업의 역량을 쌓았습니다. IMF가 소개한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폴란드의 생산성은 연평균 약 3% 높아졌습니다. 같은 기간 유로 지역의 약 1%보다 빨랐습니다. 오늘의 활력은 단지 임금이 싸서 생긴 현상이 아닙니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자란 결과입니다.[5]
폴란드는 유럽의 시장과 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고 자국 통화 즈워티를 유지했습니다. 개방을 선택하되 모든 정책을 남에게 맞추지는 않았습니다. 자국의 사정에 맞는 선택권을 남겨 두려 했습니다.[5]
기업의 재투자와 가족의 재산을 존중하는 세금
기업과 재산을 대하는 세금에서도 이런 차이가 보입니다. 폴란드의 일반 법인세율은 19%이고, 요건을 충족한 소규모 기업 등에 적용되는 세율은 9%입니다. 프랑스의 일반 법인세율은 25%이며, 일정 요건을 충족한 중소기업의 이익 일부에는 15%가 적용됩니다. 업종별 예외와 별도 부담이 있어 실제 세금은 달라지지만, 일반 세율에서부터 투자자가 마주하는 조건이 다릅니다.[6][21]
법인세로 더 낸 돈은 기업이 설비를 사고 직원을 뽑거나 다음 불황에 대비하는 데 쓸 수 없는 돈이기도 합니다. OECD의 조세와 성장 연구도 법인소득 과세가 투자와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업이 번 돈을 다시 사업에 넣을 여지를 얼마나 남길 것인가는 일자리와 직결되는 선택입니다.[7]
집을 보유할 때도 차이가 있습니다. 폴란드의 일반 주거용 건물 보유세는 시가보다 면적을 기준으로 계산하며, 2026년 법정 상한은 연간 ㎡당 1.25즈워티입니다. 100㎡라면 건물분 상한이 연 125즈워티라는 계산입니다. 토지분 등은 별도지만, 집값이 오른 만큼 건물분 보유세가 자동으로 뛰는 구조는 아닙니다. 프랑스는 일반 부동산세 외에 순과세 부동산 자산이 130만 유로를 넘는 경우 부동산 부유세인 IFI를 적용합니다.[8][22]
가족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는 차이가 더 뚜렷합니다. 폴란드는 배우자와 자녀·부모 등 가까운 가족 사이의 상속에 대해 기한 내 신고 등 요건을 갖추면 금액 제한 없이 상속세를 면제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자녀가 부모에게서 상속받을 때 일반적으로 10만 유로를 공제한 뒤 누진세율을 적용하며, 직계 상속의 최고세율은 45%입니다. 프랑스도 배우자 상속은 면제하므로, 모든 가족관계에 똑같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9][23]
평생 모은 집과 가게를 자녀에게 넘기는 일을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 폴란드의 제도는 가까운 가족의 재산 이전에 국가가 세금으로 개입하는 범위를 좁게 잡았습니다. 재산을 축적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계획할 수 있는 여지를 넓게 남긴 선택입니다.
이런 보유세와 상속세 제도가 성장률을 각각 얼마나 높였는지 따로 입증한 수치는 없습니다. 성장의 바탕에는 시장개혁과 교육, EU 시장, 해외투자도 있습니다. 다만 이 제도들에는 보수적 경제관의 한 축이 담겨 있습니다. 시민이 일해서 남긴 몫과 가족이 쌓아 온 기반을 존중하고, 국가가 가져갈 몫에는 한계를 두겠다는 생각입니다.
많이 걷는 프랑스, 무엇이 남았나
프랑스와의 차이는 국가 전체의 부담에서도 나타납니다. OECD의 같은 통계 기준으로 2024년 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 수입은 GDP 대비 프랑스 43.5%, 폴란드 36.6%였습니다. 두 나라 모두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운영하지만, 경제가 만들어 낸 소득에서 국가가 가져가는 몫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10]
프랑스의 고민은 많이 걷는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많이 쓰는데도 성장과 서비스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데 있습니다. OECD의 2026년 프랑스 경제보고서는 높은 공공지출에 비해 보건·교육 성과가 최상위 국가들에 뒤처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업경쟁력을 위해 생산에 부과되는 세금을 줄이고, 지출의 효율을 높일 필요도 제시했습니다.[11]
유럽 좌파가 강조해 온 재분배와 복지 확대는 듣기 좋은 약속입니다. 그러나 부담을 늘리고, 활력이 떨어지면 다시 재정지출로 메우는 방식이 굳어질수록 시민은 두 번 비용을 치릅니다. 세금으로 한 번, 줄어든 기회로 또 한 번입니다. 포용과 복지를 앞세우는 정치도 그 비용을 만들어 내는 시민과 기업의 활동을 지켜야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 고부담 구조는 여러 성향의 정부를 거치며 쌓였습니다. 마크롱 정부는 기존 부유세를 부동산 중심의 IFI로 바꾸는 개혁도 했습니다. 반대로 폴란드의 보수정부도 가족수당과 복지지출을 확대했습니다. 폴란드가 보여 준 성과는 한 정당의 간판보다,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해 온 시장경제의 토대와 기업·가족의 재산을 대하는 제도에서 읽어야 합니다.[12][24]
국경 관리와 노동시장 개방을 함께 보다
난민과 이민에서도 폴란드는 자기 판단을 고집했습니다. EU의 난민 재배치에 반대했고,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2020년 EU 사법재판소에서 EU법 위반 판단을 받았습니다. 폴란드의 선택에는 유럽 공동규칙과 충돌하는 비용도 있었습니다.[13]
그렇다고 폴란드가 외국인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는 아닙니다. 2021년 EU가 비EU 시민에게 발급한 최초 체류허가 가운데 약 3분의 1인 96만 7,300건이 폴란드에서 나왔습니다. 취업 목적 허가만 약 79만 건이었습니다. 국경 관리에 엄격한 나라가 노동시장에서는 외국인을 대규모로 받아들인 것입니다.[14]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임시보호를 받는 피란민 약 100만 명을 품었습니다. 2026년 10월 공개된 UNHCR·딜로이트 연구는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 피란민의 2025년 취업률을 76%로 제시했습니다. 보호받는 사람들이 일하고 세금을 내며 경제의 구성원이 되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경험은 받아들인 사람을 사회와 노동시장에 연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줍니다.[15][25]
문을 열 것인지 닫을 것인지만 놓고는 이런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어떤 절차로 들어오며, 들어온 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까지 책임지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언어와 취업, 학교와 주거, 공통의 법질서를 준비해야 기존 시민과 이주민 모두의 삶을 지킬 수 있습니다.
포용의 책임은 안전한 일상까지 이어집니다
안전도 이 나라의 매력을 뒷받침합니다. 폴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고의적 살인 피해자는 인구 10만 명당 0.48명이었습니다. 이 수치 하나로 모든 치안 상태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폴란드의 일상적 안전을 평가하는 중요한 근거입니다.[16]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일상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프랑스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여름 소요로 학교 243곳이 불타거나 훼손됐고, 물적 피해는 약 10억 유로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삶을 빼앗기는 사람은 그 동네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와 장사하는 시민입니다.[17]
치안의 차이를 난민 수나 출신 배경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경찰과 사법의 역량, 빈곤과 주거 분리, 교육과 사회통합도 함께 작용합니다. 그렇기에 포용을 약속한 정치의 책임도 입국을 허용하는 순간 끝날 수 없습니다. 학교를 지키고 거리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선한 취지로 시작한 정책일수록 시민이 실제로 치르는 비용을 더 엄격하게 살펴야 합니다.
한국과 함께 기술을 쌓는 나라
이제 폴란드는 한국에도 중요한 경제·안보 협력국입니다. 브로츠와프 인근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유럽 최대 규모 전기차 배터리 생산기지가 있습니다. 폴란드는 한국의 K2 전차를 구매하면서 현지 생산 역량도 함께 확보하고 있습니다. 2025년 체결한 두 번째 K2 계약에는 61대를 폴란드에서 생산하는 계획이 담겼습니다. 외국의 기술을 사들이면서 자기 산업의 역량으로 쌓아 가는 모습에서, 우리도 익숙한 성장의 방식을 발견하게 됩니다.[18][26]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내일의 계획이 있는가
폴란드의 도전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2026년 10월 유로스타트 발표에 따르면 폴란드의 2025년 재정적자는 GDP의 7.2%로 프랑스의 5.1%보다 컸습니다. 국방과 사회지출 확대는 무거운 청구서가 되고 있습니다. 합계출산율도 2025년 1.07명으로 낮아졌습니다. 기업과 가족을 존중하는 정책이 앞으로도 성과를 내려면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다음 세대의 삶까지 지켜야 합니다.[19][27]
그럼에도 폴란드의 부상은 유럽을 바라보는 익숙한 시선을 바꿉니다. 부유한 나라의 정책이라고 언제나 정답은 아니며,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약속한다고 시민의 삶이 저절로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폴란드는 시장을 열고 투자를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사회가 감당할 조건을 따졌습니다. 시민이 일해서 남길 몫과 가족에게 물려줄 기반을 비교적 넓게 지켰습니다.
한국이 이 나라에서 볼 것은 돌아오는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기업을 세우고, 아이를 키우고, 부모가 남긴 집과 가게를 이어 가기에 내 나라가 괜찮은 곳인지 묻게 하는 선택입니다. 앞으로 폴란드의 성공은 성장률과 함께 재정적자, 출산율, 이주민의 취업, 시민의 안전이 어떻게 바뀌는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돌아오는 나라에는 내일의 계획을 세울 이유가 있습니다. 폴란드가 유럽의 새로운 성장국으로 떠오른 힘도 거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가가 시민을 대신해 모든 미래를 설계하려 하기보다, 시민이 자기 힘으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자리를 지켜 주는 것. 프랑스의 정체와 폴란드의 활력을 함께 보며 한국이 되새길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