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민주화유공자가 아니다
1987년 6월 거리에서 다치고도 스스로 유공자라 여긴 적 없는 필자가 이름 없는 시민들의 헌신을 돌아보며 민주유공자법과 자녀 대입 특별전형 적용 가능성을 묻는다.
나는 민주화유공자가 아니다
나는 민주화유공자가 아니다. 하지만 1980년대, 나는 젊었던 그 시절을 모두 민주화운동에 던졌다.
당연히 운동권 학생이라는 딱지가 나에게 붙여졌다. 부모님은 걱정하셨고, 시위하다 잡혀서 경찰서에 많이도 끌려갔다. 지도교수님은 달려와서 혀를 끌끌 차시며 나를 경찰서에서 빼주셨다.
공대 출신이면서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해 결국 제대로 된 취업도 못 했다. 한마디로 당시에는 문제아였다.
1987년 6·10항쟁 때 시위하다 백골단에게 잡혀 집단폭행을 당하고, 피를 흘리며 청파파출소로 끌려갔다.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는 같이 시위하다 잡혀온 중대 의대 학생들에게 찢어진 입술을 응급치료 받기도 했다. 이튿날 용산경찰서의 어느 형사가 나를 근처 병원으로 데려가 다친 팔과 입술을 꿰매는 처치를 해주었다.
나는 권위주의 정권에 반발하고, 당시 열악했던 노동자들과 도시빈민들, 농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졸업 후에도 사회운동을 한다고 시민단체에 뛰어들어 열심히 활동했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유공자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민주화유공자라는 것이 어떻게 등록되는지 알아본 적도 없다.
이름 없이 함께했던 시민들
그 시절 정도의 차이만 있었지, 독재정권에 반대하고 부정의한 사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남대문에서 명동으로 이어지던 매캐한 최루탄 속에서 수많은 직장인 넥타이부대가 우리를 응원했고, 상인들은 우리를 경찰로부터 보호해줬다. 그때는 그런 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넘쳐난다. 사실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젊은이와 시민 중 민주화운동에 많든 적든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을까? 뭐가 다를까?
나는 소위 한총련이니 전대협이니 하는 주류 운동권 조직에 들어 있지 않았다. 종교에 바탕을 둔 연성 사회운동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등록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것을 자랑처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류 운동권 조직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수없이 많은 청년과 시민이 있었다.
부모의 유공자 지위가 자녀의 입시 기회로
그런데 오늘 아침 하나의 기사를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운동권의 훈장을 내세워 정치에 진출한 소위 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자들이 민주화의 성과를 독점하고 자신들의 상표로 만들어,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만들려고 하는 역겨운 기사였다.
보도에 따르면, 추진 중인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민주유공자 본인과 자녀가 대학 입학 특별전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기존 고등교육법 시행령의 사회통합전형 대상에 국가보훈대상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부도 국회 검토 과정에서 대학 입학 관련 특혜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1][2][3]
별도의 전형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자녀의 합격이 보장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부모가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는 이유로 자녀에게 대학 입학 특별전형에 지원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씨앗의 소리의 [입법논평 「이름 없이 피 흘린 시민들 앞에서, 국회는 누구를 유공자로 정하는가」](/monitoring/legislation/commentary/democracy-merit-bill-admissions-fairness-2026)도 이 점을 짚었다. “입시에서 원서를 낼 수 있는 자격 자체가 기회다.” 유공자 심사의 인정 기준과 증거가 무엇인지 분명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결정이 자녀의 지원 기회까지 좌우하는 일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민주화운동에 함께 뛰어들어 물결을 이루었던 이름 없는 이들을 모독하고 그 성과를 도둑질하는 작태이다.
어디까지 추해져야 하나? 그만하면 당신들은 민주화라는 이름 뒤에서 수많은 훈장과 사회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굳이 나같이 이름 없는 아무개가 별로 내세워 볼 것 없는 과거 한때의 사회운동 기억까지 떠올리도록 해야 하나?
나는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아니다. 아마도 나 정도의 경력 따위로는 그 신성한 운동권 반열에 오르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이상한 법 만들고 이상한 짓거리를 하지 말아라.
기억과 후손 수당은 구분해야 한다
동학농민혁명도 그렇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유족을 심사·등록하는 제도가 있다. 참여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나 문헌이 없을 경우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신청 자료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참여자와 유족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4][5]
이렇게 등록된 유족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일정한 거주 요건을 충족한 참여자의 자녀·손자녀·증손자녀에게 2026년 1인당 연 12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6]
100년도 더 전의 역사를 기억하고 참여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과 그 후손에게 세금으로 수당을 지급하는 일은 구분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억조차 흐려진 집안의 이야기를 신청 자료로 받아 참여자를 심사하고, 그 후손에게까지 돈을 뿌리는 이런 일을 어디까지 계속할 것인가?
북한 김정은의 백두혈통! 당신들도 그런 민주화운동 유공자 혈통을 만들고 싶은 건가? 대를 이어서 충성하고 대를 이어 혜택받자는 건가? 입법권을 쥐고 있다고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건가?
정말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