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여당 고문 문정인의 위험한 안보관

문정인의 ‘한미동맹 저주’ 발언은 시민의 안전을 가볍게 다룬 무책임한 언사다. 반복된 동맹 전환론과 그 대안의 허점을 짚고, 여당 안보 고문과 정부·여당의 책임을 묻는다.

국민의 안전을 가볍게 다룬 무책임한 언사

자식을 군에 보내고 전쟁 없이 내일도 출근하기를 바라는 국민 앞에서, 대통령 안보특보를 지낸 인사가 한미동맹을 ‘저주’에 빗댔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방어체제를 두고 쓸 말이 아니다. 안보를 책임졌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무겁고 무책임하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지난 10월 21일 서울대 좌담회에서 “개인적으로 동맹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라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을 중국 견제의 최전방 기지로 인식하고 있어, 앞으로 20~30년을 보면 한미동맹이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1]

그는 이후 한미동맹이 지금까지는 도움이 됐지만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다자안보 체제로 나아가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장기적 위험을 경고했다는 해명이 ‘저주’라는 표현의 무책임함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동맹이 제공해온 안전을 문제 삼으려면 그보다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시할 책임부터 따른다.[2]

문정인은 문재인 정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현재 더불어민주당 한반도 평화 신전략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공식 고문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집권 여당의 외교안보 논의에 참여하는 인물이다.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서 나온 발언을 학자의 개인 의견이라는 말로 넘길 수는 없다.[3]

동맹의 부담만 강조하는 기울어진 안보 계산

미국의 요구가 한국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다. 미·중 경쟁에 원치 않게 휘말리지 않도록 협의 절차를 정비하고 한국의 선택권을 확보하는 일은 정부의 책무다. 그 부담은 구체적인 협상과 방어 능력의 보강으로 줄여갈 사안이다.

동맹에 부담이 있다는 사실이 동맹을 넘어설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동맹을 유지할 때의 위험, 약화했을 때의 위험, 대안 체제가 실패할 위험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해야 판단이 성립한다. 한쪽의 비용만 부각하고 다른 쪽은 희망으로 채우는 방식은 안보 분석의 기본을 벗어난다.

미국의 안보 공약이 약해진다고 북한의 핵 위협이 함께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한국의 선택을 더 존중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동맹 약화가 한국의 안전과 자율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바로 이 현실을 넘어설 근거가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자율성은 스스로 선택할 힘이 있을 때 지켜진다.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안보 수단부터 줄이고 상대가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순서다. 문정인의 구상은 이 전환 과정의 비용과 공백을 설명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여러 해 반복된 동맹 전환론

2017년 문정인은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 전략자산 전개와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핵 폐기가 아닌 활동 중단을 대가로 방어 태세를 조정하면, 북한이 핵을 보유한 채 협상의 이익부터 얻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4]

2018년 미국 매체 인터뷰에서는 동맹을 국제관계의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설명하며 장기적으로 없애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중단기적으로 동맹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 조건을 감안해도 그가 제시한 종착지는 다자안보 체제로의 전환이었다.[5]

2019년에는 북한 비핵화 이전에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중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공식적인 보호 요청은 아니었으며, 본인은 중국의 모순을 비판하려는 질문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에도 대통령 특보가 민감한 안보 공백을 그런 방식으로 거론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6][7]

이번 발언을 한 번의 거친 표현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동맹을 넘어서는 구상은 여러 해 반복됐다. 문정인의 안보관을 평가할 기준은 그 구상의 참신함이 아니라, 전환 과정에서 국민을 지킬 능력과 장치의 실재 여부다.

다자안보의 명분이 방어 능력을 대신하지 못한다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안보 협력은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협의체에 함께 앉는 것과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다르다. 문정인이 내세운 다자안보 체제 전환론은 이 차이를 해소할 실행 방안부터 제시할 사안이다.[1][2]

북한의 합의 위반을 확인할 검증 절차, 참여국의 이해가 충돌할 때 대응을 결정할 권한, 위협이 현실이 됐을 때 동원할 군사력과 제재 수단이 핵심이다. 이를 누가 책임지고 어떤 의무로 이행하는지가 빠지면 안전보장 체제는 작동할 수 없다.

그런 장치가 없는 협력 구상은 보증 없는 약속에 그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공동체의 이름보다 가족을 지킬 확실한 수단이다. 실패한 안보 구상의 대가는 회의장 밖에서 살아가는 시민과 현장의 장병에게 돌아간다.

현행 동맹의 결함은 현실의 사례로 비판하면서 대안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하는 비교는 기만적이다. 대안 역시 실제 능력과 비용, 실패 가능성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시민의 생명을 다루는 논의에서 그 기준을 낮출 이유는 없다.

여당 고문의 영향력에는 정책적 책임이 따른다

학자는 새로운 질서를 상상할 수 있다. 정책을 자문하는 사람에게는 그 상상이 실패했을 때 시민이 치를 비용을 계산하고 공개할 책임이 붙는다. 여당 고문이라는 직함은 영향력만 누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는 물러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동맹을 ‘저주’에 빗대는 언어는 방어체제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 그런 말을 하고도 장기 구상이라는 설명만 되풀이하면 시민에게는 해소되지 않은 불안이 남는다. 문정인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자신의 대안이 국민을 지킬 수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다.

정부와 여당이 그의 모든 견해에 동의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렇기에 동맹의 역할과 다자안보 전환론 가운데 무엇을 정책으로 채택하고 무엇을 채택하지 않는지 분명히 밝힐 책임이 있다. 자문자의 견해와 국가의 방침을 구분해 설명하는 것 역시 정치권의 책무다.

관련 논평 [「한국의 안보가 무너지고 있다 — 누구를 위한 자주인가」](/columns/security-slogans-alliance-2026)에서도 안보 구호와 시민이 감당할 위험 사이의 간극을 짚었다. 문정인의 동맹관도 같은 기준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낙관론은 안보정책이 아니다

한미동맹도 시민의 검증 대상이다. 한국의 이익을 해치는 요구에 이의를 제기하고, 우리 군의 능력을 키우며, 의존에서 생기는 약점을 줄이는 일이 책임 있는 정치다. 이런 과제들을 ‘저주’라는 말로 뭉뚱그리는 것은 구체적인 개선을 가로막는 무책임한 언어다.

판단의 기준은 실제 정책과 방어 능력이다. 연합훈련과 정보 공유, 확장억제 협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대북 합의에 검증과 위반 시 대응 장치가 담기는지, 다자안보 구상이 실행 가능한 보장을 갖추는지가 시민이 확인할 항목이다.

국민의 생명은 새로운 안보 질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재료가 아니다. 동맹을 대체할 확실한 안전보장도 없이 기존 방어체제를 ‘저주’에 빗대는 주장은 국민에게 위험을 떠넘긴다. 문정인의 안보관이 위험한 까닭은 바로 그 무책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