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공익감시

민회, 새로운 인민위원회인가?

영등포구가 200명 구민을 선정해 추진하는 ‘민회’는 시민 참여의 새 실험이다. 그러나 참여의 확대가 조직된 세력의 지역 정치 독점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누가 의제와 절차를 통제하는지부터 검증해야 한다.

영등포의 포스터가 던진 불편한 질문

서울 영등포구가 발행한 《월간 영등포》 2026년 11월호 표지에는 고대 아테네를 연상시키는 신전과 의상을 배경으로 ‘영등포구 민주주의 축제 민회’라는 글자가 크게 실렸다. 11월 20일 사전토론회, 12월 3일 대토론회라는 일정도 눈에 들어온다. 주민의 의사가 구정에 반영되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취지다.[1]

이름부터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민회라는 새로운 정치 공간은 누구의 시민을 위한 공간인가.** 일터와 가정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주민의 의사가 전달되는 통로인가, 아니면 이미 조직과 활동가, 정치적 관계망을 가진 세력이 지역 의제를 선점하는 무대인가.

민회라는 단어가 ‘인민위원회’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도 있다. 역사적 인민위원회와 오늘의 민회를 동일한 제도로 볼 근거는 없다. 그러나 주민 전체의 대표를 자임하는 조직이 행정 및 정치권력과 결합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권력 집중을 경계하는 비유라면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이 사설이 묻는 것은 행사 이름의 옳고 그름보다 민주적 정당성이다. 주민의 이름으로 의제를 선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그 주민을 대표할 권한을 어디서 얻었는지 설명할 의무가 있다.

구민 200명, 추첨을 했다고 대표성이 완성되는가

영등포구의 10월 16일 연장공고에 따르면 참가자는 주민 200명이다. 신청자 가운데 무작위로 추첨하며, 신청 기한은 10월 30일까지다. 11월 5일 토론 주제를 공개하고 11월 20일 영등포동 주민센터에서 사전토론회, 12월 3일 신길책마루문화센터에서 대토론회를 연다. 이 과정에서 최종 정책 의제 2~3개를 선정할 계획이다.[1]

공개모집과 추첨은 운영자의 임의 선발을 줄일 수 있는 장치다. 다만 ‘신청자 중 추첨’과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한 대표성 있는 무작위 표집은 서로 다르다. 행사 소식을 알고 신청할 시간과 의지가 있는 주민이 먼저 선별되기 때문이다.

평일 오후에 열리는 토론회에 직장인, 자영업자, 돌봄을 책임지는 시민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모집 과정에서 어떤 지역·연령·직업군이 빠졌는지, 참석하지 못한 주민이 사후에 반론이나 수정 의견을 낼 수 있는지 공개돼야 한다.

OECD는 시민참여의 모집 방식으로 공개모집과 시민추첨을 구별하고, 대표적 숙의절차에서는 주민 전체의 인구 구성에 근접하도록 무작위 초청과 층화 선정 등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3] **추첨이라는 형식만으로 ‘200명이 모든 구민의 뜻’이라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누가 토론 의제를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는가

민회의 핵심은 사람을 모으는 행사가 아니라 의제를 만드는 권력에 있다. 온라인이나 주민 제안으로 들어온 안건 중 무엇을 토론에 올릴지, 자료는 누가 작성할지, 어느 전문가가 참여할지, 어떤 질문으로 표결할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영등포구는 주민이 원탁토론과 투표로 대표 의제를 정하고 결과를 다음 해 구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2] 여기서 공론장의 결과가 행정에 어떤 구속력을 갖는지, 기존 구의회의 예산·조례 심의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분명하게 공표돼야 한다.

논란이 예상되는 안건은 반대 견해와 비용·편익 자료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주민이 처음부터 제기하지 못한 쟁점을 운영진이 임의로 제외했다면 그 사실도 기록해야 한다. 의제 선정위원, 퍼실리테이터, 정책자문가의 선정 경로와 이해충돌 여부 역시 공개 대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민참여가 정치적 정당성을 빌려오는 절차로 변질되는 경우다. ‘구민이 선택했다’는 한마디가 담당 공무원과 선출직 정치인의 책임을 가려서는 안 된다. 시민이 참여한 결정일수록 과정과 책임은 더 선명해져야 한다.

시민참여기본법과 결합할 때 커지는 구조적 위험

이 실험을 고립된 지역행사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해식 의원 등 29명이 2025년 12월 31일 발의한 「시민참여기본법안」(의안번호 2215823)은 국가시민참여위원회, 광역 단위 참여기구, 시민참여지원센터와 시민사회조직의 행정적·재정적 지원 근거를 제안하고 있다. 2026년 10월 현재 법안은 국회 심사 중인 제안이며 시행된 법률이 아니다.[4]

법안의 목적은 시민의 정책참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가 참여정책의 종합계획과 기구, 지원체계를 구성하면 시민사회와 행정의 경계가 흐려질 위험도 생긴다. 이런 구조에서 공적 예산과 참여기회를 누가 배분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정치인에게는 주민의 이름을 빌린 정책적 정당성이, 기존 활동가 조직에는 회의석과 사업비와 영향력이 생길 수 있다. 두 이해가 만나는 제도는 특히 엄격한 감시가 필요하다. 이미 결탁이 입증됐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포획 가능성을 사전에 막을 법률적 설계는 지금 요구할 수 있다.

앞선 연재 ① [「시민사회를 지원한다는 국가, 시민의 자유는 누가 지키는가」](/columns/who-represents-civil-society-citizen-freedom-part1-2026)는 바로 이 국가와 시민사회 관계의 재편을 다뤘다. 두 번째 질문은 그 구조가 지역 현장의 민회와 시민의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다.

조직된 시민과 조직되지 않은 시민은 같지 않다

시민단체는 환경과 노동, 복지와 납세자 보호, 소비자 권익 등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축적한다. 그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단체 대표나 활동가가 회의에 참석했다고 해서 주민 전체의 정치적 의사가 대표된 것은 아니다.

조직에는 전담 인력과 정보망, 회의 참석 경험이 있다. 일반 시민에게는 일과 가족, 생계가 먼저다. 동일한 참가신청 창구를 열어두어도 실제 발언권은 조직된 집단으로 기울기 쉽다. 시민참여의 형식이 정치적 동원과 만나면 그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이 문제는 시민참여기본법을 논의하는 시민사회 내부 자료에서도 발견된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공개 연구자료는 과거 협치의 과정에서 활동가가 행정에 흡수되고 시민사회조직이 행정사업의 하청구조에 놓였으며, 현장의 명확한 위임 없이 개인이 위원회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문제를 지적했다.[5]

**국가를 감시하라고 만들어진 시민단체가 국가와 함께 지역 의제를 결정하는 내부자가 된다면 누가 이들을 감시할 것인가.** 이 질문은 시민단체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동네까지 진영으로 나누는 자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자치는 마을의 안전한 통학로, 주차, 돌봄, 상권, 공공시설처럼 가까운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기에 정파적 조직의 논리가 들어오면 동네의 작은 문제도 편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지역에서 활동해온 단체와 정치권이 반복적으로 의제를 독점한다면 자치의 이름은 남고 시민의 자유는 줄어든다.

제도 운영에 실제로 그러한 장악이 있었는지는 자료로 판단해야 한다. 영등포 민회가 특정 정파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공개된 모집 공고와 홍보물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정적인 낙인보다 참가자 선정 명단의 익명 통계, 운영용역 계약, 의제 편집 기준, 이해충돌 내역과 회의 기록의 공개 요구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주민,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주민, 시민단체 가입을 원하지 않는 주민의 권리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원탁의 숫자를 늘리는 일보다 토론장 밖 시민의 이의제기권을 보장하는 일이 훨씬 중요할 수 있다.

주민이 정치적 조직의 지시를 따라야만 발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주민자치가 아니다. 민회의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은 행사장의 박수와 투표율보다 반대하는 시민이 얼마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는가에 있다.

민회가 인민위원회가 되지 않으려면

첫째, 참여자는 공정한 선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개모집의 한계를 밝히고 지역·연령·성별과 생활조건의 편중을 조사해야 한다. 일정과 정보 접근에서 불리한 직장인·자영업자·돌봄 담당자를 위한 보완 수단도 필요하다.

둘째, 의제 선정과 자료 작성, 전문가 섭외, 사회자와 운영업체 선정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 단체·정당·행정기관과의 이해관계, 주민이 제시한 반대 의견, 최종 결정에서 제외된 안건도 기록해야 한다.

셋째, 민회에서 채택된 의제가 구정에 반영되는 절차를 명문화해야 한다. 누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지, 선출된 구의회의 심의와 통제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참여하지 않은 주민이 재검토를 요구할 경로는 무엇인지 알려야 한다.

넷째, 참여기구가 상설 조직으로 확대될 경우 회전문 인사와 반복적인 보조금 수령, 특정 단체의 의석 독점을 제어해야 한다. 자율적 시민사회와 행정 권력이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긴장관계를 지키는 것이 자치의 조건이다.

시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에게 시민이 묻는다

민회와 시민의회가 민주주의를 깊게 할 가능성은 있다. 선출직만으로 모든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에 시민의 지식과 경험을 정책에 반영하는 통로는 필요하다. 그렇기에 그 통로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특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는 유능하지만 제한된 국가다. 정치권력과 친한 시민단체를 키워 주민자치의 이름으로 지역사회를 관리하는 국가를 경계해야 한다. 주민의 의견을 듣겠다는 명분은 실제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확장하는 절차로 입증돼야 한다.

영등포의 민회가 주민 모두의 공간인지, 조직된 일부의 정치적 자산으로 남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가오는 토론회가 바로 검증의 출발점이다. 정해진 결론을 주민의 이름으로 승인받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민의 정치를 시민단체에 넘겨줄 수는 없다.** 선출된 권력도, 스스로 시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조직도 시민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민회의 문을 연 사람들이 가장 먼저 대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당신들에게 우리를 대표할 권한을 주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