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법관을 다시 고르라는 권력
청와대는 손봉기 후보자의 재제청을 요구했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거부했다. 제청권과 임명권의 충돌에 탄핵 압박과 대법관 증원이 겹쳤다. 씨앗은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각 권력이 어디까지 행사됐는지 시민 앞에 밝히라고 요구한다.
국회에 닿지 못한 대법관 제청
8월 18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봉기 후보자를 대법관으로 제청했다. 청와대는 열흘 뒤 그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겠다고 밝히고 다른 후보자를 제청하라고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은 9월 22일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냈고, 23일에는 청와대가 주장한 제청 절차의 흠결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다시 밝혔다. 청와대는 후보자 임명을 거부한다는 뜻을 공문에 분명히 적었다며 맞섰다. 국회는 아직 후보자를 검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제청은 대법원장이 하고, 동의는 국회가 하며, 임명은 대통령이 한다. 헌법 제104조가 권한을 셋으로 나눈 까닭은 한 사람이 대법관을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의 임명권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제청을 돌려보내 새 후보를 요구하는 권한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 선례가 굳어지면 대법원장의 제청은 독립된 판단이 아니라 청와대가 받아들일 명단을 작성하는 절차로 변한다.
관례가 대통령의 지명권이 될 수는 없다
청와대의 문제의식에도 따져볼 대목은 있다.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고 관례와 달리 서면으로 제청했다는 비판이다. 대법관의 자질이나 제청 과정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힐 책임이 있다. 임명권을 단순히 도장 찍는 권한으로 취급할 수도 없다.
하지만 관례와 헌법은 다르다. 사전 합의가 제청의 효력 요건이라는 명문 규정은 없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후보를 교체하라고 지시할 권한까지 당연히 생기지도 않는다. 청와대가 말하는 ‘절차의 흠결’이 무엇인지, 어느 법률 조항과 어떤 행위가 충돌했는지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 역시 후보 추천과 검증 과정을 설명하고 장기 공석의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설명 책임과 권한의 굴복은 같은 말이 아니다.
탄핵 압박과 대법관 증원을 함께 봐야 한다
이 갈등을 조희대 한 사람에 대한 호오로만 보면 더 큰 움직임을 놓친다. 여권에서는 대법원장 사퇴와 탄핵이 거론됐고, 국회는 대법관 정원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는 법을 통과시켰다. 사건 적체를 줄이고 대법원의 구성을 다양하게 하자는 취지는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 수장의 제청을 되돌리고, 그 수장의 거취를 압박하며, 최고법원의 의석까지 크게 늘리는 일을 한 정권 아래에서 함께 추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권력의 한계를 정하는 제도를 현 권력의 필요에 맞춰 다시 짜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대법원장의 판단을 비판할 수 있다. 판결에 항의할 수도 있다. 위법한 직무행위가 확인되면 탄핵도 헌법이 허용한다. 그러나 정치적 불복종을 위법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 탄핵은 헌법을 지키는 수단이 아니라 법관을 움직이는 몽둥이가 된다. 9월 23일 여당 대표가 재제청 거부에 ‘내란적 성격’이 있다고 말한 것은 특히 위험하다. 제청권과 임명권의 해석이 다투어지는 사건에 내란이라는 말을 얹는다고 법적 근거가 생기는가. 권력을 제한할 때 쓰여야 할 언어가 독립 기관을 굴복시키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 다툼의 비용은 시민이 치른다
정치권은 이를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자존심 싸움처럼 말한다. 그러나 최고법원에 빈자리가 남는 동안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은 시민이다. 행정부가 후보의 적격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어도, 그 이의를 처리하는 방식 때문에 국회의 동의권까지 멈춰 세웠다면 그 비용도 설명해야 한다. 국회의 문을 열기 전에 대통령실과 대법원장이 서로의 권한부터 확인하겠다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시민의 재판은 뒤로 밀린다.
씨앗은 이번 재제청 요구가 삼권분립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라고 본다. 대통령이 임명할 권한이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장이 누구를 제청할지 사실상 통제하고, 다수당이 그 선택에 따르지 않는 대법원장을 탄핵으로 압박한다면 사법부는 독립 기관의 이름만 남는다. 행정권과 입법권을 쥔 세력이 재판부의 인선까지 자기 판단 아래 두는 길이다. 선거에서 이긴 권력이라 해서 헌법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권력 집중이 쌓일 때 시민은 다음 선거만으로 견제하기 어려운 문민 권력의 독주를 맞게 된다.
누가 자기 권한을 넓혀 쓰고 있는가
대법관 증원이 실제 재판 지연을 얼마나 줄이는지, 새 자리는 언제 생기고 누가 임명하는지, 손봉기 후보자의 적격성에 대한 구체적 반대 사유는 무엇인지, 대법원은 후보를 어떤 기준으로 추렸는지 시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청와대의 공문과 대법원의 답변도 공개 가능한 부분은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쪽이 자기 권한을 넓혀 쓰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정권은 바뀌지만 인사권을 늘려 쓴 선례는 남는다. 오늘 내 편의 대통령에게 허용한 일이 내일 상대편 대통령의 손에도 들어간다. 다수당은 사법부의 주인이 아니다. 대통령도 대법관을 마음대로 다시 고르라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