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내용 없는 깡통이 더 요란하다

LH를 쪼개는 것이 개혁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조직도가 아니라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이 요란하다

내용 없는 깡통이 더 요란한 법이다. 유난히 이번 정부 들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공공기관을 뜯어고치고 조직을 흔드는 일이 많다. 합치고, 나누고, 없애고, 새로 만든다.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조직개편만큼 눈에 잘 보이는 것도 없다.

하지만 국가 운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자 『도덕경』에는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이라는 말이 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생선을 빨리 익히겠다고 계속 뒤집고 찌르고 손대면 결국 살이 부서진다. 국가와 공공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LH를 둘러싼 논의를 보면 생선을 어떻게 잘 익힐 것인가보다 얼마나 세게 뒤집을 것인가에 관심이 더 많은 듯하다.

  •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는데, LH부터 쪼갠다

지금 정부가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은 LH의 조직도가 아니다. 왜 주택 공급이 충분히 늘지 않았는지, 왜 시민들의 주거 불안이 커졌는지, 민간 공급과 정비사업을 가로막은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금융과 세제·인허가 정책이 시장에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실패의 원인을 충분히 입증하기도 전에 거대한 조직분리라는 처방이 먼저 등장했다. 답을 먼저 정해 놓고 이유를 뒤에서 맞춰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정책 실패 직후 대규모 개혁안을 꺼내 들면 정치적으로는 장면을 바꾸기 쉽다. 어제까지의 실패보다 오늘의 ‘개혁 드라이브’가 뉴스가 된다. 당장 강한 정부, 일하는 정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속도와 주택 공급의 속도는 같은 것이 아니다.

수천 명 조직을 쪼개는 동안 개혁의 시간은 흘러간다

LH는 현재도 전국의 택지개발, 공공분양, 임대주택, 보상, 주거복지 사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이런 조직을 둘로 나누는 순간 직원만 나뉘는 것이 아니다. 자산과 부채, 진행 중인 사업, 계약과 책임, 시스템과 인력을 함께 나눠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정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그것을 개혁 과정이라고 부르겠지만 시민에게는 주택 공급이 늦어지는 시간이다. 정부에게 조직개편의 시간과 시민이 집을 기다리는 시간은 다르다.

개혁의 이름으로 시민의 생활 인프라를 정치의 실험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주택 소유를 도덕의 문제로 만들지 말라

부동산 정책에서 더 우려되는 것은 주택 소유를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이다. 다주택자는 곧 투기자라는 식의 정치적 언어가 반복됐고,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한 집에서 살아온 시민까지 규제와 징벌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일이 이어졌다.

투기가 있다면 투기를 잡아야 한다. 불법이 있다면 불법을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소유 그 자체를 도덕적으로 심판하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사회가 된다.

자가주택도 선택이고 민간임대도 선택이며 공공임대도 선택이다. 좋은 주택정책은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강요하는 정책이 아니라 시민이 자신의 형편과 판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공급을 넓혀주는 정책이다.

씨앗은 LH를 그대로 두자고 말하지 않는다

씨앗의 소리는 LH를 지금 모습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LH에는 비대한 조직, 불투명한 회계, 부채, 내부 통제와 사업구조 등 손봐야 할 문제가 많다.

그러나 공공기관 개혁의 첫 단추는 조직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증명하는 일이다. LH가 너무 커서 주택 공급이 늦어진 것이라면 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분리하면 공급기간이 얼마나 줄고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는지도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 검증 없이 먼저 조직부터 쪼개는 것은 개혁이라기보다 국민을 상대로 한 행정 실험에 가깝다.

유능한 정부는 함부로 뒤집지 않는다

유능한 정부는 많이 뜯어고치는 정부가 아니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알고, 동시에 무엇은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정부다.

LH 분리가 정말 필요하다면 정부는 먼저 시민 앞에 답해야 한다. 왜 나누는가. 무엇이 잘못됐는가. 나누면 무엇이 좋아지는가. 주택 공급은 더 빨라지는가. 부채와 비용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 과정에서 시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얼마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LH 분리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다. 개혁은 시끄럽다고 개혁이 아니다. 좋은 개혁은 결과로 증명된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때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가를 뒤집는 힘이 아니라 함부로 뒤집지 않는 절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