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이재명 정부, 미테랑 정부를 따르려 하나?

미테랑의 1982년 60세 은퇴 결정은 왜 40년 뒤에도 프랑스를 붙잡는가. 복지의 약속과 비용, 기업 부담, 한국의 현금지원 정책과 미래세대의 선택권을 분석한다.

정치인의 약속은 박수로 끝나지만, 국민의 청구서는 남는다

월급에서 세금과 보험료가 빠져나간다. 장바구니 물가는 오르고 노후는 불안하다. 그런데 정치인은 또 다른 지원금과 복지 확대를 약속한다.

당장 도움을 받는 시민에게 그 약속은 반갑다. 문제는 얼마를 누구에게서 걷고,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을 때다. 정치인은 공로를 가져가지만 그 비용은 임기가 끝난 뒤에도 시민과 기업에 남는다.

복지를 확대하는 일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재원과 지속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은 채 혜택부터 약속하고 비용을 미래로 미루는 정치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가 프랑스다.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의 좌파 정부는 노동자의 완전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0세로 낮췄다. 당시에는 역사적 진보였지만, 이후 프랑스 정치는 그 약속을 조정하는 데 수십 년의 갈등을 겪었다.

오늘의 프랑스 위기를 미테랑 한 사람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비용보다 당장의 혜택을 먼저 내건 결정이 얼마나 오래 정치와 재정을 붙잡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재명 정부가 확대하는 재정지출과 현금지원 정책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 프랑스의 경험은 지금 한국 정치에 같은 질문을 던진다.**

1982년, 미테랑은 왜 ‘60세 은퇴’를 약속했나

1981년 사회당과 공산당의 지지 기반 위에서 집권한 미테랑은 노동시간 단축과 유급휴가 확대, 국유화와 사회보장 강화를 추진했다. 노동자의 삶을 바꾼다는 약속은 그의 정치적 상징이었다.

1982년 3월 26일의 명령은 일정한 보험료 납부기간을 충족한 노동자에게 60세부터 완전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연금을 준 정책은 아니었지만, 기존의 65세 기준을 5년 앞당긴 중대한 변화였다.[1]

미테랑 정부의 기대는 두 가지였다. 노동자에게 더 긴 은퇴생활을 보장하고, 고령 근로자가 일찍 물러나면 청년에게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자리는 정해진 수만큼 나눠 갖는 자리가 아니다. 기업은 주문과 생산성, 필요한 기술에 따라 사람을 고용한다. 고령자 한 명이 은퇴한다고 청년 한 명의 취업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연금 지급기간은 실제로 길어질 수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수급 시점을 5년 앞당기면 지급해야 할 급여와 세대 간 부담의 구조가 달라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의 시간과 재정의 시간이 갈라진다. 정책의 환영은 즉각적이지만 늘어난 의무는 수십 년 뒤에도 남는다. 그때가 되면 혜택을 약속한 정치인은 자리를 떠난 뒤다.

**1982년의 핵심 문제는 은퇴자에게 혜택을 주었다는 사실보다, 그 혜택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 충분했느냐는 데 있다.**

혜택은 한 번에 늘렸지만, 개혁에는 40년이 걸렸다

프랑스 연금은 대체로 현재 근로자와 기업이 낸 보험료로 현재 은퇴자의 급여를 지급하는 부과 방식이다. 이 제도를 떠받치는 것은 근로자의 수와 고용, 임금, 그리고 경제성장이다.

하지만 인구구조는 달라졌다. OECD의 전망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65세 이상 한 명당 생산연령 인구는 2024년 약 2.5명에서 2050년에는 약 1.9명으로 줄어든다.[5]

은퇴자는 늘고 보험료를 낼 사람의 비중이 줄어드니 과거의 약속은 점점 무거워진다. 프랑스의 연금 지출은 2025년 GDP의 약 14.1%에 달했고, OECD가 제시한 2022년 비교에서 순소득대체율도 약 72%로 독일의 약 55%보다 높았다.[5]

역대 정부는 뒤늦게 제도를 고치려 했다. 2010년 사르코지 정부는 법정 은퇴 연령을 62세로 올렸고, 2023년 마크롱 정부는 64세까지 단계적으로 높이는 개혁을 법제화했다. 2026년에는 일부 추가 상향 일정이 유예됐다.[1][7]

왜 개혁은 이렇게 어려운가. 시민들은 수십 년간 세금과 보험료를 내면서 정부가 정한 은퇴 시점에 맞춰 자신의 노후를 설계했다. 이제 국가가 약속을 바꾸겠다고 하니 배신감을 느낀다.

그들의 분노를 단순히 이기심으로 치부할 수 없다. 문제는 국민에게 장기적 권리를 약속할 때 그 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정치에도 있다.

한 정부는 혜택을 확대하고 다음 정부는 그 혜택을 조정하느라 정치적 생명을 건다. 프랑스의 연금 논란은 **복지의 약속은 정치적으로 만들기 쉬워도, 그 약속의 비용을 다시 조정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가부채가 늘고, 기업과 근로자는 부담을 나눈다

프랑스의 재정난이 연금 하나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성장 둔화, 산업구조 변화, 고령화, 경제위기에 대응한 재정지출과 역대 정부의 정책 선택이 함께 작용했다.

그 결과 프랑스의 2026년 2분기 국가채무는 GDP의 약 119%에 이르렀다.[3] 정부가 지출을 줄이려 하면 시민이 반발하고, 세금을 더 걷으려 하면 이미 높은 부담이 걸림돌이 된다.

2025년 프랑스 정부지출은 GDP의 약 57.2%에 달했다. 국가가 지출하는 돈이 크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이미 제도화된 급여와 공공서비스를 쉽게 줄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5]

복지의 재원은 공중에서 생기지 않는다. OECD에 따르면 2025년 프랑스 평균임금의 독신 근로자를 고용할 때 고용주가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는 총노동비용의 26.7%였고, 소득세와 노사 사회보험료를 포함한 조세격차는 47.2%에 달했다.[6]

높은 노동비용이 제조업의 모든 어려움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채용과 투자에 부담을 주고 국제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일자리와 임금이 약해지면 복지를 유지할 보험료 기반도 약해질 수 있다.

국가가 복지를 늘리려면 이를 지탱할 기업과 근로자의 생산활동도 함께 살아 있어야 한다. 오늘의 급여를 유지하려다 내일의 일자리와 세원을 위축시킨다면 정책은 스스로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셈이다.

프랑스의 진짜 경고는 부채비율 숫자 하나가 아니다. **지출은 굳어지고, 새로운 세원은 부족해지며, 정부와 시민 사이의 신뢰마저 흔들리는 구조**에 있다.

이재명 정부는 무엇을 미테랑에게서 배우고 있는가

한국과 1980년대 프랑스는 같은 나라가 아니다. 미테랑의 조기 은퇴는 장기간 지급되는 연금 권리였고, 한국의 소비쿠폰이나 일부 현금지원은 한시적 경기 대응일 수도 있다. 두 정책을 같은 제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비교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정책의 수혜는 즉시 눈에 보이지만, 비용은 세금과 국채, 보험료, 기업 부담으로 분산되어 늦게 나타나는 정치적 유인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현금지원과 지역화폐, 보조금, 재정지출 확대를 평가할 때도 혜택의 크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시적 대책인지, 반복 지급되는 제도로 바뀌는지, 중단할 조건은 무엇인지가 먼저 공개돼야 한다.

정책이 소비를 늘리거나 취약계층의 위기를 완화할 수도 있다. 그 효과는 집행 결과로 검증할 문제다. 그러나 재원 설명 없이 사업을 반복하면 일시적인 지원이 영구적인 정치적 기대가 될 위험도 있다.

미테랑은 국유화와 공공부문 확대로 국가의 역할을 키웠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은 재정과 정부 개입이 민간의 투자와 시민의 자율을 돕는지, 아니면 이를 대신하려 드는지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것과 국민이 스스로 일하고 기업을 운영하며 미래를 선택할 기회가 넓어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정부가 약속한 돈의 액수보다 그 정책 이후에 남는 성장과 일자리, 재정 여력을 살펴야 한다.

**미테랑과 이재명 정부를 비교하는 핵심은 이념적 이름표가 아니라 하나의 기준이다. 오늘 지급한 혜택의 비용과 책임을 미래 국민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설명하고 있는가.**

한국은 프랑스보다 빚이 적지만, 늙어가는 속도는 빠르다

현재 국가채무만 놓고 보면 한국은 프랑스와 다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6년 예산 분석은 한국 국가채무를 약 1,413조 8,000억 원, GDP 대비 51.6%로 전망했다.[8]

그러나 지금의 부채비율이 낮다고 미래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은 출산율이 매우 낮고 생산연령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연금과 의료, 돌봄에 필요한 지출은 늘어나는 반면 이를 부담할 사람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인구구조의 변화가 빠르다는 것은 정책을 천천히 고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 번 만든 복지 약속이 장기간 지속되면 미래의 세금과 보험료 부담은 예상보다 빨리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도 이미 조정에 들어갔다. 2025년 개정에 따라 보험료율은 9%에서 2033년까지 13%로 단계적으로 인상되고, 2026년부터 소득대체율은 43%로 조정됐다.[9]

이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노후보장을 함께 다루려는 시도지만, 세대별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보험료, 수급 연령, 급여 수준을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정치인이 지금의 유권자에게 혜택을 약속하는 동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민들은 그 결정에 표를 행사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래세대의 이해가 계산에서 빠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이 두려워할 것은 당장의 프랑스식 파산이라는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지금은 고칠 수 있는 제도를 나중에는 고칠 수 없게 만드는 정치적 지연이다.**

시민에게 비용을 감추는 정치가 가장 무책임하다

지원금을 받을 때는 정부의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그 돈을 마련하는 세금과 이자,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은 누구의 이름으로도 선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 결과 국민은 실제 비용보다 저렴해 보이는 약속을 선택할 위험이 있다. 정치인은 혜택을 앞세워 지지를 얻고, 몇 년 뒤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 국민에게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한다.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정부가 정한 규칙을 믿고 보험료를 납부하며 살았다. 문제를 만든 정책 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자신들의 은퇴 계획을 수정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책임 있는 정치는 국민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는 정치가 아니다. 재정사업을 새로 만든다면 얼마가 들고, 누가 부담하며, 언제까지 지급하고, 기대한 성과가 없을 때 어떻게 중단할 것인지까지 설명하는 정치다.

증세든 국채 발행이든 기업의 의무 확대든 비용을 부담할 주체는 명확하다. 세금과 보험료를 부담하는 시민, 노동비용을 감당하는 기업, 미래의 납세자가 그 주체다.

시민은 정부가 베푸는 지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상이 아니다. 정책의 대가와 결과를 알고 선택할 권리를 가진 주체다. 정치가 그 비용을 숨길수록 시민의 자유로운 판단도 좁아진다.

복지를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의 진영 싸움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재원, 공개된 비용, 검증 가능한 성과다. 이것을 말하지 않는 정치의 약속은 결국 불신을 키운다.

미테랑의 60세 은퇴, 한국 정치에 남긴 질문

1982년 미테랑의 조치는 노동자에게 분명한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긴 지급기간과 세대 간 재정 부담이라는 과제를 남겼고, 프랑스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연금제도를 고치는 데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것은 프랑스가 오직 한 정치인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기적 재정 약속을 정치적 성과로 만들고 그 비용을 나중에 조정하려는 모든 정부가 마주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한국에서도 정치인은 더 많은 지원과 더 큰 국가의 역할을 약속한다. 하지만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혜택의 목록만이 아니다. 그 약속을 지킬 재원과, 성장과 일자리를 유지할 방법과, 미래세대가 부담할 몫에 대한 설명이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역시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당장의 소비와 인기만이 아니라 장기 재정비용, 민간의 활력, 시민의 자립과 미래세대의 선택권이라는 기준이다.

**정치인은 오늘의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청구서를 받는 사람은 내일의 국민이다.**

프랑스가 한국에 보내는 경고는 명료하다. 한 번의 인기 있는 약속이 수십 년 뒤에는 고치기 어려운 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은 더 많은 청구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하고 도전하며 미래를 선택할 자유다. 이재명 정부가 미테랑의 역사에서 읽어야 할 것은 바로 그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