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금으로 집값 안 잡겠다더니, 시민의 집을 구할 길부터 태웠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던 약속 뒤에 다시 과세 강화가 등장했다. 대출로 막힌 수요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높은 거래 세금과 바뀌는 정책은 매도를 늦춘다. 공급은 늦고 시민의 주거비는 커지는 시장에서, 정책 실패의 비용은 누가 보상하는가.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지난해 5월 28일 한 말이다. 수요를 억제하면 다른 곳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생긴다는 설명도 했다. 공급을 늘려 수요와 공급을 맞추겠다는 것이 당시의 약속이었다.[1]
그런데 집권 뒤 정부는 다시 부동산 세금 카드를 꺼냈다. 지난 8월 고가·비거주·다주택의 세 부담을 강화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청와대는 집값을 잡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과세 형평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9월에는 비거주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 축소안 등 일부 내용을 되돌렸다.[2][3]
정책의 이름과 설명은 바뀌지만 시민이 계산하는 것은 같다. 집을 사고, 보유하고, 팔 때 비용이 얼마나 늘어나는가. 다음에는 또 어떤 기준이 바뀌는가. 세금으로 수요를 억누르지 않겠다던 약속과 다시 등장한 과세 강화 사이에서 시민은 자신의 주거 계획을 고쳐 쓴다.
그 사이 서울 아파트값은 87주 연속 올랐다. 지난해 10월 셋째 주부터 올해 10월 첫째 주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10.42% 상승했다. 성북구는 16.52%, 서대문구는 14.40% 올랐다. 이미 비싼 집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민이 찾아가던 지역까지 가파르게 비싸졌다.[4][5]
이 상승을 세금 하나의 결과로 계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금과 대출로 수요를 누르는 정책 아래에서 시민의 주거 부담이 커지고, 수요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흐름은 분명히 드러났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지적했던 정책의 약점을 자신의 정부가 다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대출로 막힌 수요는 다른 집을 찾는다
집값을 잡겠다고 살 사람을 막으면 집을 구할 필요까지 사라질까. 직장은 그대로 있고 아이는 학교에 다닌다. 가족이 살 공간은 여전히 필요하다. 대출을 막아 강남의 비싼 집을 살 수 없게 된 사람은 강북이나 수도권 외곽에서 감당할 집을 찾는다.
여러 사람이 같은 곳으로 옮겨가면 그곳의 한정된 매물을 놓고 경쟁한다. 강남의 거래와 가격을 눌렀는데 서민이 찾는 지역의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는 이유다. 연합뉴스도 고가주택의 대출 문턱이 높아진 뒤 젊은 실수요자가 중저가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5]
강남권 약세에는 절세 목적의 급매물 등 다른 요인도 있었다. 그러나 현금이 부족한 시민의 구매력을 막아 얻은 가격 조정을 국민의 주거 안정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가격이 조금 내려도 대출이 막혀 살 수 없다면, 그 시민에게 집은 여전히 닫힌 문이다.
팔라고 압박하면서 팔지 않을 이유를 만든다
팔 사람을 세금으로 압박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보유세를 올려 매물을 내놓게 하겠다면서 양도세까지 높이면, 집주인은 ‘지금 팔지 말고 기다리자’고 계산할 수 있다. 팔라고 압박하면서 팔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KDI는 2017년 다주택자 양도세 강화 뒤 매매거래가 위축됐고, 중과를 한시적으로 풀었을 때에는 거래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연구는 해당 정책이 주택시장 안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집을 구하는 시민에게 필요한 매물이 세금 때문에 시장에 나오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6]
시장에 가장 무서운 것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여기에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혼란은 더 커진다.
시장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이다. 집은 오늘 사고 내일 되파는 생활용품이 아니다. 시민은 수년간 모은 돈과 앞으로 갚을 빚을 계산해 결정한다. 그런데 대출 한도와 세금 기준, 거주 요건이 계속 바뀌면 그 계산의 바닥부터 흔들린다.
세금을 올렸다가 한시적으로 풀면 팔 사람은 다음 완화를 기다릴 수 있다. 대출을 더 막을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면 살 사람은 지금 가능한 집이라도 서둘러 잡으려 할 수 있다. 정책이 기다리는 매도자와 조급한 매수자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KDI의 양도세 연구도 정책의 신뢰와 납세자가 부담을 예측할 수 있는 안정성을 강조했다.[6]
앞에서 한 약속과 뒤의 정책이 달라졌는데도 책임자가 ‘내가 언제 그랬느냐,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설명만 바꾸면 시장은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약속을 믿고 기다린 시민만 판단의 근거를 잃는다. 이런 책임 회피는 시장의 불안을 키운다.
정부가 일부 세제안을 되돌린 것은 부담을 줄이는 조정이다. 그러나 불과 29일 만에 공제 축소안을 원상복구한 경과는 처음의 설계가 시민의 생활과 시장 반응을 얼마나 충분히 검토했는지도 묻게 한다. 시민의 집과 재산은 정책의 시행착오를 연습하는 재료가 아니다.[3]
급락 전망보다 먼저 보이는 공급의 지연
그 혼란 속에서도 집이 충분히 나오면 시민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급마저 늦어진다.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LH의 올해 건설형 공공주택 착공 실적은 10월 2일 기준 연간 목표의 25.7%였다. LH 사장은 연말까지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착공 예정인 집과 오늘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은 다르다.[7]
그런 공급기관의 책임자는 집값 급락 가능성을 말한다. 시민은 아직 나오지 않은 집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하락을 믿고 기다리는 동안, 오늘의 전월세 비용을 치른다.[8][4]
쉬운 증세의 대가는 시민에게 무겁다
가장 능력 없는 정책자가 가장 쉽게 손댈 수 있는 수단이 증세다. 집을 공급하려면 땅과 기반시설을 마련하고, 인허가와 공사를 진행하고, 실제 입주까지 책임져야 한다. 세율과 과세 기준을 높이는 결정은 그보다 간단하다. 그러나 정부가 쉽게 선택한 수단의 비용이 시민에게도 가벼운 것은 아니다.
보유세를 올려 집값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는 있다. 하지만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관련 선행연구 다수에서 그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뚜렷하지 않았다고 정리했다. 국토연구원도 국내 자료 분석에서 취득세 인상이 단기 거래는 줄였지만 가격 안정 효과는 발견하지 못했다. 더 걷는 세금만큼 시민의 주거가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9][10]
공급을 늘리고 시장의 거래를 살리는 길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새집이 나오고, 기존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팔리고, 세금과 대출의 기준을 예측할 수 있으면 시민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정부가 안전과 계약 질서를 지키고 공급의 장애를 줄이는 일은 시장을 누르는 것보다 어렵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정책의 능력이다.
그 일을 충분히 해내지 못한 채 시민의 부담부터 늘리는 증세는 실패의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행위다. 시민이 모은 돈과 살아갈 선택지를 정책의 부족함을 메우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증세는 죄악이다.
정권 심판이 시민의 손실을 보상하지는 않는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집을 불태웠다는 말이 있다. 투기를 잡겠다며 세금과 대출로 시장을 누르는 동안, 내 집을 마련하려는 시민의 길과 살림까지 태워 버린다면 이보다 정확한 비유가 있을까.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책이 시민의 주거 사다리를 불태우고 있다.
정책 실패는 정권 심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정권이 심판받는다고 이미 오른 집값이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대출 문턱에서 좌절한 가족의 시간도, 계약 때마다 불어난 주거비도 자동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정권은 선거에서 책임을 질 수 있다. 시민은 매일의 삶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내 집 마련을 기다렸다가 더 높은 문턱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시민은 누가 보상하는가. 정책의 이름을 바꾸고 설명을 고쳐도 이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증세 카드가 아니다. 실제로 들어가 살 집, 원활한 거래, 믿고 계획할 수 있는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