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랑스가 남의 집 이야기로 보이는가
지출을 줄이려던 프랑스 정부가 무너졌다. 한국에서도 무상보육 조정은 지원 확대로 돌아왔고, 연금개혁 뒤에도 적자 보전은 이어졌다. 지금의 지출 확대가 다음 증세의 이유로 굳어지기 전에, 씨앗의 노모어택스는 그 계산서를 펼친다.
프랑스가 남의 집 이야기로 보이는가
나라가 돈을 쓰는 데는 박수가 쏟아진다. 돈이 떨어져 지출을 줄이려 하면 정부가 무너진다. 지금 프랑스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2025년 바이루 정부는 예산 절감과 세수 확대를 포함한 약 440억 유로 규모의 재정 조정안을 내놓았다가 의회의 신임을 잃었다. 후임 정부는 예산을 통과시키기 위해 연금개혁을 멈추는 양보를 했다. 재정을 바로잡으려 하면 정권이 버티기 어렵고, 정권이 버티려 하면 재정개혁을 뒤로 미루는 상황이다.[1][2]
2026년 10월에는 학교와 공공서비스, 생활비 문제를 둘러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일부는 방화와 약탈로 번졌다. 시민의 불만이 거리에서 폭발하는 동안 정부는 이미 쌓인 부담 때문에 움직일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3]
이것을 단순한 예산 갈등으로 볼 수 있는가. 정부가 필요한 지출을 선택하지 못하고, 의회가 재정을 조정하지 못하고, 시민이 국가의 약속과 서비스 모두를 불신하게 되면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 흔들린다. 재정 위기는 끝내 국가 운영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프랑스가 남의 집 이야기로 보이는가.
한국에서도 정부가 돈을 나눠주는 항목은 계속 늘어난다. 보조금, 지원금,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각종 구상과 청년·농촌을 대상으로 한 현금 지원이 이어진다. 하나씩 발표할 때마다 좋은 취지가 앞에 선다. 청년을 돕고, 지역을 살리고, 생활을 보장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 약속들을 모두 합친 계산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한번 시작한 지출을 나중에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더 드물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지원을 시작한 뒤에는 재정이 어렵다는 말만으로 되돌리기 힘들다는 사실을.
무상보육을 줄이려 했는데, 오히려 대상이 늘어났다
2012년 만 0∼2세 무상보육이 전 계층으로 확대됐다.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그해 9월 소득과 보육 이용 형태에 따라 지원을 조정하는 안을 내놓았다.
결과는 축소가 아니었다. 조정안은 정치적 반발 속에 관철되지 못했고, 2013년에는 만 0∼5세 전 계층으로 보육료 지원이 확대됐다. 가정양육수당 대상도 넓어졌다. 부담을 줄이려던 논의가 더 큰 지출로 이어진 것이다.[4]
이 과정에서 부모들이 잘못한 일이 무엇인가. 정부의 발표를 믿고 아이를 맡기고 생활을 설계했다. 그런데 뒤늦게 지원을 바꾸겠다고 하면 당장 가정의 지출이 늘어난다. 반발은 예상된 일이었다.
책임은 약속을 만든 정치에 있다. 지속할 재원과 비용 분담을 충분히 정리하지 않고 혜택부터 넓혀 놓은 뒤, 부담이 커지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계산서를 넘겼다.
중앙정부가 내든 지방정부가 내든 시민의 돈이다. 부담할 주머니를 바꾼다고 비용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아동수당은 시작하자마자 지급 범위가 다시 넓어졌다
아동수당에서도 지원의 범위는 빠르게 넓어졌다.
2018년 도입 당시에는 만 6세 미만 아동 가운데 소득·재산 상위 10% 가구를 제외했다. 이듬해에는 소득 기준이 사라졌고, 그해 9월에는 지급 연령도 만 7세 미만으로 확대됐다.[5]
당시에는 선별에 드는 행정비용과 복잡한 서류 제출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처음 만든 기준부터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6]
제도를 만들 때 정한 선이 그대로 남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소득 기준을 없애고, 대상 연령을 높이고, 지급액을 올리자는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 한번 지급하기 시작하면 그 돈은 가계의 생활비가 된다. 중단과 축소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정치인은 제도를 시작할 때의 비용을 말한다. 시민은 그 뒤에 이어질 확대와 유지의 비용까지 감당한다.
연금은 개혁을 해도 계산서가 오래 남는다
연금은 그 약속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보여준다.
한국은 2015년 공무원연금을 개혁했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이었다. 기여율은 7%에서 9%로 높이고, 지급률은 1.9%에서 1.7%로 낮추기로 했다. 그런데 지급률을 조정하는 데만 20년을 두었다. 기존 수급자의 연금액도 2016∼2020년 5년간 동결했다.[7]
이미 쌓인 권리와 약속을 단번에 바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개혁을 해도 과거의 지급 의무는 오래 남았다.
2024년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금은 7조4,712억 원이었다. 정부가 고용주로서 내는 보험료와 별도로, 부족한 돈을 메우기 위해 들어간 재정이다. 동아일보 사설과 서울신문 보도에서 확인되는 수치다.[8][9]
이것이 한번 굳어진 지출의 무게다. 개혁을 결정해도 계산서는 계속 도착한다. 줄이겠다는 선언만으로 다음 해 부담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민이 낸 세금 가운데 이 부족분을 메우는 데 쓰인 돈은 같은 시점에 돌봄이나 안전, 다른 지원에 다시 쓸 수 없다. 씨앗이 보는 대상은 연금 수급자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다. 약속의 규모와 재원, 세대 간 부담을 정한 제도다.
과거의 약속이 오늘의 학교를 압박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부담이 현재의 공공서비스까지 압박하고 있다. 로이터가 전한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부 예산의 32%가 공무원 연금 특별계정으로 들어간다. 각 부처가 부담하는 연금 재원이 예산의 큰 몫을 차지하는 구조다.[10]
과거의 약속을 감당하느라 오늘의 학교에 쓸 여력이 줄어든다. 시민은 많은 부담을 지는데 서비스는 나아지지 않는다. 불만은 커지고, 정부는 다시 돈을 구한다.
지출을 줄일 수 없으니 세금을 더 걷자는 말이 나온다. 세금만으로 부족하면 빚을 낸다. 빚이 늘면 이자가 붙고, 그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다른 지출을 누르거나 다시 시민의 부담을 늘린다.
이 흐름에 들어간 뒤에는 빠져나오는 일 자체가 거대한 정치적 고통이 된다. 프랑스가 지금 보여주는 경고다.
현실이 달라져도 과거의 배분 공식은 남는다
한국의 교육교부금 논쟁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학생 수와 교육 수요는 바뀌는데, 과거에 법으로 정한 배분 구조를 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서울신문은 2026년 7월 사설에서 학생 1인당 교부금이 2016년 716만 원에서 2025년 1,371만 원으로 늘었다며 개편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는 당시 내국세 연동 배분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다.[11]
필요한 교육에 돈을 쓰는 책임과 기존 예산의 몫을 계속 지키는 일은 다르다. 그러나 배분 비율이 법이 되고, 그 재원을 전제로 사업과 조직이 만들어지면 조정은 어려워진다. 현실이 달라져도 과거의 공식이 먼저 예산을 가져간다.
그동안 쌓인 약속이 다음 정부의 손발을 묶는다. 정권을 교체해도 지출 구조는 남는다. 선거에서 이겨도 이미 정해진 계산서를 받아든다.
지금 늘리는 지출이 다음 증세의 이유가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새로운 지원을 발표할 때마다 받을 금액부터 헤아린다. 그 지출을 없애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앞으로 세금을 낼 사람에게 얼마의 부담이 남는지는 뒤로 밀린다.
기본소득이든 청년지원금이든 농촌지원금이든 이름은 다르다. 계속 지급하는 제도로 굳어지면 해마다 재원이 필요하다. 선거가 돌아올 때마다 대상을 넓히고 금액을 올린다면 약속의 크기도 커진다.
이렇게 지출을 쌓아가면서 재정이 어려워진 뒤 정리하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프랑스에서는 그 정리를 시도한 정부부터 무너졌다. 한국에서도 무상보육을 조정하려던 안은 더 넓은 지원으로 돌아왔다.
우리도 감당하기 어려운 약속을 계속 늘린다면, 프랑스에서 보는 끔찍한 갈등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그때 가서 “이제 줄이자”고 말하는 것은 지금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씨앗이 증세반대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이 번 돈을 정부가 더 가져가기 전에, 이미 가져간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새로운 혜택을 약속하기 전에, 그 약속이 앞으로 시민의 소득을 얼마나 묶어 놓는지 드러내는 일이다.
보조금의 목적이 좋다는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원금에 박수가 나온다는 이유로 지속 가능성이 증명되지도 않는다. 사업의 성과와 종료 조건, 향후 누적 비용, 부족해질 재원을 누가 부담할지가 함께 공개될 때 약속의 실체가 보인다.
정치인의 임기는 몇 년이다. 그가 만든 지급 의무는 수십 년 남을 수 있다.
프랑스의 위기를 구경만 할 시간이 아니다. 지금 늘리는 지출이 나중에는 줄일 수 없는 의무가 되고, 그 의무가 다음 증세의 이유로 돌아온다. 씨앗의 [노모어택스 증세반대 운동](/columns/no-more-tax-increases-civic-declaration-2026)은 그 계산서를 미리 펼쳐보는 시민의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