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제북송 7년 만에 유죄 판결, 진짜 인권의 의미
2019년 강제북송과 2026년 항소심의 유죄 판결. 북한 주민의 자유를 언급하지 않은 한 변호사의 글을 함께 살피며 인권의 기준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묻는다.
판문점에서 끌려가던 두 사람, 국가는 무엇을 지켰는가
2019년 11월, 판문점 군사분계선 앞에서 한 북한 어민이 몸부림쳤다. 북쪽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며 주저앉고 몸을 뒤틀었다. 남측 관계자들이 그를 일으켜 세워 북측으로 인계한 장면은 2022년 통일부가 공개한 사진과 영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5]
그로부터 7년이 흐른 2026년 10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강제북송에 관여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공모하거나 결정에 관여했다는 증명이 부족해 무죄를 선고받았다.[1]
2025년 1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됐으나 형의 선고가 유예됐다. 이번 항소심에서 형량이 무거워졌고 피고인들은 상고 방침을 밝혔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아직 대법원에서 확정되지 않았다.[1]
두 어민에게는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했다는 중대한 혐의가 제기됐다. 정부는 이들의 귀순 의사가 진정하지 않고 우리 국민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들이 흉악범이라면 철저히 수사하고 증거와 법에 따라 책임을 가리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었다.
**그들이 무고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권을 지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흉악범일지라도 국가가 빼앗을 수 없는 최소한의 권리와 재판받을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다.**
인권연대에 올라온 한 변호사의 글
최근 인권연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장 모 변호사의 글을 읽다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10월 13일 게재된 그 기고문은 영화 《암살자(들)》 논란을 계기로 국가보안법과 한국 사회의 반공체제를 비판한다.[2]
글에는 ‘친미극우보수반동세력’, ‘유신파쇼독재정권’, ‘친미극우파쇼 추종자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진실을 독점한다고 주장하며 자유와 민주주의, 진리와 정의, 양심과 인륜을 되찾자고 호소한다.[2]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다. 권위주의 시대 이 법이 정치적 탄압에 동원됐던 역사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글에서는 북한 주민의 표현의 자유와 북한 권력의 인권침해가 논의되지 않는다.
한 편의 글에 모든 인권 문제를 담을 수 없고, 이를 근거로 해당 변호사의 전체 활동을 판단할 수도 없다. 다만 중요한 질문은 남는다.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에 맞서는 자유는 그렇게 절박하면서 북한의 권력에 짓눌린 사람들의 자유는 왜 논의에서 보이지 않는가.**
북한 주민에게는 국가를 비판할 자유가 있는가
대한민국에서 시민은 대통령을 비판하고, 정부를 규탄하고, 법률 폐지를 주장하는 글을 공개할 수 있다. 장 모 변호사의 글 역시 인권단체 홈페이지에 게재됐고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 주장에 반대하는 시민도 공개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어떠한가. 북한 주민이 김정은 정권을 비판하고 노동당의 권력 독점을 반대하는 글을 자유롭게 공개할 수 있는가. 자신이 사는 국가의 통제체제를 바꾸자는 시민운동을 조직할 수 있는가.
2026년 3월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북한 주민의 표현의 자유, 정보 접근권, 이동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사람들이 중대한 인권침해와 장기 구금을 당한다는 문제도 지적했다.[3]
한국의 과거 국가폭력에 저항한 경험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북한의 현재 국가폭력을 외면할 이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인권은 국경을 넘는 순간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에 저항할 자유가 중요하다면 북한 주민에게도 똑같이 중요하다.**
흉악범의 인권까지 지키는 이유
‘16명을 살해했다는 사람에게까지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 혐의가 사실이라면 피해자와 유족의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 또한 국가가 맡은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수사와 재판은 더욱 엄격했어야 했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혐의를 판단하고 절차를 생략해 송환해버리면 피해자의 억울함도, 피의자의 형사책임도 법정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19년 사건 직후부터 강제북송을 비판했다. 살인 혐의가 있더라도 고문 위험이 있는 곳으로 사람을 돌려보내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조사와 변호, 송환에 이의를 제기할 절차를 보장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4]
고문방지협약 제3조는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상당한 근거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송환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인권은 착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한계를 정하는 원칙이다.
**오늘 국가는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법을 무시하고, 내일은 국가에 반대하는 시민에게도 같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가 흉악범의 권리까지 지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을 진영의 언어로 만드는 순간
권위주의 시대 고문과 불법구금, 사상 탄압에 맞섰던 시민들의 용기는 한국 민주화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과거의 저항 경험이 오늘의 모든 인권 문제에서 정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친미극우파쇼’ 같은 표현은 상대의 주장에 반박하는 대신 상대를 하나의 적대적 집단으로 규정한다. 그 안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개별 시민의 얼굴은 사라지기 쉽다. 인권을 말하는 언어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존엄도 존중하는지 돌아볼 이유가 있다.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는 시민의 권리도 보호받아야 하고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시민의 권리도 보호받아야 한다. 북송을 거부한 어민들의 권리도, 그들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는 피해자들의 권리도 함께 존중되어야 한다.
**인권은 내가 동의하는 사람에게만 적용하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내가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그 원칙이 사라지면 인권은 또 다른 권력을 정당화하는 언어가 된다.
국가보다 먼저 존재하는 시민의 권리
강제북송 항소심이 다시 확인한 핵심은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이다. 재판부는 북한 주민의 대한민국 국민 지위를 인정하고 관계 공무원의 신중한 검토 의견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북송을 결정·집행한 책임을 지적했다.[1]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다고 해서 수사와 재판을 건너뛰고 한 사람의 운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권한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두 사람이 북한에 돌아간 뒤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는 신뢰할 만한 공식 자료로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북송을 거부했고 대한민국 정부가 의사에 반해 강제로 넘겼다는 것이다.[5]
국가의 잘못을 법원이 심판할 수 있는 나라, 고위 공직자도 법 앞에서 책임을 묻는 대상이 되는 나라가 우리가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의 모습이다. 국가권력보다 시민의 권리가 앞서는 사회다.
진짜 인권은 불편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장 모 변호사에게 묻고 싶다. 북한 주민이 김정은 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바꿀 권리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국가폭력을 비판할 때와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한 변호사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억압을 비판하면서 대한민국 안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국가권력의 행사에는 눈감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권을 지킨다는 것은 자기 진영을 지킨다는 뜻이 아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시민화의 길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시민은 국가가 정한 진실을 배우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며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다.
**진짜 인권은 내 편의 자유를 외치는 순간이 아니라, 내 편이 아닌 사람의 자유까지 지키는 순간에 비로소 증명된다.** 2019년 판문점에서 북송을 거부하던 두 사람의 모습은 아직도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인권을 지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