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집값도 나랏빚도 ‘평탄화’…시민의 부담은 누가 낮추나
집값이 치솟아 시민이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데 대통령은 ‘평탄화’를 말한다. 104조4000억원의 기금 여유자금과 국가채무 106조원 증가 논쟁 앞에서는 장관이 노르웨이의 국채 발행을 설명한다. 권력자에게 숫자인 것이 시민에게는 삶이다.
집값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집값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직장에 들어가 월급을 모으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사람들에게 요즘 집값은 절망 그 자체다. 몇 년을 모아도 집값을 따라잡기는커녕, 어제 눈여겨봤던 아파트가 오늘은 더 올라 있다. 대출을 받아도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런데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 ‘평탄화’다.
도대체 무엇이 평탄해졌다는 말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강남 집값은 내리고 외곽 지역은 오르는 현상을 두고 일종의 평탄화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6]
참으로 기막힌 표현이다.
강남의 비싼 아파트값이 조금 내려가고, 서민들이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외곽 지역 집값이 오른다. 그렇다면 집을 사려는 시민들에게 이것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서울의 저렴한 아파트까지 비싸지는 것을 두고 평탄화라니. 대통령은 지금 누구의 입장에서 집값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평탄해진 것은 집값이 아니라 희망인가
집값의 높낮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인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그 높은 집값을 따라 다른 집값마저 올라가는 현실을 대통령은 ‘평탄화’라는 말로 설명했다.
가령 30억원인 집이 28억원으로 내리고 8억원인 집이 10억원으로 오른다면 격차는 22억원에서 18억원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8억원짜리 집을 준비한 시민에게는 2억원이 더 필요하다. 실제 시세가 아닌 가정 사례다.
청와대는 가격 변동 추이를 설명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6] 그런 의도였다고 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대통령이 설명한 것은 집값의 모양이고, 시민이 절망하는 것은 집값의 무게다.
정책 책임자가 이 차이를 모른다면 심각한 일이다.
집값이 아니라 시민들의 내 집 마련 희망이 무너지고 있다.
이번에는 나라의 빚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평탄화’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나라의 빚이다.
지난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미래대응기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2027년도 예산안의 미래대응기금 여유자금 운용 규모는 104조4000억원, 국가채무 증가 전망은 약 106조원으로 지적됐다.[1][5] 여유자금 운용액과 국가채무 증가액은 성격이 다른 숫자다. 106조원은 국채 총발행액을 뜻하지 않는다.
빚이 이렇게 늘어나는데 한쪽에서는 거액의 기금을 운용한다. 도대체 무슨 살림살이가 이런가.
가정에서 빚을 늘리면서 통장에 거액을 넣어두겠다고 하면 가족부터 묻지 않겠는가.
빚은 왜 내는가. 그 돈은 어디에 쓸 것인가. 이자는 누가 갚는가.
국가 재정이 가계부와 똑같지는 않다. 미래에 필요한 투자를 위해 빚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투자가 왜 필요한지, 그 돈을 빚을 줄이는 데 쓰는 것보다 나은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은 노르웨이 강의를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노르웨이 사례를 들었다. 노르웨이가 국채 발행을 일정하게 유지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2][3]
그 말을 듣고 더욱 답답해진다.
노르웨이는 석유와 가스에서 얻은 막대한 수익을 국가 자산으로 축적해 온 나라다.[4] 한국의 재정 구조와 경제적 조건이 같은가. 무엇보다 노르웨이가 그렇게 한다는 사실이 우리 정부의 재정 운용까지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노르웨이 이야기가 아니다.
왜 우리나라가 빚을 더 내면서 막대한 여유자금을 운용하려는지, 그 부담은 결국 누구에게 돌아오는지다.
장관이 할 일은 외국 사례를 찾아 정부 계획을 방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세금과 미래세대의 부담을 얼마나 무겁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국채 발행의 ‘평탄화’는 발행 시기의 변동을 줄인다는 뜻이지 채무 자체를 없앤다는 뜻은 아니다.
권력자에게는 숫자, 시민에게는 삶
여기서 대통령의 ‘평탄화’라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한쪽에서는 강남 집값이 내리고 외곽 집값이 오른다고 평탄화를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나라의 빚이 늘어나는데도 국채 발행의 평탄화를 설명한다.
집값이 오르면 시민이 감당한다. 국채를 발행하면 그 이자와 상환 부담 역시 결국 국가와 시민이 감당한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은 어쩌면 이렇게 가벼운가.
시민들이 집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현실도, 국민이 낸 세금과 미래세대가 짊어질 빚도 정부의 설명 속에서는 그저 관리 가능한 숫자처럼 들린다.
정치는 말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집값을 평탄화라고 부른다고 집값이 내려가지 않는다. 국채 발행 일정을 고르게 한다고 채무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무너지는 것은 정책에 대한 신뢰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어느 정부든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 집값을 잡겠다고 나섰다가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국가 재정 운용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책임 있는 정치라면 시민들이 겪는 고통 앞에서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해야 한다.
지금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그럴듯한 경제 용어가 아니다. 외국의 사례를 동원한 재정 강의도 아니다.
내 집 한 채 마련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워졌는지, 국가의 빚은 왜 계속 늘어나는지,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한 답이다.
대통령과 장관에게는 숫자일지 몰라도, 시민에게는 삶이다.
그 무게를 모르는 정치가 계속되는 한,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