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영화는 영화로 보라, 게임은?

영화에는 창작의 자유를 강조하던 여권이 게임에는 처벌과 이용 차단을 거론했습니다. 실제 참사 영상의 사용을 비판하는 것과 작품 전체를 통제하는 것은 다릅니다. 피해자 보호와 시민의 선택권에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영화에서는 자유, 게임에서는 차단인가

“영화는 영화로 보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역사 왜곡과 유족의 상처가 논란이 됐을 때,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말입니다. 최민희 최고위원은 영화에 대한 정치공세가 한국 영화의 재기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창작물을 정치가 심판하려 들지 말라는 주장이었습니다.[1]

그런데 게임 앞에서는 말이 달라졌습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지는 가상의 상황을 다룬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4」에 이태원 참사 당시 실제 영상이 사용되자,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를 ‘2차 가해’로 규정했습니다. 이어 제재 필요성을 말하고, 처벌이나 이용 차단까지 관계 기관이 판단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2][3]

영화에서는 정치의 개입을 경계하던 여권이 게임에서는 국가의 제재 가능성을 꺼내 든 것입니다. 창작의 자유가 원칙이라면, 이 차이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잘못된 장면과 작품 전체를 구분해야 합니다

실제 참사 영상을 전쟁 게임에 가져다 쓴 제작사의 판단은 비판받을 만합니다. 가족을 잃은 현장이 자신과 무관한 가상 전쟁의 배경으로 등장한다면 유족은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도 사용 경위 설명과 사과, 장면 교체를 요구했습니다. 게임을 즐기는 시민들 역시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한 것이 아닙니다.[3]

그러나 제작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국가가 게임 이용 차단을 거론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의 행동입니다. 문제 장면의 삭제와 사과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실제 권리 침해가 있다면 그에 맞는 책임을 따져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건너뛰고 장관의 입에서 처벌과 차단이 나오면, 윤리적 비판은 행정권의 압박으로 바뀝니다.

영화를 비판하는 정치인에게는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라고 하면서, 게임을 비판하는 장관은 제재 가능성부터 말해도 됩니까.

두 작품이 똑같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역사적 사건을 허구로 재구성하는 것과 실제 피해 현장의 영상을 사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무엇이 어떤 권리를 침해했고, 어느 범위의 조치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 차이는 정밀한 판단의 근거가 돼야지, 게임 전체의 차단을 쉽게 꺼내는 명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피해자의 상처를 정치가 골라서는 안 됩니다

‘2차 가해’라는 말도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고통을 덧씌우는 행위를 비판하는 언어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장관이 이 말을 사용하면서 곧바로 처벌과 차단을 연결하면, 그 표현은 도덕적 비판을 넘어 국가 개입의 근거처럼 작동합니다. 시민은 어느새 문제 장면의 수정에 동의하는 것과 게임 차단에 동의하는 것을 한꺼번에 요구받게 됩니다.

피해자를 존중하는 시민도 과도한 제재에는 반대할 수 있습니다. 유족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과 국가에 폭넓은 통제 권한을 주는 것은 별개의 판단입니다.

영화 논쟁에서도 유족의 상처는 제기됐습니다.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박지만 씨는 아버지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했던 기억을 이야기하며 영화가 제기한 의혹에 반발했습니다. 그때 창작의 자유를 강조했던 정치라면, 이번에도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면서 국가 개입을 제한할 방법부터 찾아야 일관됩니다.[4]

누군가의 상처 앞에서는 상상력을 보호하고, 다른 누군가의 상처 앞에서는 차단을 거론한다면 국민은 그 기준을 묻게 됩니다. 어느 피해자의 아픔을 더 무겁게 볼 것인지 정치가 골라서는 안 됩니다. 어떤 작품에 더 넓은 자유를 줄 것인지도 권력의 취향으로 정할 일이 아닙니다.

게임을 즐기는 시민에게도 판단력이 있습니다

게임을 ‘놀이’나 ‘사업’으로 낮춰 보는 시선도 드러났습니다. 윤 장관은 참사를 게임과 같은 놀이 또는 사업의 소재로 삼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역시 관객에게 표를 팔고, 비극과 전쟁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습니다. 상업성이나 오락성 자체가 제재의 이유라면 영화도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2]

게임이라고 창작의 자유가 작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용자가 작품 속 상황에 참여한다는 특성은 세밀한 비평의 대상이지, 장관이 손쉽게 차단을 말할 근거가 아닙니다. 게임을 즐기는 시민에게도 작품을 평가하고 제작사에 수정을 요구할 판단력이 있습니다.

이후 액티비전은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문제 영상을 11월 12일 업데이트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사과와 삭제 조치 이후 소관 부서에서 종료된 사안으로 파악한다고 설명했고, 게임물관리위원회도 이용 차단 등 구체적인 제재를 논의한 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차단이 결정된 사안은 아닙니다.[5][6]

그렇다고 장관의 발언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창작자는 처분이 내려진 뒤에만 위축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자가 처벌과 차단을 입에 올리는 순간, 다음 작품의 소재와 표현을 스스로 줄이기 시작합니다. 영화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비판해 온 사람들이라면 이 효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유는 필요할 때만 꺼내는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확인할 기준은 분명합니다. 문제 영상이 약속대로 삭제되는지, 정부가 수정된 작품에 추가 제재를 추진하는지, 영화와 게임에 같은 자유의 원칙을 적용하는지입니다. 피해자 보호는 구체적인 피해를 줄이는 데서 증명돼야 합니다.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작품의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 증명할 일이 아닙니다.

영화는 영화로 보라고 했습니까. 그렇다면 게임도 게임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잘못된 장면은 비판하고 고치게 하되, 시민이 작품을 선택할 자유까지 장관의 판단 아래 두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편이 옹호하는 작품에는 창작의 자유를, 논란이 된 게임에는 처벌과 차단을 꺼내 든다면 그것은 원칙이 아닙니다. 자유의 언어를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정치의 이중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