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약속은 쌓이고, 국가의 선택은 줄어든다

프랑스 10월 24일 재시위와 포르투갈의 주거 시위, 프랑스 국채금리·이자비용을 통해 지출의 경직성, 과거 약속과 미래세대의 충돌을 살핀다. 국가가 약속한 혜택과 실제 시민의 삶 사이에는 무엇이 빠졌는가.

프랑스의 분노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 10월 24일, 프랑스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정부 추산 41만 명, 노동조합 추산 약 80만 명이었다. 일주일 전 대규모 시위와 소요 사태를 경험한 정부는 경찰과 헌병 7만 명을 투입했지만, 파리와 마르세유 등에서는 또다시 충돌이 벌어졌다.[1]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학교에 교사가 더 필요하고,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청년들은 안정적으로 살아갈 기반을 원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처럼 일상적인 요구 앞에서도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루 뒤인 25일에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경찰이 주거 문제에 항의하며 설치된 텐트 100여 개를 철거했다. 주택 가격이 2017년 이후 두 배 이상 상승했고 포르투갈 중앙은행이 추산한 전국의 주택 부족 규모는 약 30만 채에 이른다.[2]

이탈리아에서도 생활비와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됐다. 로마와 토리노, 볼로냐에서는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고, 밀라노에서는 대체로 평화적인 행진이 진행됐다.[3]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하나의 운동으로 볼 수는 없다. 나라마다 불만의 대상과 정부에 요구하는 정책이 다르다. 그러나 많은 시민이 국가에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통적이다.

《씨앗의 소리》는 앞서 [「프랑스가 남의 집 이야기로 보이는가」](/columns/france-fiscal-crisis-korea-spending-no-more-tax-2026)에서 지출을 줄이려던 정부가 정치적 저항에 부딪히는 프랑스의 현실을 살펴봤다. 당시 제기했던 질문은 지금 더욱 중요해졌다.

국가가 시민에게 약속한 혜택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과거의 약속을 지키느라 현재 시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프랑스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재정문제와 시민생활의 불만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보여준다.

한번 늘린 지출은 줄이기 어렵다

프랑스의 재정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여러 정부를 거치며 쌓인 복지와 연금, 공공서비스의 약속이 누적되는 동안 국가채무도 크게 증가했다.

2025년 바이루 정부는 약 44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절감과 세수 확대 방안을 추진했지만 의회의 신임을 잃었다. 뒤를 이은 정부 역시 재정 안정을 추구했으나, 정치적 타협 과정에서 연금개혁의 일부 일정이 유예됐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조정하려 하면 이미 그 지출에 의존해 생활을 설계한 시민들의 반발을 만난다. 연금을 줄이거나 지급 조건을 바꾸면 은퇴를 준비한 사람들의 생활계획이 흔들리고, 공공서비스 예산을 줄이면 당장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이 불편을 겪는다.

이것은 단순히 시민들이 더 많은 혜택만 요구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장기간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제도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살아온 시민들에게는 정당한 기대가 있다.

그렇다면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제도를 확대할 때 충분한 재원과 장기적인 부담을 설명하지 않고, 재정이 어려워진 뒤에야 시민들에게 희생을 요청하는 정치에도 책임이 있다.

《씨앗의 소리》가 기존 기사에서 한국의 무상보육과 아동수당, 공무원연금 사례를 함께 살펴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가 한번 일상에 들어오면 정치적·사회적 비용 때문에 되돌리기 어렵고, 개혁을 결정하더라도 과거의 의무는 오랫동안 남는다.

프랑스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서 제시한 재정적자 목표는 GDP의 5.0%다. 2026년 예상 적자율 5.4%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이처럼 비교적 제한적인 적자 감축조차 의회에서 상당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4]

지출 확대를 결정한 정치인은 떠날 수 있지만, 그 결정으로 만들어진 재정적 의무는 다음 정부와 시민에게 남는다. 이것이 씨앗이 거듭 지적해 온 지출의 경직성이다.

과거의 연금 약속이 오늘의 교실과 만난다

이번 프랑스 사태에서 특히 주목할 자료가 하나 있다. 프랑스 정부가 공개한 2027년 예산안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부 예산의 약 32%, 285억 유로가 공무원연금 특별계정에 배정된다.[5]

이 금액에는 정부가 부담하는 사용자 기여금과 현직 공무원의 급여에서 원천 공제되는 연금 기여금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 돈 전부를 당장 교사 채용이나 학교시설 개선으로 돌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자료는 중요한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과거에 만들어진 연금 지급 의무가 현재의 교육 예산과 연결돼 있고, 그 부담이 커질수록 새로운 교육 수요에 대응할 재정적 여력에도 제약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학교에 교사가 부족하다는 학생들의 불만과 이미 은퇴한 공무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의 비용이 국가재정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연금 수급자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국가가 정한 제도에 따라 기여하고 은퇴했으며, 약속된 급여를 받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구구조와 경제상황이 달라지는 동안 장기적인 지급 의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충분히 결정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다.

《씨앗의 소리》가 [「포퓰리즘의 몰락, 세대전쟁의 시작인가?」](/columns/populism-collapse-generational-conflict-2026)에서 던진 문제도 이와 연결된다.

과거 세대에게 약속한 혜택을 유지하는 비용이 커질수록 앞으로 성장할 세대의 교육과 주거, 새로운 기회에 사용할 재원이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 청년들의 시위를 연금 수급자에 대한 반란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국가재정의 세대 간 배분 문제는 이제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 됐다.

기성세대의 권리를 지키는 것과 미래세대의 기회를 보장하는 일은 서로 대립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재정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채 두 목표를 모두 무제한으로 약속할 수는 없다.

국가채무는 이제 이자라는 현실로 돌아온다

《씨앗의 소리》는 [「국가 빚, 너무 가볍게 보는 건 아닌가」](/columns/politicians-who-take-public-debt-lightly-2026)에서 국가채무를 미래의 재원을 당겨 쓰는 문제로 설명하는 정치적 언어의 한계를 지적했다.

국가가 돈을 빌릴 때는 그 자금으로 무엇을 이루는지, 빚을 감당할 능력은 얼마나 커지는지, 실패했을 때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까지 함께 판단할 필요가 있다.

지금 프랑스의 금융시장은 그 문제를 매우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10월 22일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한때 5.14%까지 상승했다. 독일 국채와의 금리 차이도 확대되면서 재정과 정치적 불안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드러났다.[6]

10월 23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3로 유지했다. 그러나 등급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이며,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는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가 중요한 평가 조건으로 제시됐다.

프랑스가 국가부도 상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국가채무가 많고 정치적으로 재정조정이 어려워지면 새로운 차입의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국채관리청이 제시한 2027년 국가채무 관련 이자비용은 729억 유로다. 2026년 수정 전망치 626억 유로에서 약 103억 유로 늘어난 수치다.[7]

이자는 이미 빌린 돈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이다. 정부가 오늘 새로운 학교를 짓거나 공공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재정의 일부가 과거 차입의 이자를 감당하는 데 사용된다.

국가채무가 생산적인 투자에 쓰여 성장과 세수를 높였다면 그 효과도 함께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성장이 실현되지 않거나 차입한 돈이 지속적인 지급 의무만 남겼다면 부담은 달라진다.

국가채무의 문제가 단순히 빚의 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빌려 무엇을 남겼는가, 그리고 그 비용을 부담할 미래 시민에게 무엇을 물려주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나라가 돈을 더 쓰면 시민의 삶도 좋아지는가

프랑스에서 시작된 시위가 포르투갈과 스페인, 이탈리아의 문제와 함께 주목받는 것은 유럽 여러 나라가 공통의 재정위기에 빠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포르투갈의 주택 문제는 부족한 주택공급, 높은 주거비, 임대차제도를 둘러싼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프랑스의 교육 시위와 이탈리아의 생활비·반전 시위 역시 직접적인 원인이 서로 다르다.

포르투갈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과 시장의 작동을 개선한다는 취지에서 퇴거절차와 임대료 규제를 바꾸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위 참가자들은 세입자의 주거 불안이 더 커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2]

여기에는 예산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주택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요만 지원하면 주택 가격과 임대료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살펴야 하며, 실제 공급을 막는 규제와 건설 여건 역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돈을 더 쓰는 정책과 시민이 실제로 살 수 있는 집을 더 많이 갖게 되는 정책은 반드시 같지 않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예산이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교사가 부족한 학교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신규 교사 채용, 지역별 인력 배치, 학교시설 개선처럼 구체적인 성과가 시민에게 나타나는지가 중요하다.

정부는 지출한 금액을 성과로 설명하기 쉽다. 그러나 시민의 입장에서는 예산서의 숫자가 아니라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교실과 주택, 의료서비스, 일자리의 조건이 중요하다.

씨앗이 이번 사태를 통해 보완해 살펴볼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가 많은 돈을 쓰면서도 정작 시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단순한 재정 부족을 넘어 재정의 배분과 국가 운영의 방식에까지 이어진다.

재정위기가 정치와 사회의 위기로 번지는 순간

재정지출을 조정하지 못한 결과가 반드시 거리의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유럽 여러 나라의 시위는 대부분 평화적인 집회로 시작됐고,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도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벌어진 최근 사태는 정부가 시민의 불만을 해결하기 어렵고, 일부 시위 참가자의 폭력으로 질서가 무너지면 국가가 감당할 비용이 또 다른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0월 24일 프랑스의 시위에는 경찰과 헌병 약 7만 명이 배치됐고, 정부는 약 1천 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일부 참가자들의 폭력과 진압 과정의 논란은 시위의 원래 요구와 별개의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1]

시민이 평화적으로 의사를 표현할 자유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동시에 상점을 파괴하고 타인의 재산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폭력 사태를 우려한 일부 상점들이 영업을 중단했고, 정부는 시위 현장의 폭력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도 마련했다.[3]

갈등의 비용은 정부와 시위 참가자들에게만 남지 않는다. 생계를 이어가는 영세상인, 거리를 이용하는 시민, 일상적인 공공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돌아간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이 부족하다면 갈등의 해결은 더욱 어려워진다. 새로운 지원을 약속하기에도 재정이 부족하고, 기존 지출을 줄이기에도 정치적 저항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재정의 문제가 국가 운영의 문제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한국은 지금 어떤 약속을 늘리고 있는가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한국 정부가 제출한 2027년 예산안은 820조 9천억 원이다. 2026년 본예산보다 93조 원, 12.8% 늘어난 규모로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를 활용해 미래산업에 투자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겠다고 설명한다.[8]

정부는 동시에 100조 원 이상의 지출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으며, 2027년 관리재정수지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재정 상태와 프랑스의 상황이 같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살펴볼 것은 지출 증가가 곧바로 위기로 이어지는가라는 문제가 아니다. 늘어나는 지출 가운데 앞으로도 계속 지급할 의무가 생기는 사업은 무엇이고, 경제와 시민생활의 기반을 개선할 투자는 무엇인지 구분하는 일이다.

국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도입한 제도라도 이후 세수가 감소하면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일시적으로 증가한 세수를 바탕으로 매년 반복되는 지출을 확대할 경우 장기적인 재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씨앗의 소리》는 [「예산을 따오는 정치, 청구서를 받는 시민」](/columns/atr-taxpayer-movement-05-sustainable-budgets)에서 지역 예산과 각종 지원사업을 늘리는 정치적 유인은 강하지만, 그 사업의 전체 비용을 지속해서 살피는 시민의 감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정치인은 새로운 예산을 확보하면 성과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업의 운영비가 앞으로 얼마나 발생하고, 사업이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예산 확대의 정치적 보상은 현재에 집중되고, 재정적 책임은 다음 정부와 미래의 납세자에게 분산될 수 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지원금인가, 미래를 선택할 기회인가

한국의 2027년 정부 예산안에는 청년문화패스 예산 7,925억 원이 포함돼 있다. 2026년 361억 원에서 약 22배로 늘어난 규모로, 정부는 청년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9]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예산을 크게 확대하는 만큼 시민이 그 효과와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충분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

청년에게 영화와 공연, 스포츠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이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 주거의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지원의 목적과 청년 자립의 목적은 구별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청년들이 거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닐 수 있는 조건이다. 포르투갈 청년들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을 원하고 있다.

한국 청년들도 비슷한 생활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고, 주거비를 감당하며, 자신의 노동과 능력으로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다.

국가가 시민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과 시민이 스스로 삶을 선택할 능력을 넓히는 정책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책이 실제로 시민의 자립과 기회를 확대하는지는 그 성과를 통해 평가할 수 있다.

씨앗이 말해 온 시민화의 문제도 여기에 연결된다. 시민은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을 받는 사람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공공의 결정에 책임 있게 참여하는 주체다.

정치가 시민에게 무엇을 더 줄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동안, 시민이 스스로 살아갈 기회가 얼마나 넓어졌는지는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세금을 더 걷기 전에 무엇을 확인할 것인가

프랑스에서는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정책에 사회적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기존 약속을 지키려는 요구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과제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 정책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구체적인 조치와 경제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씨앗의 소리》가 전개하는 노모어택스 운동의 문제의식은 세금을 더 걷겠다는 설명에 앞서 기존 재정지출의 필요성과 성과, 장기적인 비용을 충분히 검증하자는 데 있다.

국가가 쓰는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세금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지출은 어떤 채무를 남기며, 그 돈을 빌려 무엇을 이루었는가.

지원사업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조정할 수 있는가. 새로운 약속을 도입할 때 몇 년 뒤의 비용을 시민에게 충분히 설명했는가.

이 질문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부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복지를 확대하는 정치든 감세와 지역사업을 약속하는 정치든, 재원과 장기적인 비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같은 기준에서 검증할 대상이다.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국가가 약속한 혜택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워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이 실제로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성과로 이어졌는가라는 질문이다.

프랑스가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닌 이유

우리는 지난 기사에서 물었다. 프랑스가 남의 집 이야기로 보이는가.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프랑스에서는 과거의 재정적 의무를 감당하는 동안 현재 시민의 교육과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도 확대되고 있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의 사태가 모두 같은 재정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각 나라의 사례는 시민이 원하는 삶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재정뿐 아니라 주택공급, 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제도 개혁과 정치적 신뢰가 함께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은 아직 프랑스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도입하는 제도와 확대하는 지출의 장기적인 비용을 살펴볼 기회가 있다.

정치인은 지원을 늘리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 국가의 빚을 미래에 갚으면 된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비용을 최종적으로 감당하는 사람은 시민과 기업,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대다.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책의 명분이 좋다는 사실만으로 지출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국가가 많은 돈을 쓰는 것과 시민이 자유롭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온 대한민국이 이제 시민화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국가가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를 국가 운영의 성과로 살펴보는 것이다.

유럽의 혼란을 단순히 남의 나라 정치의 실패로 구경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의 약속은 임기와 함께 끝나지 않는다. 그 약속을 감당할 계산서는 시민의 삶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