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얼씨구, 법인카드야! — 대법원 문지기 수난가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업무추진비 의혹과 고발. 마당의 말뚝이가 묻는다. 누구의 지출인가, 누구의 책임인가, 법관들은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고발장을 판결문으로 바꾸려는 정치의 장단을 비꼬는 시사 풍자 판소리.
첫째 마당 — 법인카드가 나라를 구했네
(아니리, 중모리. 북소리 둥둥. 소리꾼 부채를 활짝 펴고.)
어허라, 세상에 이런 경사가 또 있더냐! 나라에 도둑이 들었는가, 전쟁이 터졌는가, 삼천리 금수강산이 불타고 있느냐? 아니로다, 아니로다! 대법원장 법인카드가 나왔단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네! 드디어 대한민국 정의의 칼날이 포도주 영수증 위에 번쩍이는구나!
검찰청 간판 내리고, 공소청 세우고 중수청 열었으니, 이제 마지막 남은 대법원 문지기, 그 손에 쥔 카드 한 장만 빼앗으면 만사형통 아니겠느냐!
여당에서 북을 치니, 시민단체 장구 치고, 고발장이 꽹과리 치니, 언론이 소고를 흔드는구나. 얼쑤!
공수처 국정감사에서 대법원장 수사를 재촉하는 소리가 울렸고, 이어 시민단체가 중수청에도 고발장을 냈단다.[1][3] 누가 선창하고 누가 장단을 맞추는지는 묻는 이마다 다르나, 온 동네 메아리는 한 이름으로 돌아오는구나. 조희대! 조희대! 조희대!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법이 가릴 일. 허나 정치판에선 판결문보다 고발장 소리가 먼저 천지를 울린다. 아이고, 법인카드가 무섭구나! 헌법보다 무섭고, 판결문보다 무섭고, 삼권분립보다도 무섭구나!
둘째 마당 — 포도주 한 잔에 나라가 취했네
(자진모리. 익살스러운 말뚝이가 장부를 펼친다.)
어허, 그런데 이것 좀 보소. 와인값이 일억이라! 일억이라, 일억이라!
그 돈을 누가 썼느냐 물었더니, 공개된 구매 내역을 분석한 보도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기의 지출이 약 칠 할 육 푼, 조희대 대법원장 재임기의 지출은 약 이 할 사 푼이라 적혀 있더라.[2]
이것 참 기막힌 산수로다! 먼저 쓴 장부까지 나중 사람 몫으로 세면, 세월도 회계장부 앞에 줄을 서겠구나.
그때의 와인은 의전이요, 오늘의 와인은 비리더냐? 그때의 술잔은 친목이고, 오늘의 영수증은 탄핵감이더냐?
대법원장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지. 그러나 업무추진비가 적정하게 쓰였는지는 술을 마시는지와 별도로 조사할 문제이로다.[2] 그럼에도 이 판에서 가장 큰 재주는 기간도 사람도 한 장의 영수증에 뒤섞는 솜씨가 아니겠느냐!
여보시오, 판관 나리!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옛날 임금이 먹던 수라상도 오늘 문지기에게 청구해 보소. 조상 적 술값까지 후손에게 받아내는 재주,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사법 혁명 아니겠소!
얼씨구 절씨구! 누구의 술잔인지는 작게 묻고, 누구를 쫓아낼 것인지는 크게 외치는 세상! 포도주는 사람이 마셨는데 취하기는 정치가 취했구나!
셋째 마당 — 판관들은 어디로 갔느냐
(중모리. 북소리 뚝 그치고, 소리꾼 대법원 높은 담장을 바라본다.)
허허, 참으로 고요하구나. 저 많은 판사들은 어디 갔느냐? 법복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정의를 말하고 독립을 외치던 그 많은 판관들은 어디로 숨었느냐?
우리법연구회니, 사법개혁이니, 오랜 세월 진영의 이름이 법원 담장을 넘나들 때, 법의 눈은 어디를 보고 있었느냐? 법관의 양심은 법전에만 있고, 사법부의 독립은 취임사에만 남았느냐?
남의 권력에는 준엄하고 제 권력에는 온순한 법관이라면, 그것이 법관이냐, 권력의 서기냐!
여보시오, 대법관 나리들! 사법부의 독립은 대법원장 혼자 짊어지는 짐이오? 헌법의 마지막 빗장은 조희대 한 사람의 어깨에만 걸려 있소?
어제는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기둥 하나 뽑아내고, 오늘은 민주적 통제라는 이름으로 서까래 하나 걷어내고, 내일은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대들보까지 내리겠다는 판이라고 여기는 시민들이 있소.
그대들은 아직도 판례집이나 뒤적이며 침묵으로 법치를 지키고 있소? 칼이 목 앞에 들어와도 중립이라 입 다물고, 집이 무너지는 소리에도 독립이라 눈 감았으니, 그 고결한 침묵이 마침내 사법부의 장송곡이 되었구나!
넷째 마당 — 임금의 재판과 문지기의 영수증
(휘모리. 소리꾼 부채로 멈춘 시계를 가리킨다.)
어허라, 더 기막힌 사연이 남았구나! 이 나라 높은 자리에 재판 멈춘 분이 계시다지? 재판은 잠들고, 사건 기록은 쉬고, 법정의 시계는 멈춰 섰는데, 그 시계를 다시 움직일까 두려워하는 자는 누구인가?
문지기가 마지막 빗장을 잡고 있으니 그 문지기부터 내보내자는 생각이 누군가의 속마음은 아닌지, 소리꾼의 의심은 마당을 뱅뱅 도는구나. 그 의심이 사실이라는 증거까지 갖춰진 것은 아니로다. 그러나 법을 둘러싼 정치의 장단이 이리도 요란하니, 어찌 묻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말이오. 법인카드가 그리 무서운 물건이라면, 권력의 높은 자리에 계신 사람들 장부도 같은 자로 들여다보면 될 일 아닌가?
한쪽 장부엔 돋보기를 들이대고 다른 쪽 장부엔 커튼을 내린다면, 그것은 회계감사인가, 궁중 마술인가!
하늘 아래 카드가 두 장이라. 하나는 나라를 뒤흔드는 카드, 하나는 입 밖에 내기 조심스러운 카드. 카드에도 신분이 있고, 영수증에도 계급이 있구나!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더니, 법인카드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지 않은 모양이로다!
다섯째 마당 — 당신들 이겼소
(진양조. 소리꾼 부채를 접고 한참을 침묵한다.)
이제야 알겠구나. 그대들이 이겼소. 진심으로 축하하오.
검찰청은 역사의 뒤안길로 향하고, 수사기관의 이름과 권한은 새 판으로 옮겨 가며, 사법부의 담장에도 거센 바람이 부는구나. 그다음은 무엇이오? 동맹의 주춧돌이오?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요? 아니면 그대들 뜻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 그 자체이오?
그대들이 말하면 개혁이 되고, 남들이 말하면 저항이 되는 세상. 그대들의 분노는 정의가 되고, 남들의 절규는 반동이 되는 세상. 참으로 훌륭하오, 이 새 시대의 말솜씨가!
총 한 방 쏘지 않고 헌법의 의미를 바꾸는 재주. 문 하나 부수지 않고 권력분립의 빗장을 느슨하게 만드는 솜씨.
나라의 국경만 철책이더냐? 권력과 권력 사이에도 넘어서는 안 될 국경이 있는 법. 그 국경의 이름이 삼권분립이요, 그 철책의 이름이 법치였거늘.
그런데 오늘은 그 철책을 지키는 사람을 철책을 흔드는 죄인처럼 몰아세우는구나. 아아, 통재로다!
끝마당 — 법은 누구의 것인가
(엇모리에서 진양조로. 북소리 한 번, 쿵!)
어허라, 법인카드야! 법인카드야! 네가 참으로 대단한 물건이로구나! 나라를 구할 칼인 줄 알았더니 영수증을 자르는 가위가 되었고, 헌법을 지킬 방패인 줄 알았더니 정적을 겨누는 창이 되는구나.
허나 이것 하나만은 들어보소! 조희대가 잘못했다면 그 잘못을 밝혀 죄를 물으면 될 일. 김명수가 잘못했다면 김명수의 잘못도 함께 밝힐 일. 대통령에게 혐의가 있다면 대통령의 사건도 법의 이름으로 판단할 일.
고발장은 판결문이 아니고, 의혹은 유죄가 아니며, 정권의 승리는 정의의 완성이 아니로다!
그런데 어찌하여 죄를 묻는 소리는 높은데 법을 지키는 소리는 낮아졌느냐! 어찌하여 헌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앞에서 헌법이 이토록 외로워졌느냐!
삼권분립은 교과서에 남고, 사법 정의는 기념사에 남고, 법치주의는 현판에만 남는다면, 그 높은 대법원 건물은 이제 무엇을 지키고 있는 것이냐?
판관들이여, 대답해 보라! 그대들이 지키는 것은 법이냐, 자리냐, 침묵이냐?
나라가 무너질 때 가장 무서운 소리는 무너지는 기둥 소리가 아니로다. 기둥이 무너지는데도 아무 소리 하지 않는 그 집 주인들의 침묵이로다.
조희대가 마지막 보루인지, 그 보루마저 허물어질 것인지 아직 그 결말은 알 수 없으나, 오늘 이 나라에서 가장 위태로운 것은 어느 대법원장의 자리가 아니라, 권력 앞에서도 법은 법이어야 한다는 너무나 평범한 믿음, 바로 그것이로다.
얼씨구…… 대한민국 법치가 어디 갔느냐. 사법 정의야,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