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AI 가상 단편소설] 종료일 없는 아침

이 글은 AI가 쓴 가상 단편소설입니다. 전시에 준하는 비상상황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 못한 채 현직 대통령의 집권이 이어지는 미래를 서윤과 아버지의 일상으로 그렸습니다.

이관을 기다리는 방

편집자 주: 이 작품은 AI가 작성한 가상 단편소설입니다. 전시에 준하는 비상상황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 못해 현직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는 미래를 상정했습니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전쟁과 정치적 사건, 인물의 말과 행동은 모두 허구입니다.

서윤이 출입증을 대자 복도의 문이 열렸다. 보존서고 앞에서는 한 번 더 출입 권한을 확인해야 했다. 그녀는 방문 목적과 입실 시간을 기록하고 관리 담당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퇴임 대통령의 기록물을 받아들일 공간을 점검하는 날이었다. 미리 승인받은 시설 담당자 두 사람이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서고는 창문이 없는 방이었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공기가 낮은 소리로 흘렀다. 금속 이동서가에는 아직 기록물 상자가 하나도 없었다. 서윤은 배정된 서가 번호를 도면과 대조했다.

“여기까지가 이번 이관 예정 공간입니다.”

담당자가 빈 서가 쪽을 보았다.

“언제쯤 들어옵니까?”

“아직 날짜를 못 받았습니다.”

서윤은 점검표의 ‘이관 개시 예정일’ 옆에 펜을 댔다. 적을 날짜가 없어 펜을 다시 거두었다.

서윤은 대통령기록관에서 퇴임 대통령의 기록물을 이관받기 위한 준비 업무를 맡고 있었다. 앞선 기록들을 정리한 선배가 휴직하면서 그녀가 업무를 넘겨받았다.

절차는 책자로 만들어져 있었다. 대통령실과 협의해 이관 대상과 일정을 확인하고, 기록물의 종류와 보존 조건에 맞춰 공간을 배정해야 했다. 서윤은 빈 서가가 표시된 도면과 준비 일정표를 관리했다.

그녀는 업무용 달력의 대통령 임기 종료 예정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아버지 생일에도 똑같은 빨간 펜을 썼다.

이관 일정을 확인해 달라는 서류는 세 번 돌아왔다. 첫 번째에는 보완할 항목이 표시돼 있었다. 두 번째에는 양식이 바뀌었다는 메모가 붙었다. 세 번째에는 사유가 적혀 있었다.

‘상황 종료 후 협의.’

서윤은 달력의 날짜를 지우지 않았다. 책자에서 해당 페이지를 접어두고, 예정 공간의 서가 번호를 점검표에 옮겨 적었다.

처음 사이렌이 울린 것은 그보다 3년 전 가을이었다.

서윤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가 사람들이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앞사람의 가방에 얼굴을 부딪쳤다. 승강장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의 전화기가 같은 소리로 울었다.

그녀 앞에 있던 여자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의 분홍색 신발 한 짝이 계단으로 떨어졌다. 서윤은 난간을 붙잡고 몸을 숙여 그것을 주웠다.

“여기요.”

여자는 신발을 받아 아이의 발에 신겼다. 벨크로가 자꾸 풀렸다. 서윤이 한쪽을 잡아주자 여자는 그제야 손을 놓았다.

승강장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며칠째 대만해협의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검은 바다 위에서 멀리 불빛이 번졌고, 남자 앵커가 미국의 군사 대응을 전했다. 자막에는 ‘북한, 서해 포격’이라는 글자와 서울 북쪽 지역의 이름이 번갈아 떴다. 방송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처음 맞는 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날 서윤은 아버지에게 열두 번 전화를 걸었다.

열세 번째에 연결됐다.

“가게야?”

“응. 밖에 사람 많다.”

“아빠도 내려가.”

“알았어. 이것만 주고.”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 건전지가 더 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잠시 입을 막고 대답했다.

“두 개씩만 가져가세요. 뒤에도 계시니까.”

그날 밤 서윤은 아버지의 철물점으로 갔다. 가게 유리창에 테이프가 엇갈려 붙어 있었다. 계산대 앞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이재명 대통령이 나왔다.

아버지는 리모컨을 찾아 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민들에게 대피 안내에 따라달라고 말했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지나갔다.

‘평택 미군기지 인근 미확인 비행체 발견.’

발표자가 인명피해 여부는 확인 중이라고 말할 때,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대통령의 담화가 끝나자 전화기들이 다시 울렸다. 충전 중이던 전화기 몇 대를 사람들이 한꺼번에 집어 들었다.

그날 새벽, 아버지는 서윤을 가게 안쪽 방에 재웠다. 서윤이 잠들기 전까지 밖에서 셔터를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났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일어나 문을 조금 열었다.

겨울이 지나자 철물점 앞 버스가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접경지역에서 또 포성이 들렸다는 방송이 나오는 날에도 버스는 다녔다.

아버지는 가게에 있던 라면 상자들을 정리했다. 대피해 온 사람들에게 끓여주려고 사놓은 것이었다. 서윤은 남은 상자를 집으로 가져가자고 했다.

“혹시 또 모르니까.”

“다 유통기한 지나.”

아버지는 상자 하나를 열어 봉지마다 날짜를 살폈다. 서윤은 그 옆에서 접이식 의자를 닦았다.

두 사람은 남은 라면을 나누어 가졌다. 아버지는 상자를 비운 자리에 손전등을 다시 진열했다.

가게 맞은편 건물에는 여행 광고가 걸렸다. 바다가 보이는 객실 사진 아래에 봄 할인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 옆 전봇대에는 야간 통행과 집회를 제한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어느 쪽도 떼어내지 않았다.

정류장 뒤편 건물의 국회의원 사무실은 한동안 불이 꺼져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의원이 당에서 나갔다는 소식까지는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사무실의 간판이 내려갔다.

“잡혀갔다던데.”

손전등을 사러 온 손님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누가요?”

“저기 2층 양반이요. 기자회견 한다고 했잖아요.”

아버지는 계산대 위에 있던 손전등 상자를 접어 치웠다.

“봉투 드릴까요?”

신문사에서 일하던 지연은 서윤의 대학 친구였다. 둘은 예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저녁을 먹었다. 지연은 늘 서윤보다 늦게 왔고, 늦을 때마다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했다.

전쟁이 시작된 이듬해, 두 사람은 역 근처 국숫집에서 만났다. 지연은 휴대전화를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식당 문이 열릴 때마다 잠깐씩 시선을 들었다.

“요즘도 늦게 들어가?”

서윤이 묻자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우리 부장님이 먼저 나갔어.”

“좋네.”

“집에 간 게 아니야. 경찰이 데려갔어. 어디 있는지 가족한테도 한동안 안 알려줬대.”

서윤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지연은 국숫집 안을 둘러본 뒤 목소리를 낮췄다.

“계엄 해제 요구한 의원들 명단을 취재했어. 그중 한 사람 사무실을 경찰이 압수수색했는데, 그 다음 날부터 취재원한테 연락이 안 돼. 우리 부장도 그 기사 내보내려다가 불려갔고.”

“그래도 북쪽에서 계속 포를 쏘잖아. 정말 위험한 건 맞는데.”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냐. 그런데 위험하다는 이유로 국회를 막고, 대통령 재판은 멈추고, 반대하는 사람을 다 잡아가면 그걸 누가 견제해?”

지연은 젓가락을 집었다가 다시 놓았다.

“대통령이 이재명이든 누구든 임기가 끝나면 선거로 다음 사람을 뽑아야 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는데, 끝났는지 아닌지도 그 사람 혼자 정하잖아. 나는 그걸 독재라고 쓸 거야.”

국수가 나왔다. 국숫집 텔레비전에서는 대만해협의 교전이 잦아들었다는 뉴스가 흘렀다. 앵커는 이어서 접경지역 경계태세가 유지된다고 말했다.

지연이 작은 수첩을 펼쳤다. 비상조치가 연장될 때마다 국회 심사가 어떻게 미뤄졌는지, 정부 발표와 이전의 공개 자료를 비교해 적은 메모였다.

“예전에 공개된 대통령 담화랑 기록을 확인하고 있어. 일반인이 정식으로 열람 신청할 수 있는 자료가 뭔지 알려줄래?”

“공개된 건 안내할 수 있어. 내부 자료를 빼줄 수는 없고.”

“그럴 생각 없어. 신청할 수 있는 것부터 볼게.”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데 지연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국숫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갔다. 서윤이 유리문 너머로 바라보는 동안 지연은 무슨 말을 듣기만 했다. 전화를 끊은 뒤 그녀는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서윤이 밥값을 냈다.

며칠 뒤 지연의 기사가 신문사 인터넷판에 올라왔다. 비상조치가 거듭 연장되는 동안 국회의 심사와 대통령의 재판이 모두 멈춰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정부의 입장과 반대 의원들의 발언도 함께 실렸다.

그날 오후 기사는 사라졌다. 주소를 누르자 접근이 제한된다는 안내가 떴다. 지연은 서윤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그때 말한 공개 기록, 다음 주에 같이 확인해줄 수 있을까?’

서윤은 회의가 끝나면 답하려고 했다. 저녁에 전화기를 열었을 때는 다른 메시지들이 그 위에 쌓여 있었다. 그녀는 ‘응, 신청 방법 보내줄게’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집에 가서 전화하는 편이 빠를 것 같았다.

그날 밤 지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신문사에서 일하는 지연의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에 경찰과 중수청 수사관들이 편집국에 들어와 컴퓨터와 취재 자료를 가져갔다고 했다. 지연은 기사와 관련해 국가안전을 해치는 허위정보를 퍼뜨렸다는 혐의로 체포됐다고 했다.

“지연이가 영장을 보여 달라고 했어. 변호사한테 연락하겠다고도 했고.”

동료의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

“우리가 어디로 데려가느냐고 물었는데, 확인해 보라는 말만 하고 갔어.”

서윤은 지연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밤새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다. 서윤도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며칠 뒤에야 가족은 지연이 구금돼 있다는 통지를 받았다. 어머니가 선임한 변호사는 접견을 신청했지만 바로 만날 수는 없었다. 신문사에는 압수수색을 받았다는 짧은 공지만 남았다.

서윤은 지연의 집 우편함에서 전단지를 꺼내 문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안에서는 개가 짖었다. 가족이 맡아 돌보고 있다고 어머니가 말해주었다.

휴대전화에 전날의 메시지가 그대로 떠 있었다.

다음 주에 같이 확인해줄 수 있을까?

그녀는 답장을 썼다.

‘응. 기다리고 있을게.’

전송을 누르자 메시지 옆에 작은 숫자 하나가 남았다.

그날 저녁 서윤이 지연의 이야기를 꺼내자 아버지는 찌개를 떠먹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혼자 계신다며.”

“변호사는 구했대. 그런데 아직 지연이를 못 만났어.”

“무슨 죄로 데려갔다는 거야?”

“기사가 국가안전을 해쳤대.”

아버지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냉장고에 붙은 작은 메모를 떼었다. 동네 의원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의 전화번호였다. 간판이 내려간 뒤 그 사람의 아내가 몇 차례 철물점에 들렀었다.

“저 집도 남편 어디 있는지 한동안 몰랐다고 했어.”

“아빠가 어떻게 알아?”

“손전등 사러 왔다가 얘기하더라.”

서윤은 메모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는 빈 그릇에 찌개를 더 담아주었다.

“그 어머니한테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봐. 혼자 기다리면 더 막막할 거다.”

봄이 되자 아버지의 철물점 유리창 한쪽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연행된 사람의 소재를 가족에게 알려주십시오. 변호인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지연의 어머니와 동네 의원 사무실 직원의 아내가 함께 만든 호소문이었다. 아버지는 두 사람에게 가게 안쪽 의자를 내주었고, 이웃 몇 명이 찾아와 연락처를 남겼다. 며칠 뒤 비슷한 처지의 가족들이 더 왔다. 누군가는 따뜻한 물을 가져왔고, 누군가는 변호사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경찰이 찾아온 것은 그다음 주였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은 유리창의 종이와 가게 안을 번갈아 보았다.

“집회 신고는 하셨습니까?”

“집회가 아니라 사람들이 차 마시러 온 겁니다.”

경찰관은 종이를 가리켰다.

“이런 내용을 붙여놓고 사람들을 모으시면 비상조치 위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족들이 자기 가족의 소재를 묻는 것까지 안 되느냐고 물었다. 경찰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라며 호소문을 떼어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러겠다고 답하지 않았다.

이틀 뒤 철물점에는 비상조치 위반을 이유로 한 임시 영업정지 통지서가 왔다. 아버지는 봉투를 세 번 접어 계산대 서랍에 넣었다. 손님들에게 주문해 둔 물건을 먼저 나눠주고는 셔터를 내렸다.

서윤과 아버지는 이의신청서를 들고 구청을 찾았다. 창구 직원은 신청서를 접수하고 접수증을 건넸다.

“언제 다시 문을 열 수 있습니까?”

“관련 부서에서 확인한 뒤 안내드릴 겁니다.”

“가족들이 사람을 찾겠다는 종이 한 장 붙인 건데, 그게 왜 가게 문을 닫을 일이에요?”

직원은 통지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접수만 할 수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구청을 나서자 아버지가 서윤의 팔을 잡았다.

“됐어. 접수는 했잖아.”

“기다리는 동안 가게는 어떻게 해.”

“집주인한테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해봐야지.”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십 분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정류장에 나란히 앉았지만 버스가 올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서윤은 철물점에 일어난 일을 인터넷에 올렸다. 화면에는 게시가 완료됐다고 떴다. 이튿날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글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서윤의 전화기에는 아직 글이 남아 있었다.

기록관에서는 지연의 신문을 더 이상 구독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문이 오지 않는 날이 늘었다. 주말판이 없어졌고, 그다음에는 월요일에도 배달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는 구독 목록에서 이름이 빠졌다.

점심시간이면 직원들은 휴게실에서 뉴스를 봤다. 진행자의 얼굴은 자주 바뀌었지만 화면 아래의 문장은 오래 남았다.

‘국가안전 특별기간.’

한 직원이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제 특별기간이라는 말도 좀 이상하지 않아?”

옆에 앉은 사람이 커피 뚜껑을 닫았다.

“왜?”

“오래됐잖아.”

“계속 특별한 상황이니까.”

직원은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누군가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고 대화는 점심 메뉴로 넘어갔다.

텔레비전에서는 올해도 국회 개원식이 연기됐다고 전했다. 잠시 뒤 자막이 사라지고 주말 날씨가 나왔다.

서윤은 리모컨이 놓인 자리를 바라봤다. 텔레비전 소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관 준비 회의를 앞두고 서윤은 공개된 법원 사건검색 화면에서 대통령의 재판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현직 대통령의 퇴임 시점을 전제로 작성된 이관 일정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번호를 하나씩 입력하자 같은 안내가 반복됐다.

‘기일 미지정.’

뉴스에는 대통령 관련 재판의 재개가 비상조치 아래 미뤄졌다는 설명이 나왔다. 서윤은 그 기사의 제목과 날짜를 업무 수첩에 적었다. 재판기록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된 것은 아니었다.

그날 저녁 지연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지연이 비공개로 진행된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는 변호사에게 들은 선고일과 형량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서윤은 메모지에 그 숫자들을 적었다.

“면회는요?”

“신청했어. 허가가 나야 한대.”

전화를 끊은 뒤 서윤은 메모지를 수첩 사이에 넣었다. 수첩에는 조금 전에 적은 대통령 재판 기사 제목도 있었다. 두 기록 사이에 종이 한 장이 끼워졌다.

끝나지 않은 날짜

원래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날, 아버지는 일찍 일어났다. 가게는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서윤은 아침에 들러 아버지가 만들어준 달걀말이를 한 조각 집어 먹었다. 식탁 위 달력에는 대통령 임기 종료일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바로 옆에는 ‘영업정지 이의신청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도 연락 없어?”

“어제 물어봤는데 검토 중이래.”

아버지는 달걀말이 끝을 젓가락으로 잘랐다. 가게 전화가 울렸지만 손님의 수리 문의였다. 아버지는 아직 나갈 수 없다고 설명하고, 가까운 다른 가게 번호를 알려주었다.

서윤이 정장 윗주머니에 출입증을 꽂자 아버지가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원래는 일이 있어야 하는 날이야.”

아버지는 그녀를 보다가 달력 쪽으로 눈을 돌렸다. 잠시 뒤 달력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눌러 평평하게 폈다.

“밥 먹고 가.”

출근길 버스에서는 대통령의 아침 회의가 생중계됐다. 대통령은 서류를 넘기고 다음 보고를 받았다. 서윤은 휴대전화의 달력을 열었다. 전년도에 설정한 알림이 떠 있었다.

‘이관 개시일 확인.’

그녀는 알림을 닫았다.

그 뒤로도 서윤은 정기 점검 때마다 승인된 절차에 따라 담당자와 함께 서고에 들어갔다. 기록물을 받을 공간은 비어 있었지만 온도와 습도는 계속 관리됐다.

어느 날 점검표에서 이관 예정 공간에 대한 별도 확인 항목이 빠졌다. 서윤이 물었더니 관리 담당자는 다른 서가와 함께 점검하도록 방식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녀는 비어 있는 서가 번호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출입 시간을 기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담당자들이 바뀌었다. 공간 배정을 승인한 과장은 퇴직했고, 이관 일정을 협의하던 직원은 다른 부서로 옮겼다. 서윤은 새로 온 사람들에게 빈 서가의 용도를 설명했다.

“퇴임기록을 받으려고 준비한 공간이에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정표에 빈칸을 남겼다.

어느 봄, 서윤의 조카가 학교 과제를 들고 철물점에 왔다. 과제는 가족에게 어릴 때 있었던 일을 묻고 적어가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전쟁이 나던 날 손전등을 나눠줬던 이야기를 했다. 조카는 공책에 연필로 열심히 받아 적었다.

“할아버지, 그때 대통령도 지금 대통령이었어?”

“그랬지.”

“엄마 어렸을 때도?”

“그때는 다른 분이었어.”

아이는 공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왜?”

아버지는 서윤을 보았다. 서윤은 고장 난 계산기 덮개를 끼우고 있었다.

“그때는 선거를 해서 바뀌었거든.”

아이는 지우개를 꺼내 공책의 한 줄을 지웠다. 아버지가 쓴 말을 잘못 적은 모양이었다.

잠시 뒤 아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다음 사람은 언제 뽑아?”

아버지가 창문을 닫았다. 밖은 춥지 않았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아이는 더 묻지 않고 공책에 이름을 썼다. 아버지는 아이 앞으로 귤을 하나 밀어주었다.

이관 예정 공간을 재배정한다는 지시는 여름에 내려왔다.

공문에는 장기간 사용되지 않은 서고 공간을 다른 기록물 보존에 활용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서윤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퇴임기록을 받으려고 준비한 공간입니다.”

“언제부터 사용하실 예정인데요?”

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관 일정이 확정되면 그때 다시 배정을 요청해 주세요.”

“그때 공간이 없으면요?”

“그때 가서 검토해야죠.”

담당자는 다음 통화가 잡혀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서윤은 관리 담당자와 함께 서고에 들어갔다. 다른 부서에서 이관한 기록물 상자들이 빈 서가에 놓일 예정이었다. 담당자가 기존의 배정표를 확인하며 물었다.

“이 서가에 들어온 기록은 없었죠?”

“네. 아직 이관받은 게 없습니다.”

담당자는 새 배정번호를 적고 이전 표찰을 떼었다. 서윤은 이관 개시 예정일이 비어 있는 점검표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복도에서 새로 온 직원이 물었다.

“저기는 무슨 기록을 받으려고 비워뒀던 거예요?”

“퇴임 대통령 기록.”

“그럼 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요?”

서윤은 점검표를 접었다.

“기록이 아직 오지 않았어.”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 묻지 않았다.

서고에 새 기록물 상자가 들어온 뒤에도 대통령의 퇴임기록 이관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기록관 출입구를 나서던 서윤은 로비에 걸린 대통령의 사진 앞에 잠깐 섰다. 사진 속 이재명의 머리는 예전보다 희었다. 사진 아래에는 이름과 취임일이 적혀 있었다.

서윤은 잠시 빈 벽을 바라보았다. 예전 대통령들의 사진에는 취임일과 퇴임일이 함께 적혀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에 올 거냐?”

“응.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무것도 없어. 오는 길에 귤이나 사 와.”

로비 스피커에서 대통령의 신년사가 곧 시작된다는 안내가 나왔다. 서윤은 휴대전화를 다시 귀에 댔다.

“아빠. 이의신청은?”

“아직 연락 없어.”

“내일 같이 가자.”

“어디를?”

“구청.”

아버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거기 가도 똑같을 텐데.”

“그래도. 지연이 어머니도 내일 면회 허가 다시 물어본대.”

스피커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나왔다. 서윤이 회전문을 밀고 밖으로 나갈 때 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귤은 내가 사놓을게.”

다음 날 두 사람은 구청 창구 앞에 앉아 번호표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영업정지 통지서와 이의신청 접수증이 들어 있는 봉투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봉투 모서리가 닳아 투명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서윤은 손을 뻗어 봉투가 바닥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잡았다.

창구 위 텔레비전에서는 대통령의 전날 신년사가 다시 나오고 있었다.

번호가 하나 바뀌었다.

아버지는 봉투를 열어 서류의 순서를 맞췄다. 첫 장에 적힌 접수일의 숫자는 조금 흐려져 있었다.

서윤은 그것을 읽을 수 있도록 종이를 빛 쪽으로 기울여 주었다.

그때 창구 위 전광판에 두 사람의 번호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