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지뢰를 밟고서야 움직인 군, 이게 나라를 지키는 태도인가

군은 지난해 남측의 지뢰 매설 의심 지형 변화를 포착했다. 9월 21일 장병 3명이 다친 뒤 현장조사는 엿새 만에 시작됐다. 대통령의 유엔 연설과 겹친 조사 일정에 관한 의심까지, 군과 정부는 결정 기록으로 답해야 한다.

지뢰를 밟기 전까지 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지난해 9월, 군은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이남에서 북한군의 지뢰 매설이 의심되는 지형 변화를 포착했다. 올해 9월 21일, 그 인근에서 작전하던 우리 장병 3명이 지뢰 폭발로 다쳤다. 군과 유엔군사령부의 현장조사는 엿새 뒤인 27일 시작됐다.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군의 발표는 28일에야 나왔다.

지뢰를 밟기 전까지 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지뢰지대를 조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장소가 25사단 관할에만 6곳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지뢰 6개’를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단 한 곳이라도 군사분계선 이남에 지뢰가 매설됐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것은 지도 위에 표시만 해두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장병이 들어갈 수 있는 땅에 누가 지뢰를 묻었는지 확인하는 일보다 앞서는 경계 임무가 무엇인가.

당시 사단장은 이후 ‘빈총 경계’ 논란으로 직무에서 배제된 한기성 전 1군단장이다. 현장 확인에 소극적이었고 후임 사단장이 취임한 뒤에야 수색이 이뤄졌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당시 지휘부의 판단을 그냥 넘길 수 없다. 물론 누가 어떤 지시를 받고 왜 실행하지 않았는지는 기록으로 가려야 한다. 그 기록을 공개해야 할 책임 역시 군에 있다.

사고는 21일, 유엔 연설은 23일, 현장조사는 27일

사고 뒤의 대응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장병들이 다친 날은 21일이다. 대통령은 이틀 뒤인 23일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구상을 발표했다. 현장조사는 그 연설이 끝난 뒤 시작됐다. 이 순서를 보고 군이 대통령의 연설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북한 관련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민을 탓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는 연설과 무관하며 현장 지휘관의 건의를 고려한 군사적 판단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판단한 사람과 근거를 밝히면 된다. 사고 직후 누가 무엇을 보고받았는가. 유엔사와 현장조사 날짜를 언제, 어떤 이유로 정했는가. 북한군 지뢰 가능성은 언제부터 보고됐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연설과 무관하다’는 말만 반복하면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연설 때문에 군이 의도적으로 감췄다는 문서나 지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개된 사실만으로도 군과 정부를 질책하기에는 충분하다. 위험 징후를 알고도 장병이 다쳤다. 사고 뒤에는 조사와 발표가 늦었다. 정전협정 위반일 수 있는 사건 앞에서 정부가 내놓은 설명은 장병의 안전보다 일정 관리에 더 민감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걷어내지 못했다.

장병의 발목 앞에서 말이 아닌 기록으로 답하라

평화는 대통령의 연설문 속에만 있지 않다. 최전방 장병이 디딜 땅을 확인하고, 위험을 알았을 때 제때 조치하는 것이 평화의 가장 낮고 단단한 기초다. 그 일을 놓친 채 장병이 중상을 입고 나서야 북한 지뢰를 말하는 군이라면, 정신이 빠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군은 지난해 지형 변화 보고서와 현장 확인 지시, 사고 직후 보고·조사 결정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그 기록을 통해 누구의 판단이 장병을 위험 앞에 세웠는지 밝혀야 한다. 장병의 발목을 잃게 한 뒤에도 책임자를 찾지 못한다면, 다음 위험 앞에서도 군은 또 ‘지형 변화’를 관측했다고만 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