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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원전을 다시 짓자는 민주당
탈원전을 장기 국가정책으로 밀어붙였던 민주당 정부가 이제 신규 원전을 추진하고 추가 건설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역균형성장을 앞세운 기업 이전과 산업 배치가 새로운 전력수요를 만들고, 그 수요가 다시 원전 확대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바뀐 정책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국가입니다.
정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설명 없이 뒤집혀서는 안 된다
2017년 10월 24일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의결했다.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금지하며, 원전 비중을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방침이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안전과 기후, 에너지 전환의 방향으로 옹호했다. 탈원전은 한두 개 사업을 조정하는 정책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상징하는 장기 국가정책이 됐다.
그 정책을 믿고 기업은 투자와 인력, 공급망을 조정했다. 원전 산업에 남은 기업도, 떠난 기업도 비용을 치렀다. 지역과 대학, 협력업체의 계획도 달라졌다. 에너지 정책은 발전소 한 기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을 내다보고 자본과 기술, 사람이 움직이는 약속이다.
그런데 민주당 정부는 이제 원전을 다시 짓겠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확정한 신규 대형원전 2기 계획을 이어받은 데서 멈추지 않고,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의 전력수요를 이유로 추가 원전까지 검토하고 있다. 동시에 지역균형성장을 내세워 기업의 본사와 투자를 특정 지역으로 옮기도록 압박하거나 강한 유인을 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은 현실에 맞게 바뀔 수 있다. 원전이 실제로 필요하다면 바꾸는 것이 맞다. 그러나 국가의 장기정책을 정치적 필요에 따라 동전 뒤집듯 바꾸면 그 비용은 기업과 시민이 치른다.
- 바뀐 정책보다 더 심각한 것은
- 예측할 수 없는 국가다.
탈원전에서 추가 원전 검토까지
문재인 정부는 계획된 신규 원전 6기를 백지화하고 원전을 2017년 24기에서 2038년 14기로 줄이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방향을 바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대형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 실증 1기를 반영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뒤 신규 원전 계획을 국민 공론을 거쳐 다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6년 1월에는 제11차 계획에 포함된 대형원전 2기를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두 차례 정책토론회와 여론조사가 그 근거로 제시됐다.
여기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산단과 AI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할 막대한 전력수요를 제시하며 추가 원전도 빨리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어제까지 줄이겠다고 했던 원전이 오늘은 국가 산업전략을 떠받치는 전원이 됐다.
기업을 옮기고, 그 기업 때문에 원전을 짓는 구조
정부가 제시한 논리는 분명하다. 수도권에 몰린 산업을 지역으로 분산하고,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그 지역에서 쓰게 하면 송전망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하므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전원이 필요하다. 이 논리만 놓고 보면 원전 검토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순서를 보면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정부가 먼저 산업의 위치를 정하고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특정 권역에 배치한 뒤, 그 계획에서 생긴 전력수요를 근거로 원전을 더 지을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기업을 옮기고, 그 기업 때문에 원전을 짓는 구조다.
정부가 산업의 위치부터 발전소의 숫자까지 정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스스로 위험을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라 국가계획의 수행자가 되기 쉽다. 반도체 투자는 기업과 정부가 협의한 계획이고, 지역별 전기요금과 세제·보조금은 형식상 유인책이다. 반면 HMM처럼 대통령과 정부가 이전 방침을 먼저 못 박고 회사와 노동자가 뒤따르는 사례에서는 강제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법률상 명령만 강제는 아니다. 정부가 정책금융, 공공 지분, 인허가, 전력요금, 세제와 기반시설을 한 방향으로 묶으면 기업의 선택은 형식적으로만 남을 수 있다. 지역균형성장이라는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기업의 이사회와 주주, 노동자의 판단을 대신할 권한까지 정부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 기업을 옮기고,
- 그 기업 때문에 원전을 짓는다.
민주당이 먼저 설명해야 할 것
원전을 다시 짓는 결정 자체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 전력 안보, 반도체와 AI 산업의 수요를 생각하면 원전을 에너지 조합에서 배제하기 어렵다는 주장에도 근거가 있다. 과거 정책이 틀렸다면 고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먼저 자신들이 밀어붙였던 탈원전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 어떤 전제가 달라졌는지, 당시 판단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그 사이 기업과 지역, 원전 생태계가 치른 비용은 얼마인지 밝혀야 한다. 정책을 바꾸는 이유와 기준, 전환비용을 공개해야 다음 정책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설명은 전력수요가 늘었고 여론이 원전을 원한다는 데 머물러 있다. 2017년의 장기계획을 왜 폐기해야 하는지, 2025년 대선 당시 강조했던 재생에너지 중심 전략과 신규 원전이 어떤 원칙으로 결합되는지, 추가 원전의 상한은 어디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지역균형성장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 지역을 살리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기업의 본사와 공장 위치를 정해주는 방식이 정당한지, 기업과 노동자가 거부할 절차가 있는지, 이전 비용과 사업 위험은 누가 부담하는지 공개돼야 한다. 선한 명분은 권력의 한계를 지우지 못한다.
원전 찬반보다 먼저 볼 것
탈원전을 고집하는 것도 무책임할 수 있고, 현실이 바뀌었는데 과거의 구호만 지키는 것도 정책이 아니다. 그러나 어제까지 국가의 미래라고 했던 정책을 오늘의 정치적 필요 때문에 뒤집으면서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무책임하다.
탈원전을 금과옥조로 내세웠던 민주당이 이제는 지역균형성장이라는 명분으로 기업을 특정 지역에 옮기고, 그 기업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전을 다시 짓겠다고 한다. 정책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틀렸고 왜 바뀌었으며 누가 비용을 치렀는지 설명하지 않는 국가는 다음 약속도 믿기 어렵다.
원전 찬반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권력의 한계다. 기업의 위치도, 발전소의 숫자도 정부가 정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의 약속까지 바뀐다면 기업과 시민은 장기계획을 세울 수 없다. 지역균형성장도 에너지 전환도 예측 가능한 규칙 위에서 추진돼야 한다.
- 바뀐 정책보다 더 심각한 것은
- 예측할 수 없는 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