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업도 시민이다,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자유를 넓힌다
포스코의 4,368억 원 협력사 거래대금 조기 지급은 기업의 평소 거래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실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의 청년 기술교육과 카카오임팩트의 지역 문제 해결 실험도 살피며, 기업과 시민이 함께 도전할 자유를 넓히는 길을 생각한다.
추석을 앞두고 포스코그룹이 협력사에 지급할 거래대금 4,368억 원을 최대 13일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포스코와 포스코플로우는 9월 16일부터 23일까지 3,660억 원을 조기 지급하고, 포스코이앤씨는 예정된 대금 448억 원을 현금으로 일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퓨처엠과 포스코DX도 각각 약 130억 원을 앞당겨 지급하기로 했다.
4,368억 원은 큰 숫자다. 그러나 협력사 입장에서 더 절실한 것은 ‘며칠 먼저’라는 말일 수 있다. 명절 전에는 직원 급여와 자재대금 등 돈 나갈 곳이 몰린다. 받아야 할 돈이 일찍 들어오면 빌려야 할 돈이 줄어들고, 다음 주문을 준비할 여유도 생긴다. 큰 기업의 지급 일정은 협력사의 장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 가족의 생활에도 이어진다.
기업의 책임은 평소 거래에서 드러난다
포스코는 명절 전 대금 조기 지급을 여러 해 이어왔다고 설명한다. 회사 발표에 따르면 중소기업 납품대금은 2004년부터 전액 현금으로 지급했고, 2017년부터는 중견기업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포스코는 이 혜택이 2·3차 거래사까지 확산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만으로 말단 협력사가 실제로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까지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기업의 평소 거래 방식에서 사회적 책임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포스코는 포항과 광양의 전통시장 장보기, 식사 지원, 지역 장애인을 위한 생필품 나눔과 해양 정화 활동도 계획했다. 지역에 뿌리내린 기업이 이웃을 살피는 일이다. 그 가운데 씨앗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협력사 대금 지급이다. 행사가 끝나도 거래는 계속된다. 기업이 매일 하는 일의 방식을 바꾸면 그 영향도 매일 쌓인다.
기업이 잘하는 일로 시민의 기회를 넓힐 때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한다. 이익이 있어야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실패를 감수하며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 씨앗은 기업에 이익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기업이 자신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사회를 살피고, 가진 역량으로 다른 사람의 도전까지 넓혀 주기를 바란다.
삼성은 청년에게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을 가르치는 ‘삼성청년SW·AI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삼성의 2026년 9월 발표에 따르면 2019년부터 수료생 가운데 9,400여 명이 국내외 2,600여 개 기업에 취업했다. 교육을 받은 청년이 반드시 삼성에 입사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기업이 쌓은 기술 교육 경험이 여러 기업에서 일할 청년의 역량으로 이어진 것이다. 취업 인원은 삼성의 집계이므로, 일자리의 질과 이후 경력은 더 살펴봐야 한다.
카카오임팩트의 ‘테크포임팩트 캠퍼스’는 다른 방향에서 가능성을 보여준다. 올해 2학기에는 전국 13개 대학의 학생 355명이 사회혁신조직과 팀을 이뤄 지역의 문제를 살펴보고 AI와 디지털 기술로 해법을 만드는 수업에 참여한다. 학생은 현장을 찾아 문제를 이해하고 카카오 현직자의 도움을 받아 해결 도구를 개발한다. 이번 학기의 성과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 만든 도구가 수업이 끝난 뒤에도 현장에서 쓰이는지 확인할 때 가치가 더 분명해질 것이다.
포스코는 협력사가 움직일 자금을, 삼성은 청년이 일할 역량을, 카카오임팩트는 지역 문제를 풀 기술과 사람의 연결을 제공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기업이 이미 가진 힘을 사회 속으로 내어놓았다는 점은 같다.
좋은 영향력은 기업에도 돌아오는가
학계의 연구는 사회적 책임과 기업 성과가 함께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칸·세라핌·윤이 2016년 발표한 연구에서는 해당 산업에 중요한 사회·환경 문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높은 성과를 보였다. 반면 사업과 관련성이 낮은 분야의 좋은 평가는 같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모든 사회공헌 활동이 수익을 높인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이 실제로 마주한 문제와 연결된 책임을 꾸준히 다루는 일이 성과와도 맞닿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노동자를 실제로 고용해 진행한 다른 현장실험에서는 사회적 책임 활동과 임금 제안이 사람을 채용하고 일할 동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작용했다. 좋은 취지만 내세우고 임금과 일하는 조건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은 직원에게 지는 책임과 함께 갈 때 설득력을 얻는다.
이 연구들이 포스코의 조기 지급이나 삼성의 교육 프로그램이 이익을 얼마나 늘렸는지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책임 있는 거래로 협력사가 안정적으로 물건을 공급하고, 청년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지역에서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기업이 활동할 사회도 더 단단해진다. 그런 관계가 이어질 때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자유는 함께 도전할 수 있을 때 넓어진다
씨앗이 기업시민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의 자유는 새로운 제품과 사업에 도전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며, 협력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유다. 시민의 자유 역시 일할 곳을 선택하고, 기술을 배우고, 자기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갈 수 있을 때 넓어진다.
포스코의 협력사가 자금 부담을 덜면 다음 일을 준비할 선택지가 생긴다. 삼성의 교육을 받은 청년이 여러 기업에 지원할 수 있다면 자신의 길을 고를 여지가 커진다. 카카오임팩트의 수업에서 지역의 문제가 해결 도구로 이어진다면 그곳의 시민과 활동가도 이전보다 많은 일을 해볼 수 있다. 이것이 씨앗이 기대하는 사회적 임팩트다. 거창한 이름보다 사람에게 실제로 생긴 선택과 변화가 중요하다.
기업마다 가진 기술과 만나는 사람이 다르다. 기업이 스스로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책임을 선택하며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어야 활동의 폭도 넓어진다. 시민은 그 결과를 보고 응원할 수도,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응원할수록 결과를 살펴보자
포스코의 조기 지급은 예정대로 이뤄졌는가. 그 혜택은 2·3차 협력사까지 닿았는가. 삼성의 교육을 받은 청년들은 어떤 일자리에서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가. 카카오임팩트의 학생들이 만든 도구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지역에서 쓰이는가. 이런 사실이 하나씩 쌓이면 기업의 발표는 사회가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성과가 된다.
기업도 시민이다. 사회 안에서 이익을 얻으며 성장한 기업이 자신이 가진 힘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와 도전을 넓힐 수 있다. 씨앗은 그런 기업의 활동을 기꺼이 응원한다. 포스코가 보여준 협력사와의 거래, 삼성이 이어온 청년 교육, 카카오임팩트가 시작한 지역의 실험이 더 많은 기업의 선택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기업과 시민이 서로의 가능성을 키워 주는 사회라면 자유는 구호에 머물지 않고 삶 속에서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