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시민단체는 정부의 돌격대가 아니다
경실련은 정부에 농지전수조사를 ‘좌고우면하지 말고 완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정부의 추진력이 아니라 조사권의 한계와 시민의 권리다. 시민단체가 정부 대신 반대 여론을 꾸짖기 시작하면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은 사라진다.
정부를 검증하지 않고 정부에 명령했다
경실련이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농지전수조사 완수에 최선을 다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목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다. 농지조사의 기준과 절차를 다시 검토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국민의 우려를 충분히 듣고 문제를 보완하라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흔들리지 말고 계획대로 밀어붙이라는 주문이다.
농지 투기와 불법 이용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다. 농지의 소유와 이용 실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농지 투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지금 정부가 선택한 조사 방식까지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조사 목적이 옳다고 조사 대상과 절차, 판정 기준과 처분 방식까지 모두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사이를 검증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성명에서 먼저 드러나는 것은 국가권력에 대한 경계가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신뢰다.
- 시민단체가 살펴야 할 것은
- 정부의 추진력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한계다.
정부가 신중해지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가
경실련은 정부에 ‘좌고우면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국민의 재산권과 생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서 정부가 여러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은 좌고우면이 아니다. 민주정부가 당연히 거쳐야 할 숙의 과정이다.
누가 조사 대상이 되는가. 행정정보만으로 실제 경작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고령 농민과 상속농지 소유자, 구두계약으로 농지를 빌려 농사짓는 임차농은 무엇으로 자신의 사정을 입증해야 하는가. 정부의 판단이 잘못됐을 때 처분 절차는 즉시 중단되는가. 행정기관의 오판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경실련은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조사 완수를 요구하면서도 무엇을 기준으로 완수라고 할 것인지조차 밝히지 않는다. 모든 행정정보를 확인하면 완수인가. 현장조사가 끝나면 완수인가. 위법 의심 농지를 찾아내면 완수인가. 처분명령까지 내려야 완수인가. 실제 임차농이 보호되어야 비로소 완수인가.
성공의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완수를 요구하는 것은 정책 검증이 아니다. 정부의 행정력에 시민사회의 도덕적 권위를 보태는 일이다.
선한 목적은 국가권력의 면허증이 아니다
경실련은 농지전수조사가 ‘국민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조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부의 의도를 대신 해명하는 말일 뿐 재산권 침해 우려에 대한 답변이 아니다.
국가가 처음부터 국민의 재산을 빼앗겠다고 선언해야만 재산권 침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불분명한 조사 기준, 잘못된 행정정보, 과도한 입증책임, 부족한 이의제기 절차가 결합하면 선한 목적의 정책도 시민의 재산과 생업을 위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어떤 마음으로 조사를 시작했는지가 아니다. 정부의 권한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그 권한을 누가 통제하며, 잘못된 결정으로부터 시민을 어떻게 보호하는가다. 국가는 농지 투기를 조사할 수 있다. 그러나 조사 대상과 판정 기준을 공개하고, 처분에 앞서 충분한 소명 기회를 보장하며, 행정기관의 잘못으로 생긴 손해에는 책임져야 한다.
씨앗은 국가의 능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는 유능하되 제한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탁받은 국가는 목적의 정당성뿐 아니라 과정의 공정성과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입증해야 한다.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밀어붙이라고 한다
경실련은 전수조사 과정에서 지주가 임대차를 일방적으로 종료하면 실제 농사짓는 임차농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인정한다. 농촌의 고령화와 영농승계의 어려움, 관행적인 임대차 문제도 언급한다. 이것은 주변적인 부작용이 아니다. 조사 때문에 실경작자가 농지를 잃는다면 정책의 목적과 결과가 정반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임차농 보호장치와 피해구제 절차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때까지 조사와 처분을 신중하게 진행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경실련은 신고센터와 농지은행 공급 대책을 소개한 뒤 다시 조사 완수를 촉구한다.
대체 농지가 같은 지역에 있는지, 토질과 면적은 적합한지, 농번기 중 계약이 끝난 임차농은 어떻게 보호할지, 이미 투입한 영농비용은 누가 책임질지에 대한 검증은 없다. 피해 가능성은 인정하면서 대책의 실효성은 검증하지 않았다. 피해는 국민이 감당하고 성과는 정부가 가져가는 구조다.
반대하는 국민을 투기세력으로 몰지 말라
경실련은 야당 대표의 표현을 ‘사실왜곡’과 ‘정치적 이념 공세’라고 규정한다. 과도한 표현은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의 과장을 지적하는 것과 정책에 대한 모든 우려를 무책임한 정치공세로 몰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농지 투기를 반대하면서도 전수조사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경자유전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재산권과 적법절차를 요구할 수 있다. 국가가 농지 실태를 파악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조사권이 자의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할 수 있다.
경실련의 성명은 이런 중간지대를 지운다. 정부 조사를 지지하면 공익이고 우려를 제기하면 투기적 소유를 옹호하는 것처럼 구도를 만든다. 이것은 논쟁이 아니라 도덕적 낙인찍기다. 정부가 공익을 정의하고 시민단체가 그 정의에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면, 정책에 대한 질문은 저항으로 변하고 권리 보호 요구는 기득권의 반발로 취급된다.
시민단체가 서야 할 자리가 바뀌었다
정부는 이미 조사권과 행정력, 처분권을 가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걱정해야 할 것은 정부에 정책을 추진할 힘이 부족한가가 아니다. 그 힘이 시민을 향해 잘못 사용되지 않는가다.
그런데 경실련은 정부 권한을 제한할 조건보다 정부의 정책 추진을 먼저 걱정한다. 국민의 불안이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살피기보다 정부가 그 불안 때문에 물러서지 않을까 염려한다. 정부에 설명과 책임을 요구하기보다 국민에게 정부 정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시민단체의 자리가 시민의 곁에서 정부의 곁으로 이동한 것이다.
시민단체가 정부 정책에 찬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권력을 감시할 기준까지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정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과 정부의 추진대가 되는 것은 다르다. 조사 범위를 제한하고 권리구제 절차를 요구하며 피해가 발생할 경우 중단할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시민의 대표가 아니라 국가정책의 확성기에 가까워진다.
- 권력을 감시하던 시민단체는
- 언제부터 권력의 홍위병이 되었는가.
시민단체는 시민 권리의 방어선이어야 한다
농지 투기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 명분이 국가에 백지수표를 주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조사받는 국민의 권리도 지켜져야 한다. 선의의 농민과 임차농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조사 기준과 구제 절차부터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조사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조사권의 한계와 잘못된 처분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실련이 정부에 요구해야 할 말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완수하라’가 아니다.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장치부터 마련하고 조사 기준과 책임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씨앗은 분명하게 본다. 시민단체는 국가가 휘두르는 칼을 더 날카롭게 벼리는 조직이 아니다. 그 칼이 법의 경계를 넘지 않는지, 힘없는 시민을 향하지 않는지 감시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민단체는 권력의 선봉대가 아니라 시민 권리의 마지막 방어선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