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의 소리

칼럼

끼어드는 차에 양보하면, 나만 손해일까?

한 대쯤 양보하자는 말은 쉽다. 매번 기다린 사람만 양보한다면 줄을 지킬 이유는 무엇일까. 출구 대기 줄을 우회하는 행동과 정상적인 합류를 구별하고, 순서를 지키려는 마음이 사고와 보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기준을 살펴본다.

시민의 딜레마 ④

※ 도입 장면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 구성한 가상 사례입니다.

고속도로 출구를 앞두고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조금씩 움직이는 줄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옆 차로를 달려온 승용차가 앞쪽에서 방향지시등을 켠다. 내 차와 앞차 사이로 차머리가 들어온다.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다. ‘다들 시간이 남아서 기다리는 건 아닌데.’ 이번에도 받아주면 다음 차도 같은 방법으로 들어올 것 같다. 그렇다고 간격을 좁혀 막으려니 차끼리 부딪칠까 겁이 난다.

한 대쯤 양보하자는 말은 쉽다. 그런데 매번 기다린 사람이 양보해야 한다면, 줄을 지키는 사람은 무엇을 믿고 기다려야 할까.

양보의 비용은 내 뒤에도 쌓인다

끼어드는 운전자에게는 차 한 대가 들어갈 틈이면 된다. 기다리던 운전자에게는 그 차가 지나온 줄 전체가 보인다. 같은 몇 미터를 두고 한쪽은 빈 공간을 보고, 다른 쪽은 기다린 시간을 본다.

그래서 이때의 분노를 운전자의 성격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먼저 와서 기다렸다는 사실이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순간, 사람은 자신의 시간뿐 아니라 규칙을 지킨 선택까지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나도 다음부터는 저렇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도로 위의 약속은 그만큼 약해진다.

양보를 받는 차가 내 앞으로 들어오면, 나뿐 아니라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순서도 밀린다.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선택에 다른 사람의 시간도 들어 있는 셈이다. 이 상황을 “그냥 좋은 마음으로 양보하라”는 말로 끝내기 어려운 이유다.

깜빡이를 켰다고 순서가 생기지는 않는다

먼저 일상에서 말하는 ‘끼어들기’와 법에서 금지하는 끼어들기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도로교통법 제23조는 제22조 제2항에 해당하는 차 앞으로 끼어드는 것을 금지한다. 법령이나 경찰의 지시에 따라, 또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정지하거나 서행하는 차가 그 대상이다. 옆 차로에서 앞으로 들어오는 모든 행동이 같은 위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1][2]

진로를 바꿀 때는 별도의 안전 기준도 따른다. 도로교통법 제19조 제3항은 바꾸려는 방향에서 오는 다른 차의 정상적인 통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으면 진로를 변경하지 못하도록 한다. 제38조는 진로 변경 때 신호하도록 규정한다. 두 조항을 함께 보면, 깜빡이는 자신의 움직임을 알리는 신호이지 상대에게 자리를 내놓으라는 명령이 될 수 없다.[3][4]

길을 잘못 들었거나 출구를 늦게 알아챈 사정은 있을 수 있다. 그 사정만으로 이미 기다리는 사람의 순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들어갈 수 있는 안전한 기회를 놓쳤다면 경로를 바꾸어 돌아가는 비용도 운전자가 감당할 몫이다.

그런데 끝에서 합류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여기서 다른 장면을 생각해보자. 출구로 빠지는 대기 줄이 아니라, 공사 때문에 두 차로가 한 차로로 줄어드는 구간이다. 차들은 느리게 움직이고, 두 줄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계속 가야 한다.

미국 미네소타주 교통국은 이런 혼잡한 공사 구간에서 두 차로를 합류 지점까지 이용한 뒤 한 대씩 번갈아 들어가는 ‘지퍼 합류’를 안내한다. 반대로 정체 없이 고속으로 달릴 때는 안전하게 미리 합류하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상황에 따라 합류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다.[5]

이 사례가 국내의 모든 합류 지점에서 끝까지 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국내 법규와 현장의 차선·표지·통제 지시가 우선이다. 다만 늦게 합류했다는 모습만으로 새치기라고 판단하면, 차로가 사라져 정상적으로 합류해야 하는 차까지 적으로 돌릴 수 있다.

출구 대기 줄을 옆으로 지나 앞에서 들어오는 장면과, 두 차로가 하나로 줄어드는 장면은 다르다. 어느 차가 먼저였는지를 따지기 전에 그 도로가 어떤 통행을 요구하는지 볼 필요가 있다. 순서를 지키려는 마음도 상황을 잘못 읽으면 다른 사람의 길을 막을 수 있다.

상대의 사정은 보이지 않고, 내 사정은 절박하다

내가 출구를 놓칠 때는 초행길이거나 내비게이션 안내가 늦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차가 들어오면 얌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 차 안의 사정은 자세히 알지만, 상대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끼어들기를 사정 있는 실수로 받아줄 수도 없다. 반복해서 줄을 앞질러 가는 행동까지 배려라는 말로 덮으면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비용이 돌아간다. 운전자의 속마음을 알아내려 하기보다, 대기 줄을 우회했는지, 정상적인 합류인지, 다른 차에 급한 제동을 요구하는지를 보는 편이 판단에 도움이 된다.

나는 도로에서 상대를 벌주지 않겠다

씨앗 시민이라면 어떻게 할까. 나는 이미 차머리가 들어와 충돌 위험이 생겼다면 안전하게 속도를 조절해 사고를 피하겠다. 화가 난다고 가속해 틈을 닫거나, 앞질러 가 급제동하는 방식으로 순서를 되찾으려 하지는 않겠다. 도로교통법도 필요한 안전거리 확보를 요구하고, 위험 방지 등의 사유가 없는 급제동을 금지한다.[3][4]

이 선택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상대는 결국 내 앞에 들어왔고, 나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사고를 피하려고 공간을 내준 일과 그 행동을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일은 구별하겠다. 내 차에 탄 사람과 뒤따르는 사람의 안전까지 걸고 상대를 벌줄 수는 없다.

명백한 위반이 의심된다면 안전한 곳에 정차한 뒤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 신고하겠다. 경찰청은 끼어들기를 비롯한 교통법규 위반 제보를 안전신문고로 안내하고 있다. 달리면서 휴대전화를 들거나 상대 차를 쫓아갈 이유는 없다.[6]

반대로 정상적인 합류가 필요한 차라면 통행 상황을 살펴 안전하게 들어올 여지를 주겠다. 그리고 내가 합류하는 쪽일 때는 미리 신호하고, 상대가 급히 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틈을 기회로 여기지 않겠다. 내가 받고 싶은 양보에도 내가 지킬 책임이 따른다.

양보하는 사람만으로는 질서를 지킬 수 없다

같은 출구에서 날마다 다툼이 생긴다면 운전자의 인성만 살펴서는 부족하다. 출구 안내가 충분히 앞에서 보이는지, 대기 줄의 시작을 알아볼 수 있는지, 차로가 줄어드는 곳에서 어디서 어떻게 합류할지 분명한지 확인할 일도 남는다.

단속도 기다린 사람의 신뢰를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규칙을 어기는 편이 계속 유리하다면 “서로 배려하라”는 캠페인은 규칙을 지킨 사람에게 보내는 추가 청구서가 되기 쉽다. 안내와 단속을 바꾼 뒤에는 같은 지점의 위험한 진입과 급제동, 사고가 실제로 줄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시민의 딜레마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골라내는 시험이 아니다. 내 순서를 지킬 이유가 충분한 순간에도, 그 순서를 되찾는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위험을 넘기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나는 끼어드는 차와 부딪치지 않도록 하겠다. 대신 내가 급할 때도 다른 사람의 기다림을 빈틈으로 여기지 않겠다. 양보를 부탁하기 전에 내가 건너뛰려는 줄을 보겠다. 그 안에는 나와 똑같이 시간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