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윗집에 항의하면, 나만 까다로운 사람이 될까?
시민의 딜레마 ② · 이웃을 배려하느라 내 잠과 휴식을 계속 미뤄야 할까. 불편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상대에게 조정할 기회를 주며, 내가 요구받을 때도 같은 기준을 지키는 선택을 살핀다.
시민의 딜레마 ②
밤 열한 시가 넘었다. 천장에서 쿵, 쿵, 소리가 내려온다.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 이어진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누워 있는 몸보다 귀가 먼저 깨어 있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할까. 윗집에 말을 전할까. 그러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얼마나 어색할까.
‘아이 있는 집일 수도 있잖아.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그렇게 오늘도 말을 삼킨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한 건물에 사는 이웃이라면 어느 정도 불편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그 ‘어느 정도’는 누가 정할까. 배려하는 사람의 잠과 휴식은 어디까지 양보해야 할까.
말하지 않는다고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웃과 얼굴을 붉히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한 번 다투면 앞으로 택배를 찾으러 나갈 때도,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도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이사를 가지 않는 한 계속 마주칠 사람이다.
그래서 참는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작은 불편을 모두 따지기 시작하면 공동생활은 팍팍해진다. 누구나 의자를 끌 수 있고, 물건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래층을 불편하게 했을지 모른다.
참는 일이 거듭되면 다른 비용이 쌓인다. 퇴근해 돌아온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잠을 설친 다음 날까지 피곤함이 이어진다. 윗집 사람을 볼 때마다 속으로 원망하게 된다.
겉으로 인사한다고 마음까지 평온한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은 불편은 이웃 관계를 조용히 갉아먹기도 한다.
소리를 들은 사람과 소리를 낸 사람은 다르게 느낀다
내 집에서는 잠깐 뛰어다닌 일일 수 있다. 아래층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되풀이되는 진동일 수 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판단과 “이 정도도 못 쉬나”라는 마음이 같은 천장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다.
여기서 서로의 형편을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아이를 조용히 시키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고, 늦게 귀가해 생활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아래층에는 아침에 출근할 사람, 겨우 잠든 아기를 돌보는 사람, 낮에 자야 하는 교대근무자가 있을 수 있다.
한쪽의 사정만 듣고 결론을 내리면 다른 쪽의 생활이 빠진다.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도, 쉬어야 하는 사람의 절박함도 각자의 집 안에서는 크다.
누가 더 착한 이웃인지 겨루기 시작하면 소음을 줄일 방법을 찾기 어려워진다.
씨앗 시민이라면, 참는 대신 어떻게 말할까
내가 아래층에 산다면 불편을 말하겠다. 상대를 ‘몰상식한 사람’으로 규정하기 전에, 내가 겪는 일을 구체적으로 전하겠다.
“최근 며칠 동안 밤 열한 시 이후에 쿵쿵거리는 소리가 반복돼 잠들기 어렵습니다. 그 시간에는 뛰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을 줄여주실 수 있을까요?”
이 말을 하기 전에는 들린 시간과 소리의 양상을 간단히 적어두겠다. 위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져도 소리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바로 확정하지는 않겠다. 확인할 일을 남겨두면, 다른 이웃에게 엉뚱한 책임을 묻는 실수도 줄일 수 있다.
말을 전하는 통로도 생각하겠다. 직접 대화가 편안한 관계라면 차분히 이야기하고,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관리사무소 같은 중간 창구를 이용하겠다. 화가 난 밤에 곧바로 문을 두드리기보다, 내용을 정리해 전할 시간을 고르겠다.
이 선택에도 비용이 있다. 부탁을 꺼내는 용기가 필요하고, 좋은 뜻으로 말해도 상대가 불쾌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 생활을 지키려는 말을 끝없이 미룰 수는 없다.
배려는 내가 겪는 불편을 숨겨주는 일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윗집 사람이라면
반대로 내가 소음을 낸 쪽이라면, “공동주택에서 그 정도도 못 참느냐”는 말부터 꺼내지 않겠다. 내게 작은 소리가 다른 집에서는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물어보겠다.
문제가 생기는 시간에 가구를 옮기지 않고, 의자 다리에 완충재를 붙이고, 아이가 뛰는 놀이의 시간과 장소를 바꿔볼 수 있다. 당장 모든 소리를 없앨 수 없더라도 어떤 일을 줄일지는 정할 수 있다.
“아이 있는 집이라 어쩔 수 없어요”라는 말로 대화를 끝내면, 아래층은 앞으로도 계속 참으라는 뜻으로 듣게 된다. “어느 시간에 특히 불편하신가요. 그때는 이렇게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함께 조정할 여지가 생긴다.
조용한 집을 만들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그 사정을 설명하겠다.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행동도 함께 제시하겠다.
한 번 부탁했다고 끝나는 일은 아니다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소음이 계속될 수 있다. 그때는 부탁을 반복하며 혼자 견디기보다 기록을 바탕으로 중재를 요청하겠다. 보복하려고 더 큰 소리를 내거나, 단체 대화방에서 집 호수를 공개해 망신을 주는 방식은 해결보다 감정싸움을 키우기 쉽다.
건물의 구조 때문에 소리가 잘 전달되는 경우도 살펴야 한다. 생활 방식을 바꿔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점검하고 보완할 수 있는지 함께 확인할 일이 남는다. 이웃의 인성만 탓하는 동안 건물의 문제가 가려질 수도 있다.
씨앗 시민의 선택은 내 권리를 말하면서 상대에게 조정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내가 요구받는 쪽이 되었을 때도 같은 태도를 지키는 것이다.
대화 뒤에는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보겠다. 소음이 줄었는가. 쉬어야 할 시간을 함께 정했는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다시 이야기할 통로가 있는가.
엘리베이터에서 웃으며 인사하는 것만으로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생활을 조금 바꾸는 관계. 내가 지키고 싶은 이웃 사이는 그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