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가게인데, 손님을 골라도 될까?
시민의 딜레마 ① · 가게 주인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이고, 조용히 문 앞에 선 가족에게는 이유 없는 거절이다. 씨앗 시민이라면 사람을 미리 가려내기 전에 문제 행동을 줄일 방법부터 찾겠다.
시민의 딜레마 ①
토요일 오후, 작은 카페에서 아이가 테이블 사이를 뛰어다닌다. 사장은 뜨거운 커피를 들고 멈춰 선다. 보호자에게 조심해 달라고 말하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아이가 좀 뛰어다닐 수도 있죠.”
그날 영업을 마친 사장은 출입문에 붙일 안내문을 검색한다. ‘노키즈존.’ 이 네 글자면 같은 일을 다시 겪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음 날, 아이와 함께 찾아온 다른 손님이 그 문 앞에 선다. 아이는 보호자의 손을 잡고 조용히 서 있다. 아직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들어갈 수 없다.
사장의 하루도 이해되고, 문 앞에 선 가족의 마음도 이해된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 내 돈으로 연 가게에서 손님을 고르는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좋은 마음만으로 가게를 운영할 수는 없다
가게는 사장에게 생계다. 손님 사이의 다툼을 말리고, 깨진 물건을 치우고, 불편해진 다른 손님을 달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작은 가게라면 이를 맡길 직원조차 없을 수 있다.
그러니 “아이를 너그럽게 받아주세요”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너그러움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누가 감당하는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외출할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모든 뒷수습을 맡길 자유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씨앗 시민이라면 가게 주인의 자유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손님을 맞는 사람이 무례와 위험까지 견뎌야 한다면, 그 공간을 계속 열어둘 힘도 줄어든다.
그런데 이 아이는 무슨 잘못을 했을까
문 앞에 선 가족에게는 다른 질문이 생긴다. 어제 소란을 피운 아이와 우리 아이는 다른 사람인데, 왜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할까.
실제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한 식당의 13세 이하 아동 출입 제한을 차별로 판단했다. 일부 이용자의 문제를 아동 전체로 일반화해 이용을 배제했다는 점을 짚었다.[1](https://www.yna.co.kr/amp/view/AKR20171124044400004)
이 논쟁의 불편한 지점은 여기에 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제한하면 그 행동에 책임을 묻게 된다.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사람을 미리 제한하면, 아직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사람까지 문밖에 서게 된다.
가게 주인에게는 위험을 줄이는 간단한 기준이지만, 거절당한 손님에게는 자신을 설명할 기회조차 없는 기준이다.
씨앗 시민이라면, 문에 무엇을 붙일까
내가 이 카페의 주인이라면 우선 ‘아이 출입 금지’ 대신 행동에 관한 안내를 붙이겠다.
“뜨거운 음료가 오가는 공간입니다. 이동 통로에서 뛰지 말아 주세요. 보호자께서는 아이의 안전을 살펴 주세요. 다른 손님의 이용을 방해하는 행동이 계속되면 이용 중단을 요청하겠습니다.”
아이에게만 적용할 이유도 없다. 큰 소리로 통화하는 어른, 직원에게 폭언하는 손님, 통로를 막고 촬영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물론 안내문 하나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장은 직접 설명해야 하고, 불쾌한 반응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사람을 한꺼번에 가려내는 방식보다 손이 더 간다. 이 선택에는 비용이 있다.
그래도 먼저 행동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게를 지키면서도, 잘못하지 않은 사람에게 들어올 기회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아이를 데리고 온 손님이라면 “돈을 내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느냐”는 마음부터 내려놓겠다. 아이가 뛰면 멈추게 하고, 계속 진정되지 않으면 잠시 밖으로 나가겠다. 직원의 주의가 부당하다고 느껴져도 아이 앞에서 다투기보다 구체적인 이유를 묻겠다.
손님으로 대우받고 싶다면, 그 공간을 함께 쓰는 사람도 손님으로 대우해야 한다.
모든 문을 똑같이 열 수는 없다
공간의 실제 위험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뜨거운 조리시설이 가까이 있거나 추락 위험을 막기 어려운 구조라면 이용 제한을 검토할 이유가 생긴다. 이때는 어떤 위험이 있는지, 좌석이나 동선을 바꾸는 방법으로 줄일 수 있는지, 제한이 꼭 필요한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따져봐야 한다.
또 손님은 특정 가게를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다른 가게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비슷한 거절이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집의 운영 방침으로 보였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동네에서 갈 곳이 줄어드는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다른 데 가면 되지”라는 말만으로 그 사람이 치르는 불편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내 자유를 지키는 기준을, 내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씨앗 시민의 선택에도 망설임은 남는다. 모두를 받아들이자니 사장의 부담이 커지고, 편한 기준으로 가려내자니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밀려난다. 어느 쪽을 골라도 비용은 남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미리 가려내기 전에 문제 행동을 줄일 방법부터 찾겠다. 제한이 필요하면 이유를 설명하고, 가능한 한 좁은 범위에서 적용하겠다. 그리고 손님이 되었을 때도 그 기준을 받아들이겠다.
내가 조용히 앉아 있어도 나이 때문에 거절당한다면 어떨까. 반대로 내 아이의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이 뜨거운 커피를 쏟을 뻔했다면 어떨까.
출입문에 안내문을 붙이기 전, 두 장면을 한 번씩 떠올려보는 것. 시민의 선택은 그 짧은 망설임에서 시작될 수 있다.